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는 한국에서 이미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유명한 학교이다. 졸업생의 숫자도 거의 20만명에 육박한다고 전해지고 있고, 특히 고대 출신들이 갖고 있는 응집력과 단결력이라는 것은 고대 교우회를 호남향우회, 해병대전우회와 비교하게 만들어, '우리나라 3대 단결력 강한 집단'으로 불리우게 할 정도이다.
무엇보다 고려대학교는 한국에서 속칭 SKY대학 가운데 하나라고 불리우는 학교이고, 막걸리 사발식이나 고연전(또는 연고전), 그 밖에도 붉은 크림슨의 교색(校色), 호랑이 이미지, 민족주의적 경향 등으로 인해 일반인들에게 주는 인상 역시 매우 강렬하다. 수시로 이루어지는 정부 개각이나 국회의원 선거, 사법부 인사동정 같은 곳을 보아도 고려대학교 출신들이 빠지는 일은 거의 없으며, 재계나 언론계, 교육계 등의 분야에서도 고려대학교 출신들이 행사하는 영향력은 - 유감스럽게도 - 상당한 수준이다. 근래에는 고려대학교 재단(동아일보사)의 수구적 행태 및 사회 전반의 국제화, 개방화 추세에 대한 부적응 등으로 인해 고려대학교의 평판과 위상이 옛날과 같지 않다고 하지만, 그렇게 긍정적인 쪽으로든 부정적인 쪽으로든 고려대학교는 아직도 사회일반에 적지 않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나는 이러한 고려대학교에 1989년부터 1999년까지 햇수로 따지면 무려 11년이나 적(籍)을 두고 다녔다. 중간의 군복무시절 26개월은 제외한다 하더라도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고려대학교 안에서 싸우고 부대끼며 살아온 셈이다. 그러니 이런 긴 시간과 고려대학교 특유의 강한 교풍을 감안하면 내 성격이나 사고방식이 이러한 고려대학교의 분위기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결코 말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졸업후 어딜 가든 일단은 '고대 출신'이라는 딱지로 항상 평가를 받곤 했던 것도 수긍할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내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나는 어딜 가든 이렇게 나란 존재가 내 개성 및 능력과 무관하게 항상 '고려대 출신'으로서만 일괄적으로 평가가 되어왔다는 점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기분을 가져왔던 듯하다. 또한 많은 시간을 고려대학교 안에서 활발하게 여러 사람들과 접하며 생활해보고, 한때는 군대에서, 또 이제는 유학을 나와 다른 여러 대학출신들과 고대 출신들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가 있게 되면서, 나는 고려대학교에 대해 많은 분들께서 굉장히 잘못 알고 계시고, 그것이 단순히 이름 있는 대학 출신들에게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갖게 되는 반감의 표현이라 할지라도 그 편견이 너무나 왜곡되어있다는 사실을 자주 발견해오곤 했던 것 같다.
우선 '전형적인 고대생'이라든가 고려대학교에서 일반적으로 숭상되던 어떤 인간상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그것을 고대출신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으며, 그런 막연한 이미지만을 가지고 고대생과 다른 대학생을 비교하려는 모든 시도는 지극히 부질없는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학력만을 놓고 보더라도 고대생 개개인마다 워낙 그 편차가 커서 고대생들이 다른 이름 없는 대학교 학생들보다 일괄적으로 더 똑똑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예를 들어 우리나라 최고명문대라 불리우는 서울대생들보다 더 멍청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데, 왜 이런 근거 없는 편견에 따라 사람들을 마구 재단하려 하는지, 정말 한심한 느낌을 가졌던 것은 비단 나 한 사람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고대생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다고 얘기되는 부정적인 면들도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것을 고대생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미덕으로 봐줄 수도 있는 것인데, 왜들 그렇게 고대생이라면 싸잡아서 비판들을 해대시는지 나로서는 어리둥절해질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많은 분들이 고려대학교에 대해서 '패거리주의'의 이미지를 갖고 있고, 고대생들은 어딜 가나 자기 대학 선후배간에만 밀고 끌어주기에 철저함으로써 다른 대학출신들에게 크나큰 피해를 끼친다고 알고 계시지만, 내가 생각할 때 이러한 '패거리주의'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며, 외부에 대해 그리 배타적인 것도 아닌데 왜들 그렇게 흥분하시나 싶어진다.

