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영화와 한국여성상





- 이하의 글은 2001년 6월 18일 고대 법대문학회 홈페이지 "노땅게시판"에 게재되었던 저의 영화평론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제 글에 대한 반박문과 소감문이 이어지고, 그에 대한 저의 가벼운 답글이 덧붙여질 것입니다.-


고래 wrote:

'한비자'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불은 겉으로 보기엔 무섭지만 화상을 입는 사람은 드물고, 물은 겉으로 보기엔 부드러우나 익사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이 말은 '한비자'에서 형벌이 관용보다 인간에게 미치는 해악이 더 적다는 아이러니적 예로서 사용되고 있고, 오늘날 문명의 발달로 물에 빠져죽는 사람 못지 않게 불에 타죽는 사람 또한 많아진 것을 생각하면 별로 격에 맞지 않는 얘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이야기가 김기덕 감독과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비교하는 데에는 적절히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간혹 해보곤 한다. 왜냐하면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마초영화라도 너무 노골적이고 직접적이기 때문에 그 해악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겉으론 안 그런 것 같아도 속으로는 아주 은근하고 교묘한 마초영화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미치는 해악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여기 독일유학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홍상수 감독의 팬 중 한 사람임을 자부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첫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고서 나는 꽤 신선하고 주목할만한 영화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의 두번째 영화 '강원도의 힘'은 내 동생과 끌어안고 배꼽이 빠져라 웃으면서 재미있게 보았다 (나는 여태껏 내가 본 영화의 90퍼센트 이상을 내 동생과 집에서 비디오로 보았는데, 비디오를 보다가 우스운 장면이 나오면 내 동생을 꽉 끌어안으며 웃는 것이 내 버릇이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이여~, 나랑 코미디영화 같이 보지 않도록 조심하시라~ ^^).

그런데 작년 9월 30일 여기 함부르크에서 열렸던 Korea-Film-Festival때 여러 독일친구들과 함께 김기덕 감독의 '섬'과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을 연달아 보고 나서는 홍상수 감독 이 사람 이거 그대로 놔두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독일친구들에게 그런 여성경시적인 한국영화를 보여준 게 부끄럽기도 했고, 또 그 자리에는 약 10쌍이 넘는 한독커플들이 쌍쌍이 앉아있었는데 (전부 다 한국여자유학생과 독일남학생 커플들이었음. 물론 한국남자와 독일여자 커플은... 단 한 쌍도 없었음 ^^) 그 영화를 보면서 독일남자들이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생각하니 끔찍하기도 했다.

내 독일친구들의 반응은 거의 압도적으로 김기덕 감독을 칭찬하면서 홍상수 감독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분위기였다. 다시 말해 김기덕 감독의 '섬'은 여성적대적이고 여성학대적이긴 하지만 철저히 남성으로서의 주관성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였기 때문에 별로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저 Korea땅에서 저렇게 힘들게 꼬물거리고 사는 저 쪼그만 한국남자들은 저런 귀엽고 순진한 꿈을 꾸면서 나름대로 한 세상을 살아가는구나"하는 느낌을 주어 참 많은 생각을 하고 감상할 수 있었다나?

