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rix Revolutions !!!





- 이하의 글은 2003년 11월 12일 베를린리포트 "자유투고란"에 올렸던 제 영화감상문을 아무런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고래 wrote:

어제는 몇몇 독일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 언제나처럼 -_-;; - 이런저런 노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걔네들이 다들 'Matrix3'을 보았다길래 자연스럽게 'Matrix3' 얘기를 화제에 올리게 되었다. 비록 내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걔네들 말을 들어보니까 대충 스토리가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으며, 대충 종합해보니까 아마도 'Matrix3'은 Oracle의 불확정성, Neo의 결단주의(Dezisionismus)가 Architect의 작위적 계획성, Merovingian의 인과성(Kausalität) 등과 충돌해서 사랑과 화해로 일약 변증법적인 비약(dialektischer Sprung)을 하면서 결말이 지어졌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Architect의 시스템 속에서 정작 위험한 요소로 화했던 것은 Neo가 아니라 Smith였다는 것을, 다시 말해 정말로 위협적이고 부조리했던 것은 처음엔 인간이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그러한 부조리가 기계 자신으로 옮겨왔다는 사실이 점점 밝혀지게 되었으며, Architect 자신의 분신이었던 Oracle이 암시했던 것처럼 불확정성(Unbestimmtheit)과 사랑과 화해라는 전제가 Architect 자신의 원래 생각(확정성과 대립과 통제)보다 더 옳은 것이었음을 Architect가 마지막에 확실히 알아차리게 되었고, 그래서 Architect가 Neo와 손잡고서 Matrix의 대표적 방어프로그램이자 이제는 버그가 되어버린 Smith를 제거해버림으로써 Matrix는 다시 기계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매개로서 그 운영주체가 근본적으로 수정(modifiziert)되었고, 나아가 해체(aufgelöst)되었다는 것이 내 독일친구들이 이해한 'Matrix3' 영화의 내용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교묘한 반전이 가능하게 되었냐고? 한번 내 설명을 잘 들어보시기 바라겠다.

그러한 반전의 계기는 사랑하는 Trinity가 먼저 죽는 것을 보면서 Neo가 Matrix(Architect)의 마지막 비밀(심지어는 Smith에게 이기는 경우조차도 이미 Architect에 의해 programmiert되어있는 것이니 어떤 경우든 fabrizierte Simulation를 벗어날 순 없다는 것)까지도 모두 간파해버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다시 말해 Neo가 진정으로 사랑한 Trinity가 죽어버린 이 세상, 이 System 속에서 모든 싸움은 헛되고 헛된 것을 나 Neo는 깨달았도다... 내가 너 Smith를 쳐부수거나 기계세상 전체를 때려부수고 인류에게 평화(Frieden)을 가져다준다느니 하는 따위의 일도 다 부질없는 짓임을 깨달았도다... 어차피 내가 Smith를 이겨도 Matrix가 존속하는 한 제2, 제3의 Smith는 계속 만들어질 것인 만큼, 차라리 내가 너희 기계들과 하나가 되고 너 Smith에게도 기꺼이 져주리라... 내가 너 Smith에게 기꺼이 먹혀서 네가 내 영혼을 소멸해버리듯 나도 Matrix의 전쟁프로그램을 배반하고, 그렇게 내가 너를 용서함으로써 Matrix의 원리를 부정하고 Matrix를 해체해버리겠노라... 날 죽이고 니가 현실 Matrix의 승자가 돼라... 나는 패자로서 너의 속에 섞이고 스며들어가 새로운 진화를 이루어내겠노라...라는 결단을 Neo가 내려버렸기 때문에, 그로써 이곳 Matrix와 Zion에서의 승패를 초월한 어떤 새로운 세계, 어떤 새로운 경지를 Neo가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Neo에게 이겼다고 좋아하던 Smith는 오히려 공중분해되고, 그로 인해 Matrix는 더이상 Reloading(wiedergeladen)되지 않고 그냥 해체(aufgelöst)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었다.