내가 보기에 고려대학교 특유의 강고한 공동체문화는 일제시대 3.1 운동시절부터 워낙 쓰라린 시련을 많이 겪어오다 보니 고대생들이 우선 자기들끼리라도 똘똘 뭉치지 않으면 생존할 수조차 없다는 위기의식을 가졌던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74년에 있었던 '동아일보 사태'로 학교재단이 파산위기에 직면하고, 두 차례의 위수령으로 학교 자체가 폐교의 위기에 처했다는 경험은 고려대학교 학생들에게 대표적 반골대학이라는 특유의 자부심과 함께 일종의 비주류적 공동체의식을 그들 스스로에게 내면화시키게 되었는데, 여기서 고대 출신들 특유의 강한 응집력은 형성된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단결은 용인될 수는 있어도 권장될 만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 본래의도야 좋은 것일지 몰라도 이러한 단결은 그만큼 외부인들을 자극하고 견제심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고려대학교 출신들의 단결력은 겉으로만 소리가 요란할 뿐 실제로 그렇게 철두철미한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고대 출신들의 패거리정신도 남들 보는 것처럼 그렇게 엘리티즘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리 어리석거나 위험한 것으로만 여겨질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같이 서울대 출신이 정, 관, 경, 언, 학계의 모든 노른자위를 다 독점해버리는 나라에서 엘리트적 완벽주의를 가진 아이들은 재수, 삼수를 하거나 원치 않는 학과를 선택해서라도 서울대를 진학하려 하지, 평생 2~3등 인생으로 고정되는 것을 각오하고라도 고려대학교에 진학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차피 그렇게 '2~3등도 좋다'는 비완벽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모인 애들끼리 서로 똘똘 뭉쳐봤자 얼마나 완벽하게 뭉칠 수 있겠으며, 서울대, 연대와 같은 훨씬 우월하고 강력한 견제세력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고대생들이 자기들만의 배타적인 쇼비니즘을 키워봤자 얼마나 키울 수 있었겠는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고대 출신들의 자긍심이나 단결력은 SKY의 별로 좋지도 않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이 절대 아니라, 오히려 불의에 굴하지 않는 학교 전통이나, 다른 학교 학생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고대 특유의 집단적 유희문화, 그리고 물적 환경에서 연대, 서울대에 뒤쳐지는 것을 구성원들의 악착같은 정신적인 기합으로 만회하기 위한 어떤 절박한 필요성 같은 데서 나왔던 측면이 더 크다고 나는 본다. 또한 나찌 전체주의처럼 '고대정신'이란 것이 개인의 주체성을 집단에 투사하는 환상적 요소 같은 것을 가졌던 것도 아니고, 타집단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심, 광신적인 집단애를 유발했던 것도 아니었던 이상, 이런 합리적이고 평화적인 집단문화까지 '파쇼'로 싸잡아 비난할 필요는 없으며, 그건 그냥 고대생들의 문화이고 전통일 뿐이지 그렇게 뭐라 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은 고려대학교가 매우 권위주의적인 학풍을 갖고 있다고 말을 하는데, 이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을 반영하고 나 역시 그런 학풍에 적응하기 매우 힘들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 역시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규율과 체계보다는 칭찬과 사랑, 상호이해 같은 것으로 구성되는 조직이 더 바람직한 조직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권위주의 시스템에서는 언제나 일부 못된 상급자들이 자기 교육권과 징계권을 남용하는 병폐가 있는 것처럼, 온정주의 시스템에서는 언제나 일부 못된 응석받이들이 자기 자유와 무책임한 발언권을 남용함으로써 결국 마음씨 착하고 책임감 강한 몇몇 고참들에게만 비정상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폐단이 불가피하게 존재한다. 