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Herr der Ringe 제2편 감상문





- 이하의 글은 2002년 12월 27일 베를린리포트 "자유투고란"에 올렸던 제 영화감상문을 아무런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고래 wrote:

지난 23일에 나는 몇몇 독일친구들과 'Der Herr der Ringe' 제2편 "Die zwei Tuerme"를 UFA-Palast극장에서 관람하였다. 지난번 제1편을 봤을 때만큼 영화에 완전히 압도되지는 않았지만, 난 친구들이 다 집에 간 뒤에도 영어판으로 이 영화 "제2편: Die zwei Tuerme (The Two Towers)"를 한번 더 보았는데, 3시간짜리 긴 필름을 두번 연속으로 보아도 전혀 지루하지 않아서 참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지난번 제1편이 단지 영화 전체의 문제의식들을 하나씩 던져준 것에 불과했다면 이번 제2편은 그 문제의식들이 아주 다각적으로 심화되고 있어서 내 둔한 머리로 해석하기가 결코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제1편에서 Aragorn (Viggo Mortensen분)을 비롯한 나머지 반지원정대원들을 따돌리고 자기 혼자서 길을 가려다 결국 악착같이 따라오는 친구 Sam (Sean Astin분)을 데리고서 함께 Mordor로 들어가게 된 Frodo (Elijah Wood분)는 이번 제2편에서 본격적으로 여러가지 의혹과 고민 속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왜 지난번 1편에서 Frodo는 자기에게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충성을 맹세하는 Aragorn 등을 따돌리고서 자기 혼자 그 위험한 길을 찾아가려 했는가? Aragorn이나 Legolas (Orlando Bloom분)가 없으면 제대로 목숨조차 부지하지 못할 만큼 왜소하고 연약한 몸이면서 왜 그렇게 무모한 행동을 감행하려 했는가?

난 처음에 그 원인을 Frodo의 반지원정대원 동지들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Boromir (Sean Bean분)가 절대반지에 대한 탐욕을 견디지 못하고 Frodo에게서 반지를 강제로 빼앗으려 하지 않나, 믿음직스럽던 Aragorn 역시도 Frodo가 더이상 반지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며 당신이 아예 가지시라고 내민 반지를 묵묵히 Frodo의 손에 다시 쥐어주긴 했지만, 그때 Frodo가 "당신 자신으로부터도 저를 보호해주실 수 있겠어요?"라고 물었을 때에는 더이상 확답을 못하지 않나... 도저히 원정대원들 가운데서는 확실하게 믿을만한 인간들이 없으니 그냥 자기 혼자 모든 임무를 감당해보자고 Frodo가 홀로 떠날 결심을 한 것으로만 나는 순진하게 생각해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1편에서 그저 순수하고 선량하게만 보이던 Frodo의 얼굴표정은 2편에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복잡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가게 된다. 그는 자기 목에 걸고 있는 반지가 점점 더 무거워져가고 있음에 부담스러워 하게 되며, 자꾸만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처음에는 자기 고향과 사랑하는 친구, 정다운 이웃들을 지키기 위해 절대반지를 저 운명의 산 분화구 속 끓는 용암 속에다 던져버리려는 결심을 굳히기도 하지만, 반지를 손가락에 낄 때마다 눈 앞에 나타나는 강렬한 어떤 기운 앞에 점차 압도되어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밝고 맹렬한 기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절대자 Sauron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절대악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절대반지의 진정한 주인이며 절대반지 그 자체인 보편무한의 어떤 무엇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이 세상에 새롭게 펼쳐질 한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태까지의 시대가 인간, 요정, 난장이, Hobbit, Ork 등의 여러 종족이 서로 각각 나뉘어 공생하며 각자의 문화와 인종, 계급, 미신, 전통에 따라 별다른 발전 없이 정체되어 살아가고 있던 시대였다면, 새로운 시대는 오직 하나의 유일신이 모든 문화와 인종을 평정하고 그 모두를 아우르는 보편적 이성과 합리주의, 경쟁의 원리에 따라 사회를 통합하고 발전시키는 산업화와 역동의 시대다.

