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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
윤효정 ('95)
원주 치악산 기슭에서 비닐 하우스 부랑자 보호 시설을 운영하면서 구도자로 행세하던 위장 승려 일력이 10대 원생 성추행과 정신 박약자 유기와 관련해 물의가 일자 수백 억원을 중국으로 밀반출해 도피했다는 뉴스가 있습니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자선 사업을 크게 벌여 대기업에서도 억대의 지원금을 받아냈던 사람의 위선과 치부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다음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입니다. 연주는 아침부터 날씨가 후덥지근했다. 어릴 적 가습기가 뿜어내는 연기에 얼굴을 파묻었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공기는 바로 그런 정도의 습도를 유지하고 있는 듯 했다. 늘어지는 듯 부드러운 선율이 흐른다. '서로가 존중하고 서로의 영역에 침범 없이 아끼고 지냈던 때가 자꾸 기억나. ○년이야 벌써. 그런데 모든 관계에서 넘지 않아야 될 선들을 넘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정도가 지나면 다 서로를 자기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려 하니까.' 바람 때문이었는지 가로등 빛이 흔들렸고 K의 눈빛도 흔들리는 듯 했다. 음성조차도 '이렇게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끝을 의미하는 ' 지 이-------------이익. 지하철 안내 방송이 듣기 싫어서 소리도 나지 않는 이어폰을 끼고 있는다. 하지만 지하철 안내 방송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다음 역은 ○○역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쪽입니다." 몇 분 간격으로 나오는 저 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장님 부부가 지나가고 언제나처럼 다리 없는 아저씨가 지나간다. '전생을 믿게 됐다. 똑같은 상황과 똑같은 성격의 사람들을 그렇게 먼 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우연이 아닌 것 같아. 내가 이런 삶에서 벗어나긴 힘든 것 같아.' 확신에 찬 목소리로 C가 말했다. ○호선은 종착역이 없다. 유일한 순환선이다. 돌고 돌고 돌고 돌다 보면 집에 가게 되는 거다. "미안합니다." 애기 업은 아줌마가 발을 밟았다. '이런 얘기 너한테 자꾸 하게 되서 미안해.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나를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다는 건 뭔가 잘못된 거야.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어도 이렇게 힘들어야 한다면 차라리 끝났으면 좋겠어. 근데 그 애 앞에서는 너무 약해져서 말이야.' 미안하다면서 할 말 다하는 U가 생각났다. 아줌마가 갑자기 U의 환영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애기는 그 애가 되고 나는 내 발이 되고 U와 그 애의 무게가 나한테 실려서 나는 아프다. "다음 역은 ○○역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 집이다. 자동 응답기에 ○○로 나오라는 F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조그만 까페였다. 벌써 몇 잔 마신 뒤였다. "저 사람 좀 봐. 아까부터 계속 이 쪽만 보고 있어. 어떻게 해 볼까?" 흥분된 F의 눈빛이 타오르는 듯하다. "그 옆에 여자는 뭐냐? 여자 친구 아냐?" "상관 없어. 따라와 봐." 꾸역꾸역 삼켜넣은 얘기들이 구역질이 되어 나온다. 노란 쓴 물이 변기를 넘을 듯하다. 밤새 쏟아 부으니 공허감이 남는다. 새벽의 찬바람이 씁쓸하게 시원하다. 1995.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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