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살구나무

송영봉 ('95)




숨이 막힐 정도로 무덥다. 버스가 지나간 자리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피부로만 느껴지는 더위를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는 무더운 아스팔트의 도로를 투벅투벅 걸어갔다. 참 많이도 변했다. 어릴 때 왔을 땐 포장도 되어 있지 않았었는데, 도로엔 아스팔트가 쫙 깔리고 거리엔 고층의 상가가 즐비하게 늘어섰다.

"딩동"
"누구세요."
"형이다."
"행님이가?"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구수하게 들려왔다. 이윽고 뛰어나온 사촌 동생 녀석. 중3이라는 녀석이 키가 180cm나 되어 있었다.
"행님아 어서 온나, 근데 행님 니는 키도 안 컸나?"
"하하. 재수하느라고 쪼그라들었나 보다. 근데 너는 언제 그렇게 컸냐? 밖에서 보면 몰라 보겠다. 그건 그렇고 숙모는?"
"엄마 안에 계신다."
다시 후다닥 뛰어 들어가며
"엄마, 행님 왔다."
열려진 현관 문 사이로 발을 들이자 숙모의 초췌해지신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안녕하십니까, 저 왔습니다."
"그래. 어서 오느라. 날도 더븐데 온다꼬 수고했제?"
수박과 음료수를 내다 놓으시며 숙모와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1시간 가량 지났을 때 자리를 일어서며
"숙모, 저 아버지 산소에 다녀올랍니더."
"더븐데 뭐할라꼬 갈라카노. 해 떨어지거든 가든가 안하고…."
"설에도 못 찾아뵈었는데 인제라도 빨리 찾아가서 아버지 좀 뵈어야지예."
"그래! 갔다 온나. 식아. 행님 따라서 큰 아버지 보고 오너라."

낫과 돗자리를 들고 대문을 나서자 내리쬐던 햇살은 한층 더 기승을 부려 이제는 온 몸의 구멍이 막혀버리는 듯했다. 도중에 구멍가게에 들러 소주 한 병과 종이컵 하나. 그리고 새우깡 한 봉지를 샀다. 좁은 도로를 돌아 골목으로 올라가서는 드디어 산길에 올랐다. 여기 시골도 이제 사람들이 도시로 다 빠져나가 버리고 버려진 밭에는 잡초가 나무 만하게 자라서 무성해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길에는 사람이 다녀 희미하게 나마 흔적이 있었다. 풀냄새가 한꺼번에 코를 찔렀다. 명아주, 토끼풀, 잔디 등등 길가에 수북히 피어있는 풀들이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아늑하게만 느껴진다.
"행님아, 서울에 산께 재밌제?"
"재밌기는! 집 떠나 사는건 고생이지. 그래도 사람은 넓은데서 살아야 되겠더라. 너도 공부 열심해서 서울 올라와야지?"
"나 같은 돌대가리가 우째 서울 가겠노? 아무 대학이라도 들어가야제!"
"누구는 나면서부터 공부 잘 했는 줄 아나? 머리가 안 좋으면 열심히라도 하면 되는 거지. 행님 말 알겠제? 공부 열심히 하거라. 엄마 걱정 안 하시게, 응?"
큰 키에 아직은 어린 티가 자르르 흐르는 동생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인다.

산길은 오르는 경사가 조금 급해지자 이제는 길도 풀섶에 가려져 버렸다. 끈적끈적한 거미줄을 온몸에 감으며 낫으로 풀을 헤치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풀밭에선 메뚜기와 방아께비, 풀무치가 뛰어 나와 몸에 부딪쳤다. 땀이 등골에 흘러 온몸을 적셨다. 하늘엔 잠자리가 수를 놓고 있었으나, 팔월의 삼복더위를 가리기엔 역부족이다. 10여분간 그렇게 풀을 헤치며 더듬더듬 올라가자, 드디어 아버지의 산소에 도착했다. 무덤과 주위를 덮은 띠풀과 산딸기 덩쿨은 내심 불효자의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 온 몸에 땀을 흘리며 등을 돌려 읍내를 보았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한결 시원하다.
'참 넓어졌구나.'

"행님아, 풀 내가 비까?"
"응? 아니다. 내가 하마."
동생의 소리에 이끌려 등을 돌렸을 때 나의 눈에 들어온 건 3m가 넘을만한 살구나무 한 그루였다.
8월의 햇살을 받고 서있는 살구나무는 큰 키와 무성해진 잎으로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저게 벌써 저렇게 자랐나? 저걸 내가 6살 때 심었었지.'

