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alibur", 생명과 운명에 대한 무서운 고발





- 이하의 글은 2000년 12월 4일 저의 개인게시판에 게재했던 제 영화감상문을 다시 보완해서 올린 것입니다. 특히 영화스토리 부분은 가급적 본 그대로를 재현하려 했으나 제 신통찮은 기억력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군데군데 창작을 가미해야 했음을 밝힙니다.-


방금 독일의 Kabel 1 채널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중 하나인 "엑스칼리버(Excalibur)"를 장장 두시간 반에 걸쳐 보았다. 지금으로부터 13년전, 고등학교 2학년 봄방학때 내 동생과 둘이서, 역시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영화. 그리고나서 그 부글거리는 애증과 음모, 권력욕, 명예감정의 모순성과 격렬성에 취해 잠못 이루기도 했던 영화. 거의 13년만에 다시 보았고, 이제는 독일어로 대사를 들었지만, 그때의 강렬했던 감흥은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사회주의와 신비주의적 경향을 자신의 필름 속에 융합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영화의 거장 John Boorman 감독의 불후의 명작 Excalibur. 마치 Shakespeare의 'Hamlet'을 처음 읽고 그 생명에 대한 무서운 고발, 불 타오르는 생명의 격렬성, 슬픔도 기쁨이 되고, 기쁨도 슬픔이 되는 고뇌에 취했던 기억이 이 영화를 통해 거듭 되살아나는 듯하다.

이 영화의 축을 이루는 주제는 물론 선(das Gute)을 이루기 위해 악(das Boese)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고, 권력과 명예를 지키고 싶어 하지만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인간군상들이 그 한계로 인해 결국 몰락해갈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그 무대는 마법과 미신이 횡행하고, 추한 권력욕에 사로잡힌 악귀같은 인간들이 그저 힘의 논리로 쟁탈하던 시대인 7세기의 영국이며, 거기서 국왕의 정욕을 이용해 그 불륜관계에서 태어난 왕자 Arthur를 빼앗아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 군주로 길러내려 하는 Merlin의 무리한 계획이 스토리의 발단을 이룬다.


당시 영국을 지배하고 통일하려 하고 있었던 전설의 왕은 Uther Pendragon (Gabriel Byrne 분)이었다. 그는 용맹하고 날렵한 왕이었지만, 반면 약간은 탐욕스럽고 단순무식했던 군주로서, 그가 갖고 있던 평화관이란 그저 "한 나라에는 한 임금 ! 그것이 바로 나의 평화다 ! (Ein Land, ein Koenig ! Das ist mein Frieden !)" 정도가 전부일 뿐이었다. 물론 무력을 앞세워 한 나라를 통일한다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는 단순히 '누군가 강한 사람이 질서를 잡아야 하는데, 그 강한 사람은 바로 나다!"는 생각 외에는 그 어떤 새로운 비젼도 갖고 있지 못했던, 비정하고 자기중심적인, 냉혹한 '승부사' 정도에 불과했다.

비록 뛰어난 지성과 마법을 갖고 있는 Merlin (Nicol Williamson 분)이 그의 조언자로 옆에 있었다 하여도, 원래가 지성이란 가장 하찮은 권력 앞에서도 그 우선적 지위를 내주는 법. 전쟁과 기아로 시달리는 세상을 하나로 통일하여 민중에게 평화와 안식을 마련해주기 위해 강력하고도 덕망 있는 군주를 옹립해야 한다는 이상을 갖고 있던 마법사 Merlin이었으나, 당시로서는 난폭한 Uther에게 기대를 거는 것 외에 달리 뾰쪽한 대안이 없었다. 말 그대로 열 마리의 늑대떼가 사방에서 설치는 것보다는 한마리의 호랑이가 권력의 중심에 서는 게 그나마 민중에겐 이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속물스런 Uther의 권력에 복종하며 자기 알량한 군사(軍師)로서의 지위를 보전하는 식으로 지루한 자신의 생을 이어가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거칠 것 없이 돌진하던 최고강자라도 자기중심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언젠가는 숙명적 몰락을 경험하게 되어있는 법. 천하의 보검 Excalibur를 앞세우고 Cornwall성에 진주한 Uther는 Cornwall 성주 (Corin Redgrave 분)의 복종을 약속받고 그와의 주군-신하관계 맺기를 기념하기 위한 저녁 술자리 여흥에서, 성주의 아내 Igrayne이 몸매를 훤히 드러내놓고 팔다리와 허리, 엉덩이를 돌려가며 뇌쇄적으로 춤추는 장면을 지켜보는 순간, 자신의 저열한 욕망 앞에 완전히 자기 이성을 상실하고 만다.