그 동안 요정의 여왕 Galadriel로 대표되는 모권적이고 위계적인 다신교적 전통문화 아래에서 진리란 언제나 신비 속에 감춰져 있었다. 그 진리란 것은 아주 한정된 몇몇 사람만이 접할 수 있었던 고귀한 무엇이었다. 그런데 절대자 Sauron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이성의 시대에서는 별다른 중간차단장치 없이 그 절대진리가 개인에게 바로 직결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Frodo가 반지를 손가락에 낄 때마다 바로 접하게 되는 Sauron의 형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절대반지는 '과학문명'이나 '핵에너지'를 의미한다고도 얘기되지만 한편에서는 '전자미디어'나 '통신혁명'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Frodo는 자기가 절대반지를 우연히 얻게 된 것이 아니라 절대자 Sauron으로부터 선택받아서 얻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동안 자기가 믿고 있던 기존의 질서, 그동안 바보처럼 영험시하고 신성시하며 따랐던 요정 및 마법사들의 봉건적 질서와 그들이 기반하고 있는 채집, 농경, 목축의 경제가 점차 허물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유일신의 시대, 이성과 과학과 산업의 시대가 점차 위압적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자신은 그 둘 사이에서 분명히 하나를 택해야 하는 처지에 있음을 깨달아가기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Frodo가 반지원정대원들을 따돌린 것은 그들을 불신해서라기 보다는 그들로부터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의식이 더 강하게 작용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Frodo는 이성을 갖고 있는 고등생명체로서 당연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왕성한 지적 탐구욕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목격하지 못했지만 자기 자신만은 절대반지를 통해 막연히 목격한 그 신세계. 그 새로운 세계가 자신의 참여를 통해, 자신이 Sauron이라는 절대자를 자기 정신 속에 받아들이고 그의 대변인이자 옹호자로서 변신하는 것을 통해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Frodo는 갖고 있다.

그러한 폭력적이고 비정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따른다는 것은 물론 Frodo에게 불안한 일이지만 그 흐름에 거역한다는 것 역시도 현재 상황에서는 생명을 포기해야 할만큼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Frodo는 예전에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한번 내뱉은 자기 맹세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모든 것을 새롭게 자기 혼자 결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반지의 주인인 절대자 Sauron을 직접 단독대면하고서 자기 독자적인 결정으로 이 반지를 없애버릴 것인가, 아니면 그 반지의 주인인 Sauron과 일체가 될 것인가를...

따라서 Frodo가 바랐던 것은 완전한 고독이었다. 하지만 일이 약간 꼬이게 된 것은 친구 Sam이 악착같이 그의 뒤를 따라왔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Frodo와 Sam간의 비정상적일 만큼 밀착된 관계에서 동성애의 코드를 읽기도 하지만, 그 둘의 관계는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관계는 애정으로 얽혀있으면서도 둘의 이해관계는 제2편에서 시종일관 치열하게 대립하기만 한다.

Sam은 어떤 입장인가 하면 반지를 갖지 못한 자의 입장이다. 반지를 갖고 있는 Frodo와는 당연히 관심사도 다르고 반지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물론 반지를 가진 자 Frodo는 처음엔 강물에 몸을 던지면서까지 자신을 따라오는 Sam의 충직한 우정을 목격하면서 Sam이 자기에게 무조건적으로 헌신할 가능성만 생각하고 그의 동행을 허락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Sam은 Frodo가 반지를 손가락에 끼었을 때 그의 눈에 무엇이 보이는지도 모르고 그런 것에는 관심조차도 없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원칙과 약속 뿐이다.

