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Cruicible 감상문





- 이하의 글은 2002년 5월 14일 저의 "개인낙서장"에 올렸던 제 영화감상문을 아무런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고래 wrote:

방금 Kabel1에서 Daniel Day-Lewis와 Winona Ryder가 나온 영화 "The Cruicible"을 본 뒤 착잡하고 흥분된 마음에 글을 쓴다. 1692년의 Massachusetts, 그 숨막히는 청교도적 질서 속에서 어리석은 군중심리, 폭력적인 집단히스테리, 위선적 종교신앙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각 개인의 삶들을 속속들이 파괴하게 되는지, 그 얼마나 수많은 인간들이 그런 집단적인 광기 속에서 서로에게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나는 방금, 아주 어수선한 정신으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Abigail (Winona Ryder 분)을 비롯한 수많은 소녀들은 밤중에 달빛 아래 몰래 모여서 자기 사랑을 이루게 해달라고 악마의 의식을 벌이다가, 어른들에게 발각되자 그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일부러 집단혼수상태에 빠져들면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악마로 고발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른다. 순진한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고발을 모두 곧이곧대로 믿자, 이런 모든 일의 주동자이던 처녀 Abigail은 이번 기회에 자기가 그동안 사랑해오고 있던 농부 Proctor (Daniel Day-Lewis 분)를 독차지해버리기 위해 심지어 농부 Proctor의 아내까지 마녀로 고발하기에 이르는데, 이에 농부 Proctor가 Abigail의 음모를 폭로하려 하자 이제 그녀는 Proctor까지 악마로 몰아세워 결국 그를 마녀사냥의 희생물로 처형당하게 만든다.