Uther란 인물은 아까도 말했듯 그저 탐나는 것만 보면 갖고 싶고, 그래서 달라는데도 안 주면 절제하기 보다는 폭력으로 빼앗고 마는 인물. 그런 Uther 앞에서 자기 아름다운 아내를 춤추게 만들었으니, Cornwall의 성주란 인간도 어떻게 보면 참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객관적으로 Uther보다 전투력, 군사력, 정치적 정통성이 뒤지는 이상 당분간 Uther의 눈치를 봐야 마땅했던 상황에서 "전하, 아내를 구할려면 말이죠. 저기 춤추는 제 아내 같은 여자를 아내로 얻어요. 순진하기 이를 데 없지만, ... 침실에서는 뜨겁거든요(Ich wuesnsche Ihnen solche Frau, Koenig, die einfaeltig aber heiss im Bett ist)" 같은 자랑으로 Uther의 질투심과 만용을 굳이 자극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탐욕스러운 Uther는 당장에 "나 저 여자 가져야 되겠어 ! (Ich muss sie haben !)"하고 외친다. 여기에 황당해져버린 Cornwall 성주는 안면을 확 바꾸어 "너 미쳤어? 이게 바로 우리의 주군-신하관계였나? (Ist das Buendnis ? Bist du wahnsinnig ?)"하고 맞받아친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두 사람이 서로 협력을 해야 한다는 객관적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면, 둘 중에 좀 더 어른스러운 한 사람이 양보를 해서 최악의 상황만큼은 피할 수 있었겠지만, Uther은 Cornwall에 대해 '신하로 삼기 보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짓밟아주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고, Cornwall 역시도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 죽여버리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니, 충돌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결국 Cornwall 성주는 Uther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취소하고 Uther와 전면전을 선포하는데, 그 와중에서 방금까지 평화가 찾아왔다고 환호하던 백성들은 갑자기 불필요한 전쟁을 치르느라 고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Merlin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하고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위엄과 덕으로써 자기 지위를 평화롭게 인정받으려 하기 보다 깡패 같은 폭력을 휘두르며 자기 아래 모든 자에게 승리하며 짜릿한 쾌감을 누리고 싶었던 Uther는 육욕과 호승심으로 골수까지 덜덜 떨면서 마법사 Merlin을 애타게 찾는다. 이건 단순히 개인적인 욕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왕이 원하면 뭐든지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남의 마누라도 예외일 수 없다는 Uther 나름의 왕권확립문제가 걸려 있기도 하다고 Uther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자기 앞에 불려온 Merlin에게 Uther는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난 너의 왕이다. 그녀와 딱 하룻밤이야. 마법을 사용하라 ! (Ich bin dein Koenig. Nur eine Nacht mit ihr. Lass deine Zauberkraft wirken. Tue es !)"

