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국가에서 근대화가 더 빨랐던 이유
2024-02-18 01:07:36

지난 2020년 독일에 연구년으로 체류하던 때, 오랫동안 벼르고 있던 Max Weber의 '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를 약 1주일에 걸쳐서 원어로 독파한 적이 있었다. 읽고 난 뒤에는 실망감이 적지 않았는데, 이는 그 길지 않은(190페이지?) 글 속에 베버의 설득력 있는 주장과 함께 설득력 없는 억지 주장이 마구 뒤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은 데 있었다.

합리적 추론과 실험을 중시하는 학문적 전통, 엄밀한 체계를 갖춘 민법, 합리적으로 계산 가능한 공식에 따라 작곡되는 음악 등이 서양에는 있었지만 동양에는 없었고, 이러한 차이가 서양과 동양의 물질문명 수준 격차를 만들었다는 베버의 주장 등은 물론 내게 금세 납득될 수 있었다. 하지만 베버가 그토록 강조했던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세속적 금욕주의, 구원예정설 등이 어떻게 개신교 국가들을 번영으로 이끌었는지에 대해서는 베버가 시종 견강부회의 논리만 반복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나로서는 눈쌀이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세계적으로 개신교 국가들의 1인당 국민소득이 가톨릭이나 이슬람교, 유교 국가들보다 훨씬 더 높은 게 맞긴 하였다. 하지만 "천국에 갈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시간을 돈으로 알고 근면하게 일하며 살라"는 Calbinism 교리가 개인의 영리추구에 더 부합했다는 이유만으로 개신교 국가가 가톨릭 국가에 비해 그토록 더 융성할 수 있었을까? 정말로 그러했다는 베버의 주장은 내게 그다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뭔가 원인과 결과가 거꾸로 된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이후 Horst Feldmann과 Robert Barro라는 경제학자의 논문을 읽으면서, 오랜 궁금증이 드디어 풀리게 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티즘을 받아들인 지역이 가톨릭 지역에 비해 빠른 경제성장을 보인 이유는 구원예정설의 차이가 아니라 바로 문자해독률(文字解讀率)의 차이에 있었다는 가르침을 늦게서야 받게 된 것이었다.

실제로 16세기 당시 제지 기술과 인쇄술의 발달로 대중에게 책이 공급될 수 있는 기술적 여건은 이미 서유럽에 완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때 가톨릭 지역의 민중 대다수는 여전히 성직자에게 종교적 가르침을 의존하여 굳이 성서 읽기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 반면 프로테스탄트 지역에서는 성서를 직접 읽고 그 뜻을 이해하고자 하는 민중의 열망이 매우 컸다. 이는 프로테스탄트 지역에서 인쇄물의 대량 생산과 교육의 대중화로 이어졌고, 여기서 시작된 지식혁명이 오늘날까지 누적되어 개신교 국가와 천주교 국가 간의 경제수준 차이를 낳았다는 것이었는데, 내게는 이러한 이론이 더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오늘은 책을 읽다가 문득 오백년 전 유럽의 제지공장 풍경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중국 한나라 시절의 채륜(蔡倫) 이래로 종이의 재료란 것은 결국 펄프와 물인데, 제지공장에 가보면 종이 만드는 데 들어가는 펄프의 양보다 물의 양이 100배는 더 많으며, 종이 만드는 작업은 곧 물과의 투쟁에 다름 아니고, 이는 중세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1493년에 출간된 '뉘른베르크 연대기(Schedelsche Weltchronik)'라는 독일의 그림책을 봐도, 종이 공장은 뉘른베르크 성 밖 멀리 물이 풍부한 강가에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 뉘른베르크 제지공장에서 엄청난 양의 종이가 만들어져 유럽 전역에 공급되었는데, 그때 뉘른베르크 인근의 남부 독일은 가톨릭 지역이었지만 (물론 뉘른베르크는 신성로마제국에서 루터교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도시였음), 여기서 만들어진 종이로 성서를 대량 인쇄하여 읽은 지역은 주로 북쪽의 프로테스탄트 지역이었다니, 역사는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설명1: 1493년에 출간된 뉘른베르크 연대기의 삽화. 그림 가운데 뉘른베르크 성곽이 보이고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그 성밖의 제지공장이 보인다. 당연히 제지공장 앞으로는 물이 흐르고 있다.


그림 설명2: 16세기 독일 함부르크 지역에서 어린이들이 책을 읽는 모습. 성직자를 통하지 않고 내가 직접 성서를 읽어서 이해를 해야 하느님 뜻대로 잘 살 수 있다는 프로테스탄트 교리는 신분의 귀천과 빈부를 가리지 않고 개신교 신도들이 문자를 배우려 애쓰게끔 만들었다. 실제로 프로이센과 스웨덴의 문맹 퇴치 캠페인은 그 지역의 개신교 종교 개혁을 더욱 강화하였으며, 1500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독일인이 문맹이었지만, 종교개혁 이후 단 몇십년만에 북독일 지역에는 학교 숫자가 거의 열배로 불어나게 되었다. 이때 프로이센을 비롯한 수많은 독일 분방국가들이 초등교육 도입 규정을 통과시켰다. 문자해독률은 가톨릭 국가보다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 더 많이 상승했으며, 프랑스, ​​아일랜드, 네덜란드와 같이 두 신앙이 공존하는 곳에서는 개신교 신자들의 교육수준이 일반적으로 가톨릭 신자들보다 더 높아졌다.


그림 설명3: 16세기 독일 뉘른베르크 제지공장에서 종이를 만들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 당시에도 제지공장에서는 악취가 무척 심하게 나서 초지기 노동은 매우 힘들고 더러운 노동에 속하였다. 그럼에도 당시 제지공장에서 종이를 만들던 노동자들은 이러한 종이로 만들어지는 책들에 대해 다른 노동자들보다 더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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