만약 Neo가 그 완벽하게 simuliert된 Matrix System 내에서의 마지막 전투씬에서 Smith를 그냥 이겨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매트릭스 시리즈는 여태까지의 그 흔하디 흔한 Hollywood-Massenware 영웅담들 (예를 들면 '제 5원소'나 'Total Recall' 따위) 가운데 한 편 정도에 지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Neo는 시종일관 Trintiy와의 사랑을 포기한 냉혈한적 영웅의 길이 아니고 영웅보다 더 힘든 길, 한 사람의 자유분방한 반영웅(freiwilliger Antiheld)이 되는 길 또는 철두철미한 사랑과 저항의 길을 선택했다. (Merovingian은 아마도 어느 순간 Persephone를 포기하고 Matrix의 뜻에 따라 비인간적 영웅의 길을 걷다가 끝내는 Matrix의 노예가 되어 Matrix에 하나의 프로그램으로서 강제편입된 것으로 보이지만.)

물론 Neo가 제 2편 "Reloaded"에서 Zion이라는 인간공동체의 존속보다 Trinity라는 한 여자와의 사랑을 선택한 것은 결코 단순히 개인적 사랑의 절대성이나 공동체적 사명감에 대한 개인적 사랑의 선차성 어쩌고 하는 의미가 아니다. 여기서 Neo가 "선택된 자(Der Auserwählte)"로서 예정된 Matrix Reloading의 경로(Prozeß)를 밟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자 Neo를 제거하기 위해 애초부터 Neo-bedingt하게 programmiert된 Smith 역시도 Matrix 방어프로그램으로서 넘어서는 안될 자기 선을 넘기 시작했고, 어느새 Matrix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이 더이상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 Neo가 (왜냐하면 Zion 역시도 하나의 뒤집혀진 Matrix에 불과한 것이었으므로) Matrix 안에서 뿐 아니라 Matrix 바깥에서까지도 초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Smith 역시도 Architect가 규정한 틀을 뛰어넘어 Matrix 바깥으로까지 인간의 몸을 빌어 완전히 personifiziert된 모습으로 등장하고, 게다가 자기보다 상위프로그램이었던 Oracle을 파괴해버리는 월권을 저지르는 등 Matrix에 오히려 Neo보다도 더 위협적인 존재로 돌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원래 Matrix는 기계와 인간의 영원한 대립과 투쟁을 전제로 해서, 아니 인간들의 구제불능적인 사악함과 권력욕을 전제로 해서 기계들이 만들었던 총체적 Versklavungssystem이었다. 그런데 인간 Neo가 컴퓨터프로그램인 Smith까지도 자기를 모방시켜 verselbständigt된 존재로 만들고, 그로써 Matrix라는 영구적 통제시스템의 붕괴와 해체를 유도하고, 단순한 생존투쟁(Exitenzkampf)이나 자유를 향한 투쟁(Freiheitskampf) 등을 초월한 개체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인간결단의 불확정적인 심원성 등을 추구하는 전면적 투쟁을 수행해나가기 시작하였으니, 이미 그 순간에 Matrix는 사실상 예전과 같은 운영구조로는 더이상 존립할 수가 없게 된 셈이었다. Versklavung(노예화)이라는 그 핵심적 운영방식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Neo는 마지막에 Smith에게 져주고 그와 합체되기까지 함으로써 Architect의 또다른 자아였던 Oracle의 마지막 뜻(사랑, 불확정성, 화해)까지 실현해버리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 Neo가 Architect의 예상과 기대(노예가 이따금씩 반란도 해주고 해야 전체 매트릭스의 긴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 그리고 반란의 영웅인 "선택된 자"는 동족의 구원을 대가로 던지기만 하면 그의 인간성을 Matrix가 빼앗아버릴 수 있으며 그러면 Merovingian처럼 그 "선택된 자"를 Matrix 체제내로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다는 것)를 뛰어넘은 어떤 Humanität와 Komplexität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 Oracle의 뜻대로 (또는 Architect가 어렴풋이 원했던 바 그대로) Matrix를 운영하는 방식과 구조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Neo 같은 자율적 인간은 더이상 기계들의 프로그램 틀 안에서 왔다갔다 하는 수동적 객체가 아니며 어떤 초월적이고 피안적이며 자율적인 요소를 그 안에 가지고 있다는 걸 Neo가 Architect에게 확실하게 보여줌으로써 Matrix는 더이상 리로딩될 수 없고 그 대신 해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Architect에게 뚜렷이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Neo가 Matrix와 Zion을 포함한 이 세상 전체를 혁명적으로 뒤바꿀 수 있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기계와 인간 간의 오랜 전쟁이 끝나면서 태양이 땅 위에 내리쪼이기 시작하는 세상. 비록 완벽한 세상은 아니지만 그 누구도 노예가 될 필요는 없는 자유로운 세상. 인간과 기계 간에 상생(相生)과 조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세상.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단순히 자기 몸을 완전히 소멸시킴으로써 이 세상을 구원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파멸로 몰고 가는 어떤 결정적 프로그램을 완전히 뒤엎어 버리는 자율적 선택(Umprogrammierung aller deterministischen Programme)을 함으로써 인간과 세상을 구원했던 것처럼...(이른바 기독교신학에서 말하는 Erlösungsgeschichte의 포스트모던적인 해석이랄까?) Neo 역시도 단순히 자기를 희생함에 그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가치와 프로그램을 전복(Umwertung aller Werte)해버리는 자유로운 선택을 함으로써 인간과 세상을 구원해낸다는 서사구조. 그런 걸 감안하면 "아... 그 leichtsinnig하고 oberflächlich하고 technik-abhängig할 줄만 알았던 서양애들, 헐리웃애들도 드디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구나... 이런 religiös tiefgründig하고 philosophisch gedankenreich한 Techno영화를 만들 수도 있게 되었구나"하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게 된다. 헐리웃애들, 서양애들도 이젠 생각보다 많이 컸다고나 할까?


