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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에 관한 여러 우스갯소리들
[고대 체육복] 고려대학교 신입생들이면 누구나 지급받는 고려대학교 체육복은 색상이 희고 붉은 줄이 그어져 있는 데다 체육복 앞 뒤로 "KOREA"라는 글자가 박혀있어 꼭 국가대표 유니폼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대학시절 비교적 체격이 좋은 편이었던 나는 고대 체육복을 입고 동네 한바퀴를 돌 때마다 동네 꼬마들이 "와! 국가대표다!"하고 쫓아다니는 통에 큰 곤욕을 치러야 했고, 그때문에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고대생들은 '창피함' 때문에라도 고대 체육복을 운동복보다 주로 잠옷으로 입어야 했다. 그 덕분에 고대생을 아들딸로 둔 많은 가정에서는 매일밤 국가대표처럼 화려한 유니폼을 입고 잠자리에 드는 아들딸의 모습들을 지겹도록 봐야 했었다고 전해진다.
[철학자 김용옥]
하지만 고대생들 가운데서도 무시 못할 다수는 김용옥 교수의 과도한 자화자찬과 지적 폭력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김용옥 교수의 교양강의를 우연히 수강하게 되었다는 어느 고대생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하기도 했다. "첫날 강의시간이 아직도 안 잊혀집니다. 강의시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엔 포마드를 바르고, 007 가방을 든, 검은 두루마기 한복차림의 기괴한 신사가 나타나더라구요. 그러더니 연이어 육두문자를 쏟아내기 시작하는데... 정말 이런 분도 교수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구선수 노정윤]
"올해 고연전에서도 저는 열심히 싸워서 또다시 필승, 전승, 압승을 이끌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축구선수 차범근]
차범근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시절 독일에 유학 나와있던 많은 고대 출신 학생들은 다른 대학 출신 학생들보다 훨씬 더 자긍심을 갖고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독일인들과 사귈 때나, 같은 한국 유학생들과 대화할 때나, 대뜸 차범근 동문 얘기만 꺼내면 대화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다른 대학 출신 학생들에게 부러움도 많이 받아 당시 독일 유학생사회에서는 아주 황당한 유머가 떠돌기도 했는데, 그 유머를 잠시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차범근을 보고 독일인이 놀랐던 세가지 이유
[야구선수 선동렬]
"그 놈의 술을 안 먹어서 그래요. 술!!!"
[시계탑]
[막걸리 찬가] 고대생들이 가장 즐겨부르는 노래는 뭐니뭐니해도 '막걸리찬가'라고 할 수 있다. '마.셔.도. 사나이답게! 막걸리~를 마셔라~ 맥.주.는. 싱거우니! 신촌골로 돌~려~라~'로 이어지던 이 노래 가사는 고대생들의 서민적이고 용맹한 기상을 표현하는 노래로, 몇십년을 두고 많은 고대 동문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는데, 한편으로 그 가사의 내용은 너무 남성편향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이 노래에 대한 여학우들의 항의가 잦기도 했다. 특히 노래를 시작할 때마다 고대생들이 외치던 '마실까말까 마실까말까 에라X팔 니미X도'라는 욕설은 고려대학교의 점잖은(?) 평판을 손상케 할 만큼 저급한 것이어서, 이를 우려한 일부 고대생들은 그 노래 도입부를 영어로 번역해서 부르기도 했는데, 여기서 잠깐 그 영어번역 도입부를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Drink or not, drink or not, son of the bitch, god them, fuck you."
[창녀와 고대생] 고대 근처에는 미아리텍사스와 청량리588이라고 해서 커다란 창녀촌이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나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여자들 상당수가 고대 앞 제기동에서 자취를 했기 때문에, 대부분이 지방 출신으로서 마찬가지로 외로운 자취생활을 하고 있던 대다수 고대생들은 매일 오후 4시~5시마다 야한 옷차림으로 고대 정문 앞에서 택시를 잡는 그녀들에게 드물지 않게 혹하였고, 심지어는 그런 창녀나 술집여자들을 여자친구로 두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옛날 고대 석탑축제 기간동안에는 수많은 창녀, 술집여자들이 고대 남학생들의 초청을 받아 고대 캠퍼스에 몰려왔으며, 짙은 화장과 야한 옷차림을 한 채 고대 남학생들 틈에 섞여 신나게 막걸리를 얻어마시는 광경이 흔하게 목격되곤 했다.
