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진 -잔인한 세계 그리고 hardcore
김준석 ('99)
1.서설 지뢰진. 제목부터가 남다르게 멋있다. 사실 내가 이 만화를 접하게 된 것은 내가 한동안 만화방에서 여러 만화들을 뒤지면서 볼만한 만화를 찾고 있던 때였다. 그러던 때에 제목에 이끌려 보게된 것이 바로 '지뢰진'이었다. 제목만큼, 아니 그 보다 더 멋있는 만화였다. 그냥 볼만한 만화의 정도가 아니었다. 그 당시 다른 만화들에 식상해 있던 나를 다시 만화방으로 불러들였던 원흉(?)이 바로 이 만화였다. 내가 본 형사물 만화로서 이런 수작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다른 형사물 혹은 추리물 만화의 뻔한 구성과 스토리와는 확실히 다른 면을 가지고 있는 이 만화는 잔인한 그림과 끔찍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는데 주의력을 잃지 않게 하였다. 내가 듣기로 이 작품의 작가 다카하시 쯔토무는 이 작품이 첫 작품이다. 첫 작품으로 이 정도의 만화를 그려낸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2.작품의 특성 작품의 소개를 하자면 지뢰진은 형사물 장르의 만화이다. 하지만 이전의 다른 형사물 혹은 추리물 만화와는 확연히 틀린 점을 가진다. <김전일>, <마스터키튼> 등의 만화와는 다르게 천재적인 주인공이 주어진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가면서 범인을 찾는 과정에 중점을 둔 만화가 아닌 색다른 구성을 취한 만화이다. 우선 엽기적인 살인이 일어나고 범인 혹은 등장인물의 비극적인 삶이 우리에게 보여진다. 그리고 그가 살인을 하게되는 동기와 그 경위가 설명되고 그 범인은 주인공인 '이이다 쿄야'에게 체포 또는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에 걸맞는 음침하고 냉소적인 분위기의 그림과 연출도 이 만화를 특별하게 하는 것이다. 이 만화의 잔인한 그림과 끔찍한 스토리를 맘에 들어 하지 않는 분도 많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만화는 92 년에 처음 그려졌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잔인성 때문에 98년 이후에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3.주인공 '이이다 쿄야' 주인공 이이다 쿄야는 다른 만화의 주인공 캐릭터와 근본 적인 차이점이 있다. 타 만화에 서 볼 수 있는 인간미 넘치고 정의감에 차있는 주인공들과는 달리 냉혹하고 어찌 보면 범죄자들보다 더 악독한 형사이다. 그는 눈앞의 범인의 개인적인 사정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르고 어째서 그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발포하여 사살한다. 그런 그에게 인간미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는 공권력의 화신이다. 도덕적인 의미의 진정한 정의로움은 그에게 필요 없는 것이다. 단지 범인이 죄를 범했고 위험하기 때문에 체포하고 사살하는 것이다. 물론 그가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넣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범인이 저지른 엽기적인 살인의 배후에는 사회가 있고 바로 그 사회가 그를 그런 세계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이다는 그런 범인들에게 일말의 연민의 정을 품지 않는다. 경찰력이라는 공권력은 개개인의 사정은 살피지 않기 때문이다. 또 살피지 않아야 될 지도 모른다. 범인이 처한 입장이 그의 범죄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개인을 범죄의 세계로 내몰은 사회의 책임을 외면하는 공권력의 모습을 보면 씁쓸하다. 4.죄와 벌 죄와 악은 서로 다른 것이다. 이이다는 악의 굴레를 짊어지고 죄를 벌한다. 그는 도덕적인 죄악 -법적으로는 죄가 아닌- 을 범하고 그 대가를 또 다른 범인을 벌하는 것으로 지고 있다. 그럼으로써 사건의 피해자의 혼을 달래 준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사건의 수사는 호흡과 같다. 하지만 이것은 이이다 자신의 자기 합리화이고 실제로 그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도덕적인 사람이 가지는 행복을 잃고 살아간다. 가족을 가지는 것, 애인을 사귀는 것 모두가 그에겐 허락되어 있지 않다. 그런 것들을 가진다는 것이 오히려 그에겐 고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첫 번째 파트너는 가족을 남기고 살해된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은 두 번째 파트너도 결혼식장에서 그녀의 약혼자를 잃고 만다. 5.만화의 배경 -현대 사회 지뢰진은 극단적으로 현대 사회의 암울한 면만을 묘사하고 있다. 폭력, 살인, 강간 등 엽기적인 범죄와 사회의 모순에 파묻혀 자기 자신을 잃고 마는 여러 인간 군상들이 이 만화를 가득 메우고 있다. 자기를 버린 부모에 대한 원한으로 산모를 납치해서 아이를 팔아버리는 간호사, 단지 사진의 촬영에만 집착하고 인간의 죽음을 우습게 보는 사진 촬영가, 그리고 경찰의 사건 은폐와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어 보려 하는 언론에 의해 커져버린 살인 사건. 현대 사회의 끔찍한 모습들이 거의 여과없이 묘사된다. 이이다는 그런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관찰자의 위치에서 바라본다. 그는 그러한 인간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는 범인을 체포할 권한 외에 아무런 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가 고도로 발달해 감에 따라 인성은 점점 파괴되어 간다. 인간 사회가 미분화되고 그에 따라 개인의 인격이 미분화 되어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변화에 의해 휩쓸려 가고 마는 것이다. 6.맺음말 지뢰진은 하드코어 형사물이라는 이색적인 장르의 만화이다. 이런 류의 만화를 처음 접해보는 사람들은 상당히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거친 느낌의 그림체, 잔인함을 강조한 연출 등이 처음에는 낯설지만 익숙해 져갈수록 사람을 매료되게 만든다. 작가의 그림 실력도 회수가 늘어가면 갈수록 확연하게 나아져간다. 옴니버스식 구성을 취하고있는 이 만화의 각각의 스토리들도 상당히 세심하게 짜여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모름지기 프로라면 이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끝으로 이 만화를 그려낸 작가에게 존경을 표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만화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2000.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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