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성

문학과 철학

임춘성 ('90)

'문학'과 '철학'. 이 두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떠한 생각을 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전자에 대해서는 '낭만과 미'라는 관점에서 생각읕 할 것이요 후자에 대해서는 난해함, 비현실감(허무, 공허)을 상기시켜준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분명 어딘가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문학, 철학, 그리고 이 양자의 관계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문학'에 대한 정의는 지금까지 있어왔던 작가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정의가 내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인간의 노동과 더불어 시작된 언어, 이는 또한 사유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그리하여 우린 때로 언어가 있음으로 인해 사유가 있는지, 사유가 있음으로 인해 언어가 생겼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기도 한다. 판단하건대 언어는 사유로부터 비롯되며 사유는 언어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 양자는 동시성을 띤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문학은 언어의 구체화, 시각화 형태인 문자로써 드러난다. 다시 말하면 사유를 통한 현실의 실재화인 것이다. 그러나 사유를 통한 실재화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여기서는 사회적 현실의 생활형태에 대한 형상적 인식들 중의 하나인 문학만을 생각하기로 하겠다.

언어, 구체적으로 문자로 표현된 문학의 출현과정은 현실 → 인간의 두뇌에 의한 인식 → 문자화이다. 물론 여기에서의 '문자화'는 형상적 인식에 대한 문자화를 의미한다. 그러면 문학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주지하다시피 최초의 문학형태는 노동요의 형태를 띤 시가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노동요'와 '시'라는 점이다. 노동요의 의미는 곧 구체적 생활의 노래, 근본적인 현실에서 출발한 노래를 의미한다. 그러면 왜 시의 형태를 띠었을까? 여기에 대해선 많은 의견이 있겠으나 나의 견해로는 미미한 수준인 인식과 생산활동을 위한 노동의 리듬성의 결합에서 비롯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가 인정하듯이 문학은 구체적 현실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앞의 내용들을 토대로 문학의 정의를 내려보면 문학이란 '인간의 실천적 활동 속에서 비롯된 정서와 사상을 상상을 통하여 - 형상적 인식을 통하여 - 문자화한 것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왜 인간은 문학을 했을까? 여기에도 여러 가지의 답들이 제시될 수 있겠으나 사견으로는 문학은 현실을 올바로 인식시켜준다는 점이다. 또한 현실인식 뿐만 아니라 이 인식을 토대로 또 다른 실천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해준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올바로 인식하고자 한다면 많은 자료와 사색을 요구하듯이 문학은 우리에게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주며 사유할 수 있는 조건을 대량으로 형성시켜준다는 뜻이다.

앞의 서술들을 통하여 우리는 과연 올바른 문학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의 답을 찾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올바른 문학의 토대는 현실이다. 훌륭한 건물을 짓고자 한다거나 탑을 쌓고자 한다면 현실의 토대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중요하다. 모래 위에 공중에 건물을 짓거나 탑을 쌓아올릴 수는 없다. 있다 하여도 그것이 온전할 리가 없다.

인간은 현실을 올바로 직시할 수 있는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다. 역사를 고찰하여 그 맥락을 찾아 현실과의 고리를 형성하기도 하고 그 현실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표현에 있어서 상징과 추상화는 현실을 떠난 것이다"라는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의 상징성과 추상화는 올바른 문학의 형성에 크나큰 역할을 한다. 표현방식에 있어서 문학내적으로 상대적 독립성을 획득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상징화와 추상화 또한 올바른 현실에서 출발해야 함은 부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문학에 대한 제반사항을 출현배경에 기초하여 대략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철학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철학의 개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철학자의 수만큼이나 많은 개념이 있어왔다.

최초의 철학은 모든 학문을 포함하는 가운데에서 출발을 했다. 그만큼 철학은 세계를 전체적으로, 포괄적으로,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철학에서 천문학, 수학, 물리학, 생물학 등의 자연과학 뿐 아니라 제반학문들이 나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학문들이 철학의 부분집합이다 하는 식의 논리는 지나친 것이다. 대상들을 지나치게 형식화시켜버린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모든 학문은 상대적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 철학은 이러한 사실들을 인정한다. 철학적 인식은 수학적 인식도 아니요 물리학적 인식도 아니다. 모든 학문들에 기초하면서도 그 인식방법에 있어서 질적으로 다른 인식방법을 형성한다.

철학의 중요성은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게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더 더욱 중요한 것은 올바른 행동을 하게 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철학은 세계를 단지 여러 방식으로 해석해 왔다. 이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철학의 임무는 세계의 올바른 해석과 실천인 것 같다. 우리가 철학에 대해 일정정도의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철학이 해석에만 치우친 나머지 실천을 도외시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한다는 것은 세계를 올바르게 바라보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세계를 왜곡된 형태, 은폐된 형태, 굴절된 형태가 아닌 올바른 형태로 바라보려 하는가? 이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을 바르게 살기 위해서요라고 말이다.