원작자 J.R. Tolkien은 다른 모든 등장인물들보다도 이 Sam이라는 인물에 특히 많은 개인적 의미를 부여했다고 하는데, Sam은 Tolkien의 1차대전 참전 당시에 Tolkien과 병영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단순무식한 여러 영국군 병사들의 총체적 화신이라고도 전해진다. 그토록 위험천만한 생사의 기로에 처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향토애와 인간애만을 가지고서 아주 단순무식하게 명령에 충실하고 조건 없이 동료에게 헌신했던 그 선량한 영국군병사들. 그들을 기리기 위해서(사실 이런 인간들은 우리 한국 내에서도 군대시절에 아주 많이 발견하게 되지 않는가?) J.R. Tolkien은 지극히 고지식하고 선량하기 짝이 없는 이 Hobbit, Sam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미신과 습속, 전통 같은 것에 얽매여 있지만 소박하고도 확고한 도덕관을 갖고 있는 우리의 Sam은 영리한 Frodo처럼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명료하게 자기 본래 임무에 충실하다. 그가 유일하게 바라는 것은 그의 고향을 둘러싼 기존질서가 그저 예전 그대로 보존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은 두렵다. 그것은 강제와 폭력으로 다가오기에 어쩐지 불안하고 사악해 보인다. 그렇기에 그 새로운 화를 부르는 절대반지는 당연히 파괴되고 소멸되어야 한다.

그 소멸시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마치 켈트족 원시종교의 만신들이나 조로아스터교, 마니교의 사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불 속에 정화시켜 악의 근원을 없애버려야만 한다. 따라서 Sam은 Frodo가 자꾸 반지를 끼면서 새로운 무언가와 교감하려 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 요사스러운 새 물건으로부터 끊임없이 유혹을 받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중적이며 믿을 수 없는 Golum (Andy Serkins분)을 Frodo가 자꾸 끌어들이려 하는 것 역시도 Sam은 매우 불길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갈등과 긴장 속에서 Frodo는 절대자 Sauron이 보낸 사신, 익룡을 타고 날아온 흑기사 앞에서 자꾸 절대반지를 손가락에 끼우면서 자기 위치를 알리려고 한다. 그때 Sam은 온 힘을 다해 막아내고서 Frodo에게 애초의 맹세에 충실할 것을 눈물로써 애절하게 호소한다. 그 호소는 너무나 간절한 것이어서 심지어는 그것을 지켜본 Boromir의 동생 Faramir까지도 애초에 반지를 빼앗으려 했던 자기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고 Frodo와 Sam을 도우려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Frodo는 Sam의 그러한 눈물겨운 호소를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Sam이 그토록 싫어하는 Golum을 기어이 자기 성스러운 반지원정길에 대동시키고야 만다. 왜냐하면 Frodo는 Golum이 여러 면에서 Frodo 자신과 아주 많이 닮은 꼴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Golum은 어떤 인물인가? 그는 원래 선량한 Hobbit 중 하나였지만 우연히 강가에서 발견한 절대반지가 탐이 나서 얼떨결에 그때까지 자기와 가장 친했던 한 Hobbit 친구를 죽이고서 겁이 나서 은둔생활에 들어갔던 인물이다. 그 대신에 그는 오랜 수명과 비범한 삶, 그리고 자유를 얻었지만 그러한 일생일대의 결단은 그를 사회로부터 절연되게끔 만들었고, 결국 그는 어둠 속에 갇히는 바람에 흉측한 괴물로 변신하고 말았다.

물론 Frodo는 Golum처럼 반지를 탐하다가 추악한 괴물로 변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Frodo도 기본적으로는 자기의 옛 맹세를 지켜서 절대반지를 영원의 불 속에다 던져버리고 싶었다. 다만 영리한 Frodo는 Golum을 통해서 자기 선택의 폭을 확장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 선택의 가능성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언젠가 Golum과 손을 잡고서 자기 옆에 있는 불쌍한 Sam을 제거하고, 절대자 Sauron에게 같이 귀의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리고 둘째는, 만약에 그때 자기 배신이 실패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자기가 Golum을 미리 용서한 것처럼 언젠가는 자기도 자기 동족들에게서 용서를 받거나, 최소한 Golum과 둘이서 친구가 되어 살아갈 수도 있는 가능성이다. 또한 마지막으로 중요한 세번째 가능성은, Frodo로서 별로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만약 절대반지가 자기에게 너무나 버거운 것이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그 절대반지를 Golum에게 떠넘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러나 Golum은 Frodo와는 다르다. 남들이 보기에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서 고난의 원정임무를 용감하게 떠맡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요정들에게 일단 내놓았던 절대반지를 다시 자기 소유로 갖고 싶었기 때문에 그 원정길을 떠난 것인지도 모를 Frodo와는 달리, Golum은 반지에 대한 자기 욕심을 숨기고 남들의 존중을 얻어낼 만큼 영리하고 복잡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한때 절대반지를 너무 무식하게 독점하려 하다가 그만 고립과 타락을 자처하고 말았을 정도로 그냥 우악한 수준의 인물이었다.