이때 Merlin은 일단 Cornwall 쪽보다 Uther 쪽의 편을 들기로 결심하면서도, Uther 역시 자멸의 함정에 끌어들여 저절로 패망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세상이 당장 불안해지기는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자신의 입맛에 더 맞는 군주를 육성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Merlin은 "네, 좋습니다. 하지만 전하의 욕정이 낳은 결과는 제가 마음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맹세하시겠습니까? (Was aus Ihrer Lust folgt, gehoert mir. Koennen Sie beschwoeren ?)"하고 조건을 붙이며, 그게 얼마나 무서운 조건인지도 모른 채 Uther는 기꺼이 좋다고 맹세함으로써, Uther는 당장의 승리와 자신의 목숨을 맞바꾸어 버린다. Merlin은 이 약속에 따라 즉각 잠들어 있던 용을 불러내어, 성 주위에는 곧 안개가 피어오르고, 멋도 모른 채 Uther를 죽이러 나온 Cornwall 성주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서 날카로운 창 위로 떨어져 죽어버린다. (이 순간 성 안에 있던 그의 딸 Morgana는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날카롭게 울부짖는다.)

그 사이 Merlin은 국왕 Uther를 방금 죽은 Cornwall 성주로 변신케 한 다음 성주의 부인이 기다리고 있는 Cornwall 성으로 잠입케 한다. 이에 힘입어 Uther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Cornwall 성문을 지나, 성주의 아내 Igrayne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 다음 Igrayne의 딸 Morgana가 저 사람은 진짜 아빠가 아니라고 울부짖는 가운데 Igrayne의 옷을 벗긴다. 그리고 그녀의 온몸을 빨고 핥으며 그 넓은 꽃잎과 가느다란 줄기 사이 깊숙히 자기 야만을 집어넣고 온 몸을 요동시키며 그녀의 은밀한 샘물 가득 자기의 벌레덩어리들을 뿜어넣는다. (참고로 Igrayne의 역을 맡은 Katrine Boorman은 이 영화의 각본, 감독, 제작자인 John Boorman의 딸이다. 그런데 이 야만적인 장면을 촬영하면서 감독 Boorman은 기분이 정말 어땠을지 궁금하다.)

결국 전쟁은 Uther의 승리로 끝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지 아홉달 후 Uther는 의기양양해져서 Cornwall 성의 Igrayne을 방문한다. 자기가 Igrayne에게 임신시킨 아기가 막 태어나 첫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기를 낳은 Igrayne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당신이었나요? 그날밤 저의 몸을 가진 것은? 하지만 그때 저의 육체를 소유한 남자는 분명히 제 죽은 남편이었어요. 제 남편의 형상과 언어와 체취였어요."라고 중얼거리는 가운데 Uther는 감격에 젖어 말한다. "Igrayne, 난 이제 당신만을 사랑할 거야. 전쟁은 이제 신물이 났어. 난 당신과 이 아기 곁에만 영원히 머물 거야."

그러나 이때 두 사람 앞에 불현듯 나타난 것은 마법사 Merlin이었다. Merlin은 Uther에게 "사랑과 가정, 아내와 자식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야. 사람을 죽이고 왕이 되는 것만이 당신의 전부야. 난 한때 당신이 보검 Excalibur 아래 이 나라를 통일시켜줄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제 당신은 틀렸어. 중요한 것은 무기가 아니라 진실이야. 당신은 동맹을 맺은 자를 배신했고, 그의 아내를 도둑질했어. 이젠 누구도 당신 말을 믿지 않을 거야. 당신의 모든 동지들은 이제 당신에게 반항할 거야. 아기를 내게 줘. 당신은 이제 이 아기를 지켜줄 수 없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Igrayne이 숨을 거두고 그녀의 어린 딸 Morgana가 이제 자기는 어떻게 하느냐고 Merlin을 뒤따라가는 것도 뿌리친 채 Uther에게서 아기를 빼앗아들고 떠나버린다.

