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liament Square에서 Big Ben을 바로 마주보고 서있는 Winston Churchill경의 동상이다. 생긴 게 꼭 불독같이 생겼는데, London에서 Churchill 닮은 불독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게 참 안타까운 일로 생각되었다. Winston Churchill은 알다시피 영국 최고의 명문가인 Marlborough공작가문의 장손으로서 그의 아버지 Randolph Churchill경은 영국의 재무부장관이었고, 그의 어머니 Jennie Jerome은 활발한 성격에 달변과 유머감각으로 영국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한 여자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싫어하고 장난치기만을 좋아했던 처칠은 Eton중고등학교와 Oxford대학교를 졸업한 아버지와 달리 이름없는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서도 낙제를 밥먹듯 해야 했는데, 그런 굴곡 있는 인생으로 인해 철두철미한 모범적 보수주의자였던 아버지와는 달리 자유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경향을 갖는 개성있는 괴짜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워낙에 망나니 파락호로 소문이 나서 유명정치가의 장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장래는 지극히 어두운 편이었지만, 보어전쟁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에라 모르겠다 목숨을 걸고 탈출한 것이 극적으로 성공하는 바람에 매스컴에 대서특필되어 국민적 영웅으로

날리게 되었고 이 덕에 그는 26세의 젊은
나이로 하원의원에까지 뽑히기도 하였다.
이후 특유의 뚝심과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재치, 유머감각으로 정계에서 의외의 두각을 나타낸 그는 1908년, 34세의 나이로 무역부장관이 되었고, 젊은 군사전문가로서 1차대전 당시 상당한 활약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1920년대 들어 나이가 오십에 가까워지면서 보수주의로 급선회함과 동시에 이념적으로 오락가락하는 주장을 펴서 그의 평판과 위상은 땅바닥으로 추락해버리고 말았다. 1930년대 내내 대다수 영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당시 영국을 추월하여 미국과 함께 세계의 3대강국으로 성장하고 있던 독일과 소련을 바라보면서, Hitler의 나찌즘이 Stalin의 공산주의를 견제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독일의 Hitler와 연대해서 소련의 공산주의를 함께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지만, Churchill은 유독 혼자서 "Hitler가 우리 영국으로 곧 쳐들어올 것이다~~ 공산주의자 Stalin보다도 민족주의자 Hitler가 우리에게는 더 위험한 Fasho다~~"라는 주장을 펴서 주위 모든 사람들의 비웃음과 비난을 혼자 뒤집어 써야 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1939년 Hitler가 모든 영국 지식인들의 예상을 뒤엎고 Churchill의 예상대로 동유럽이 아닌 서유럽으로 먼저 침략을 감행해오자 (지금도 영국의 보수적 지식인들은 그때의 Hitler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만약 Hitler가 그때 서유럽만 침공하지 않았다면 지금 독일의 국경은 동쪽으로 벨라루스나 우크라이나 지역까지 이어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Churchill은 갑작스런 언론의 조명을 받았으며 1940년 영국 거국내각의 수상으로까지 취임하였다. 당시 영국은 국력이 바닥난 상황이라 독일의 막강한 군사력에 꼼짝없이 짓밟힐 운명이었지만, Churchill은 이때 Hitler를 찜쪄먹을 만큼의 감동적인 연설력과 함께 놀랄 만한 리더쉽을 발휘하여, 그때까지 Nazi의 패권적 인종주의에 대충 굴복, 타협하고 독일인과 함께 유태인종, 슬라브인종, 라틴인종이나 덩달아 깔아뭉개며 사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고 있던 영국 대다수 국민들을 완전히 반나찌전선의 한 길로 대동단결시키기에 이르렀다. 1941년 8월에 Churchill은 미국의 Roosevelt까지 반나찌전선에 동참시켰는데, 이는 그 당시 프랑스에 이어 영국, 소련까지 삼키고 전유럽을 통일하려던 Hitler에게 돌이킬 수 없는 외교적 결정타를 먹인 것으로서, 이후 Hitler를 군사적으로 패배시킨 것은 실질적으로 소련군과 미국군이었지만, 정신적이고 외교적인 측면에서 Hitler의 숨통을 누른 것은 사실상 영국의 Churchill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하였다. 어떤 이는 그로써 Churchill이 영국의 국력을 모두 소진해버렸고 영국을 사실상 미국의 애완견 국가로 전락시켜버렸으며 수백만 영국인들의 생명을 덧없이 앗아갔다고도 비난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모름지기 인간에게는 생명보다도 존엄한 어떤 것이 있는 것이며, 이 당시 Churchill이 Hitler에 맞서서 단호하게 싸우지 않았다면 지금 유럽은 Hitler나 Franco, Mussolini 같은 극우정치가들의 아류, 후계자들이 독일, 스페인, 이태리 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까지도 완전히 장악하고서 미치광이짓을 벌이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은 사실상 전쟁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약하고 가난한 나라로 그 지위가 추락하게 되었고, Churchill은 그러한 영국경제의 파탄에 책임을 지고 수상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지만, 영국 국민들은 그를 여전히 사랑했다 하며 1951년에는 이미 77세의 나이가 된 그를 다시 수상으로 불러들여 그가 81세가 되던 1955년까지 5년간 수상자리를 더 맡기기도 했다. 정계에서 은퇴한 후 그는 타고난 글재주를 뒤늦게나마 살리기 위해 수많은 회고록을 집필했는데, 내가 어렸을 적 읽었던 그의 'The second world war (세계 제2차대전사)'는 놀랄 만큼 솔직하고 겸손한 달필로 써내려간 책이라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는 대단한 골초 애연가였지만 91세까지 살았으며, 1965년 그가 죽었을 때 수많은 영국 국민들은 마치 자신의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처럼 매우 슬퍼했다는 얘기들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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