반면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에 대해서는 다들 "어떻게 저렇게 한 여자를 지능적으로 깔아뭉갤 수 있나? 심하다 !"하는 느낌 외에는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Katharina란 여자애는 "너네 한국여자들은 정말 다들 저렇게 참으면서 사니? 정말 저렇게 화낼 줄을 모르고 사니?"하고 내게 물어보았고, Sarah라는 여학생은 "똑같이 기억의 왜곡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보면 남자의 기억이 더 정확하고, 여자의 기억이 더 자기멋대로인 것을 알 수 있어. 저렇게 여자를 시치미 떼고서 교묘히 깔아뭉개는 영화... 너무 치사하지 않아?"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비단 '오, 수정'뿐만이 아니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강원도의 힘'에서도 여자를 교묘히 깔아뭉개는 식의 뉘앙스는 그의 영화 곳곳에서 발견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와, 저런 자질구레한 표면들을 긁어모아가지고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하는 게 너무 신기해서 그냥 넘어갔지만, 갈수록 그의 영화에서 여자를 깔아뭉개는 정도는 더 심해져가니, 나는 비록 남자지만 (그것도 아주 순도 100퍼센트의 마초형 남자이지만), 나도 어차피 여러 여성들과 이 세상 더불어 함께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인 이상, 그의 영화를 보고 '거참 고소하다'고만 생각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까지만 해도 그의 영화는 그렇게 심한 여성경시를 바탕에 깔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잔인할 정도로 망가지는 인간은 유부녀와 사랑에 빠진 3류 소설가, 김의성이란 남자였으며, 특히 그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깽판 치고 엉엉 울 때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다 나고 "아, 우리 남자들은 얼마나 자기모순적이고 형편없는 물건들이란 말인가?"하는 자탄이 절로 났던 것 같다. 다시 말해 최소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만 해도 홍상수는 특별히 여자만 더 깔아뭉개는 식의 불공정함을 보여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가만 보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도 홍상수는 여자를 충분히 물 멕이고 있었다. 예를 들어 김의성을 짝사랑하는 극장 매표girl 조은숙이 빵집에서 케이크 하나 사들고 김의성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갔다가 김의성에 의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장면을 보자. 김의성은 이때 길바닥에 퍼질러진 조은숙에게 "너, 니 멋대로 착각하지 마. 너, 나랑 무슨 특별한 관계인 줄로 오해하는 것 같은데, 꿈 깨. 넌 나한테... 아무것도 아냐... 똥이야... 똥." 이런 식의 폭언을 퍼붓지만 조은숙은 이에 대해 불쌍하게 울기만 하고 아무런 대꾸도 못한다.

왜 조은숙은 이때 김의성의 귀싸대기 한대 후려치고 휙 돌아서지 못했을까? 여기서 홍상수가 우리나라 여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드러난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걷어채이는 그 순간에도 남자에게 동정을 받기를 원하고 불쌍하게 보이기를 원해야 한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연약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남자가 '헉, 내가 넘 심했나?'하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때 여자가 우는 것은 절대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게 작전일 뿐이다. 그래서 조은숙은 김의성 앞에서 그렇게 충분히 울고 난 다음에 김의성이 사라진 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혼자 만두집에 들어가 아주 맛있게 만두를 시켜 먹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압권은 조은숙이 자기를 무척 짝사랑하던 극장직원에게 '한번 대주는' 광경이다. 적나라하게 벌거벗은 채 철저히 수동적인 자세로 남자의 요구에 응하던 조은숙은 굶주린 강아지 찬밥 먹듯 허겁지겁 자기를 먹어치우던 극장직원 남자에게 힘없이 묻는다. "나를 가지니까... 넌 좋으니?" -_-;;;

이게 정말이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깊이 생각해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홍상수는 여자에게 있어서 성행위라는 것이 자기 소유권을 남자에게 넘겨주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나를 가지니까... 넌 좋으니?"라니. 심지어 조선시대 여자들이라 하더라도 남자와 성관계 갖고 나서 "저는 이제 당신 꺼에요."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식의 비뚤어진 여성관은 '강원도의 힘'에 이르러 더 심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대학 강사인 유부남 백종학과 여대생 오윤홍이 사랑에 빠진다.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라는 딱지를 붙인 대학강사와 그의 강의를 듣는 여대생이 소위 '불륜'이라 불리는 사랑을 했으니, 그 결과가 좋을 리 있겠는가? 둘은 이별을 하고, 각자 이별의 아픈 가슴을 달래기 위해 강원도행 길을 떠난다. 사랑의 힘을 주었던 그곳에서 이제는 이별을 견디기 위한 힘을 얻어내기 위해서...란다. 여기까지는 뭐 좋다고 치자 이거다.

남자인 백종학은 이미 교수가 되어있는 후배 하나 옆에 꿰차고 호탕하게 비룡폭포와 권금성을 둘러본다. 언더핸드스로우로 강물 위에 돌맹이를 던져 팍팍팍 튀겨보기도 하고, 룸싸롱에 들어가서 양주를 마시고 여자도 하나 사서 근사하게 염복개통, 회포도 풀어본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전혀 슬퍼 보이지도 않고, 여유와 멋이 넘쳐 흐른다. 여기서 그는 후배와 이런 유명한 대사를 주고 받기도 한다. "저 산에 사람을 가득 채우면 몇 명이나 들어갈까?" "꽤 많이 들어갈 걸." "한 백만은 들어가지 않을까?" "그렇게 많이 들어갈까?" "촘촘히 서서 다닥다닥 붙어있으면 한 백만 안 들어갈 거 같애?" ... 남자가 숫자를 센다고 하면 최소한 백만 단위는 나와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남자답고 스케일이 큰가 말이다.