Merlin이 떠나간 후 Uther는 정말로 모든 동지들이 이제 자신을 향해 반기를 드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한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그였지만 그 권력을 이용해 부하들의 신뢰를 배반하고 가족까지 파탄시켜버린 이상 그에게 충성을 바칠 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어느 진흙탕에서 예전의 자기 부하인 Uryens, Lot 등의 무리에 의해 말 위에서 끌어내려진 채 무참하게 칼과 철퇴로 린치를 당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면서 그가 생각했던 것은 비록 지금 죽을지언정 자기의 후계자를 지명할 권리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신검 Excalibur를 어느 바위 위에다 꽂아넣으며 이렇게 외친다. "오로지, 오로지 진정한 왕만이 이 검을 바위에서 다시 뽑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뻣뻣하게 굳어져버린 그의 시체는 진창 위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다. Uryens와 Lot이 바위에서 Excalibur를 뽑아내려 하나 Excalibur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윽고 15년의 세월이 흐른다. 폭군이건 뭐건 그나마 왕이라도 하나 있어야 세상이 그럭저럭 질서가 잡힐 텐데 너도 나도 힘이 곧 법이라는 식으로 중구난방 설쳐대니 세상 꼴이 진짜 말이 아니게 된다. 귀족들은 자기 멋대로 민중들을 착취하고, 외적들은 쳐들어와 국토를 마음대로 유린한다. 이러자 소작농민과 농노들을 비롯한 여러 민중들은 마치 옛날 유대민족이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처럼 진정한 왕이 나타나 자기들을 구원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귀족들 역시 고만고만한 세력으로 서로 아웅다웅 싸워대기에 지친 데다가 거칠게 해안가를 위협하는 외적들의 위협에 두려워져서 어느새 왕이라도 하나 나타나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 결과 귀족과 민중들 사이에는 하나의 합의가 성립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위에 꽂힌 저 보검 Excalibur를 다시 뽑아내는 자가 왕이 되어 우리 모두를 다스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검 Excalibur는 제 아무리 힘센 자가 용을 써도 뽑혀지지를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Merlin의 마법 덕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건 오히려 능력문제로 생각된다. 바위에 꽂힌 검을 뽑기 위해선 근력 뿐만 아니라 순발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임기응변적 요령이나 지능 등이 골고루 다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그런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 Uther가 죽은 이후로 영국내에 전혀 나타나질 않았던 것이다. 원래 그런 걸 모두 다 갖추려면 후천적인 노력도 노력이지만 무엇보다 선천적으로 좋은 지력과 근력을 타고나야 하거늘, Uther의 아들 정도나 된다면 모를까 다른 평범한 자들의 두뇌와 골격으로는 여기에 어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럼 이때 Uther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그의 유일한 아들 Arthur는 대체 뭘하고 있었을까? 그의 버려진 아들 Arthur (Nigel Terry 분)는 당시 한마디로 밑바닥을 박박 기고 있었다. Merlin에 의해 계획적으로 갓난아기적부터 Ector란 무사에게 맡겨진 Arthur는 Ector의 아들 Kay의 종자 노릇이나 하면서 당시 온갖 차별과 구박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Merlin이 Arthur를 그렇게 천대받으며 비참하게 성장하도록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한번 제대로 된 군주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남자는 어려서부터 밑바닥생활을 경험하면서 자라나봐야 서민의 고통을 알게 되고, 모성의 결핍 속에 성장해봐야 사랑의 귀중함을 알게 된다는, 혁명적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한번 해볼 법한 상상을 한 것이었다. 거기다 무사집안의 종자로 들어가게 되면 곁눈질로나마 무예도 익히게 될 것이라는 계산도 Merlin은 나름대로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Arthur는 아버지 Uther로부터 용맹한 기질과 전투능력을 물려받고 무사 Ector집안에서 기본적으로 칼 쓰는 법도 익히지만, 애정이 결핍되어서 그런지 어딘가 인상이 어두워보이고 기가 죽은 듯 보이며 눈동자에는 건전한 이성보다 구슬픈 비애가 넘쳐나보인다. 그는 한마디로 강하고 질기면서도 우울한 인간으로 자라난 것이다. 물론 이런 인간은 자기 아랫사람들이나 약자, 패자를 배려하는 인간적 풍모를 갖출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비정상적으로 오직 하나의 애정에만 자기 정신을 집중하며 자기 스스로를 충동적으로 파괴할 가능성 역시도 농후한 법이다.