여기서 '바르게'라는 의미는 무엇을 뜻할까? 나는 '발전'이라는 단어로 해석하고 싶다. 우리가 인간사회를 살펴보든지 자연의 세계를 살펴보든지 분명 세계는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인간이다. '의식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인간말이다. 인간의 의식적인 활동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를 전진하게도 만들 수 있고 후퇴하게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올바른 의식적인 활동이란 '발전'이라는 고리에 그것이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 발전의 의미를 어느 철학자의 말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모름지기 철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비범한 과학의 과학 속에서가 아닌 현실적 과학 속에서 확증되고 실증되어야 하는 하나의 단순한 세계관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여기서 철학은 지양된다. 다시 말해서 극복되면서 보존된다. 그 형태면에서는 극복되고 그 현실적 내용면에서는 보존된다."

우리가 말하는 발전은 이러한 '지양'의 발전을 의미한다. '인간의 의식적 활동'이 지양성을 갖게 하는 것, 이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러면 이러한 인간의 의식적 활동의 지양성은 어떻게 획득될까. 그것은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출발한다.

철학에 있어서 사회적 현실에 대한 인식은 문학과는 다른 인식의 형태를 취한다. 개념의 인식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올바른 개념적 인식이란 현실과 실천 속에서 찾아진다. 역사상 철학자들은 이러한 개념화의 절대화, 극대화에 치중한 나머지 많은 오류를 범해왔다. 인식의 방법, 인식의 틀의 형성에 많은 기여를 하기는 했으나, 그들의 종착역은 절대적인 상태, 극대화의 상태에 있었다.

인간인식능력의 극대화와 절대화의 작용은 인간사유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음과 더불어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키는 형태로 작용했다. 그러나 인간 인식능력의 극대화와 절대화의 요소는 분명 필요하다. 올바른 토대에서 출발하면 참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떠한 철학이 올바른 철학일까. 일단 여기서는 인간과 사회의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인간은 사회적·역사적 조건과 개체적·실존적 조건하에서의 인간으로 구분한다. - 물론 이 구분은 편의상의 구분을 전제로 한다. 구분한다는 자체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

먼저 개체적·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일상적인 생활고 과정 속에서 우리는 쉽게 인간은 개체적·실존적 존재다라고 느껴버리기가 쉽다. 그리고 지금의 사회하에 있어서는 더욱 더 이러한 느낌을 쉽게 받을 것이다. 여기에는 시대성과 역사성의 의미를 부과하면 쉽게 해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특성은 '개성과 창조성'을 강조한다. 어느 누구도 '개성과 창조성의 강조'에 대해 반대하거나 거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찬성을 하고 나설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개성과 창조성은 지나치게 自我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이 자아개념의 비이성적 강조는 인간사회에 (현재)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탄생시켜버렸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적·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상태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된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자. 아니 나 자신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과연 나 자신의 토대가 어디있는가는 분명 사회와 역사이다. 알고 있는 지식, 감정들은 모두가 사회적·역사적 산물이다. 자아로 하여금 사회와 역사적 조건들을 고려하게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개성과 창조성'을 발현시키게 할 수 있는 기지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켜야 한다.

"세계와 그 법칙성, 세계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 세계의 인식가능성 및 변혁가능성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지닌 견해들의 체계"인 철학은 '인식과 실천'이라는 양바퀴를 가지고 굴러간다. 올바른 철학이라면 또한 이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앞의 서술에서 문학과 철학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면 문학과 철학은 어떠한 관계에 있을까? 문학은 문학 나름의 고유영역이 분명 있고 철학은 철학 나름의 고유영역이 있다.

하지만 그 영역의 출발은 바로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이 '현실'이라는 점이다. 문학은 현실의 관찰을 통하여 풍부화, 세밀화시켜 사회현실을 반영시킨다. 반면 철학은 사회현실을 개념화·보편화를 통해 세계를 체계적으로 인식하게 해준다.

물론 이들의 지향은 발전된 사회를 향한다. 문학과 철학은 우리의 인식이 그러하듯이 구체와 추상의 고개를 넘나든다고 볼 수 있다. 참된 문학가는 분명 참된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참된 철학자는 현실에 대한 풍부한 구체적 인식에서 출발함이 분명하다.

철학가와 문학가는 역사와 시대로부터 부과된 임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사회의 발전이라는 흐름에 동력으로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에 대한 평가 또한 역사와 시대가 내릴 것이다.

1991.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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