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동안 경쟁력 있는 엘리트양성을 경멸해온 우리의 대중지향적 법학교육제도를 모험적으로 개혁하고 있다." "짜이트"지의 발기인 게르트 부체리우스(80세)의 이러한 구호가 함부르크에서 실현되고 있다.

2000년 10월 1일 새로운 사립 법학교가 함부르크에서 문을 여는 것이다. 함부르크의 옛 식물원은 사립 법학교에 자리를 내주고 플롯벡으로 새롭게 옮겨간다. 옛 식물원건물의 오래된 유리창은 이제 신설되는 사립 법학교의 이름으로 새롭게 빛나게 되었다.

게르트 부체리우스 로스쿨은 재단이사장인 하인 쾻츠 교수의 뜻에 따라 실무지향적인 교과과정을 제공하는 새로운 의미의 법과대학이다. 12명의 교수와 30명의 강사들은 학생들에게 법학의 전문지식과 함께 광범하게 전문화된 일반교육을 전수한다(예를 들어 교과과정 속에는 컴퓨터 화상 커뮤니케이션교육이 포함되어 있다). 학생들은 10학기의 수업을 3년 반동안 이수한 뒤 엘리트 법학실무석사(베이철러)가 되며, 실무석사학위 취득 외에도 1년 동안의 석사후연수과정을 받도록 되어있다.

겨울학기마다 100명의 새로운 수강생들이 입학해 이러한 과정들을 수료받게 된다. 그 계획에 따르면 한 강좌에 최고 400명의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국립대학의 대규모 대중교육과는 대조적으로 조그마한 스터디그룹을 통한 교육과 함께, 학부시절부터 모든 학업의 일상에 거의 박사과정생과 같은 수준의 지극히 개인밀착적인 지도가 베풀어진다.

물론 이러한 모든 서비스는 그에 대한 대가를 필요로 한다. 한 학기에 5,000마르크(약 300여만원)의 등록금을 지불해야 하고, 졸업할 때까지 도합 50,000마르크(약 3,000여만원)의 비용을 등록금으로만 투자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미국 영국 사람들로서는 그리 비싸지 않은 비용일지 모르나 대학교육이 공짜라는 관념에 익숙한 독일인들에게는 실로 놀라운 액수임에 분명하다. 거기에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 해외에 나가 거기서 또다른 엘리트 법학자 코스를 밟는 것이 이 학교에서는 권장되고 있으므로(가령 일곱번째 학기쯤 해서는 반드시 해외에서 한 학기를 이수해야 하는 것), 이러할 경우 학생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지원자들은 이러한 비싼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매우 여러 단계에 걸친 선발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구술시험과 필기시험에 합격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타 그 학생의 사회적인 역량까지도 모조리 검토된다. 지원서는 벌써 지금 발부되고 있는데 3월 31일날 문을 닫는다고 하는 입학지원창구는 지금 독일 전역에서 몰려드는 학생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교수진은 벌써 짜여져있다. 외국 로스쿨과의 자매결연도 조만간 무더기로 성사될 예정이다. 독일대학 치고는 높은 등록금부담이 있는 만큼 까다로운 입학절차를 통과한 모든 학생들에 대해서는 확실한 학습공간을 보장해줄 예정이며, 가정형편이 불우하지만 우수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재정보조도 계획되고 있다.

물론 학생들은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변호사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독일의 사법고시는 한국처럼 그리 어렵지도 않고 운에 의해 당락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수준의 실력이 증명되면 누구나 합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로스쿨에 입학할 정도의 우수한 학생들이라면 독일 사법고시가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로스쿨에 한국학생이 유학하는 것도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대답은 물론 가능하다는 것이지만, 여간 독일어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고서는 이 로스쿨의 입학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군다나 이 로스쿨에 입학한다고 해도 어차피 독일의 사법고시에 합격해야 한다면 굳이 비싼 등록금까지 납입해가며 로스쿨에 진학할 필요가 있는가는 회의적이다. 독일의 일반대학에 들어가면 거의 공짜로 공부할 수 있는데 말이다.

국비장학금을 받아서 유학 올 수도 있지만 이왕 국비장학금을 받게 됐다면 미국 로스쿨로 가서 얼렁뚱땅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낫지 독일 로스쿨에 와서 무려 10학기의 수업에다가 사법고시까지 봐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독일의 사법고시는 아무래도 미국 변호사시험보다는 더 어렵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또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함부르크에 로스쿨이 생김으로 해서 이제 독일이 영미법체계로 완전히 돌아서는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요즘 일본의 동경대, 와세다대, 중앙대 등이 로스쿨을 설치하기로 발표한 것과 맞물려 굉장히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를 문제인데, 지금 현재의 분위기로 봐서는 함부르크 로스쿨에서 영미법 위주의 교육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돈을 좀더 비싸게 받아먹고 대신에 좀더 밀착지도를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지 가르치는 내용은 여전히 독일법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름만 로스쿨이지 실질을 보면 독일에 '사립 법과대학'이 생긴 것일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벌써 함부르크가 독일 법률가들의 새로운 메카가 될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들을 내놓고 있다. 함부르크 로스쿨이 독일 각지의 법과지망 수재들을 싹쓸이할 경우 독일 전후사상 유례 없는 법조계 엘리트코스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독일 최초의 로스쿨로 기록될 게르트 부체리우스 로스쿨이 독일법과 영미법의 통합은 물론 독일교육제도와 영미교육제도의 통합이라는 충격적인 의미를 앞으로 내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재 독일 법학계는 함부르크 로스쿨의 성공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독일 법학교육이 얼마나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인가를 벌써 예고하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2000.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