만약 주인의식이 없는 사람들끼리 모인 조직이라면 서로 칭찬만 하면서 피상적으로 운영되는 것도 가능하지만, 손님이 아니라 주인의식이 확고한 사람들끼리 모인 조직이라면 그 사이에서 권력관계가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이며, 어떻게 보면 권위주의가 강한 조직일수록 그 내부의 권력관계가 더 정직, 투명하게 드러나고 책임소재도 더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각자의 개인이 노력한 만큼 합리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과의 협동을 통해 전면적인 인간관계를 다져나갈 수 있는 긴밀한 시스템을 만드느냐에 있지, 거기에 고려대학교처럼 약간의 권위주의가 더 들어가느냐, 연세대학교처럼 약간의 개인주의가 더 강조되느냐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내 기억에 고려대학교의 그러한 권위주의 시스템이 그렇게 합리적으로만 운용되었느냐 하면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고려대학교는 공동체적 문화를 그 특유의 전통으로 오래 지속해오면서 나름대로의 경험들을 많이 축적해온 대학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타의 학교들보다는 그 권위주의의 운용에 있어서도 유연성의 묘가 많이 발휘된 편이었다. 다시 말해 조직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해결이 신속하고 합리적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구성원 각자를 적절히 배려할 수 있는 노하우가 존재했다는 얘기이다.
또한 많은 분들께서 고려대학교의 술문화가 갖는 향락성과 비생산성에 대해서들 지적을 하시는데, 이것도 내가 보기엔 약간의 오해가 개입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1998년에 발표된 어느 신문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대생과 연대생의 용돈 및 유흥비 평균지출액이 서울시내에서 단연 1, 2위로 계산되고 있는 반면, 고대생들의 그것은 서울시내 중하위권 정도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는데, 여기서 확인할 수 있듯 실제로 고대생들은 술 마시는 빈도야 전국 최고일지 몰라도 그렇게 소비적이라거나 향락적으로 술을 마신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매주 비오는 수요일, 또는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 같은 때면 어김없이 모여앉아 밤을 새워 술을 퍼마시는 고대생들의 술문화는 서로의 인간적 면모를 상대방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한 데 그 마시는 목적이 있는 것이지, 그저 사치스러운 퇴폐생활을 하기 위해, 아니면 알코올중독증에 걸려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셔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소주나 막걸리는 뒷끝도 좋지 않고, 밤 새워서 술 마시는 것은 체력적으로 무리가 가는 것도 사실이며, 그렇게 술을 자주 마시는 인간들이 공부는 언제 하느냐는 의문도 가져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다른 대학교의 술문화가 고대의 그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서울대생들은 성공한 선배들을 찾아가서 자랑스럽게 배워온 폭탄주제조법으로 자기들끼리 양주와 맥주를 섞어서 마시는 일이 흔하다고 하지만, 양주는 뒷끝이야 깨끗할지 몰라도 값이 비쌀 뿐만 아니라 취하고 널부러지기 위해 마시는 술이지 진실한 대화를 목적으로 마시는 술은 절대 아니다. 