Frodo에게는 새로운 시대에서 자기가 주인공으로서 떠맡아야 할 역할문제가 중요했지만, 이미 때묻은 인생을 너무 오래 산 Golum에게 있어서 중요했던 문제는 자기 일관성과 자기 구원 사이에서의 딜레마문제였다. 그가 죽마고우를 죽이고 공동체와 절연하고서 얻어낸 대가는 고작해야 오랜 수명이 전부. 하지만 그것은 누가 뭐라 해도 그가 선택한 삶이었고 그가 만들어낸 자기 인생의 법칙이었다. 잠깐 실수로 반지를 놓치는 바람에 마법사 Saruman (Christopher Lee분)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기도 했으나, 적어도 반지를 끼고 있던 몇백년의 세월만큼은 그도 온갖 위험으로부터 안전했었고 자기만의 독보적인 세계 속에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었다.

이제 Frodo를 따라다니게 된 Golum은 기회만 잘 잡으면 자기 오랜 소유물을 되찾을 수도 있게 되었다. 자기가 그 절대반지를 다시 끼었을 때 어떤 끔찍한 운명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그것은 그에게 알 바가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왕 버린 몸, 이왕 틀린 인생. 이왕 틀어져버린 뻔뻔하고 탐욕스러운 자기 이기주의자적 인생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Golum은 자기 한때의 잘못을 용서받고서 예전의 정겹고 평화롭던 Hobbit 공동체 속에 다시 수용되어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자기 모습으로 되돌아가고도 싶었다. 그는 Frodo의 유화적 제스쳐 속에서 그 희미한 구원의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그는 Frodo를 완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Frodo는 절대반지의 무게에 짓눌려 흔들리고 있는 중인 데다, 무엇보다도 Frodo의 옆에 버티고 선 Sam의 Golum에 대한 태도는 매우 적대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Frodo-Sam-Golum의 갈등이 이번 제2편의 기본축을 이루고 있지만, 그 못지 않게 제2편에서 갈등하는 인간상으로 뚜렷하게 등장하는 것은 바로 반지원정대장 Aragorn (Viggo Mortensen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전쟁이 절정을 향해 치닫을려면 아직 한참이나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이 전쟁에 피로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 피로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 첫번째 원인은 반지보관자인 Frodo가 끝내 자기를 믿지 못하고 달아나버렸다는 점에 있다. 자기가 그토록 목숨을 걸어가면서 지키고 섬겼건만 Frodo는 끝내 Aragorn의 인간적 신뢰를 부정하고서 훨훨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물론 Aragorn은 자기 스스로가 완전히 순수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그의 어깨와 가슴을 심하게 짓누르는 것은 그의 조상이 그에게 내린 수치스러운 업보였다.

그의 조상인 Isildur (Harry Sinclair분)가 누구인가? 그는 옛날옛적 Sauron을 운좋게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Sauron의 절대반지를 불 속에다 던져버리지 않고서 자기가 가지려 했다가 그만 절대반지를 이 세상에 존속시켜서 오늘날의 화근을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그의 조상이 그에게 물려준 왕족의 피는 그가 누리는 권력의 원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조상이 저지른 과오야말로 그가 목숨을 걸고 갚아야 할 빚이기도 했다. 그 빚이 너무 과중하다보니 그는 그의 조상이 저지른 옛날일이 과연 옳지 않은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한때 반지원정대의 동료였던 Boromir는 말했다. 지금의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누구인가? 바로 요정족과 마법사들이다. 그 잘난 요정족과 마법사들 입장에서야 앞으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낼 절대반지가 불길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인간들은 이미 옛날에 Sauron과 Ork족들을 이겨보았다. 그들 Sauron과 Ork족들이 다시 뭉쳐서 덤빈다고 해도 인간들에게 그다지 두렵지만은 않다.

