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부터 독일에는 마치 우리나라처럼 법학교육개혁의 논의가 활발하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거의 완벽한 것이나 다름없는 시스템인데 더 개혁할 것이 있을까 의아해질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독일인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독일법학교육은 국가에게 너무 많은 비용을 부담시키는 데다가 사회와의 유기적인 연결과 소통의 노력이 부족해서 개혁의 여지가 적지 않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전체 커리큘럼에서 변호사실무에 필요한 기술교육의 비중이 너무 작고, 교육연한이 너무 길며, 법과대학생의 숫자가 너무 많고, 국가시험이 법률시장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독일 법학교육 개혁의 논의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독일법학교육의 시스템부터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일단 독일의 대학에는 비단 법대 뿐만 아니라 모든 학과에 교양학부과정이란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고등학교의 수업연한이 다른 나라보다 1년 더 길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경우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양과정을 고등학교에서 다 끝내고,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바로 전공수업(우리나라로 치면 대학 2학년과정)에 들어가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독일대학을 졸업하는 데는 최소한 5년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독일대학 졸업학위(디플롬이나 마기스터)는 다른 나라의 석사학위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 그만큼 독일에서 대학을 졸업하는 데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거기에 비례해서 노력도 많이 필요하다.

독일에서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어려워봤자 얼마나 어렵겠냐고 코웃음을 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이게 알고보면 장난이 아니다. 철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의 경우 겨우 10퍼센트, 사학과, 독문과, 사회학과의 경우에는 20퍼센트, 교육학과, 정치학과는 25퍼센트, 수학과의 경우 30퍼센트, 전산학과, 경제학과의 경우에는 40퍼센트의 학생들만이 대학을 졸업해서 석사학위를 받아가고 있다.

나머지 학생들이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아주 못하는 학생들이냐고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일단 아비투어(대입 예비고사)에 합격한 학생들이니 대략 독일학생들 가운데서 20퍼센트 안에는 들어가는 학생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들 가운데 대다수가 이렇게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있으니, 웬만하면 모두 졸업을 시켜주는 우리나라나 미국, 일본의 대학과 비교해봤을 때 대학문화 자체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다른 재능이야 어떻건 간에 국가시험 성적에 따라 모든 직업적 전망이 좌우되는 독일 법학교육의 현실에서 이러한 요구는 독일 학생들에게 소귀에 경읽는 소리일 뿐이다. 독일의 국가시험은 합격 불합격 자체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 대신 성적이 크게 중요하고, 이 성적에 외국어 회화능력이나 경제적 마인드, 현장실무감각 같은 것은 거의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99년(작년) 11월에는 독일 16개주의 법무상들이 모여 지금까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어온 현장실무교육을 앞으로 대학교 내의 정규교육과정 속에 흡수시키고, 법대 정원을 3분의 2로 줄여 2차시험에 합격한 모든 법대졸업생들이 법률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하자고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양적 팽창 위주로 나아가던 법학교육을 질적 내실 위주로 전환하고, 사법시보제도를 폐지해서 6천억원의 국가예산을 감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에 대해서는 "도대체 어떻게?"라는 의문이 제기되었고, 아직 뚜렷한 대안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다.

일례로 독일변호사회는 독일대학이 과연 제대로 된 현장실무교육을 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를 표명하고 있다. 독일 법대에서 교수들이 요구하는 가정과제물은 학생들에게 정형화되고 교과서적인 답안만을 요구하고 있고, 학생들은 심지어 과외학원(레페티토리움)에서 족집게 문제풀이 강의까지 듣고 있는데, 이는 더욱 학생들의 실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교수들 역시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아주 냉소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독일 국가시험의 1차시험 자체가 단편암기식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교수들이 강의하는 법률지식은 수험생들에게 필요하긴커녕 전혀 이롭지도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국가시험에 반드시 고득점으로 합격해서 최소한 10퍼센트(천명) 안에는 들어야만 교수나 판검사, 행정관료, 로펌 변호사가 되어 명실상부한 엘리트 법률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법률시장에서 요구하는 것은 제쳐두고 단편암기식의 공부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대충 짐작이 가겠지만, 독일 국가시험에서 10퍼센트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법고시에서 300명 안에 들어가는 것과 거의 맞먹을 정도로 어렵다. 독일 인구가 대충 8천5백만 정도이고, 매년 독일 법과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상당수가 각주에서 난다긴다 하는 학생들임을 감안하면(독일은 모든 법대가 명문대이다), 이 중에서 천명 안에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독일변호사회의 요구는 학생들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변호사실무에 대한 감각을 이미 학부시절부터 익혀야 한다는 것이 변호사회의 주장인데, 실제로 많은 법대생들이 대학 초년시절부터 현장실습을 통해 실무감각을 익히고는 있지만, 문제는 이렇게 익힌 실무감각이 국가시험의 고득점에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따라서 자브뤼켄 법과대학 같은 경우는, 대학신입생들에게 아주 어려운 적성시험(미국식의 LSAT와 유사한 시험)을 치르게 해서, 싹수가 안 보이는 하위 20퍼센트에서 50퍼센트 정도를 아예 일찌감치 잘라버리고, 나머지 학생들은 불필요한 경쟁 없이 폭넓은 실무실습을 쌓게 하려고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시도가 법대생들로 하여금 폭넓은 경험과 교양을 쌓도록 만들 것이라는 기대는 무망한 것인 게, 살아남은 학생들간에 또다시 순위경쟁이 치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아둬야 할 것은, 독일 법과대학들의 이런 문제점들이 우리나라 법대에 비교해보면 문제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독일대학의 법학교육은 우리나라와 비교해볼 때 훨씬 실제적인 문제에 연결되어있고, 교수들의 학생지도 역시 훨씬 밀착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든 법대 신입생들은 입학하자마자 교수들이 내준 숙제를 풀기 위해 법원에 달려가서 재판과정을 낱낱이 참관해야 한다. 판검사들은 재판이 끝난 뒤에도 학생들의 온갖 유치한 질문공세에 일일이 대답해야 하는 곤욕을 치른다.