[양호기(養虎記)]
당시 고대 바로 옆에 위치해있던 서울상대(오늘날 서울대 경영대의 전신)는 그 정원이 고대정원 전체와 엇비슷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기질이 워낙에 문약하여, 허구헌날 서울상대생들이 고대생들에게 두들겨 맞곤 했다고 한다. 그러자 약이 오른 서울상대생들은 어느날 고대와 연대의 축구경기가 열린 운동장에 단체로 몰려가 아주 밉살스럽도록 연대측을 응원하였는데, 그 결과 심리전에 말려든 고대축구부가 연대축구부에게 패하자 진노한 고대생들은 경기가 끝난 후 서울상대생들이 모여있던 관람석으로 마치 노도와 같이 진격해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영리한 서울상대생들은 경기가 끝나고 고대생들이 교가를 부를 동안 모두 도망을 가버린 뒤였고, 이에 화가 난 고대생들은 서울상대 캠퍼스(당시엔 서울대 캠퍼스가 단과대별로 서울 각지에 흩어져 있었음)로 몰려가 건물 유리창을 모두 박살내버리는 가공할 복수극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는데, 당시에 이 사건은 당연히 장안의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하여튼 그 일로 고려대학교측은 서울상대 건물의 깨진 유리창값을 모두 물어주는 고역을 치렀다고 하며, 그 뒤로 고대생들은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서울상대생들과 오히려 더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깡패와 고대생] 이미 일제시대부터 고대생들이 주먹싸움에 능했다는 사실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학생주먹의 대장으로 나오는 엄동욱(신마적)이 보성전문 법과생이었다는 것만 봐도 충분히 확인해볼 수가 있다. 그렇게 일제시대 종로바닥까지 위세를 떨쳤던 고대생들의 주먹은 세월이 지나면서 안암동 근방으로 그 구역이 좁혀지긴 했지만, 적어도 내가 학교 다니던 때까지는 고대생들의 주먹힘이 아직 남아있어서, 안암동 근처 깡패, 양아치들이 고대생들에게 두들겨 맞을까봐 감히 고대 근처에는 범접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는 일부 선량한 깡패들이 술취한 고대생들(특히 군대에서 휴가나온 고대생들)에게 이유없이 무차별 린치를 당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곤 했는데, 멀리 신촌바닥의 경우 연대 남학생, 여학생들이 걸핏하면 늦은 밤 하교길에 깡패들에게 폭행당하거나 성추행당하여 경찰의 보호를 받아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당시 고대생들의 터프함이 어느 정도였을지 대충 짐작이 되시리라 믿는다. 그래서 고대생들이 술에 만취한 채 인근의 깡패, 양아치들을 마구 폭행하는 것이 눈에 띨 때면 안암로타리 인근에서 장사를 하시던 많은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이렇게 중얼거리곤 하셨다고 한다. "고대생들은 대학생이 안 되었으면 다 깡패가 되었을 놈들이여..."
[사발식]
"어차피 도로 꺼낼 걸 뭣하러 그렇게 집어넣나..."
[고대생들의 미팅] 여대생들 사이에서는 한때 '고대생과 첫미팅을 하면 대학 4년이 재수없다'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로, 옛날 고대 남학생들은 미팅 나가서 3M을 철저히 무시하는 사람들로 통했다. 그 3M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Manner, Mood 그리고 Money로서, 그렇게 무례하고 뻔뻔하기로 악명을 떨쳤음에도 불구하고 옛날 고대 남학생들은 번번히 미팅을 나갈 때마다 다시금 대형사고를 쳐서 주선한 친구들을 본의 아니게 욕먹이곤 하였다. 대표적인 사고로는 미팅 자리에 토큰 하나만 들고 나가 여학생한테 커피 얻어마시기, 낮술 마시고 잔디밭에서 잠 한숨 때린 다음 머리카락에 지푸라기 묻힌 채 미팅 나가기, 노래방에 같이 가서 줄창 트로트만 부르기 등이 있었는데, 그런 무례를 당하고도 여학생이 참아줘야 사나이 일편단심 순정이 비로소 시작된다는 게 고대 남성들의 일방적인 생각이었지만, 그 어떤 여자들도 초면부터 그러한 무례를 참아줄 리는 없는 법.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고대생들은 졸업하는 그날까지 싱글로 썩는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의 연말연시를 동성애자처럼 남자친구들끼리 모여 술이나 퍼마시고 허송세월하는 경우가 많았다.
[농구선수 박 한]
한때 연대의 최희암 감독이 연세농구의 전성기를 구가할 동안, 고대 농구감독으로서 비난의 십자포화를 한몸에 받던 박 한은 맨날 술만 퍼마시고 작전계획이나 훈련지도에는 등한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다 언젠가 고연전 경기 종료직전, 1점을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대 '94학번 현주엽 선수가 자유투를 얻자, 박 한 감독은 작전타임을 걸고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우리 팀의 이번 작전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집어넣는 것이다!!" 그 작전명령대로 현주엽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집어넣었고, 그날 고대 농구부는 오래간만에 연대농구부를 눌러이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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