또한 연대생들은 한두시간 친구들과 어울려 가볍게 맥주 몇 잔씩 마시고 춤 추고 하다가 귀가시간에 맞춰 깔끔하게 헤어지는 게 보통의 술문화라고 하는데, 이건 그냥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데는 유용할지 몰라도 진정으로 서로의 마음을 여는 데는 적절치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의 술문화는 면학에 정진하는 데야 크게 방해가 될지 몰라도, 허황된 자의식을 깨뜨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쌓인 불만을 그때그때 속 시원히 해소할 수도 있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건전한 문화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인간은 말짱한 정신에서는 이견과 불만을 함부로 얘기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그런 불만이 쌓이고 쌓이면 그것을 외부적으로 시끄럽게 터뜨리기 마련이므로, 고대생들처럼 수시로 모여앉아 술을 마시면서 연령과 지위 고하를 떠나 완전히 흐트러진 자세로 많은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오히려 더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고대생들의 술자리에서는 엄격한 예절이나 주도(酒道) 같은 것이 크게 문제시되지 않고, 학번 낮은 후배가 학번 높은 선배에게 적정범위에서 대드는 것도 많이 허용되고 있는데, 이런 술문화가 고려대학교의 딱딱한 권위주의적 시스템을 완충해주는 기능을 갖는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또한 술자리에서 오간 말들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나중에 뒷자리에서 결코 문제삼지 않는 문화 역시도, 실없고 싱거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개인 간의 갈등을 최대한 개인 차원에서 인간적으로 운치있게 해결하는 기제로서 긍정적으로 봐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술을 통해서 대범하고 스케일 큰 대화문화를 체질화할 수 있어야 인간은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 같은 데 얽매이지 않고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여유 있게 골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밖에 많은 분들께서는 고대생들의 마쵸문화를 비난하시기도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나는 너무 일면만을 보고 비판하시는 것이 아니냐고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어차피 남녀가 아직은 불평등한 게 현실인 우리 사회에서 '말만 번지르르한 페미니스트'보다는 '어리숙하고 책임감 있는 마쵸'가 여성분들에게는 오히려 더 이익일 수도 있는 것이고, 내가 볼 때 적어도 옛날엔 '유니섹스'의 문화가 광범하게 지배했던 고대 환경에서 특별히 고대남성들이 여성들을 더 심하게 차별했다고 여겨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옛날엔 '이 세상엔 3개의 성이 있다. 남성, 여성, 그리고 고대여성'이라는 말이 대학가에 회자되었을 정도로, 고대여성들은 사실상 남성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고 살았으며, 남학우들이 여학우들이라고 해서 유달리 거리감을 느끼거나 하는 일은 고대 내에서 별로 찾아볼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여학우들 역시 굳이 여성으로서의 배려 같은 것은 남자들에게 요구하지 않았으며, 밤늦은 술자리에 여학우들이라고 해서 빠지는 일도 없었고, 세미나에서도 여학우들이 두각을 나타내면 나타냈지 절대 뒤에 쳐지는 일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데모하는 데 따라다녔던 여학우들도 많았고, 남학우들과 스스럼 없이 스크럼을 짜거나 몸싸움을 벌이는 여학우들도 많았다.
그 대가로 고대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아주 큰 사랑과 인기를 누렸고, 특히 1980년대까지는 여학우들의 숫자가 간호학과, 가정교육과 등을 다 합치고도 고대생 전체에서 15%를 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과에서 고대여성들은 그 자체로 희소성의 가치를 인정받아 남학우들의 구애공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대부분 그런 여학우들은 캠퍼스커플도 일찍 되어 행복한 대학생활을 꾸려가는 예가 많았는데, 물론 연애문제가 안정되니 학업능률도 더 올라서 고대내 대부분의 장학금은 여학우들이 다 쓸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대여성들은 학업성적도 매우 우수한 편에 속했다.
