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動記述 : 연결 혹은 단절
조정희 ('94)
요즘의 나는 물론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아침을 맞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지만, 그 월요일에는 아침 일찍 일어날 일이 있었다. 일찍이라고 해 봐야 8시 반 정도니까 절대 부지런한 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느 아침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월요일 아침이었지만, 창 밖을 보니 기분 잡치게 찌푸린 하늘 밑으로 비가 조금씩 오고 있었다. 신문을 보면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사회면 하단에 조그만 기사가 눈에 띄었다. '화상 대학원생 2명 잇따라 사망'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서울대 실험실 폭발사고의 피해를 요약한 기사였다. 그런 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나는 그 토요일에 신림동에서 들었다. 신림동에서 공부하는 형들을 만나기 위한 약속이었는데, 그 때 한 형이 서울대 실험실에서 실험 도중에 폭발사고가 있었다는 말을 했었다. 반경 1킬로미터 이내는 위험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신림동이면 1킬로 이상은 떨어져 있으니 여기서 술을 먹기로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며 함께 웃었었는데... 그 사건으로 사람이 죽었으리라고는 그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대 측에서도 인명피해는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었다고 하니까. 별 생각 없이 신문을 접고 나갈 준비를 했다. 이빨을 닦고,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만지고... 매일 아침 하는 일이니까 매우 기계적으로 준비는 끝난다. 어머니에게 나간다고 이야기하러 마루로 갔더니 어머니는 아직도 전화를 받고 있었다.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목소리를 화장실에서 들었을 때 미국에 있는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것은 알 수 있었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어머니는 누나의 이야기에 계속 귀를 기울이는 듯, 양간 충혈된 눈을 하고서 내게 오늘 아침 신문을 가져오게 하셨다. 한 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다른 손으로 신문을 넘기며 어머니가 짚은 손가락 밑에 오늘 아침 내가 읽은 사망기사가 있었다. "그래... 그 애가 네 친구였구나. 세상에 이 일을 어떻게 하니." 누나의 울음소리가 태평양을 건너, 비 오는 아침의 축축한 공기를 통해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태영이가 죽었어. 엄마, 어떻게 하지. 태영이가 죽었어... 버스를 타고, 언제나 그러듯이 오른편 뒤쪽 두 번째 자리에 앉아 창에 머리를 기댔다. 여전히 내리는 비가 창문에 동그랗게 부딪쳐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김태영. 스물 아홉 살. 원자핵공학과 대학원생.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다 패혈증과 호흡곤란 증세로 사망. 신문에 난 기사로 알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일 뿐, 아침에 누나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죽은 김태영씨는 누나의 대학시절 천문서클의 1년 후배였다. 누나와는 꽤 가까운 사이였나보다. 누나가 시카고에 있을 때 누나를 만나러 찾아올 정도였다고 하니까. 대학시절부터 연애 한번 못하고 언제나 고3처럼 공부만 하다가, 박사학위 수여를 코앞에 두고 죽어버렸다고 누나는 안타까워했다. 김태영씨, 우리는 이렇게 연결되는군요. 당신과 나는 '누나의 친한 후배' 그리고 '친한 선배의 동생'이라는 관계로 얽혀있었네요. 나와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한, 신문 속에서 매일같이 대하는 타인의 죽음이 누나의 전화 한통으로 나와 연관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나에게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 전혀 초연할 수 없고, 어떠한 형태로든 그 죽음이 가지는 무게를 보다 절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상상했다. 김태영씨는 그 죽음의 순간에 얼마나 큰 고통을 느꼈을까. 화상으로 인한 패혈증과 호흡곤란이라니.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웠을까. 나는 어느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슬픔을 느끼고 있었고, 그 사람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 나는 그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내가 가졌던 알지도 못했고 알 수도 없었던 인연의 끈이 끊어져버린 것을 슬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누나의 슬픔의 감정이 나에게 전이된 것이거나. 그건 사실 웃기는 일이었다. 내가 왜 보지도 못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 사고로 죽은 이가 어디 김태영씨 하나 뿐이었을까. 그 당시에도 한 명의 대학원생이 김태영씨와 함께 사망했다고 기사는 말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그날의 2명을 포함한 3명이 그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그러나 나는 나머지 두명의 죽음에 대하여는 안타깝다고 생각할지언정 전혀 슬픔을 느끼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나 아닌 타인의 죽음에 대한 가장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정상적인 태도일런지도 모른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단절의 형태가 우리를 슬픔에 빠뜨리는 것은 우리와 인연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죽음이 우리를 조금씩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소외의 극단은 당연히 - 우리들 자신의 죽음이다. 사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무관심하다. 아니 무관심하다기보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애쓴다는 표현이 보다 정당할지도 모른다. 상가집에서 일가 친척이 모여도 일정한, 사회적으로 응당 그래야한다고 용인되는 정도의 슬픔의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다시 삶을 즐기려고 애를 쓰고, 신문에서 수십명, 수백명의 사망기사를 접해도 순간 안타깝다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금새 다른 이야기로 사람들은 즐거워할 것이다. 죽음이 모두에게 공평하듯이, 죽음에 대한 무관심 역시 모두에게 공평하다. 내가 타인의 죽음에 대해 무관심하듯이, 타인도 나의 죽음에 대해 무관심하겠지. 그리고 망각되겠지. 사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음의 순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망각되고 사라져버리는 것이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 공포로부터 달아날 수 있을까. 스스로 망각하는 것? 스스로 무관심해지는 것? 한 후배가 군대에 가서 자기가 서울에 없는데도 서울이 잘 돌아가는 것이 신기하더라는 말을 한 것이 생각이 난다. 나와 단절된,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는 세계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고, 그 세계의 일원으로 남고 싶어한다. 결국 나의 존재는 죽음이라는 거울을 통하여 들여다 보지 않으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삶에 뿌리내린 것이 아니었던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어느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죽음은 삶과 유리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삶 안에서 함께 존재하는 것이겠지. 김태영씨, 난 당신의 죽음을 슬퍼한 것이 아닌가 봅니다. 그냥 당신의 죽음을 통해 나 자신의 죽음을 보았던 것이겠죠. 당신의 죽음으로 나는 한발짝 더 죽음이라는 소외의 끝에 다가갑니다. 그리고 타인의 죽음이 언제나 그렇듯이, 당신과 무관한 나의 삶은 계속되겠죠. 나의 삶이 죽음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에도 다른 이의 삶은 이처럼 계속될 테고, 세상도 그대로 굴러갈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죽음 이후에 하나 달라진 것이 있군요. 달라진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동안 알지 못했거나 무시하려 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무엇보다 살아있고 싶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지가 나 자신을 존재하게 해준다는 것을. 나에게 그런 삶을 향한 강렬한 의지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태영씨를 비롯하여 이번 사고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1999.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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