"쾅쾅쾅- 쾅쾅쾅-"
"작은 처제! 작은 처제!"
5월 중순의 어느 날밤 작은 방에 모여 옹기종기 모여 붙어 자고 있는 네 명의 어린 형제들과 어머니는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어머니는 급히 등불을 켜고 문을 열었다. 밖에 둘째 이모부께서 창백해진 얼굴로 다급히 말을 하셨다.
"송서방이 사고를 만났다 칸다, 어서 내랑 가자"
순간 아찔해 하시는 어머니께서는 잠시 후 정신을 차려 방으로 들어오셨다. 멀뚱멀뚱 눈을 비비는 형을 보시며
"진아, 엄마 잠깐 다녀올 테니까 동생들 재우고 너도 자거래이!"
"예."
형이 대답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여섯 살난 나는 잠이 덜깬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어데 가는데?"
"응 ~ ~ 엄마 밖에 볼일보고 올 테니까, 자거래이!"
"내도 따라가믄 안되나?"
"집에 있을라카믄 있제, 어데 따라간다 카노?"
어머니께서는 순간 화를 내시며 소리를 질렀다.
"앙앙. 엄마 따라 갈 끼다."
악을 쓰며 울고 쫓아오는 여섯 살 박이 못난이에 지쳐 어머니께서는 데려가기로 하셨다.
"제수씨, 빨리 갑시다."
하며 이모부께서는 몰고 오신 파란색 트럭에 올랐다. 어머니도 나를 안고는 차에 오르셨다.

차가 도로를 달리는 동안 어머니께서는 한마디 말씀도 하시지 않은 채, 불안한 표정으로 계셨다. 나는 처음 타보는 차에 올라 지나는 밤풍경을 보려고 보드레한 볼을 차창에 대고 있었다. 이윽고 차가 섰다. 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 어떤 건물로 뚜벅뚜벅 걸어가셨다. 밤인데도 건물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으며, 무슨 향을 켜고 있는 듯했다.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셨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엄마를 흔들어 대었다.
"엄마, 일어나라. 엄마, 일어나라, 으앙. 앙~~."
쓰러진 어머니와 울고 있는 나에게로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었고, 어머니는 잠시 후 깨어나셨다. 그리고는 커다란 울음으로, 절규하는 목소리로 통곡을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앞을 보았다. 꽃이 양쪽에 서있었고, 촛불도 켜져 있었다. 향로에 피워진 향에서는 하얀 연기가 을씨년스럽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촛불사이로 아버지가 반듯이 누워 계시는 것이었다. 계속 우시는 어머니 옆에 앉아서 난 물어보았다.
"엄마! 아빠 와 저기 누버 있는데?"
천진스레 아무것도 모르는 여섯 살박이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어머니는 그저 울기만 하셨다.
"엄마, 울지 마라. 엄마 와 우는데. 앙앙~~."
얼마나 우셨는지 빨개지신 눈으로 흐느끼시며, 입을 여셨다.
"엄마 안 우께, 엄마 안 운다. 울지 마라 울지마. 흐흐흑."
그 날밤 어머니는 그렇게 우시다 세 번을 기절하셨고 그때마다 나는 더 크게 울었다. 괜시리 옆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엄마가 그러시나보다 하고 나는 사람들에게 다 나가라고 앙살을 부렸다.

그리고는 삼일이 지났다. 우리 집 마당에는 사람들로 북적대었고, 마당 한 복판에는 병풍이 쳐져 있었다. 그 앞에는 갈색인지 흑색인지를 구분하기 힘든 사각의 길다란 나무상자가 놓여있었다. 어머니께선 흰 옷을 입으신 채로 사흘 전 그날처럼 꺼이꺼이 울고 계셨다.
"흑흑~. 내 보고 우째 살라꼬 지 혼자 가노! 토끼 같은 새끼, 네 마리만 달랑 남기 놓고 내 보고 우째 살아라꼬 벌써 가노!"
나는 그 당시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대문간에 모여든 내 또래의 꼬마녀석들이 우리 집을 훔쳐보는 게 싫어 돌을 던져대고 있었다. 누나도 형도, 집안에 가족이라고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었고 친척들만이 울다가 쓰러지시는 어머니 옆에 있었다.

해가 지고 저녁 무렵에 집 앞에는 커다란 버스가 왔다. 내가 이제까지 본 차 중에서 가장 큰 차였다. 사람들은 나무상자를 힘들게 들고는 버스 뒤의 트렁크를 열어 안으로 들이밀었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그 버스를 탔고 어머니도 탔다. 나도 차에 오르라는 소리에 처음 타보는 차가 신기해서 그저 기쁘기만 했다.

서너 시간을 달려 깜깜한 밤중에 차는 할아버지 댁에 도착했다. 다시 사람들은 차에서 까만 상자를 무겁게 내려놓았다. 할아버지께서 뛰어나오시더니 정신없이 우시기만 하셨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도 나를 끌어안으신 채 또 우셨다.

"화아악."
횃불이 밝혀졌다. 십여 명의 사람들이 까만 나무상자를 둘러매었고,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은 울면서 그 뒤를 따랐다.
"봉아, 너는 할아버지 집에 있거래이. 밤에는 어두버서 무섭대이."
나를 붙잡은 삼촌께서 말씀하셨다. 어머니께서 저쪽으로 가시는 것을 보고는 나는 또 소리를 질러대며 울기 시작했다.
"앙앙앙. 나도 갈 끼다. 앙앙 엄마, 나도 갈 끼다."
시달리다 못한 삼촌이 이번엔 나를 업고 사람들의 줄에 끼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눈물을 머금으신 채로 손에는 작은 나무 모종을 들고 계셨다.