3. 하여튼 결론은 세상만사가 역설 속에 그 도를 갖는 것이며, 이 속세의 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초월한 꿈이나 이상, 자유로운 선택과 같은 것들이고, 보이거나 들리는 것들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보다 더 현실성(Wirklichkeit)을 갖는 게 아니라는 정도의 이야기가 되겠다. 마치 Neo의 눈에 현실처럼 보였던 Matrix가 현실이 아니었던 것처럼... 심지어는 그 Matrix에 대한 저항기지인 Zion조차도 진정한 현실은 아니었고 Matrix의 뒤집어진 변형체에 불과했던 것처럼... 중용(中庸)의 구절에서 굳이 한마디를 원용하자면 "君子 戒愼乎其所不賭 恐懼乎其所不聞"이라는 얘기 정도가 된달까? 어쩌면 이렇게 모든 말, 모든 현상은 그것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봐야 제대로 그 전모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며, 보이고 들리는 것에 현혹되기 보다 그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꿰뚫어보고, 또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시 한번 더 뒤집어 보고, 그것을 또 한번 더 뒤집어보고... 또 한번 더 뒤집어보면서 생각해보았을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이 세상 진리의 일단이나마 찰라동안이라도 파악할 수 있게 돼있다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아직껏 'Matrix3 Revolutions'란 영화를 내가 제대로 한번 보지도 않고서 이런 말을 막 함부로 해댈 수가 있는 것일까? 그런데 지금 내 생각으로는 그 영화를 내가 꼭 극장에서 봐야할 필요성은 없는 것 같고... 뭐 그렇다는 것이다. 아 왜 옛말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앉아서도 삼천리, 구만리를 다 내다볼 수 있는 게 인간이라고...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꼭 대단한 천리안이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_-;; 그러니까 내 말은 영화란 것은 본 사람보다 안 본 사람이 더 잘 볼 수도 있는 것이고, 또 그런 것이 내가 항상 얘기하는 '역설의 진리'에 해당되는 얘기일 수도 있는 것이고... 뭐 그렇다는 것이다. 하긴 내 해석이 완전히 틀린 해석일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_-;;

2003.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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