반면 여대생 오윤홍을 보자. "나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건 가지려고 노력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은 포기하려고 노력해. 그래서 어느 땐 너무 아프다"라고 퍽이나 근사하게 말하는 그녀는 정신적으로 자기가 굉장히 성숙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하지만, 관객의 눈에는 그저 유치찬란하게 보일 뿐이다. 그녀에 대해 한 친구는 술자리에서 독설을 퍼부어 그녀를 웃음거리로 만든다. "너는 너 혼자 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 넌 하나도 특별한 거 없어. 다른 사람들하고 다 똑같애. 엄청 상투적이란 말이야."

대학강사 백종학이 술집여자 돈으로 사서 가뿐하게 실연의 스트레쓰를 날려버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녀는 산 속에서 민박을 알선해준 친절하고 젊은 순경 김유석을 느닷없이 다시 찾아감으로써 또다른 자기귀속의 대상을 찾으려 한다. 여기서 순경 김유석은 머나먼 설악산까지 오로지 자기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대생이 찾아왔으니 "이게 웬 떡이야"하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순경 김유석은 없는 봉급을 털어 바닷가 횟집에서 생선회도 사주고 온갖 친절을 다 베푸는데, 음란하고 천하고 요사스러운(?) 여대생 오윤홍은 당연히 얻어먹고 뜯어먹기만 한다. 자기 심정을 솔직히 고백하지도 않고, 떳떳이 자기 입장을 밝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힘없이 다소곳한 포즈로 남자의 리드에 따를 뿐이다. 그리고 비싼 생선회랑 술이랑 얻어먹은 데 대한 당연한 대가로 순경 김유석과 함께 러브호텔에 들어간다. (기브앤테이크인가?)

"내가 지숙씨에게 무슨 감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하고 묻던 김유석은 오윤홍을 침대에 넘어뜨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윤홍은 화끈하게 김유석과 성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다. 금새 변덕을 부려 성관계를 거부해버리고, 서울로 돌아와 다시 대학강사 백종학과 재회한다. 홍상수 영화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오윤홍은 여자이기 때문에 사랑문제에 있어서 남자인 백종학보다 상처도 더 많이 받고 심리적으로도 더 지배당하는 입장에 놓여있다.

그래도 '강원도의 힘'까지는 양반이었다. 나도 '강원도의 힘'까지는 홍상수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번째 작품인 '오, 수정'에 이르면 이제 홍상수는 자신의 마각 드러내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게 된다.

케이블 TV 구성작가인 이은주는 같은 프로 PD인 문성근과 사실상 사귀는 사이이다. 처가집 빽으로 PD노릇을 해먹고 사는 문성근은 재능도 없는 주제에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싶어서 부잣집 아들인 후배 정보석의 미술전을 이은주와 함께 찾아간다. 이런 식으로 처음 만나본 이은주에게 정보석은 관심을 보이고, 이후 계속 이은주에게 잘 해주던 정보석은 기회를 보아 이은주에게 "정식으로, 정식으로 사귀고 싶습니다."하고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이은주는 기회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여자의 속성을 드러내는 화신이 된다. 영화는 반복해서 부잣집 아들 정보석이 자기 화랑도 하나 가지고 있고, 차도 고급 외제차를 굴리고 다니고 돈도 아주 많아서 여자들이 어떻게 좀 엮어보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잘나가는 독신남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어느 식당에서 문성근이 기운 빠진 목소리로 "돈 많지, 그 친구. 더럽게 돈 많지."하고 중얼거렸을 때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이은주의 머리 속을 관객들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고스란히 읽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물질적이고 의존적인 여자 이은주는 결코 화끈하게 자기 속마음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문성근과 정보석 사이를 요리조리 오가며 뜨뜻미지근한 태도로 일관하며 자기 주가를 올린다. 정보석에게는 '술 마실 때만 애인이 되겠다'고 희한한 제안을 하고, 한편으로는 문성근이 스튜디오 안에서 강제로 키쓰를 하자 아주 능숙하게 받아주고서 자기는 키쓰는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 숫처녀라고 얘기한다. 그 뒤로 문성근과는 여관에도 한번 같이 가는데, 키쓰도 하고 페팅도 하고 오만 잡짓을 다 하면서도 팬티는 절대 벗지 않는다. 여기서 안타깝게 이은주의 팬티끈을 더듬는 문성근의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빤쓰도 벗겨야 되는데... 빤쓰는 벗긴 거다~"