Arthur는 자기 주인인 Kay가 출전하는 무술대회에 따라갔다가 Kay의 검을 도둑맞는다. 검을 도둑맞은 것때문에 자기 주인인 Kay가 무술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 우왕좌왕하다가 아버지 Uther에게서 물려받은 타고난 팔뚝힘을 발휘하여 언덕 바위 위에 꽂힌 Excalibur를 쑤욱 뽑아다가 Kay에게 갖다 바친다. 제왕의 표지인 엑스칼리버를 뽑아내다니 ! Kay와 Ector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놀랬겠는가? Leondgrance같은 귀족은 Arthur를 왕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충성의 칼을 높이 들고, Uryens나 Lot 같은 귀족들은 저런 미천한 녀석을 도저히 왕으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반기를 드는 등, 일대에는 금방 난리가 벌어진다.

이때 무사 Ector가 Arthur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왕이시여. 전 전하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Merlin이 갓난아기인 전하를 제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때맞춰 Merlin도 어딘가에서 홀연히 나타난다. "전하께서는 분명히 Uther왕의 유일한 아들이십니다. 거기다 Excalibur를 뽑으신 이제부터 전하께서는 이 나라의 유일한 왕이 될 자격까지 갖추신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가 왕이었다고 해서 아들도 꼭 왕이랄 법은 없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오늘날 대통령 자리는 물론이고 재벌사주 자리 역시도 아들에게 세습을 했다가는 온 국민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 세상에서 아버지가 왕이었다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우리는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득한 옛날의 사정을 돌아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금이야 선거라는 제도가 발달되어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지만, 옛날에는 선거의 공정한 시행도 불가능했고 정권을 교체하려면 결국에는 무력을 사용한다는 것 이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의 무력 정권쟁탈을 수시로 허용했다가는 그 끔찍한 피의 소용돌이에 민중들의 희생이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동양이건 서양이건 권력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그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신분제와 장자상속의 원칙을 철두철미하게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사육신 같은 경우에는,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아예 자기들 목숨까지 초개처럼 버리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선 Arthur가 그렇게 혈통만 가지고 최고권좌로 수직상승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Arthur의 출현은 너무나 순식간에 그리고 극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만 심지어는 Arthur 역시도 자기에게 주어진 그 엄청난 운명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너무나 소박하게만 커왔던 Arthur에게는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생활이 더 익숙했고, 그래서 왕이 된다는 것은 자기에게 도저히 말도 되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Merlin에게 애걸한다. 자기는 왕노릇 같은 거 할 수 없다고. 자기는 아무런 특별함도 없는 인간이라고.

그러나 Merlin은 아주 능숙하게 Arthur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이건 전하께 의무입니다. 오직 전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전하께서는 벌써 잊었습니까? 오로지 전하만이 바위에서 Excalibur를 뽑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물론 이때 Merlin은 Arthur가 왕으로서 별로 준비가 안 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오랜 천민생활로 이미 왕이기 보다는 그저 한낱 필부로서 살아가야만 더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돼버렸다는 사실을 얼핏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간에게 왕의 자리를 맡길 경우 그가 왕역할을 감당해낼 수 있는 기간은 절대 오래일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Merlin도 별로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Arthur는 이상적인 군주로 만들기 위해 Merlin이 오랜 시간 공들인 인간이었고 Uther보다는 훨씬 선량하며 Merlin에게도 아직은 만만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Merlin의 격려로 원기를 얻은 Arthur는 벌써부터 자기 뒤를 따르기 시작한 추종자들을 데리고 이제 자기에게 충성을 맹세한 귀족 Leondgrance의 성을 지켜주기 위해 첫번째 출정을 나선다. 마침 Leondgrance의 성을 침공하고 있던 Uryens와 Lot의 무리를 쳐부수기 위해서이다. 비록 아직은 어리벙벙하지만 선천적으로 무골을 타고난 Arthur는 갑옷도 걸치지 않은 맨몸인데도 불구하고, 주위에서 모두 우려하건 말건, 싸움터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 억센 힘과 칼솜씨로 적들을 베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직접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기어올라가는가 하면 위험한 늪 속에도 텀벙텀벙 뛰어들고, 육박전에서도 자기 몸을 아끼지 않으며 단연 돋보이는 전투력을 과시한다. 그러니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성주 Leondgrance의 딸 Guenevere가 놀라서 Leondgrance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본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빠, 저 남자가 정말 그 젊은 왕이에요?"

