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浪人의 辯
박준석 ('92)
오랜 망각의 숲에서 나는 헤매이고 있다. 의지할 곳 없이, 쓸쓸히 돌아 다니는 고독한 별들의 모습으로, 오늘에 남아있다. 지속되는 슬픔과 그로 인한 절망과 이젠 한 방울의 눈물마저도 나를 외면하고 마는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할 수도, 더 이상 나를 미워할 수도 없다. 저 따가운 별빛에 나의 육신은 산산조각이 났고 순진스런 달빛에 나의 얼굴은 들 수조차 없는 수치심에 싸이고 만다. 시간은 나의 생을 재촉했고, 따르다 지쳐버린 생은 침묵으로 과거에 묻혔는지 그 흔적조차 남기려 하질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구원은 내게 보이지 않고, 따르는 것은 현실과 질책, 나의 잃음, 찾을 수 없던 나와 나 그리고 또다른 나였으니… 무엇인가! 나를 이리도 철저히 절망 속으로 밀어넣는 것은. 알 수 없다. 어쩌면 악착같이 나를 따라 다니는 운명이라는 악마의 장난일지도 모른다. 운명을 타개해보려는 애씀조차 내 운명이라면 어쩌란 말인가. 사심에 찬 태양, 그는 그의 노을을 잃었고, 나는 나의 그림자를 잃었다. 오직 어둠만을 고집하는 밤은 오늘도 변함없이 하루의 막을 내리며, 침묵과 함께 회한의 미소를 내게 띄운다. 무엇이 이리도 나의 생활을 우울한 침묵 속에 던져넣는 것인가. 오랫동안의 사색 속에 어떠한 해답도 찾지 못한 채 나는 시간에 무릎 꿇고 현실을 맞이하고 만다. 나는 나를 말할 수가 없다. 나의 존재에 대해 막연한 느낌조차 없다. 나의 행동은 본능이고 또한 외부의 작용에 대한 단순한 반응일 뿐이다. 이처럼 나의 삶은 참된 진실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변 세계에 의해 지배받는 주체적이지 못한 것이다. 이로 인해서 나타나는 나의 행동 또한 주변의 지배를 받게 되어 참된 것이 되지 못한다. 꾸밈 없는 진실 속에 나를 자꾸만 치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에겐 언제나 참된 나 자신이 존재할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실질적인 존재에 대한 질책도 치장도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나 자신이 과장과 치장의 허용 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것은 아직 나를 인식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일은 나의 일상 생활 속에서 공공연히 일어나게 된다. 복잡한 정신세계에서조차 생각지도 않던 행동이 어렵잖게 나와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에 대해 회의를 느끼면서 제대로 고치려 들지 않는 것은 - 그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 또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결국은 내게 추잡한 종말을 안겨줄 이러한 사실들로 인해 나는 자신의 정신세계에 작은 혁명의 필요성을 느낀다. 독선과 독단의 편협된 혁명이 아닌, 나에게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 의미있는 삶의 조그만 혁명말이다. 1992.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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