독일여자들은 이런 장면들을 보며 "어떻게 남자가 그렇게 성추행을 시도하는데 여자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하고 분노하지만, '자애로운 한국여자' 이은주는 결코 화를 내지도 않고 "방금 절 성추행하려 하신 거 아시죠?"하고 힘없이 묻는 데서 그친다. 술도 엄청 잘 마시고, 집에서는 친오빠가 밤 중에 방문 열고 들어와 자기 자위행위 도와달라고 칭얼대면 오빠의 성기를 주물러주며 자위행위까지도 도와준다. 그래도 그녀는 처녀다. 누가 뭐라고 해도 숫처녀다.

이미 속으로는 모든 마음의 결정을 다 내린 상태이면서도 그녀는 계속 딴전만 피우면서 정보석의 오금을 저리게 만든다. 차츰 입술도 내주고 가슴도 내주고 아주 감질나게 조금씩 조금씩 남자의 요구를 들어주지만 결코 자기 처녀만은 빼앗기지 않으려 버틴다. 그토록 예의 바르고 매너 좋고 문성근 말마따나 "결이 곱던 친구"이던 정보석은 여자가 이중적 태도를 보이니 어쩔 수 없이 이은주와의 섹스를 위해 온갖 좋은 말을 남발하며 비굴해질 대로 비굴해진다.

하지만 이은주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고, 바로 그때문에 정보석은 자기 주위에 널리고 널린, 솔직하고 호탕하게 자기에게 대쉬하는 좋은 여자들을 다 마다하고 가난하지만 살살 빼는 이은주에게 녹아난다. 이건 결국 무슨 의미인가? 다시 말해 홍상수 영화에서 남자는 언제나 마음껏 대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여자는 살살 빼기만 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무작정 대쉬만 하면 되고 여자의 섬세한 감수성이나 자존심 같은 것은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여기서 처음에 그토록 말쑥하고 댄디하게 보이던 정보석은 점차 남자로서의 당연한 본성을 드러내 아주 막무가내로, 능숙한 요령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초월한 채 이은주에게 그냥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은주의 가슴을 애무하다가는 실수로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그 당시 정보석에게는 이은주 말고 다른 여자가 하나 더 있었다.)

이런 일이 터졌을 때 독일여자 같았으면 아마 한달 내지, 최소한 일주일은 남자를 만나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남자 멱살을 잡고 그 여자가 누구냐고, 빨리 이실직고하라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홍상수 감독은 아주 인내심 강한 한국적 여인상을 창조하신다. 이은주는 정보석과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가 몰래 아무 말 없이 정보석 곁을 떠나지만, 정보석이 자기를 애타게 찾는 것을 보자 다시 조용히 정보석 곁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화를 내는 것은 적반하장격으로 오히려 정보석이다. "이름 한번 잘못 부른 게 뭐가 그렇게 죽을 죄를 졌다고, 뭐가 그렇게 죽을 죄를 졌다고 사람을 이렇게 미치게 만드냐고요오~"

그리고 티격태격 끝에 이은주는 정보석의 '제주도 가자'는 말에 넘어가 정보석과의 정사를 결국 약속하게 된다. 자기가 처녀임을 보여주고 부잣집 아들 정보석으로부터 결혼다짐을 받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약속된 날짜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정보석은 날짜를 앞당겨 제주도 말고 도봉산 근처 호텔에서 첫번째 정사를 갖자고 천연덕스럽게 제의한다. 독일여자 같았으면 남자의 이런 무드 없는 태도에 그럼 다 그만두라고 펄쩍 뛰었겠지만, 홍상수 감독에 의해 창조된 '인내심 강한 한국적 여인상' 이은주는 그냥 "제가 뭐 제주도 못가서 환장한 여자인 줄 알아요?"하고 짜증 한번 팍 내고 결국 도봉산 근처 호텔로 간다.