요즘은 여학생비율이 30%를 넘어 더이상 고대여성들이 고대 내에서 희소한 존재로서 특별한 권리를 행사하지도 못하는 데다가 고대남성들의 여성들에 대한 빈약한 배려 정도는 그 반면에 별로 변함이 없다 보니 고대남성에 대한 고대여성들의 비난이 매우 고조되고 있다 하는데, 나는 이에 대해서도 많은 경우 여학우들이 그저 울화통만 터뜨릴 것이 아니라 자기가 뭘 요구하고 있는지를 남성들에게 분명히 말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고대남성은 모두 마쵸이니까 욕 좀 먹어야 한다는 식이면, 아무리 인내심 있는 고대남성이라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참고 들어줄 수만은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대 남성들은 여성들의 모든 것을 꼬박꼬박 챙겨주고 신경 써가며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 전혀 아니고 달콤한 아부의 재주도 없으며 스타일이 쿨한 것과도 거리가 멀다(그렇게 쿨한 남자들은 대개 신촌골에 자리잡은 연세대학교에 가면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뺀질거리며 바람을 피울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오히려 믿을 만한 남자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재빨리 캐취해서 맞춰줄 줄 아는 센스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남성중심적인 사고를 한다는 얘기도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성격이 담박하며 여자 다루는 데 순진하다는 얘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고려대학교에 마쵸문화가 있다고 해서 대다수의 고대생들이 정말로 여자분들을 구타하거나 성폭행하는 것도 아닌 바에야, 고대생들을 모두 싸잡아서 '위험한 마쵸'로 내모시는 일은 좀 심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많은 경우 고대생들이 '마쵸'라 불리우는 이유는 기껏해야 '여자는 밥 짓고 빨래하면서 사는 게, 그게 행복이야' 같은 농담을 재미 삼아 불쑥불쑥 던진다는 정도에 있는 것이지, 카사노바처럼 여성들을 욕망이나 이용의 대상으로 삼는다거나, '푸른 수염'처럼 뭇여자들을 아내로 불러들여다 학대하고 살해해버리는 일종의 엽기성을 갖고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낭만적인 '애인'으로 삼기는 적합치 않을지 몰라도, 최소한 오랜 기간 사귈 든든한 '친구'나 '남편'으로 삼기에는 나쁘지 않은 게 고대남성들인데, 그토록 많은 여자분들께서 고대남성들에 대해 그렇게 지나친 편견이나 가학적 태도를 보여주신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또 많은 분들께서는 고대생들이 대부분 가난하고 무식한 집안의 아들들로서 거칠고 과격할 뿐만 아니라 무례하다는 식의 편견을 갖고 계신데, 이것도 나로서는 해명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우선 가정환경의 열악함과 예의범절의 결여란 것이 결코 등치될 수만은 없는 것이며, 모든 고대생들이 거칠고 과격한 것도 절대 아니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분명히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고대생들의 대부분이 시골 출신의 농사꾼이나 도시빈민과 같은 전형적 국내 무산계급의 아들들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선량함이나 예절 바름은 실제로 집안의 경제력이나 부모의 교육수준과는 전혀 무관하며, 오히려 반비례하면 반비례하지 전혀 비례한다고는 말할 수 없는 법이 아닐까 싶다. 최근엔 고려대학교도 학생들의 인적 구성이 크게 바뀌어 지방출신이나 무산계급 출신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서울 8학군출신이나 중산층집안 출신이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차라리 부유하고 교육수준도 높은 중상류층 집안의 자제들이 고기도 더 많이 먹고 더 자신만만해서 그랬는지, 육식동물처럼 더 사납고 폭력적이었던 것을 나는 여러차례 목격했던 바 있다.
따지고 보면 옛날의 고대생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생활고에 찌들거나 길바닥에서 닳을대로 닳은 놈들이 많았던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뭐 그렇게 과격하거나 순진할 만큼 진지한 자세를 가졌던 놈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의외로 능구렁이 몇마리는 삶아먹은 듯 능글능글해가지고 농담과 흰소리만 해대면서 도무지 신뢰감을 주지 않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기대 이상으로 자기 책임을 묵묵히 완수하는 스타일들이 많았고, 강퍅하거나 극단적인 스타일들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실없이 뻥을 쳐대거나 무익한 불평 내지 험담을 궁시렁 궁시렁 늘어놓는 놈들은 많았지만, 무조건 자기 성깔대로 다른 사람들을 막 함부로 대하거나 자기 주장만 옳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핏대를 올리던 애들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던 게 고려대학교였다.
