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8 09:40:52
민법을 공부하다 보면 사람들은 흔히 “그 결과가 공평한가?”에 먼저 주목한다는 걸 느끼곤 합니다.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로 인해 누가 얼마를 가져가고, 누가 얼마나 손해를 보는지가 가장 눈에 잘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은 단순히 어느 물건 가치를 어떻게 잘 나눌 것인가만을 다루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물건을 둘러싸고 누가 어떤 권리를 가졌는가, 그 권리를 갖기 위해 그가 대개 어떠한 비용을 치렀겠는가를 정교하게 구별하는 질서에 더 가깝습니다. 최근 대법원 2024. 6. 13. 선고 2020다258893 판결은 바로 그 점을 저에게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 어떤 건물들 위에 먼저 가압류등기가 이루어졌고, 그 뒤에 공동근저당권이 설정되었습니다. 이후 경매절차가 진행되자 대법원은, 공동저당물의 부담비율을 정할 때 가압류채권자가 현실적으로 배당받게 될 부분을 미리 고려하여 공동저당의 부담 자체를 조정하려 하였습니다. 쉽게 말해, “어차피 실제 배당에서는 가압류채권자가 일정 부분 가져갈 것이니, 그에 해당하는 공동저당물의 담보가치도 처음부터 그만큼 줄어든 것으로 보자” 한 것입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러한 접근은 상당히 공평해 보입니다. 실제 배당에서 가압류채권자와 공동저당권자가 경쟁하게 된다면, 그 현실을 미리 반영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가압류는 원래 담보제도가 아닙니다. 가압류채권자는 아직 우선변제권을 취득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장래의 집행 가능성을 보전받는 일반채권자에 불과합니다. 실제 거래실무에서도 채권자들이 단순한 가압류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굳이 저당권 설정을 받으려 하는 이유가 존재합니다. 가압류만으로는 다른 채권자들의 계속된 참가에 따라 자신의 현실적 배당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 원래부터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저당권자는 우선변제권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얻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합니다. 담보설정 협상을 하고, 담보가치를 평가하고, 등기를 마치며, 경우에 따라서는 보다 낮은 금리나 유리한 금융조건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특히 공동저당은 여러 부동산 전체를 담보로 제공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담보가치를 확보하려는 금융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담보가 충분할수록 금융기관은 더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려줄 수 있고, 채무자 역시 더 유리한 조건으로 신용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담보권이라는 것은 단순히 “먼저 잡은 권리”가 아니라, 위험과 비용을 계산하며 사전에 구입한 우선권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단지 가압류등기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공동저당물의 부담비율 자체를 수정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공동저당의 부담구조가 물권적 질서와 담보권의 순위에 의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가압류를 했는지, 누가 배당요구를 했는지, 누가 중간에 취하했는지와 같은 절차적·우연적 요소들에 따라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공동저당이 설정된 여러 부동산 가운데 하나에 후순위저당권자가 존재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공동저당권자가 어느 부동산에서 먼저 우선변제를 받느냐에 따라, 후순위저당권자는 다른 공동저당물에 대한 대위권을 취득하게 되는데, 이는 후순위저당권자가 공동저당이라는 구조를 전제로 자신의 담보가치를 계산하고 권리를 취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행 가압류의 존재를 공동저당물의 부담비율 산정에 직접 반영하게 되면, 그 후순위저당권자의 대위범위 역시 축소될 수 있습니다. 결국 아직 본안에서 확정되지도 않은 잠정적 보전권의 존재가, 이미 성립한 담보권자의 물권적 기대와 대위가능성 자체를 사후적으로 변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누가 얼마를 배당받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동저당이라는 담보구조를 전제로 형성된 후순위담보권자의 법적·경제적 기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물론 가압류채권이 허위채권일 가능성은 희박하고, 법이 실질적 관점에서 결과적 형평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형평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각 권리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사전에 얼마나 다른 비용과 위험을 부담했는지가 경시될 수 있습니다. 실제 사회에서 사람들은 아주 작은 권리 하나를 얻기 위해서도 수많은 계산과 협상, 비용부담을 감수합니다. 그런데 사후적으로 “결과가 공평해 보이느냐”만을 중심으로 권리구조 자체를 재조정하기 시작하면, 그러한 사전적 위험배분과 비용부담의 의미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이미 19세기 독일의 법학자 Walther Lang은 공동저당 문제를 단순한 추상논리나 형평의 산술문제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는 부동산저당제도를 토지소유와 신용창출의 경제적 기능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부동산이라는 물건 자체를 의인화(Personifikation der Grundstücke)하여 서로 부담을 정산하는 식으로 사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실제 인간들 사이에서 형성된 물권적 담보질서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법은 단순한 분배의 기술이 아닙니다. 단순히 “누가 얼마를 가져가느냐”만이 아니라 “누가 어떤 비용과 위험을 부담하며 그 권리를 확보했는가”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물건 자체를 둘러싼 분배형평만큼이나, 그 물건을 둘러싼 권리구조 역시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수님이 주장하는 '정교한 권리 질서'와 '법적 안정성'이란 결국 자본을 가진 금융기관과 기득권층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논리일 뿐이에요. 사유재산권과 권리구조도 중요하지만, 현대 사회국가에서 법은 '시장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을 도모해야 해요. 가압류채권자가 현실적으로 배당받을 몫을 고려해 부담을 조정한 대법원의 판결은, 거대 금융기관(공동근저당권자) 중심의 획일적 질서에서 벗어나 실질적 형평성을 추구한 진보적인 시도로 평가되어야 해요.
16:49:14

"부동산저당제도를 신용창출의 경제적 기능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부동산을 자본가들의 '신용창출(대출 및 금융 투기) 도구'로 보는 시각 자체가 국민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거에요.
교수님은 인간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협상하며, 비용과 위험을 사전에 구입하는 독립된 개인(또는 법인)'으로 상정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본래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에요. 본래는 자기 개인 이익보다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의 공생을 우선하면서 살아갔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에요.
모든 법적 분쟁 사안은 예측 불가능한 사태나 사회적 변동으로 발생해요. 이런 때 권리질서나 위험비용의 측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철저히 기득권 편향의 문제 해결일 수밖에 없어요. 무엇이 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상생할 수 있게 하는가의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해요. 권리에 앞서 분배를 공평하게 조정하는 것이 공동체의 유대를 지키는 길이에요. "사전 계산이 흐트러진다"는 이유로 사후적 형평을 무시하는 것은 공동체적 정의에 반하며, 법의 기본원칙에도 반하는 사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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