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영현 별세
2025-05-09 23:35:50


김영현 작가의 소설 '멀고 먼 해후'를 아주 좋아했다. 그 소설에서 주인공은 노조운동으로 체포된 다음 5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이 면회를 오자 그는 "더 이상 고통스러워 할 필요가 없다" "5년이라는 세월은 건너가기에는 너무도 넓은 강이다"라 말한다. 고개를 숙인 채 가늘게 어깨를 떨던 여인은 그 뒤로 그를 향한 발길을 끊는다.

5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의 모든 것은 진공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모든 빛깔은 흰색과 회색으로 분해되어 버린다. 터널을 지나갈 동안 모든 시간은 죽어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두터운 콘크리트벽, 열려진 공간마다 잘라먹은 창살, 하루종일 켜져 있는 30촉짜리 백열등, 뺑기통, 사물보따리, 가다밥...

그러한 5년의 세월이 다 지나고 갑자기 터널의 출구에 도달했을 때 그는 그 5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 유일한 끈이 그 여인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는 그 여인에게 편지를 쓰지만 곧 후회를 한다. 어떤 변화도 인정치 않고 그저 과거의 그림자를 길게 이쪽으로 끌어당기는 외람된 바람이었구나 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가 교도소의 철문을 나섰을 때 역시나 그녀는 나와 있지 않았고 그는 교도소 근처의 성당 밖을 서성인다. 겨울이라 강바람이 날카롭게 옷깃을 파고들며 맨살에 금속성의 한기를 부벼대고 그의 다리는 얼얼하게 굳어져 온다. 그는 한참을 배회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기분으로 성당을 나선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그림자처럼 나타나서 그의 팔을 슬쩍 잡는다. "여기서 한 시간이나 기다렸잖아요."


김영현 작가께서 오늘 돌아가셨다. 향년 70세. 그는 서울대 철학과 재학 중 학생 운동으로 옥고를 치렀고 군 복무 시절 광주항쟁이 일어나자 보안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그 후 출판사에서 일하게 됐고 여러 편의 시와 소설을 발표했다. 당대의 진보적 문인 가운데는 맑스 레닌주의 유물사관에 빠져든 사람이 많았지만 그는 유물론에 반대하는, 확고한 인문주의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영현 작가께서 부디 젊었을 때의 고통을 모두 잊고 좋은 곳에서 평안히 잠드셨으면 좋겠다. 이제는 이 세상을 뜨셨지만 그 분의 여러 작품이 나와 같은 소수의 애독자에게는 아직도 매우 훌륭한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을 저 세상에서나마 꼭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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