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애들의 사랑에서 어른의 사랑을 배운다





- 이하의 글은 2002년 5월 21일 저의 "개인낙서장"에 올렸던 제 영화인터뷰 번역문을 별다른 수정 없이 거의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고래 wrote:

얼마전 학회후배녀석이 추천해준 영화 "mein Stern"을 보기 위해 지난 주말 Koeln까지 내려가려 하였으나 논문집필에 눈코뜰새 없이 바쁜 데다 시간이 잘 안 맞아서 직접 보지는 못하고, 그 영화를 감독한 여자 Valeska Grisebach의 인터뷰만을 발견하여 아래에 소개한다. 이 영화는 열다섯살밖에 안 먹은, 그렇지만 그들의 일생에 뭔가 일어날 것만 같다는 예감에 부풀은, 한 소년(Christopher)과 소녀(Nicole)의 소꿉장난 같은 사랑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이들은 어른들을 흉내내어 정말 동거도 해보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자기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랑의 이미지를 실현해보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 Interview ==

질문 : "Mein Stern"은 회상하고 공감하기 어려운 나이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그렇게 열다섯살때의 일을 회상할 수 있는 계기는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Valeska Grisebach: 제가 자료조사를 시작했을 때요. 그렇게 어린 애들이 어른들처럼 같이 섹스하고 동거하고 산다는 거, 또 본능적으로 아님 직관적으로 그런 사랑놀이에 전념한다는 거, 그런 게 절 참 매혹시켰어요. 걔네들이 그걸 정말 대단히 짜릿한 걸로 생각한다는 거, 대단히 진지하게 거기에 몰두를 한다는 거. 이 영화 준비작업을 시작할 때 제가 느꼈던 건... 걔네들의 그런 감정이 제가 사랑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랑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걔네들의 얘기를 들을 때 저도 그냥 그 나이또래가 돼버리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한 게 나도 결국 걔네들이랑 그렇게 똑같은데, 어쩌다가 이렇게 늙어버렸나... 시간이 참 많이도 흘렀구나... 그런 거였어요. 근데 한편으론 그때 그 시절들이 저한테 아주 가깝게 느껴지더라구요.


질문 : 시나리오를 쓰기까지 준비작업은 어땠나요?

Valeska Grisebach: 처음에 저는 캐스팅이랑 소년소녀의 사랑이야기에 대한 자료조사를 동시에 시작했어요. 우선은 Berlin시 전체를 뒤졌고요. 그 다음엔 제가 살고 있던 동네 근처로 캐스팅범위를 좁혔어요. 두세달 지나니까 시나리오랑 작품수법 같은 게 대략 잡히더라구요. 두 명의 주인공에 대해 내가 뭘 얘기해야 할지...


질문 : 캐스팅은 잘 됐나요?

Valeska Grisebach: 캐스팅때문에 우리 팀은 무려 반년동안을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사정사정을 해야 했어요. 어른역할도 물론 마찬가지고요. 처음엔 캐스팅에 대한 욕심 같은 게 있어서, 사나흘 동안은 정말 미친 년처럼 아무나 붙잡고서 캐스팅 제의를 했어요. 처음엔 인터뷰를 하면서, 미리 준비한 목록대로 질문을 했는데, 어떤 사람한테는 짧게만 질문하고, 어떤 사람한테는 비교적 긴 질문을 했어요. 흥미로웠던 건 아주 민감한 사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솔직하게 대답을 해줬다는 거예요. 그 다음엔 작은 상황을 준 다음에 연기를 시켜보았죠. 즉흥연기도 시켜봤고, 아주 구체적인 상황연기를 주문해보기도 하고... 그 다음엔 어느 정도 캐스팅범위가 좁혀졌는데, 그 사람들이랑 형제자매, 친구처럼 친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더 많은 것을 시험해볼 수가 있었어요.


질문 : 인터뷰는 뭐에 대해서 하셨는데요?