여태껏 섹스에 버금가는 온갖 행위를 다 해왔으면서도 처녀성만은 오늘의 결정적 순간을 위해 지켜온 이은주가 드디어 정보석에게 처녀를 바치는 순간이다. 그동안 되게 새침을 떨긴 했지만 뭔가 의심쩍어 보이던 이은주가 정말로 숫처녀라는 사실을 핏자국으로 확인한 정보석은 너무나 좋아 입이 귀까지 찢어진다 (만약 숫처녀가 아니었으면... 이은주를 걷어찼을 것인가?). 여기서 이은주의 대사가 너무나 걸작이다. "어머... 원래 피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거에요?"

그걸 미혼남인 정보석에게 왜 물어보나? 자기가 숫처녀였으면 남자도 숫총각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도 여자는 할 줄을 몰라야 하나? 하지만 홍상수 영화에서는 그 답이 간단하다. 당연히 요구할 줄 몰라야 하고, 성에 관해서 여자는 숙맥이어야 하므로 모든 걸 남자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감격한 정보석이 "내가 약속한 모든 것을 목숨 걸고 지킬게요"라고 이은주에게 말하는 대목은 이를테면 이런 의미를 갖는 거다. "여성들이여~, 정말로 괜찮은 남자를 만날 때까지 꾹 참고서 처녀성을 지켜라~. 그러면 이런 확실한 보답을 받게 된다."

이 영화를 독일친구들과 함께 보면서 나는 인간적으로 너무 쪽팔렸다. 처음엔 웃으며 이 영화의 여러 장면들을 지켜보던 내 독일친구들도 나중에는 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젓기 시작했고, 특히 독일여자애들은 분노를 참을 수 없는 표정들이었다. "너네 한국여자들은 정말로 다 저러니?" 그녀들의 이 말은 아직도 내 귓가에 생생하다.

솔직히 김기덕 영화를 보면서는 아무도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유독 홍상수 영화만이 그녀들을 이렇게 격앙시켰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홍상수 영화에서 배우들은 연기가 아닌 것처럼 연기해낸다.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다. 정말이지 홍상수는 "내가 본 것, 그리고 내가 믿고 있는 것만 말할 수 있다"는 식으로 영화를 만든다. 김기덕처럼 남성판타지를 만드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치 신처럼 남자의 머리속과 여자의 머리속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실감나는 사실을 재구성해내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게 현실인 것처럼 믿게 만든다.

그렇게 그의 마초이즘은 김기덕의 그것처럼 직접적이지 않기 때문에 지적 허영과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절대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단순무식한 독일의 법대 여학생들 정도가 그에 대해 솔직한 분노를 터뜨릴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면서 그의 영화는 현실보다 더 완벽한 현실이 되어 사람들의 의식 속에 각인된다. 아마 우리나라 여자들, 그 영화를 보며 많은 삶의 지혜(?)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영화는 김기덕의 노골적인 엽기영화보다도 우리에게 끼치는 해악이 더 크다. 난 우리나라 여성평론가들이 왜 그의 영화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김기덕 영화는 여성 성기에 대한 학대와 잔혹한 강간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무조건 여성적대적이고, 홍상수 영화에는 그런 장면이 안 나오기 때문에 무조건 여성우호적인 것인가? (그나마 김기덕 영화에는 조야하나마 진지하게 추구되는 꿈과 인간성에 대한 신뢰가 있는 데 반하여, 홍상수 영화에는 세상의 피상만을 훑어보는 조소와 야유의 정신만이 존재할 뿐이다.)

어떤 국내 여성평론가는 홍상수를 가리켜 "우리나라에서 거장의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영화감독"이라고 추켜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는 나보다도 더 악질적인 마초 영화쟁이이며, 우리 영화판에서 골때리는 한 기인에 불과하다. 스타 한번 되보고 싶어 아부 떠는 여성군단들을 주위에 거느린 채 한국의 실제상황보다도 더 보수적이고 봉건적인 남녀관계의 전형을 리얼하고 실감나게 묘사하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을 국제적으로 교묘하게 망신시키는 파렴치한 마초 영화쟁이.

내게는 악몽으로 다가올 그의 네번째 영화가 만약 또 나온다면... 글쎄 나는 그걸 내 돈 내고 과연 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최소한 내 독일친구들과 같이 보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국가망신은 둘째 문제에 불과하다. 우선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런 쪽팔린 일은 피해야겠기 때문이다.

2001.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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