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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경험
월드컵 개막에 맞춰 형의 홈페이지에 축구에 관한 일련의 글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느낀 점이라는 건, 월드컵이 역시 대단한 이벤트라는 일반적인 사실 하나, 형이 스포츠전문가는 절대 아니라는 개인적인 견해 하나, 현재 한국 내의 분위기에 시종 엇박자만 놓고있는 이 글들이 개인적인 성향 탓인지 타국에 있는 환경적 차이인지 하는 고민 하나, 그 정도였다.
어쨌거나 인터넷을 누비고 다닌지도 꽤 됐고, 지금은 인터넷 업계에서 먹고 사는게 직업이 된 사람이지만, 이번 일처럼 재미있는 경험은 두번 다시 없을 것 같다. 형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개인적인 글이, 인터넷을 통해 사방으로 퍼져 한국에서 스포츠에 관심있다는 네티즌이라면 누구라도 읽어볼 수 있는 글이 되다니 말이다.
발단이야 한 생각없는 네티즌이 그냥 무심결에 찾아와서 읽은 글을 우리나라에서 쓰레기 네티즌들이 많기로 유명한 스포츠신문 사이트의 게시판에 무단으로 옮겨간 탓으로 보이는데, 그렇다고 글쓴 사람의 홈페이지까지 찾아와서 이렇게 피박살을 내려고 하는 걸 보면 집단광기라는 말, 솔직히 아주 틀린 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재작년인가, 내 홈페이지에 에반게리온을 씹는 글(?)이 하나 있는데 어떤 네티즌이 그 글을 퍼다가 당당히 에바 팬사이트(!)에 올려놓은 적이 있었다. 다행히 그 사람은 글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지가 쓴 것처럼 했었는데, 그 글을 읽고 빡돌아버린 에바팬들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내 홈페이지를 발견하고 "그 작자의 홈페이지다!"라며 다구리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한 적이 있었는데, 이건 그것과 또다른 느낌이다. 대상이 에바팬 처럼 한정적이지 않고, 마치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자라면 누구라도 분노해야될 것처럼 선동적으로 떠돌아서 결국엔 인신공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유승준도 화가 날까?)
솔직히 말하자면, 난 여기 내 형의 홈페이지 방명록에 욕바가지나 뿌려대는 인간들, 몇년전에는 황선홍 똥뽈 찰 때마다 개새끼 소새끼 욕했다는 것, 유상철 홈런날리기 플래시 게임을 킥킥거리며 재밌게 했을 것이라는 것, 불과 며칠전 미국전을 보며 이을용 후레자식 설기현 썩을 놈을 외치며 못잡아죽여 안달이 났을 거라는 점을 단정지어 말할 수 있다. 그 모습이나 이 모습이나 다를 것이 뭐가 있는가. 한국인 어쩌구 하는 민족적 의미를 담으면 같은 욕사발이라도 좀더 숭고해지더냐?
그리고, 며칠전 미국과의 경기때 나는 상암동에 있었다. 비가 무지 많이 내리는 날이었고 늦게 도착한 탓에 자리는 이미 만원이었다. 맨 뒷자리는 화면도 멀고 그나마 서서 보는 사람들의 우산에 가려, 들이닥치는 빗발을 참더라도 결코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는 열광적인 축구팬은 아니지만 솔직히 응원하는 것보다 축구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랬기에 함께간 직장 동료들에게 차라리 근처 맥주집에라도 가서 TV로 보자고 했지만, 평소 축구가 뭐하는 운동인지 관심도 없었을듯한 여직원들이 "다같이 응원하는 재미"를 주장하며 그 빗줄기 속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모습이, 심하게 표현하면 집단광기 비슷한 거 아닌가. 거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진짜 축구팬이었을까? 절반도 안됐을 거다. KBS에서 다같이 모여서 응원하자고 상암동에 대형멀티비전 설치하고 가수들 불러서 쑈까지 했다. (거기서 코요테의 신지 봤다. 흐흐흐... 멀리서 봐서 안본거나 마찬가지지만) 그런데 그게 자발적으로 모인건가? 동아일보 조선일보에서 지네 대형멀티비전으로 중계한다고 광화문 와서 응원하라고 신문 1면에 때렸는데 그게 자발적으로 모인건가? 그 사람들이 과연 "축구의 승리가 보고싶어서" 갔는지 "다같이 모여서 미쳐버리고 싶어서' 갔는지, 답은 너무 간단한거 아닌가?
정말로 묻고싶다. 그날 광화문에서 시청에서 여의도에서 강남역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던 그 사람들이 진정 한국축구의 16강이 감격스러워서 그랬는지. 월드컵에 몇나라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을 거다. 난 그 사람들보다, 폴란드전에서 첫승을 따내자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던 서너명의 젊은이들이 정말 제대로 된 축구팬이라고 생각한다.
불똥이 붉은악마까지 튄 모양인데 사실 붉은악마는 해당사항이 아닌데... 걔네들은 진짜 축구팬들이지만 평소엔 국가대표팀 축구경기도 시큰둥하던 사람들이 마치 자기 십년묵은 체증 내려간듯 감격하며 우는 모습을 봤을땐 오한이 날 지경이었다. 그 사람들이 월드컵 끝나면 "축구의 새로운 재미에 빠져서" 국내프로리그를 열심히 관전하며 서포터즈 활동을 할까? 개뿔이다. 그들에게 월드컵은 그냥, 지네들 스트레스 쏟아붓기 좋은 이벤트에 다름 아니다. 재밌는 것은 월드컵이나 축구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사람들보다 그런 사람들이 훨씬 과격한 반응을 보이며 나댄다는 사실이다.
난 솔직히 무엇때문에 이렇게 글을 쓴 사람 홈페이지에 직접 몰려와서 "내가 보기엔 당신은 잘난척만 하는 형편없는 인간이야!"라는, 또다른 잘난척을 하고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한번 따라해보는 군중심리인가? 여러 사람들로부터 돌맞고 있는 사람한테 쫓아가 돌멩이 하나 더 던져보는 그런 심리? 그게 아니라면 기껏 독일유학생 하나 박살내는 것이 구국의 길이요 애국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는 건 글을 쓴 사람들이 더욱 잘알텐데. 난 정말 모르겠다.
2002. 6. 17.
KIDHS wrote :
난리가 낫다길래 들어와보게된 사이트이고
저 역시 몰려다니며 욕설이나 퍼붓는 네티즌은 맘에 들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님의 글 역시 잘 읽어보았습니다.
님이 말하신 생각없이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겠고
그러나 당신말대로 그 모인 사람들이 미쳐버리려고 갔다는 크게 잘못된 표현이자
축구를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축구라는 건 그런 것입니다.
평상시에 좋아하던 안하던 그것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걸 떠나서도 몇십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성적을 낼수 있는
평상시에 양궁이나 레슬링 얼마나 좋아했다고 응원합니까?
꼭 자기가 좋아하던 것이 아니라도 알지 못하는 것이라도..
분명 군중심리등에 휩싸여 오는 님말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신은 거기 왜 가셨습니까?
아니시겠지요. 그러셨다면 이런 글 쓰시지도 않았을테니.
알지 못해도 좋아할수 있습니다. 즐길수도 있습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리시는 것.. 바르지 못한 일에 이견을 내는 것
축구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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