Valeska Grisebach: 뭔가 일반적인 것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똑같은 질문을 계속 던져보는 게 참 좋은 것 같더라구요. 물어본 건 일상에 관한 것, 행복과 미래에 대한 생각, 뭐 그런 것들이었어요. 그 나이때는 사람들이 인생관이라고 할 만한 뭐 그런 걸 찾는 때잖아요. 넌 뭐가 되고 싶니, 뭐가 될려고 하니, 어디서 살고 싶니 등등... 사실 전 열여섯살 때 이미 장래직업을 정한다는 거 아주 끔찍하게 생각해요. 독일이나 유럽땅에서 사람들이 직업에 대해 생각하는 뭐 그런 게 있잖아요. 어쩌다 목수가 되겠다고 말을 해버리면, 평생토록 목수로 살아가야 되는 그런 거요. 또 사랑도 그래요. 그냥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지금까지 네 인생에서 사랑이 너의 그런 생각이랑 잘 맞았니? 뭐 이런 걸 물어봤는데, 제가 황당했던 건 어린애들의 사랑에 대한 생각이 너무 경직돼있다는 거였어요. 그냥 집단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생각을 그대로 따라가더라구요.


질문 : 어린애들이 관습이나 규범을 강요당해서 어른이랑 똑같아질려고 하고, 동거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하는 게 그렇게 비관적으로 여겨지셨나요?

Valeska Grisebach: 비관적...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구요. 어린애들의 동경심 속에서 걔네들 일생동안 보게 될 많은 것들만 발견된다는 게 그냥 안타까웠어요. 많은 사람들이 엄마, 아빠, 거실과 애들, 침실, 아이들방... 뭐 이런 미래를 생각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너무 유물적으로 생각한다는 거죠. 친구, 집, 자동차... 그냥 그 안에 존재하는 것... 물론 걔네들의 그런 꿈이 저를 감동시키기도 했어요. 왜 걔네들은 그런 거를 원할까. 그러니까 비관적이라... 그런 건 아니고요. 그치만 심리적으로는 거의 충격이었죠. 사랑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너무나 강한 환상. 그런데 막상 겪어보면 모든 건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게 돼있잖아요. 사랑은 위험한 것이고, 사랑은 아픈 것이고, 사랑은 논리적이지 않은 것이고, 다 그렇다는 거죠. 걔네들 말하는 거 보면 다 이래요. '널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ich will dich nie verlieren)' 아니면 '영원히(fuer immer)', 아니면 '두번 다시는 절대 안 할(nie wieder)' 뭐 이런 유치한 영원의 약속. 이런 감정으로 사랑을 하다가는 금방 우리 인간이란 게 한편으로는 '널 사랑해(ich liebe dich)'하면서 동시에 전혀 거기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돼있다는 현실과 맞부딪치게 돼있는 거죠. 제가 흥미로웠던 것은 그 속에 뭔가 아주 전형적인 것이 숨어있다는 거였어요.


질문 : 영화에 보면 롱테이크장면이 많아서, 필름이 꼭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데요. 그럼 이 영화는 Nicole과 Schoeps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를 다룬 극영화인가요, 아니면 오늘날 열다섯, 열여섯살 어린애들이 일반적으로 겪게 되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만든 다큐멘터리영환가요?