물론 고려대학교는 이미 1905년 개교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려 90여년에 걸쳐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운동권과 가장 많은 사회주의자를 배출한 학교로서, 정치적 지향도 굉장히 강한 학교였던 게 사실이었다. 암울한 1970년대, 1980년대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운동권, 데모쟁이라는 말도 나왔으며, 고려대학교 내 운동권 투사들의 숫자는 '해방구'라 일컬어지던 광주의 전남대학교나 조선대학교 내 싸움꾼들의 숫자를 능가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고대내 운동권 동아리들의 숫자는 심지어 서울대와 연세대에 있는 운동권 동아리들의 숫자를 모두 합한 만큼이라고도 했으며, 서울 시내 각종 집회에 나가보면 모인 사람들의 절반 가까이가 고대생이어서 급기야 '우리나라 학생운동은 이론은 서울대가 제공하고, 장소는 연세대가 제공하고, 사람은 고려대가 제공한다'는 말이 오랫동안 서울시내 대학가에 회자되기도 했었다. 대개 정치판에 떠돌아다니는 인간들이나 운동권이라 불리우는 인간들이 암팡지고 억센 성향을 갖고 있음을 고려해볼 때, 이렇게 고대내에 학생운동이 성했는데 고대생들이 과격하지 않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접해본 고려대학교의 운동권들 대부분은 굉장히 인간미를 갖춘 친구들이었으며, 자기가 인류의 큰 운동에 참가하고 있다거나 민족을 일변시키고 있다는 식의 허황된 환상 따위에 빠짐이 없이, 그저 소박한 정의감이나 고대 특유의 긴밀한 인간관계상 의리만을 가지고 시위대 형들을 따라다닌 친구들이 많았다. 가끔가다 아주 편협하고 독선적이며 자기 주장만 공격적으로 우겨대는 운동권 애들도 없지 않았지만, 이렇게 과격하기가 산적(山賊) 같거나 정치공학적 술수에 능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고대 운동권단체들의 탄탄한 시스템 속에서 철저히 배척되었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가장 재수 없는 부류로 낙인찍히곤 했다.
심지어 고대에는 거의 운동권이나 마찬가지로 살면서도 끝까지 '운동권'으로 불리우기를 거부하고 학생운동의 주변부를 떠도는 애들도 많았는데, 고려대학교는 그 어느 대학보다도 이런 '준운동권'들의 층이 두터운 대학이기도 했다. 물론 어떤 주의주장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고, 자기가 배물주의에 빠진 비운동권보다 정치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더 낫다고 생각지도 않으며, 그냥 본성에 따라, 발정난 남자가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니듯이 그렇게 소박하게 학생활동을 했던 이들의 무책임하고 아마츄어리즘적인 태도는 경직되고 엄숙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일부 운동권들에게 긍정적으로 평가될 리가 만무했지만, 내 생각엔 이런 친구들도 다 흡수하는 분위기가 고대 내에는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옛날 고려대학교의 학생운동이 그렇게 잘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여유로운 분위기는 한편으로 고대의 널럴한 룸펜문화('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 추는')에서도 기인한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서울대 특유의 '베스트정신'이나 연세대 특유의 '서구 프로테스탄트적 현실주의', 서강대 특유의 '엄격한 학사관리'나 육사 특유의 '상무적 엘리티즘' 같은 게 없어서 그랬는지, 대부분의 고대생들은 학부시절 내내 학점관리나 취직준비 같은 것에 별로 힘쓰지 않고, 친구들과의 긴밀한 인간관계나 풍부한 인문교양을 쌓는 데에 더 치중하면서, 마치 늙은 여행객처럼 여유있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과격한 극단주의자가 배출된다는 것은 사실 힘든 노릇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세상 어디에도, 동료 어느 누구에게도 특별한 영향 따위를 주려고는 생각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양식의 본보기가 되어야겠다는 의지조차 갖지 않은 채, 그냥 '3등, 3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고래 잡으러' 떠날 꿈이나 꾸었던 이들 고대생들이 겉으로야 거칠고 괴벽스럽게 보일 망정 실제로 과격한 이데올로기스트가 될 방도는 없었을 것이며, 그들이 설령 학생운동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는 물론이고 자신의 인격을 파괴하는 지경으로까지 치닫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 고려대학교의 캠퍼스는 서울시내 대학들 가운데서는 거의 드물게도 방위가 완전히 동남향이어서, 추운 날씨엔 따뜻하고, 더운 날씨엔 서늘하여 학생들에게 과격한 심성이 생겨날 여지를 별로 제공해주지 않는 편이었다. 