마침내 Arthur는 심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장 Uryens (Keith Buckley 분)와의 최후 대결에서 Uryens를 제압하고 그의 목에 자신의 빛나는 칼 Excalibur를 들이댄다. "네 목숨은 내 손 안에 있다. 하지만 난 너같은 장수가 필요해. 네가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난 너에게 자비를 베풀겠다." 그러나 Uryens는 콧방귀를 뀐다. "흥, 나같은 귀족기사가 너같은 천한 종자에게 충성을 맹세한단 말이냐?"

사실 Uryens는 과거 Arthur의 아버지인 Uther를 죽이는 공모에 가담하기도 했던 반역의 경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Arthur 개인적으로도 그는 거의 불구대천지 원수나 다름없었으므로, Arthur가 지금 당장 그를 죽여버린다고 해도 누가 뭐랄 사람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Arthur는 대담하게 그의 목 앞에서 자기 Excalibur를 거둔 후 그에게 날이 시퍼런 자기 엑스칼리버를 건네주면서 무릎을 탁 꿇은 채 말한다. "그래? 하긴 네 말이 옳다. 그렇다면 지금 네가 나에게 기사작위를 수여해라."

자기 칼을 넘겨주다니... 그것도 직전까지 자기를 죽이려던 적에게... 이건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되는 상황이 아닌가?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는 가운데 아까까지만 해도 이 모든 것은 Merlin의 술책이라며 Arthur를 베어죽이겠다고 살기등등하던 Uryens는 Excalibur를 천천히 들더니, 알 수 없는 권위에 압도당해 떨리는 손으로 Arthur의 머리와 어깨 등에 엑스칼리버를 갖다대며 기사작위를 수여한다. "신과 성미카엘과 성죠지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며 정의를 수호할 기사의 자격을 수여하노라" 그리고 난 후 Uryens는 Arthur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이제는 신하로서 임금인 Arthur왕께 충성을 맹세한다. "전하. 저는 전하의 미천한 기사입니다. 저는 전하께서 갖고 계신 덕과 용기에 저의 충성을 맹세합니다. 전 이제 더 이상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는 곧 무엇을 의미하는가? 힘이 아닌 덕으로 이 세상을 다스릴 군주가 출현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이 감동적인 장면에는 Merlin조차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기가 기대했던 이상의 모습을 Arthuer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왕의 지위를 확고히 한 Arthur는 충성스러운 귀족 Leondgrance의 성에서 열린 축하잔치에서 여러 아가씨들과 어울려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많은 아가씨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성주 Leondgrance의 딸인 Guenevere (Cherie Lunghi 분)다. 물론 그녀는 그렇게 화려하게 아름다운 여자는 아니지만, 매우 동양적이면서도 그윽한 분위기와 함께 귀여운 인상을 갖고 있는 여자였다. 아담한 체구에 선량해보이는 큰 눈은 친근하고도 신비로운 매력을 발산하며, 어떻게 보면 그 당돌하고도 대담한 시선이 위태로운 느낌까지 자아낼 정도다. 어려서부터 무거운 운명의 굴레에 짓눌린 채 외롭고도 어둡게 성장한 Arthur와 달리 티 없이 맑고 깨끗하며 순진하면서도 자유롭게 성장한 여자였던 것이다.

