곰솔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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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코르드 광장, 프랑스 해군성 건물 2011/04/11 12:33:03
1stwhitewhale   - Homepage : http://www.facebook.com/kyoungil.paek Hit : 1103 , Vote : 169     





콩코르드 광장에 있는 프랑스 해군성 건물을 서쪽에서 바라보고 찍은 사진.
맨 아래 사진에는 해군성 앞의 분수대가 보이고 있다.
프랑스 해군성이 이렇게 프랑스 수도 빠리에서도 매우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이유는
역사적으로 프랑스 해군이 프랑스의 식민지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임무를 담당했기 때문이라고 하며,
실제로 프랑스 해군성의 정식명칭 역시 원래는 해군식민성이었다고 한다.
(물론 프랑스 해군이 역사적으로 그렇게 훌륭한 전공을 세운 것은 아님.
영국 해군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독일 해군에게도 많이 밀렸던 과거가 있음.)

이곳 콩코르드 광장은 루이 15세 시절에 만들어졌는데,
프랑스혁명 당시 그 유명한 단두대(guillotine)는 바로 이곳에 세워져 있었으며,
바로 이곳의 단두대에서 루이 16세, 마리 앙뜨와네트 등
수많은 왕족과 귀족, 왕당파, 보수파 인사들의 목이 잘렸다고 한다.
이곳에서 혁명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단죄하고
그들의 참수형을 주도했던 혁명지도자 동똥(Danton)과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역시 나중에 권력을 잃고 나자
이곳에서 마찬가지로 목이 잘렸다고 한다.

프랑스 해군성 뒷쪽으로는 프랑스 외무유럽부 건물이 보이고 있는데,
내가 이 사진을 찍었을 당시만 해도 프랑스 외무유럽부는
Ministre des Affaires étrangères, de la Coopération et de la Francophonie라 불리고 있었다.
(지금은 ministre des Affaires étrangères et européennes라 불리고 있음.)
그리고 당시 프랑스 외무유럽부 장관은 도미니그 드 뷜빵(Dominique de Villepin)이었다.
드빌팽은 프랑스의 귀족가문 출신에 법학과 문학을 전공한 관료로
워낙 얼굴이 잘 생긴 데다 키도 훤칠하게 크고 인문학적 소양도 대단하여
이 당시 미국과 프랑스 간의 외교적 대립관계로 인해
미국의 조지 부시, 콜린 파웰 등에 대항하여 극한의 외교전을 펼치면서도
미국사람들로부터 미움은커녕 오히려 사랑과 존경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프랑스 외교정책을 이끄는 한편, 하루에 여러 시간씩 집필활동도 하고,
아주 괜찮은 아프리카-아시아 예술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가 하면,
짬짬이 마라톤도 즐기는 현대의 수퍼맨"으로서 대단한 개인적 매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치적으로 우파 성향이었던 그는 이후 프랑스 총리가 되었고,
싸흐꼬지(Sarkozy)와 함께 집권당 내에서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치열히 다투었는데,
26살 미만 젊은이의 해고를 자유롭게 한 최초고용계약제를 추진했다가 역풍을 맞고,
정적 싸흐꼬지에 대한 청부조사를 지시한 혐의가 드러나면서 결국 싸흐꼬지에게 패하고 말았다.
(최근에 프랑스법원은 드뷜빵이 음해를 공모한 증거가 없다며 드뷜빵의 무죄를 선고하였음.)
보수주의적 성향이긴 하지만 참 아까운 정치인이었는데
그렇게 한방에 훅 가는 것을 보고 (심지어 싸흐꼬지는 드뷜빵을 가리켜 "푸줏간의 못에 걸어야 한다"고 극언하였음)
정말 안타까워 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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