거기다 각 지방법원에서 중요한 법률문제가 다뤄지는 모든 사건은 학생들에게 리포트 과제물(하우스아르바이트)로 일제히 나뉘어진다. 학생들이 그 과제물 작성을 위해 온갖 머리를 짜내어 제출한 싱싱한 아이디어는 교수들의 학술논문에 반영되고, 학계는 물론 실무계에서 이를 두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진다. 이렇게 모든 재판은 벌써 대학강단에서 거의 모든 것이 심도 있게 토론되고, 이것이 실무에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것이다.

국가시험도 매우 합리적으로 실시된다. 오지선다식의 객관식 문제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고, 필기시험은 철저히 케이스풀이식으로 이루어져 입체적이고 종합적이고 실제적인 능력을 평가한다. 필기시험이 단편적인 지식만을 평가하는 식으로 실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기시험만 합격한다고 끝이 아니다. 학술적 주제에 관해 논문도 한 편 써서, 법학에 관한 심오한 이론의 개발능력도 평가받아야 한다. 며칠의 요행이 아니라, 평소의 실력 내지 내공을 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구술시험을 봐서, 단 한 개의 개념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놓고 있는지를 철두철미하게 검증받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국가시험을 보니, 시험기술에 능한 사람들보다는 학문으로서의 법학분야에 깊이 있는 사유능력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고득점으로 합격하게 된다.

독일의 거의 모든 교수들이 국가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인 것처럼, 독일의 거의 모든 고위 판검사들은 최소한 박사학위 정도는 가진 사람들이다. 교수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실무현장 경험을 갖고 있는 것처럼, 독일의 거의 모든 판사들은 무게있는 학술논문을 집필하거나 어린 학생들 앞에서 진땀 흘려가며 강의를 해본 경험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장 실력 있는 교수들은 대개 판사를 겸직하거나 언제든지 판사직에 임명될 수 있는 사람들이고, 가장 촉망받는 판사들 역시 대학강단과 학계에서 큰 각광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더군다나 독일의 법조계는 우리나라에서 서울법대가 독식하고 있는 것처럼 어느 한 법과대학 출신의 독주가 없기 때문에, 선배니 후배니 동기니 해가면서 인맥과 정실에 의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없다. 철저히 이론과 법률지식에 의한 대결이 이루어지고, 법조삼륜과 학계간에 칼같은 상호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수건 판사건 나태해질래야 나태해질 수가 없다.

이렇게 법률가라고 하면 평생공부를 해야 하는 사람들로 인식이 박혀 있기 때문에, 고시공부라는 명목으로 학부시절부터 공부에 찐을 빼는 그런 소모적인 행태는 독일 법과대학에서 찾아볼 수 없다. 내 주위의 어린 학부생들 역시 고시준비에 그리 찌들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 효율적인 학습과 토론을 통해 다들 웬만한 전문지식과 논리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국가시험에 대해서도 별로 그렇게 걱정하지 않는 모습들이 매우 부러웠다. (우리나라 법대생들이 국가시험에 대해 마치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처럼 거리감을 느끼거나 어마어마한 공포심을 느끼고 있는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

변호사 실업자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정규직이건 임시직이건 대충 웬만하면 취직도 다 되는 것 같았고, 수입도 그만하면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물론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법률가라는 직업 자체가 갖는 사회적인 권위도 상당하다. 지금 독일 수상인 게르하르트 슈뢰더도 변호사 출신이고, 기타 독일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중요인물 대부분이 판검사, 변호사 출신임을 보아도 독일에서 법률가가 얼마나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독일의 법조개혁이란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금팔찌가 너무 초라하다고 다이아몬드팔찌로 갈아치우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배부른 개혁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혹자는 독일에서 사법시보제도가 없어지고 법과대학에서 현장실무교육을 흡수한다는 것만으로, 독일 법과대학이 곧 로스쿨로 바뀌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그 어느 경우라도 독일대학이 민법전, 형법전, 헌법전 등의 실체 성문법교육을 교과과정에서 축출하고, 그 대신 논리학이나 수사학, 웅변술과 소송법 등을 비싼 돈 받고 가르치면서 교육연한도 3년으로 단축하는 식의 법학교육개혁을 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독일의 법학교육이 경제학을 비롯한 기타 사회과학과 외국어능력 및 특수법영역을 교과과정에서 더욱 중시하고, 현장실무를 더 강화하며, 입학정원도 현실화하는 방향으로 자기개혁을 이루어나갈 것은 거의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자국 법률가들이 더 나은 국제경쟁력을 갖고, 더 나은 고객써비스를 할 수 있도록 뼈를 깎는 자기혁신을 모색하고 있는 독일의 노력을 보며 우리나라도 좀더 많이 변화의 자극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잠시나마 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