이미 Arthur의 남자다운 모습에 홀딱 반해버린 Guenevere는 Arthur의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유혹하듯 말한다. "당신은 우리 아빠의 성을 구해주었어요. 그리고 내일이면 또 다른 성을 구해주기 위해 출정을 나가시지요. 하지만 저같은 여자가 있는 성은 절대 구해주지 마세요. 제가 질투하게 될테니까요." 그리고 Arthur에게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는 케잌을 권하며 말한다. "자 이 케잌을 드세요. 이건 아주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진 케잌인데요. 부드러운 곡물에다 장미향을 입혔어요. 그리고.. 그 나머지 재료는 비밀이에여."

이 의미심장한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Merlin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케잌을 바라보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일단 먹어보기 전에는 맛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먹고 난 뒤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 Guenevere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자신에게 고백하는 Arthur에게 Merlin은 조심스럽게 충고한다. "전하. 저 여자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저 여자보다 아름답진 않아도 더 현숙한 여자는 이 세상에 아주 많습니다. 만약 전하께서 저 아름답기만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신다면,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전하를 배신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 내내 그 어떤 부모의 정조차 모르고 자라왔던 Arthur로서는 자신에게 아주 잠깐이라도 관심을 보여준 Guenevere야말로 자기 넋을 완전히 흔들어놓을 수밖에 없는, 자기에게 모든 사랑을 아낌없이 줄 것처럼만 보이는 그런 존재였다. Merlin이 충고하거나 말거나 듣지 않은 채 완전히 넋이 나가버린 Arthur는 그저 Guenevere의 이름만을 읊조린다. 그리고 Merlin은 체념한 듯 고개를 젓는다. "너무 늦었어, 너무... (Zu spaet...)"

Guenevere를 만나고 몇년 후 Arthur는 이제 또 한번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Arthur가 뭇 기사들을 이끌고 진군하던 어느 숲 속 호숫가에서 호수의 기사 Lancelot (Nicholas Clay 분)을 만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하고 의로운 기사입니다(Er ist der maechtigste und ehrlichste Ritter)"라는 Ector의 말 그대로 Lancelot은 수려한 용모, 놀라운 무술실력과 함께 화려하고 세련된 매너를 과시하며 Arthur의 모든 기사들을 간단하게 제압해버린다.

이걸 본 Arthur는 Lancelot을 자기가 직접 꺾어버리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하지만 Merlin이 보기에 이 Lancelot이란 인간은 인격과 무술 모든 것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지나친 탁월함 때문에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기 보다는 오히려 피해야 할 인간이었다. 너무나 자부심이 강하고 심미적인 성격을 갖고 있던 Lancelot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엔 적합치 않은 인물이어서 숲 속 호숫가에 혼자 숨어 외롭게 자기 무술이나 다듬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Merlin 생각에 이렇게 야망도 없이 자의식만 강한 인물은 비록 실력이 출중해도 중요한 순간 괜히 자기 심미감 때문에 스스로의 운명을 자기가 직접 꼬아버리게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Lancelot이 혼자 버려졌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인간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인간은 그냥 혼자 지 잘난 맛에 살면서 자기 닮은꼴 제자나 양성하다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이었다. 물론 Arthur 입장에서는 Lancelot의 재주가 탐날 것이고 그를 꺾어보겠다는 호승심도 일어날 만했다. 하지만 딱하게도 Lancelot은 이미 최고의 실력을 갖춘 기사였으므로 어지간한 Arthur라 할지라도 Lancelot을 눌러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Merlin은 Arthur에게 충고하기에 이른다. "그깟 꿀 조금 얻기 위해 벌집을 건드리려 하지 마십쇼. 저런 자는 그냥 자기 멋에 살도록 내버려두는 게 상책입니다."