요정족들은 분명히 고귀하긴 하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의 수렵채집문화와 농경목축문화 속에서만 존엄했을 뿐이었고, 마법사들 역시도 그러한 낮은 경제적 단계의 수준에서만 지혜로왔을 뿐이었다. 여태까지의 모호한 미신적 시대에서 다산과 재생의 안정된 순환을 질서화하기 위해서는 모권적이고 다신교적인 요정족들의 봉건적, 위계적인 지배가 더 나은 것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투쟁하고 탐구하는 인간의 진취적 기상은 그러한 요정족들이 전쟁과 진보 앞에서 보여주는 소심함과 마법사들이 지식과 과학 앞에서 보여주는 불투명함을 도저히 견뎌내지 못하게 되어있다.

Boromir의 생각처럼 일단 절대반지를 Frodo로부터 빼앗아야 한다는 이유도 거기서 찾아볼 수 있다. Sauron과 함께 요정과 마법사들을 일단 몰아내고서 새로운 일신교적 질서(또는 이데올로기적 질서)를 그 절대반지를 통해 만들어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기회를 보아 Ork족을 유태인들처럼 처단, 멸종해버리고서 그 다음에 절대자인 Sauron 역시도 '신의 죽음'이나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언함으로써 타도해버리면 된다. 그럴 경우 펼쳐지는 시대는 완전한 민주주의의 시대. 인간들만의 시대가 된다. 어떤가? 정말 멋있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Hobbit들? 그들은 신경 쓸 거 없다. 그들 왜소한 Hobbit들은 주변부 주민들로서 지배 및 착취의 대상으로 삼으면 된다. 제국주의가 별것인가? 그것은 인간들이 필연적으로 걸어가야 할 역사의 한 길이다. 그런 생각을 Boromir만 가졌겠는가? Aragorn 역시도 분명히 그러한 생각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제1편에서 Boromir의 배신을 보면서도 Aragorn은 오히려 그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고 정성껏 장례를 지내며 그의 저승길을 배웅해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Boromir처럼 그렇게 단호한 결단을 내릴 수는 없다는 데 Aragorn의 또다른 피로의 원인이 있었다. 왜? 그는 Hobbit족인 Frodo에게 연민과 동정심을 갖고 있었고, 마법사 Gandalf에게 존경심을 갖고 있었던 외에,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바로 그는 요정족 여성인 Arwen (Liv Tyler분)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어디서 배웠는지 요정족의 언어를 제법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된 Aragorn은 어찌어찌하다가 요정족 여성인 Arwen을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인간족과 요정족들 사이에 끼인, 죽도 밥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인종과 언어와 문화를 달리하는 두 사람간의 비극적인 사랑... 그가 사랑하는 Arwen은 요정족에 속해있기에 그가 속해있는 인간족들보다도 더 앞서갈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녀는 훨씬 더 안락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살고 있었으며, 그 공간 속에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젊음이라는 특권을 누리면서 살고 있었다. 결혼한다면 그가 요정족 사이에 편입될 수는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이 Arwen을 인간세상으로 데리고 내려와야 했지만, 그것은 그가 사랑하는 Arwen에게 너무나 큰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Rohan에서 우연히 만난 Theoden왕의 조카딸 Eowyn (Miranda Otto분)은 그에게 인종적으로나 신분상으로나 너무나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녀를 사랑해버리기만 한다면 그에게 이 고통스러운 싸움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닐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무런 부담 없이 Sauron과 손잡고서 인간의 이익을 위하여 요정과 Hobbit을 공격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 Aragorn 아닌가? 그래서 어지러워진 정신 속에 갑자기 습격해온, Urukhai족의 맹수에게 물려서 절벽 아래로 떨어진 Aragorn은 어느 모래사장 위에 탈진해 쓰러진 상태에서 이제 자기는 Arwen을 놓아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왜? 그는 Arwen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니 Arwen과의 사랑이 그에게 너무 힘든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Aragorn이 더욱 이 전쟁에 피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쟁 자체의 잔인함과 매정함때문이기도 했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이 세상에는 절대악도 절대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마법사 Saruman과 Ork족이 나쁜 놈들이란 것쯤은 그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모두 힘을 합쳐 싸워야 한다고 자기가 온 힘을 다해 역설했을 때 Rohan의 왕 Theoden (Bernard Hill분)은 "이 나라 Rohan의 왕은 니가 아니라 나"라면서 구차하게 왕권에 집착하고 자기를 경계했다. 비록 착하고 유쾌하긴 하지만 도무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전투를 하는 그 순간에도 죽이는 적들의 숫자나 세고 있는 개념없는 난장이족 전사 Gimli (John Rhys-Davis분). 그밖에도 자기가 낭떠러지에 떨어졌을 때 자기가 죽건 말건 내버려두고서 훌쩍 떠나가버린 인간동료들.

