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 |
658 |
2,234,839 |
1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2013-09-06 15:43:46
2013-09-06 15:43:46
언제나 절감하고, 또 강조하는 것이지만, 우리 학계(學界)라는 곳은 아주, 보수적인 동네인 것이 맞다. 급진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듯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균형 잡히고 조화된, 안정적인 세계상을 추구한다. 이러한 학계에서 학문이란 것은 절대 불온(不穩)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사회과학이라고 하더라도 불행하고 불만을 품은 사람들을 기성의 체제 속에 통합시키고 적응시키는 방향이어야지, 그들을 자극하거나 혼란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사회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더라도 피상적인 수준에서 그치고, 미시적인 제도개선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쳐야지, 체제비판을 하거나 인물비평을 하거나 특정정당 또는 특정그룹을 비판하는 식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설령 정치적 비판을 하더라도 힘 없는 야당을 비판하거나 소수의 진보정당을 비판해야지, 만약 여당을 비판하거나 정권을 비판하거나 했다가는 학계 내에서 당장에 '폴리페서'로 낙인찍히거나 '좌빨' 취급을 당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는 한편으로 우리 학계라는 곳은, 질박하고 통속적인 것에 대해 지극히 반감을 표시하는 경향이 있다. 학자들은 엉터리일 수도 있고 재능이 없을 수도 있지만, 결코 저속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엉터리면 엉터리다워야지, 그 엉터리가 B급 영화처럼 뭔가 그럴 듯해보이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진다. 학계라는 폐쇄적인 테두리 바깥의 사람들과 함부로 어울려서도 안 되고, 그런 바깥의 것들에 오염되어 뭔가 엉뚱한 일을 벌여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는 학자(學者)라는 유형에 별로 걸맞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른바 '좌빨' 부류로 통하는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의 칼럼 또는 인터뷰 기사를 즐겨 읽는 반면에, 동료 학자들의 논문은 거의 읽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다. 최근에 진보정당이 비판의 십자포화를 받는 상황을 보며, 한편으로는 그들이 잘못한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힘도 없는 자들을 이렇게까지 온 국민이 극성스럽게 짓밟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반감을 갖는 걸 봐도 그렇다. 학문적인 것과 비학문적인 것을 뒤섞기 좋아하며, 호머나 소포클레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을 때에는 그 고상하고도 웅장하고 비극적인 스토리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데,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 같은 통속영화를 볼 때면 그 유치한 이야기에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나는 학문적 이상에 적합하여 학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촉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 엘리트 학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약간 삐딱하고 아웃사이더적인 성격의 소시민적 속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어쩔 수 없는 학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따금 들어오는 언론, 특히 방송 쪽의 모든 요청을 다 거절하고, 짭짤한 돈벌이가 되는 외부 연구과제 같은 것에도 별다른 흥미가 없으며, 요즘 현실적으로 크게 문제되는 것보다는 항상 교과서적이고 이론적인 부분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을 보더라도 그렇다.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만 많을 뿐이지, 당장 행동을 통해 뭔가를 이루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어느 정당에 대해서도 별반 애정을 갖지 못하며, 모든 정치적인 것에 대해 비참여적이고 냉소적인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사람 만나는 것보다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하고, 어느 조직에서든 감투를 쓰거나 완장을 차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나는 평생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쓸 팔자이다. 비록 정통파 학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쨌든 학자로서의 본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는 처지이다.
물론 고상한 학술애호가들 사이에서 칭찬 받고, 동료 학자들로부터 존경을 받거나 인정을 받는 것따위는 애초에 포기했다. 나는 오히려 학문으로부터 소외되고 지식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쉽고 간단한 글로 다가가려는 쪽에 더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대중적이고 달콤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나는 오히려 대중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그들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면서 그들로부터 욕을 먹는 쪽에 더 큰 흥미를 갖고 있다.
누구에게나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능히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대중에게 충성한다거나, 대중의 요구와 완전히 일치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모범적이고 자기희생적인 품성을 갖고 있거나 위선적인 인간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는 일도, 권력을 잡는 일도, 드높은 명예를 누리는 일도,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전부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것뿐이다. 옛날 유재하의 노래처럼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 일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홈페이지에 자기 소개 글 하나를 써야 할 것 같아서, 오후에 잠깐 시간 내어 몇 자를 써보았다.)
허정
사람의 품위를 결정 하는게 결코 외적 조건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럼 답은 분명해진다.
결국 품위는 자기존재에 대한 당당함,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 통제력, 타인에 대한 정직함과 배려 같은 소프트웨어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왕이라도 전혀 품위가 안날 것이고, 이것이 있다면 직업의 종류에 관계없이
품위가 넘칠 것이다.
그럼 답은 분명해진다.
결국 품위는 자기존재에 대한 당당함,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 통제력, 타인에 대한 정직함과 배려 같은 소프트웨어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왕이라도 전혀 품위가 안날 것이고, 이것이 있다면 직업의 종류에 관계없이
품위가 넘칠 것이다.
2013-09-06
16:16:16
16:16:16
한연주
주인장님께서는 그냥 평생을 학자로서 사시기 바라겠습니다. 그것도 자기 잘난 맛과 겉멋에만 빠진 비주류적 학자로서. 작은 인간... ㅉㅉ
2013-09-06
21:56:34
21:56:34
옳곤
한연주님께/ 교수님한테 대체 뭘 더 기대하신다는 건지... -_-;
2013-09-08
02:00:09
02:00:09
松下道人
KNura 백경일이가 요즘 진보 좌빨 발언들을 많이 하면서 동료 교수들 사이에서 완조니 왕따를 당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ㅍㅎㅎ
아마도 여기저기서 까이고 나서 "나는 B급 학자밖에는 못되는구나"하는 자각을 갖게 된 듯한데,
제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KNura를 비롯한 얼치기 좌빨 학자들 가운데 "나는 B급 학자밖에 안 된다"고 말하는 인간들,
솔직히 말해서 전부 B급 학자는커녕 C급 학자, D급 학자도 못 되는 인간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겠습니다. ㅎㅎㅎㅎㅎ
원래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관대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하는 버릇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네까? 푸하하하하하하
아마도 여기저기서 까이고 나서 "나는 B급 학자밖에는 못되는구나"하는 자각을 갖게 된 듯한데,
제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KNura를 비롯한 얼치기 좌빨 학자들 가운데 "나는 B급 학자밖에 안 된다"고 말하는 인간들,
솔직히 말해서 전부 B급 학자는커녕 C급 학자, D급 학자도 못 되는 인간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겠습니다. ㅎㅎㅎㅎㅎ
원래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관대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하는 버릇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네까? 푸하하하하하하
2013-09-12
15:33:16
15:3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