사실 이런 비극적인 마녀사냥이 벌어지게 된 데에는 당시의 비과학적, 반이성적, 신비주의적인 종교관, 독선적인 청교도신앙도 크게 한몫을 담당했겠지만, 그 모든 사건의 결정적 도화선이 결국은 한 간교한 계집 Abigail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한번 음미해볼만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남자들도 사랑에 실패하면 반미치광이가 되어 자기가 사랑했던 한 여자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일이 간혹 있긴 하지만, 과연 이 조그마한 계집 Abigail처럼 자기가 사랑했던 한 사람을 이렇게 철저하게 파멸시켜버리는 경우가 과연 있을까 싶어질 정도로, Abigail의 독기는 사람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남자들보다 훨씬 더 사랑에 매달리고, 남자들보다 훨씬 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집요하게 몰두하며, 결국 자기가 그 사람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그 사람을 파괴해버리거나 그 사람 아닌 다른 것이라도 파괴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이 여성들 특유의 비현실적 환상과 폭발적인 광기는, 우리 남자들 모두가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다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더 기억해둬야 할 것은, 마음대로 한 남자를 사랑하고, 마음대로 한 남자를 소유하려 하고, 자기 마음대로 혼자 신열에 들뜨다가, 종국에 가서는 자기 머릿 속에 떠오르는 모든 환영들을 다 진짜로 믿어버리며 자기가 사랑했던 한 남자를 악마로 단죄해버리는 가증스러운 악녀라고 할지라도, 그녀의 상처와 고통이 너무나도 절절하게 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Abigail 그녀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자기는 미쳤다는데, 자기는 악마의 마법에 걸린 불쌍한 피해자라는데, 자기 눈에는 정말로 그렇게 보인다는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말이다. 문제는 이런 여자애 하나의 말에 정신없이 휘둘리며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사회에 있는 것이지, 그저 자기 어린 욕심대로 자기 주위 모든 것을 다 자기 입맛대로 바꿔보려다가, 본의 아니게 자기 주위를 파괴하게 되고, 그렇게 자기 자신이 파괴해버린 것들에게 가끔은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하는 이 대책없는 여자애한테는 어떠한 책임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책임은 멀쩡한 정신을 갖고 있는 성인남자로서 이런 순진한 여자애의 유혹에 넘어가, 이 여자애가 잘못된 마음을 먹을 수 있게끔 빌미를 제공해버린 Daniel Day-Lewis에게 있는 것이지, Abigail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를 악마로 단죄해버리기엔 미심쩍은 점이 있어서 악마라고 자백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제의하는 종교재판관들에게 "Lassen Sie mir meinen Namen!"을 외치며 끝까지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이 고지식한 인간 Daniel Day-Lewis는, 그 고집스럽고 딱딱한 성격 하나만으로도 17세기 미국이 아니라, 이 세상 어딜 가더라도 집단히스테리의 희생양이 되기에 딱 알맞는 조건을 갖춘 인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얼굴 없는 대중의 광기는 자의식도 뭣도 없이, 자존심도 뭣도 없이 그냥 실실 웃으며 살아가는 그런 눈치 빠르고 부드러운 사람에 대해서는 절대 발휘되지 않는 법이며, 유난히 자기 존엄과 자기 일관성에 집착하는, 이런 고집불통의 바보같은 인간에게만 되풀이해서 발휘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성을 갖춘 존재라는 말은 확실히 거짓말인 것이 분명하다. 인간은 모두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고, 자기가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게 돼있다. 그렇게 야만과 광기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이성과 진실에 대해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은 불행하게 돼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말에 항상 자기 이름을 걸며, 자기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고 살아가려는 모든 인간들은 그 터무니없는 자신감때문에 결국 다 파멸하게 돼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자는 얼굴도 없고, 이름도 없는 군중들일 뿐이다. 자기 이름이 있고, 자기 생각이 있으며, 세간의 평판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모든 인간들은 결국 자기 원칙과 자존심에 의해 필연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돼있지만, 이름도 없고 생각도 없이 그저 세간의 평판만을 쫓으며 눈치 빠르게 살아가는 모든 약삭빠른 인간들은 그 부드러움과 혼란스러움과 비열함 덕분에 언제나 남을 단죄하고 남을 심판할 권한을 점하며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남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원래 1952년에 Arthur Miller가 썼던 동명의 희곡을 1996년에 다시 각색해서 만든 작품이다. 1950년대 당시 미국사회를 휩쓸었던 McCarthism의 광풍 속에서 소위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이라는 지배적인 가치에 회의를 품었던 모든 비범한 사람들이 감옥으로 끌려가는 모습, 그리고 그 공포분위기를 이용하여 자기가 사적으로 원한을 가진 모든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붙여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시켜버리는 그 수많은 인간군상들의 가증스러운 모습들을 보고서, Arthur Miller는 이 희곡 "The Cruicible"을 집필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희곡의 소재가 되었던 Salem사건은 미국역사에 정말 실재했던 사건이었으며, 그 사건 하나로 종교재판을 받고 죽은 무고한 사람의 숫자는 자그마치 16명이었다고 전해진다. 하긴, 어차피 청교도의 창시자 Jean Calvin때부터 개신교 역시 천주교처럼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악마나 마녀로 몰아 죽인 것은 마찬가지였으므로, 그깟 16명이란 숫자 역시도 그리 놀랄만한 숫자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단지 일반인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완전히 '위험분자'로 몰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일은 지금도 우리 주위 곳곳에서 얼마나 자주 벌어지고 있는가 말이다.

또한 Winona Ryder가 분한, 교활하고 집요하고 이기적인 여자 Abigail은 얼핏보면 사악하기만 한 여자로도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Richard Strauss의 오페라에 나오는 Herod의 딸 Salome나, Saint-Saens의 오페라 'Samson과 Delilah'에 나오는 팔래스티나여인 Delilah를 연상케 하는 해방여성으로서, 오늘날 Feminism적 시각에서 본다면 남성위주의 합리적 이성에 저항한 여성투사로서 재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 눈에는 그녀의 비열함과 간교함이 섬뜩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모든 여성은 영원한 피해자이고, 모든 남성은 영원한 가해자일 수밖에 없는 것... 남자보다 약한 뼈, 약한 근육의 힘밖에 타고나지 않은 여성들로서는 Abigail처럼 사악함과 뻔뻔함이라도 갖춰야 남성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최소한 자기가 성취하고자 하는 단 한가지 것이라도 챙겨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그녀를 그렇게까지 만든 것은 아직까지도 마초들만이 우글대는 이 불공평한 세상이지 그녀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 남자들은 그저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녀 같은 여자들에게서 모함을 받아 죽어 마땅하며, 그러한 운명은 우리 남자들이 여자로 다시 태어나봐야 비로소 절실히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2002.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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