그러한 자들 모두가 Argorn 그에게는 설령 같은 편이라 할지라도 자기와 동질적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인간은 원래가 그런 것이다. 아니 생명이란 원래가 다 그런 것이다. 이기적이며 다른 이를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피로와 분노를 딛고서 혼자 말을 타고 터덜터덜 Helm협곡의 요새로 돌아와 무거운 대문을 양손으로 힘겹게 열어젖히는 그의 모습은 그가 가진 고뇌의 깊이 만큼이나 눈부시게 비장해 보인다.

이런 갈등과 고뇌의 상황 속에서 상당히 달관한 모습으로 자기 임무를 수행하고 자기 운명에 순종해나가는 이는 마법사 Gandalf (Ian McKellen분)와 요정의 여왕 Galadriel (Cate Blanchett분)이다. 우선 요정의 여왕 Galadriel은 제1편에서 Frodo의 반지를 빼앗으려 했을 정도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한발짝 뒤쳐져 구경만 하려 하던 관성에서 벗어나, 자기 시종무사 전원을 Helm협곡으로 보내는 용단을 내린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인간족과 요정족간의 동맹이 다시 부활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요정의 여왕이 자기 시대의 종언을 각오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요정의 여왕이 보낸 시종무사들은 Helm협곡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Aragorn, Legolas, Gimli, 그리고 Theoden왕을 비롯한 3백여 Rohan국민들에게 큰 힘이 되는 원군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들 요정궁사들은 그곳에서 모두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일찌기 흰 색의 옷을 입을 수 있는 최고의 마법사가 아니라, 단지 회색의 옷만을 입을 수 있는 2류의 마법사였던 Gandalf는 제1편에서 다분히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여주다가 결국 악마 Ballock의 채찍에 감겨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음을 당하는데, 제2편에서는 흰 색의 옷을 입는 최고의 마법사로 새롭게 부활하여 나타난다.

