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영국육군 거의 전병력을 이끌고 들어간 Roberts장군의 노력으로 1900년 영국은 남아프리카를 완전히 점령하긴 했지만, 그것은 단지 전쟁의 서곡일 뿐이었다. 남아프리카의 울창한 밀림과 계곡, 골짜기 곳곳마다 숨은 보어인게릴라 저격병들에게 2만명 이상의 새파란 영국군인들이 생목숨을 잃어야 했기 때문이다. 1901년 Victoria여왕이 전쟁의 끝을 못 보고 죽은 후, 1902년에 들어서야 영국군은 보어인게릴라들을 완전히 소탕할 수 있었지만, 영국이 그러한 전쟁승리로써 얻은 소득은 극히 미미했으며, 이때 영국군이 남아프리카에서 벌인 잔인한 민간인살육과 수용소에서의 인권침해사례는 남아프리카 보어인들과 친했던 독일인들의 반영감정을 자극해 10여년 후 세계 제1차대전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결국 보어전쟁은 대영제국 전성기의 종말을 초래한 전쟁이었으며, 이 기념물을 만들 당시 영국은 이미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던 셈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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