Valeska Grisebach: 저한테 아주 중요한 건요. 전 절대 '2001년도의 어린애들 사랑은 어떤 것인가' 이런 걸 주제로 이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다는 거에요. 심지어 자료조사작업 들어갈 때부터 전 이런 면에 대해 아주 긴장하려고까지 했어요. 물론 이런 의도가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결코 결심만으로 끝나지는 않았어요. 전 이 영화 속에 나이를 초월한 어떤 것이 들어있기를 바랬어요. Nicole과 Schoeps의 사랑이야기는 다시 말해 열여섯살 어린애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나이와 상관없는 일반적인 사랑이야기이기도 한 것이죠. 그리고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삽입한 것은 사실인데요. 그건 제가 옛날부터 다큐멘터리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에요. 그치만 이 영화에서 다큐멘터리적인 상황은 극적으로 계산해서 집어넣은 거에요. 원칙적으로 이 영화는 저한테 극영화고 허구의 이야기에요. 다큐멘터리적 방법을 쓴 것은 물론 사기를 친 것이긴 하죠. 하지만 Nicole과 Christopher가 애들의 실제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거라고 하더라도 실제 배우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란 걸 관객들이 오해하시는 것 같아서 많이 놀랐어요.


질문 : 대사랑 연기는 시나리오에 정밀하게 짜여져 있었나요 아니면 촬영하시면서 주인공들이랑 많이 고치셨나요?

Valeska Grisebach: 그건 대답드리기가 좀 곤란하네요. 왜냐하면 저작권문제도 있는 거니까요. ^^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시나리오는 항상 숨겨두고서 작업했어요. 전 주인공들 누구도 시나리오를 손에 쥐는 일이 없도록 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배우들이 대사를 외워서 연기하는 거 아주 질색이거든요. 배우들은 다 현장에서 제가 말로 전해준 것을 짤막하게 기억해서 그걸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연기를 했어요. 가끔은 시나리오에 적혀진 거랑 전혀 다르게 대사를 막 하는 경우도 있었죠. 가끔은 배우들이 현장에서 저한테 영감을 줘서 제가 시나리오를 즉석에서 고치기도 했어요. 저는 애들한테 고친 것을 다시 얘기해주고, 그 다음에 걔네들은 다시 연기를 하고, 그러다가 또 다른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그랬어요. 그냥 그렇게 찍었어요. 어떤 장면은 시나리오에 써진 대사 그대로 간 경우도 있지만 어떤 장면은 시나리오의 의도대로만 따라갔을 뿐이지 대사는 전혀 다르게 찍은 장면도 있었어요. 어떤 건 몇주전, 몇달전부터 미리 대사내용을 말해주기도 했고, 어떤 건 촬영 15분전에 대사를 주고 연기를 시키기도 했어요. 그러면 걔네들은 자기 나름대로 대사를 하고 연기를 하고, 그럼 저는 그걸 다시 바꿔주거나 잘라주거나 그랬죠. 어떤 장면은 정말 다큐멘터리 찍듯이 그렇게 찍기도 했어요. 저는 걔네들한테 평소 하는대로 하라고 요구했고, 한편으론 뭘 걔네들이 버려야 할지도 말해줬어요. 비교적 우리는 그렇게 일상적으로 영화를 찍었어요.


질문 : 그건 배우들한테 아주 힘든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요?

Valeska Grisebach: 뭔가 차갑고 냉정한 걸 갖고 있다든지, 어른들은 모르는 사춘기 특유의 고집을 애들은 갖고 있다든지, 왜 둘이는 도대체 함께 살려 했던 것인지, 왜 몇달동안을 서로 섹스하려 했던 것인지, 왜 서로를 그렇게 길들이려 했던 것인지 그런 걸 배우 애들은 아주 잘 보여준 것 같애요. 그건 절 놀라게 했죠. 왜냐하면 걔네들은 영화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애들이었거든요. 걔네들은 아주 본능적으로 그런 거에 익숙해졌던 것 같애요. 어떤 장면들은 그 나이때에 아주 특유한 불안으로밖에 설명될 수 없는 그런 장면을 연기하기도 했어요..


질문 : 사춘기 어린애들이랑 작업하면서 힘들지 않으셨어요?