여기서 마법사 Gandalf의 부활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동안 불완전성 속에 안주하던 자기 개체의식의 핵심을 Gandalf가 파괴하고서 여태껏 자기가 갖추지 못했던 것을 통합한 모습으로서 새롭게 자기인격을 회복하고 세계구원을 위한 전체성의 현현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마법사 Gandalf가 이 세계에 머물 시간도 앞으로 그리 길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자기 임무를 완수한 후 곧 초월적인 세계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제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명장면인, Helm협곡의 그 웅장한 전쟁씬이 이어지게 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하늘 아래 겨우 3백의 방어군과 1만의 공격군이 대치하고 있는 살벌한 광경. 갑자기 오발된 화살로 인해 긴 침묵이 깨지고 만명이 넘는 Urukhai족 병사들이 각자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무장과 표정을 한 채 함성을 지르며 맹렬하게 요새를 향해 달려들어오는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이 점점 풀샷되면서 수많은 군중의 움직임으로 물결치는 화면. 비 오듯 퍼부어지는 불화살. 사다리를 타고 기어오르거나 성문을 부수고 짓쳐들어오는 Urukhai족 병사들. 칼과 칼이 맞부딪치는 소리. 수없이 베어지고 떨어지는 목과 팔... 등의 잔인하고 섬찟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방어군이 기세를 올리기도 하지만 점차 Urukhai족이 폭탄과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한 선진적이고 과학적인 전투기술과 30배나 되는 압도적 병력을 기반으로 하여 거의 일방적으로 인간족들을 밀어붙이게 된다. 성문은 결국 깨어지고 방어군병력은 3백에서 1백으로, 1백에서 5십으로, 5십에서 십여명으로 계속 줄어만 간다. 갈수록 좁혀지는 방어선. 급기야 방어군은 요새건물 안으로까지 밀리게 되고 여자들, 어린아이들과 함께 Aragorn, Legolas, Gimli, 그리고 Theoden왕은 마지막 궁지에 몰리고 만다. 이제 세계의 운명을 판가름하게 될 Helm협곡의 전투는 Urukhai족 병사들의 승리로 돌아가고 마는가?

하지만 아침해가 밝으면서 백마술사로 부활한 Gandalf가 얼마전 Rohan왕국을 떠났던 Eomer (Karl Urban분)의 기병대와 함께 나타난다. 태양을 등지고 비탈길로부터 내려오는 Gandalf의 원군에게 Urukhai족의 군대는 속수무책으로 난자당하고, 그들이 Urukhai들을 내쫓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모두 열렬히 박수를 치게 된다. 그들은 왜 박수를 치는가? 당연하다. 승리의 가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갑자기 이뤄진 너무나도 극적인 승리였기 때문이다.

한편 Frodo를 구하기 위해 Urukhai족에 대신 잡혀갔던 Frodo의 또다른 Hobbit 친구 Merry (Dominic Monaghan분)와 Pippin (Billy Boyd분) 역시도 자기 몫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들은 나무와 숲의 정령인 Ent족의 구출을 받게 되는데, 처음엔 그들로부터 불신과 의혹을 받지만 결국엔 무자비하게 파괴된 나무숲을 그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들 Ent족들에게 동맹의 필요성을 설득해내기에 이르고 만다.

이로써 조그맣고 힘없는 Hobbit들인 Merry와 Pippin은 성난 Ent족들로 하여금 마법사 Saruman세력의 본거지인 두 개의 탑을 공격하게 한다. 그 결과 마법사 Saruman이 정성들여 건설했던 두 개의 탑과 그 밑에 자리하고 있던 광대한 지하전쟁본부 Isengard는 거대한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는 Ent족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유전자 클론복제시설을 비롯한 수많은 첨단과학장비가 갖춰진 그 난공불락의 거대기지는 해일처럼 쏟아지는 도도한 흙탕물 세례 속에 허무하게 수장돼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나는 어쩐지 섬뜩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마치 자연과 환경이 그동안 자신을 파괴해왔던 과학문명에게 복수를 하는 듯한 이 장쾌한 장면 속에서, 인공댐이 붕괴되고 거기서 쏟아져나온 홍수로 공장과 건물이 파괴되고 그 물에 속수무책으로 떠내려가는 Ork족 전사들의 모습이 내 눈에는 전혀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점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왜 그랬을까?

처음에 나는 이 Ork족들이 집단무의식을 민족이라는 추상적 전체에 투사한 Nazi 독일인들을 의미하는 것인 줄 알았었다. 아니면 그러한 집단무의식을 이데올로기적 계급에 투사했던 소련, 북한의 공산당원들이거나... 만약 그렇다면 Saruman의 두 개의 탑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나는 그 쌍둥이탑이 New York의 World Trade Center 쌍둥이건물을 상징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었다. 다시 말해 이 반지전쟁은 오늘날 깡패처럼 군림하는 미 제국주의에 대한 세계 모든 민족들의 단결투쟁을 이야기하는 것인 줄 알고서 나는 그때까지 아주 속 편하게 이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 장면에서 Ork족은 비단 Nazi 독일인들, 소련인들, 미국인들만이 아니라 우리 한국인을 포함한 모든 현대문명인들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내게는 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으며, 나는 그러니까 Aragorn이나 Gandalf와 같은 자연의 편에 서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는 Saruman이나 Ork와 같은 파괴적 산업문명의 편에 서있었던 사람이었음을 영화 마지막에 와서야 나는 비로소 깨닫게 된 셈이었다.