이윽고 사람들이 멈춰 섰다. 체격이 좋은 네 사람이 삽을 들고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커다란 구덩이가 만들어진 후 사람들은 하얀 끈이 묶여진 상자를 들고는 조심스레 구덩이 속으로 내렸다.
"여보, 여보."
울며 달려드는 어머니를 사람들은 가로막고 있었고 상자가 내려지자 이번에는 흙을 다시 파묻기 시작했다. 파헤쳐진 갈색의 토양에 자그마하고 볼록한 언덕하나를 만들자 사람들은 촛불을 켰고 언제 준비했는지 모르는 음식을 놓고선 절을 해대는 것이었다. 이런 모든 것이 끝나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산을 내려갔다.

나랑 할아버지랑 둘만 남았다.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으시며 언덕의 오른쪽 약간 위에 조그만 구덩이를 파셨다. 그리고는 가져오신 나무 모종을 묻으시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야야, 우리 집안에는 사람이 죽으면 꼭 살구나무를 심는데이. 땅속에 있는 사람의 기운이 저 살구나무로 올라와서 자식들을 보살펴 준다카이. 우리 봉이가 나중에 크면 저 나무도 마이 커있을 끼다."
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멀뚱멀뚱 나무만 쳐다보았고 갈색의 언덕을 보고 계시던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업으신 채 산을 내려왔다. 풀벌레가 유난히도 시끄럽게 울고 있는 밤이었다.

"행님아, 행님아"
"으응?"
"뭐 하노, 몇 번을 불러도 모리노? 빨리 벌초해라."
"응, 알았다."
커다랗게 자란 나무를 보던 시선을 무덤위로 떨구고는 나는 낫을 손에 꼭 쥐었다. 그리고 무성한 풀을 모조리 잘라내었다. 온 몸은 땀에 푹 절었다. 햇살은 더 따가와졌다. 매미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돗자리를 펴고선 사온 소주에 마개를 땄다. 과자도 봉지를 열었다. 종이컵을 동생에게 주며,
"식아 뭐하노, 큰아버지께 한잔 올려야지?"
맑은 술을 한잔 부어 올리고는 돗자리에 올라섰다. 그리고 나서 절을 한 번 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 뵙지 못해서요. 앞으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고개를 들고 일어섰다. 다시 한 번 절을 올렸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보살피신 덕택에 제가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시 고개를 들고서 돗자리에서 내려와 잔에 있는 술을 무덤 둘레에 고루 뿌렸다. 이번에는 술병을 동생에게 주고 술잔을 집어들었다.
'아버지, 한잔 하이소. 막내 아들이 다 커서 이렇게 한잔 올립니다.'
잔을 무덤 앞에 놓고선 다시 돗자리로 올라왔다. 세 번째 절을 올렸다.
'어머니 고생하시는 거 압니다.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어머니 편안하게 해드리겠습니다.'
눈물이 글썽거렸다. 다시 고개를 들어 일어섰다. 마지막 절을 올렸다.
'편안히 눈감고 계십시오. 막내아들 코흘리개 봉이.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별명 돼지가 다 커서 이렇게 혼자 아버지도 찾아 뵙습니다. 이제 우리 식구들 다 컸으니 편안히 계십시오. 또 찾아 뵙겠습니다.'

술병에 남은 술을 아버지께 다 올린 후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행님아, 다 했제? 다 했으면 내리가자."
"먼저 내려가거라, 형은 조금 있다 갈게."
"뭐할 낀데?"
"응, 그냥 조금 있다 갈게."
"그라믄 내부터 간데이. 행님이 좀 이다 내리온나."
"응."

동생이 산길을 뚜벅뚜벅 내려가는 것을 보고 난 후 난 나무 가까이로 갔다. 나무 그늘에 몸을 드리고선 아름드리 나무의 기둥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벌써 이렇게 자랐구나. 처음엔 내 무릎도 안되더니!'
그러고 보면 나도 많이 자랐구나. 십오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십오 년, 십오 년. 그래 꼭 십오 년 만이다. 이처럼 나이를 쉽게 먹다니. 너나 나나 그때는 꼬마였는데 말야. 어쨌든 고맙다. 살구나무야. 십오 년 동안이나 우리 아버지 곁에 이렇게 있어주니. 아버지도 그렇게 적적하시지만은 않으셨겠구나. 계속 지켜주거라. 다음에 또 찾아오마.

햇살은 이제 많이 수그러졌다. 바람도 간간이 불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씻어주었다.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산소를 돌아보고는 동생이 내려간 자취를 찾아 산을 내려왔다. 먼 산에선 소쩍새의 소리가 다사롭게 들려오고 있었다.

1995.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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