Valeska Grisebach: 고백해야 할 것 같은데요. 걔네들 옛날에 이미 커플이었어요. ^^ 둘이를 캐스팅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괜히 이랬다가 얘네들 인생에 책임지지 못할 일을 제가 저지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걔네들이랑 대화를 많이 나눠보고 나서 그냥 괜찮을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우린 셋이서 악수로써 영화랑 현실이랑은 다른 걸로 하기로 결정했고요. 걔네들 부모님들도 다 그 자리에 참석해서 지켜보셨어요. 처음부터 어려움이 있었는데 잘 극복했던 셈이죠. 그렇게 좀 권위적인 타임을 가졌던 것이 걔네들을 끝까지 지켜줬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약속을 한대로 애들이 잘 지켜준 거죠. 스킨쉽이랑 관련된 많은 문제도 있었는데... 뭐 섹스나 키쓰나 그런 거요, 저한테 중요했던 것은 모든 게 완벽하게 계획된 대로 갔고, 그게 걔네들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거에요. 그건 어떻게 보면 걔네들한테 스포츠와도 같았던 거죠. 러브씬을 찍을 때도... 상상해보세요, 스탭들이 주위에 다 포진해서 지켜보고 있단 말예요. 물론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듯한 면도 있을 수 있었겠죠. 그런데 걔네들은 마치 체조하듯이 그렇게 모든 장면을 연기해냈어요. 그런 것들은 정말 감정이 없이 기술적으로만 만들어진 장면들이에요.


질문 : "Mein Stern"은 님의 Wiener Filmakademie 졸업작품인데요. 어떻게 된 게 영화는 전부 Berlin에서 찍으셨네요. 그런데도 그 영화는 최근에 Wiener Filmakademie에서 자주 보았던 그런 영화스타일을 갖고 있단 말예요. 그러니까 님의 예술적 고향은 어디인 거죠? Berlin인가요, Wien인가요?

Valeska Grisebach: 전 제 졸업작품을 제가 살고 있는 Berlin에서 찍을 거라고 이미 마음먹고 있었어요. Berlin같이 모든 게 맹렬히 변해가는 대도시 속에서, 훤히 알고 있는 거리지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그런 거리에서 영화 속에 완전히 낯설 수 있다는 것은 제게 아주 자극적인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또 중요했던 것은요. 제가 Wien에서 공부했다는 것의 의미를 의식해야 했다는 거죠. 누구랑 공부했고, 누구랑 영화에 대해서 얘기를 했고, 그런 거요. 그건 저에게 겹으로 주어진 선물이니까요. Wien에서 잘 교육받고, Berlin에서는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는 거... 제가 느끼기에 전 두 곳 모두에서 뭔가 아주 긍정적인 것을 얻어낸 것 같아요. 부분적으로는 Wien에서 공부했기에 멀리서 Berlin에 대해 바라본 인상을 가질 수 있었고, 그러한 Berlin에 대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Wien에서 단체수업을 하면서 동료들과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질문 : Berlin이 님께 특히 매혹적인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Valeska Grisebach: 변화의 바람이 아직도 불고 있다는 거에요. 겉으로만 보면 건축물은 변한 게 없을지도 모르지만 변화의 기운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요.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독일인들이 가슴 깊은 곳에 숨기고 있는 어떤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 같은 것을 Berlin에서는 느낄 수 있는 거죠. 저는 지금 Berlin시 중앙에서 살고 있는데요. 원래는 西Berlin출신이에요. 그리고 그건 아주 웃기는 일이에요. 원래 살고 있던 도시로 돌아왔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도시로 돌아와 살게 되었던 거죠.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전 절대 Berlin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여기서 전혀 낯선 느낌을 갖고 살 수 있다는 건 아주 자극적인 일이고요. 뭔가 대단한 일이 바로 제 곁에서 일어나는 걸 느낀다는 것도 아주 즐거운 일이에요. 무엇보다도 Berlin이 저를 매혹시키는 게 있다면 이 도시에는 수많은 인생이야기와 동경이 존재하고, 그런 모든 것들이 서로 어긋나고 있다는 점일 거에요.

2002. 5. 21.


[영화감상실]로 되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