마치 Ork족이 그러하듯 매일마다 부지런히 환경을 파괴하며 좁고 어두운 공간에 모여 밤 새워 뚝딱뚝딱 일하고 절대자의 명령에 말없이 순응하며 아무런 개인적 각성도 없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그들 올망졸망한 Ork족... 그에 별로 다를 바 없이 하루하루를 그저 조그만 이익에 일희일비하며 군중적 조급함에만 들뜬 채 자기반성 없이 무비판적으로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 온실효과와 오존층파괴로 인한 기후온난화현상과 이상강우현상... 그리고 과학기술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자꾸만 더 늘어 가는 자연재해와 그로 인한 인명피해... 자연의 분노... 그리고... 문명의 종말...

이렇게 거대한 묵시록적 화두를 마지막에 남기면서 'Der Herr der Ringe' 제2편은 영롱하고 은은한 아이리쉬음악과 함께 조용히 그 막을 내린다. 이제 마지막 3편에서는 어떤 얘기들이 펼쳐지게 될 것인가? Frodo는 결국 Sauron의 거센 유혹과 자신의 독한 의혹을 모두 물리치고서, 운명의 산에 도착하여 절대반지를 영원의 용암 속에 던지게 될 것인가? 그로써 Sauron은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제거되어 마치 '미래소년 코난'에서 Industria가 바닷물 속에 가라앉듯이 그렇게 철저히 소멸되어 버릴 것인가? 그리고 풍운아 Aragorn은 조상 Isildur의 업보를 깨끗이 씻고서 Rohan의 왕으로서 새롭게 이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인가? 어느덧 인간의 세상으로 내려온, 사랑하는 Arwen을 옆에 두고서? 그리고 그와 함께 이 모든 세상은 영원무궁토록 사랑과 평화로 가득하게 될 것인가?

하지만 Tolkien의 환상세계 속에서 내려진 그러한 결말이 과연 우리의 현실세계에 어떠한 관련을 갖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Tolkien의 소설에서와는 정반대의 결론이 우리 현실세계에서는 계속 이어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실제에 있어서 우리 곁의 Sauron은 오히려 계속 승리해나갈 것이며, 요정족이 이미 사라졌고 마법사가 이미 사라졌듯 우리 인간은 낭만적 환상의 꿈보다는 계속 절대자, 절대이념, 절대정신의 강압적 지배 속에서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환상소설이나 Fantasy영화란 것 자체가 원래 그렇듯, 우리는 굳이 이 영화 속의 여러가지 화두들을 굳이 우리의 현실세계와 연결시키려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우리는 Peter Jackson감독에 의해 이 영화 속에서 수차례 익스트림롱컷으로 잡혀진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산천, 그 눈덮인 산맥과 고원과 평야, 그리고 강줄기와 폭포, 늪지대들을 떠올리며, 이 세계를 움직이는 그 거대한 힘과 운명 아래서는 우리의 자잘한 자존심, 고집, 욕망 같은 것들도 다 공허하고 덧없을 뿐이라는 생각을 가져보는 데서 우리의 생각을 그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렇고 그런 게 아니겠는가? 우리가 그토록 집착하고 고민하는 모든 일은 그렇게 다 순간 속에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서두 나레이션 속에서 읊어진 것처럼 그 순간은 어느새 역사가 되고, 역사는 어느새 전설이 된다. 그리고 그 전설은 어느새 신화가 된다. 마치 이 영화 'Der Herr der Ringe'의 신비로운 화면 속에서 웅대하고 장려하게 표현되고 있는 바와 같이...

2002.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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