지금도 나는 추운 겨울 아침에 고려대학교 정문을 들어설 때면 쏟아지는 햇볕 속에서 따스한 기분을 느꼈던 것이나, 찌는 듯한 여름 오후에 본관 옆 벤취 나무그늘에 앉아있거나 서관 돌건물 1층 복도를 걸어갈 때면 산들바람이라도 쐰 듯 시원한 느낌이 들었던 경험을 잊지 못하는데, 
이는 서북향으로 자리잡은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겨울 오전이면 섬뜩하도록 추위를 느껴야 했던 점이나, 서남향으로 뻗은 연세대 백양로에서 여름 오후 3~4시면 옷이라도 다 벗고 싶어질 만큼 더위를 느껴야 했던 것과 비교할 때 정말 천혜의 입지조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로 인해 고대생들은 열사(熱砂)의 땅에 사는 아랍인들의 과격함이나, 어둡고 추운 북해, 스칸디나비아에서 발원(發源)한 북유럽 켈트인들의 냉혹함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아주 따뜻하고도 건강한 성정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대가 위치한 북악산 일대는 토질이 척박하여, 예를 들어 연대 캠퍼스에서처럼 미끈하게 자란 수목림 같은 것은 찾아보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건물들도 대부분 거칠고 딱딱한 돌건물들이기 때문에, 고대생들의 성격도 연대생들처럼 부드럽고 연(軟)하다기 보다는 그 돌건물들의 표면들처럼 울퉁불퉁하고 딱딱(固)한 편에 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본심과는 무관하게 싸움도 많이 일어나고, '한번 싸움에는 머리 터지는 놈이 나오게 마련'이란 말도 있듯 그 싸움에 희생자들도 자주 속출하곤 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북악산은 비록 토질은 기름지지 못해도 머릿 속이나 마음 속의 병을 치유해주는 약초가 옛날부터 많이 났다는 조선시대 기록을 봐도 알 수 있듯, 어딘지 모르게 인간적이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분위기를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또한 고려대학교가 위치한 안암동(安岩洞) 역시 그 지명의 유래에서 이미 알 수 있듯 어딘지 모르게 아늑하고 훈훈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동네이기도 했는데, 이러한 환경도 고대생들의 진실하고도 소박한 감수성과 여유로운 면모의 싹을 틔우는 데 중요한 토양이 돼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고려대학교도 자꾸만 변해가고 있고, 지금의 고려대학교 모습은 내가 다니던 시절의 모습과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는 옛날과 같은 반항적이고도 소박한 교풍을 더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으며, 한갓 허울좋은 SKY대학의 하나로서 외부인들의 눈총이나 받는 처지로 전락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고려대학교의 캠퍼스 곳곳에서 묵묵히 흐르는 내 젊은 날의 추억들을 느끼곤 한다. 결국 이것이 내 과거의 덧없는 미화일 뿐이며, 고통스럽고 잔인한 삶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비극적인 가면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나는 그곳 고대 캠퍼스의 정경과 힘차게 우뚝 솟은 석조전의 모습에서 그 어떤 냉정도 포기되지 않을 수 없을 만큼의 열기와 정력적인 자극을 얻곤 한다.
그렇게 고려대학교는 내게 영원한 힘의 원천으로 남으리라고 생각한다. 비록 내가 그 공간을 넘어서 앞으로 계속 어딘가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도저히 그 공간과, 그 공간을 거쳐간 사람들의 정신에 쉽게 이별을 고하지는 못하게 될 것이다.
2002.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