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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짧은 생각
이민서 ('99)
사랑이라는 건 자고로 치명적이어야 한다. 는 건 철저하게 주관적인 발언이지만, 내게 이 이상의 절대적인 믿음을 주었던 지상 명제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덧붙여서 그 지극히 주관적인 사랑의 개념을 더 정의해보자면 이렇다. 사랑은 위험한 것이고 절망적인 것이며 파국을 향해 치달아가는 과정, 미래는 없고 다만 현재만이 있으므로, 자신을 완전히 내던져 버리는 그리고 결코 반복되지 않는 한 번뿐인 것. 그건 반드시 비극일 때만 멋지다. 그리고 그런 관념일 때만 늘 싱싱하며 아름답다. 완전히 끝장나야만 영원성을 얻는, 사랑은 파괴적인 힘이다. 한마디로 맹독성 말이다. 그런 내게 누군가 지적했듯, 그런 사랑은 내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 경험적으로도 대부분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런 방식으로 사랑한다는 건 미친 놈들이나 하는 짓거리다. 어떤 이에게는 분명 구원이겠지만 묵시록적인 구원일 것이고, 미친 놈 빼고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랑일 거다. 왜냐면 인간들은 미래로 연결되는 시간 속에서만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들을 욕망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거머쥐는 과정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런 야심의 결과는 환멸과 공허일 지라도.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런 위험한 사랑의 개념에 매혹당하고 있다. 지극히 탐미적인 요즘 순정 만화에서뿐만이 아니다. 불륜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대체로 금기시 된 것, 그래서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대상에 대한 소유욕과 닿아있고, 그런 건 이미 아주 통속적일 정도이다. 데미지 같은 영화나 세기말적인 야오이물, 레즈비어니즘같은 호모섹슈얼리즘의 상업적 유행이나 근친상간이나 S.M.까지 심심찮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멜로 드라마들까지도 불륜을 즐겨 다룬다. 이런 통속적인 것들이 범람하는 세기에 그런 통속적인 것 속에서도 건질만한 게 있다면 그건 사랑이다. 그런 사랑을 모두 해보라는 말은 아니다. 그 사랑이 담보하는 그 치열한 자세는 주목할 만 하다. 무 아니면 모든 것이라는 느낌, 지극히 순수한 그리고 어쩌면 절망적인 느낌까지 주는 '현재에 대한 몰입', 끝이 없고 미래도 없는 다만 현재뿐인 것. 모든 잡다한 욕망과 야망으로부터 해방되어 그 순간만 살아있다는 것. 그건 중독성의 독극물로서 영원을 얻는 자해이면서도 위대한 희생(개츠비처럼)이다. 물론 현재적인 몰입이라는 점에서 수많은 문학 작품, 영화, 노래에서 지겹도록 그 사랑이란 놈을 찬양해 와서 너무 지긋지긋할 정도지만. 그래도 치명적인 거라면 목숨을 걸 만하지 않은가. '난 니거' '넌 내거'고 '난 당신 남자요'라는 유행가 가사에서의 사랑이란 거기에 비하면 참 한심하게 들린다. 사랑이 곧 소유인가. 물론 완전한 소유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틀림없이 인간의 소유욕과 직결되어 있긴 하지만, 실제 그들은 서로를 소유하고 있는가. 그렇게 자기가 한 인간의 소유인 적이나 있었던 거처럼 당연히 말하는 사람들이 참 싫었다. '샤만카'에서도 완전한 소유라는 게 사랑이다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긴 하지만 난 그걸 믿지 않았다. 소유란 자기의 모든 걸 감히 완전히 내던질 때 얻을 수 있다는 희소한 느낌일 거라고 항변하면서. '자기 팔뚝이라도 뚝 잘라 던져주는 용기도 없는 주제에, 몸을 던져 대신 칼맞아 죽어 줄 용기도 없는 주제에, 잘도 소유라고 말하는군.' 이라고 지극히 주관적인, 나아가 전혀 말도 않되는 반론을 펼쳐왔던 것이다. (참고로 시미즈 레이꼬의 '22XX' 'MAGIC' 이라도 한 번 보시라. 내게 영향을 끼친 이 방면의 거장이다.) 그런 HOPELESSLY ROMANTIC인 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이 거다. 찬양할 힘만 가득 넘쳤지 결코 그렇게 사랑해본 적도, 하려고 노력해 본 적도, 할 용기도 힘도 없을 거 같다는. 웃기지만 이게 현대의 리얼리즘이다. 나는 가장 전형적인 소시민 형이고 전설의 히로인같은 그런 용감한 길은 없을 거다. 아니 기회조차 없을 줄로 안다. 팔뚝이라도 잘라주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은 아마 '낭만주의적 지진아의 고백'이겠고 그걸로 끝장날 거다. 어디 기회라도 한 번 주어지겠는가. 여기까지 읽어보시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분들, 여기서 안도하셨을 줄로 안다. 그렇다. 다행인 것이 아니라 가장 큰 불행이지만 엘리어트가 처절히 읊어대던 대로, '난 햄릿 왕자가 아니지, 되려고 한 적도 없지. 시종관이지. 임금님 행차에 사람 수나 늘리는.' 바로 그거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특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구원에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였던 거다. 아마 상처는 입겠지.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끝나고 나면 몹시 괴로워 하겠지. 그러나 다를 바 없다. 아마 질투도 느낄 것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돌변해서 한없이 유치해지겠지. 그러나 절대로 자살 같은 건 안 하겠지. 모르지. 난 충동적이니까 자살쇼는 한 번 정도 할 지 몰라도, 그건 다만 쇼겠지. 누구 말 빌면, 이건 '먹고 배가 부르니까 지껄이는 농'이고 '공상'이고 '관념', 깊이도 없는 관념, 자해욕만 가득한 병적인 정신상태의 인간들이 꾸는 꿈이다. 구원은 잘 못 믿고, 종교도 없으니까, '사랑교'라도 건설해보자, 라는 취지 아래 모인... 난 한 번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없는 것이다. 사랑교의 사이비 신자일 뿐이다. 특별히 자유롭고 싶었다 (이 말의 의미가 궁금하시면 란마의 작가가 그린 짧은 애니메이션 '인어의 상처'를 보시라). 이 자유롭지 못한 세상에서 특별히 자유롭다는 건, 알란 파커의 버디나 미야자끼 하야오의 애니에서처럼 '난다'는 게 될 수도 있고, 그 무엇도 될 수 있을 거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 말하자면, 열심히 믿을 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일이고, 그건 사랑 말고도 많다. 그래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 80년대의 스러진 꿈들을 위해 몹시도 싸우고 지금도 싸우는 자들은 어쩌면 특별히 자유로운지도 모른다. 인간적인 꿈, 오래되고 케케묵은 거라도 꿈을 꾸는 사람들은 몹시 자유로울지어다. 부럽고 부끄럽다. 모든 건 그렇게 끝난다. 특별한 건 없고, 압도적인 거, 목숨 걸만한 건 없다. 그건 단지 인간의 꿈일 뿐이다. 인생은 원래가 시시하고 소소하다. 그리고 황막하다. 어쩌면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찾아야 하는 잔잔한 것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가치있는 일이라고 하는 현인들도 많겠지. 우리는 굳이 리얼리스트가 되고 싶지 않아도 될 수밖에 없는 세기에 사는 거다. 내가 그렇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해도 돌아가야 한다. 그래도 인간의 꿈은 끝나지 않아서, 사랑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들을 해본다. 끝나지 않은 걸까. YES, 결코 끝나지 않았음. NEVER 1999.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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