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에 새겨진 그림들이다. 대영박물관이 이렇게 많은 메소포타미아 유적들을 보관할 수 있었던 사연을 설명하자면 19세기말까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 당시 영국은 메소포타미아를 사이에 놓고 독일과 숨막히는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결국 1차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영국군은 당시 독일과 동맹을 맺고 있던 터키에 맞서 그 유명한 아라비아의 Lawrence가 열심히 노력한 덕으로 아랍인들을 자기편으로 만든 다음 아라비아의 헤게모니를 장악했고, 마침내 1918년 1차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돌아가자 영국군은 독일군의 지원을 받고 있던 터키군을 무찌르고 메소포타미아(오늘날의 이라크)를 완전히 무력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영국은 괴뢰왕 Faisal을 통해 이라크를 사실상 식민지로 지배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라크는 영국상품의 판매시장 및 영국과 인도를 잇는 물품통로의 지위로 전락해야 했으며, 이때 수많은 메소포타미아문화재들은 Faisal왕실에 의해 대영박물관으로 유출되어야 했다.
더군다나 1920년대 들어 이라크지역에서 대량의 석유가 발굴되면서 이라크는 영국에게 식민지 인도만큼이나 소중한 봉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이라크인들이 영국의 이러한 식민지배를 참을 수 있었겠는가? 곧 이라크에는 Rashid Ali al-Gailani를 수반으로 하는 민족주의정권이 수립되었고, 독일이 다시 힘을 길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자 이 정권은 이제 영국과의 보호조약을 폐기하고 독일의 편에 가붙으면서 메소포타미아지방의 정세는 다시 불안정해지게 되었다. 이에 영국은 즉각 바스라에 군대를 파견하여 이라크정부군과 교전을 시작했고, 결국 미국의 협력과 독일의 방해 속에서 영국군은 1941년에 이라크군의 항복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 이라크는 한동안 미국과 영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으나, 집권 이후 미국 및 영국자본의 조종을 줄곧 받아오던 이라크의 독재자 Saddam Hussein이 1990년부터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하면서 영국과 미국은 이라크에서의 오랜 영향력을 점점 상실하게 되었다. 무려 80년 가까이 사실상의 식민지로 여겨왔던 이라크가 자기들로부터 독립해서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으니 영국 입장에서는 얼마나 입맛이 쓰리고, 독일이나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입맛이 고소했겠는가?
그러나 2003년 영국수상 Tony Blair가 미국대통령 George W. Bush와 함께 이라크를 다시 침략하고 점령해버리면서 지금 영국은 미국과 함께 이라크를 다시금 자기들의 영향권 안에 복속시킨 상태이고, 독일은 다시 손가락만 빨게 된 상태이다. 2003년 이라크전에서도 역시 평화와 민족자결은 단지 명분에 불과했으며, 실질적으로 문제되었던 것은 영국과 독일 간의 오랜 아랍지역 헤게모니 쟁탈전이었음을 우리는 이로써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