그러나 Arthur 역시 자기 혼자 제왕처럼 뻐기는 Lancelot을 그냥 피해가기에는 나름대로 너무 혈기방장한 인간이었다. Merlin의 만류를 무릅쓰고 Arthur는 Excalibur를 뽑아든 채 Lancelot과 일대일대결을 신청하며 외친다. "최고의 기사라고? 넌 기사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겸손도 갖추지 못하고 있구나!" 이에 대해 Lancelot의 반응은 예상대로 냉소적이었다. "최고의 기사는 내 자랑이 아니다. 그건 사실 내 스스로에 대한 저주이지. 난 너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이제 그만 돌아가라."

몇합을 겨뤄보았자 객관적으로 실력이 못 미쳐 패배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자 Arthur는 마지막으로 보검 엑스칼리버를 높이 들어 Lancelot의 철봉 위에 절망적으로 내리친다. Lancelot이 빙그레 웃으며 여유있게 철봉으로 막는데 이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엑스칼리버가 Lancelot의 철봉과 갑옷을 두동강내고서 Lancelot을 기절시켜버린 것이었다. 물론 엑스칼리버 역시 두조각으로 부러져버린 뒤이다. Arthur는 이제 신검 엑스칼리버를 잃고서 앞으로 어떻게 왕노릇을 하나 어쩔줄을 몰라한다.

그러나 엑스칼리버가 두동강난 채 이야기가 여기서 끝날 수는 없는 법이다. 갑자기 호숫물 속에서 아름다운 여신이 나타나 Arthur에게 새로운 엑스칼리버를 선물하고서 사라진다. 이건 무슨 의미였을까? 하늘의 입장에서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Arthur를 도저히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을까? 내 생각에 그것보다는 원래 엑스칼리버라는 검 자체가 신통한 검이어서 그랬을 것으로 보인다. 워낙에 귀중한 신검이었기 때문에, 이 엑스칼리버는 매번 부러질 때마다 어디선가 새 것이 바로 나오도록 그 자체에 마법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최고의 기사 Lancelot까지 자기 휘하로 끌어들이고 나니 Arthur의 기세는 더욱 거칠 것이 없어진다. 자기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용맹 이외에도 한때 밑바닥에서 고생했던 인물답게 자기 부하들을 인정으로 대하는 따뜻한 마음씨까지 갖추고 있어, Arthur는 국왕으로서의 세력을 급속히 불려나가게 된다. 그는 숲속의 도적떼들과 바다의 해적떼들을 소탕하고, 거기다 호시탐탐 국토를 노리던 외적들까지 깨끗이 물리쳐 백성들의 시름을 없애준다. 이제 영국의 전국토가 Arthur의 검붉은 용깃발 아래 무릎을 꿇게 된다.

그렇게 결정적인 몇번의 승리를 거두고 난 Arthur는 기쁨의 자리를 같이하던 여러 기사들에게 말한다. "오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이제부터 우리는 지금과 같이 언제나 동그란 원을 이루어 모이기로 한다. 그렇게 우리의 우정이 평등하게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나는 커다란 원탁을 하나 만들기로 하겠다. 그 원탁을 위해 멋진 홀을 하나 만들고, 그 홀을 위해 아름다운 성을 하나 건설하겠다. 그 성의 이름은 바로 Camelot이다 !" 그리고 이 말에 모든 기사들은 자기 칼을 높이 들어 Arthur에게 다시금 충성을 맹세한다. 이로써 왕국은 건설되었고, Arthur의 지휘 아래 평화는 이룩되었지만, 그 누가 알았을까? 이 장면을 지켜보던 보름달이 차츰 이즈러져가듯 그날의 맹세 역시도 그들 사이에서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이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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