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예감


일본에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방사능누출 등으로 인한 재해가 일어나고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민주화 시위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서방의 개입 여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는가 하면,
우리나라 KAIST에서는 연쇄적으로 학생들이 자살하고 이에 대해 신자유주의식 대학개혁이 잘못 되었다느니 소통이 문제였다느니 하는 등의 말들이 쏟아지다가 점차 그런 말들도 흐지부지 되어가는 과정들을 보면서,
요즘 내가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그 엄청난 사건들과 그 사건들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가는 과정보다
그 대단한 사건들이 어느덧 지식인들의 관심 속에서 사라지고
그 사건들이 가졌을 본래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들이 점차 포기되어가면서
그에 관한 애초의 문제의식들이 서서히 변질되어가는 현상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일본에서 자연재해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유출되고, 그러다가 이것이 동풍과 비구름을 타고 한반도로 날아오지는 않을까 겁을 내고, 정부의 안이한 대처와 말 바꾸기에 대해서 다들 화를 내다가, 독도 영유권 관련해서 일본에 대한 민족감정이 들끓어 오르면서
처음에 자연재해와 원자력발전에 대해 가졌던 진정한 문제의식들은 모두 휘발되고,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뒤죽박죽이 되어버리고 마는 게 그와 같다.
튀니지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 수십년 독재정권을 뒤집어 엎고, 이러한 변화의 물결이 이집트로 이어지더니만, 리비아에서 카다피 독재정권이 이러한 민주화시위를 잔인하게 유혈진압하고, 이것이 내전으로 비화하다가, 이에 관해 미국이 개입하네, 반카다피군에 알카에다가 섞여 있네 뭐네 말이 많아지고,
결국은 지지부진하면서 죽도 밥도 아닌 게 되어버리고 있는 게 그와 같다.
KAIST의 연쇄 자살사건에 대해서는 뭐,
더 할 말이 필요하겠는가? 요즘은 뭐 서남표 총장이 밀어붙였던 징벌적 등록금제와 전면영어강의제를 폐지하고
각 대학교 별로 학생들의 자살방지를 위한 교수들의 학생면담을 강화하도록 한다든가, 뭐 이런 식으로 문제를 미봉(彌縫)하는 선에서 사태가 마무리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나는 이런 모습들을 보고,
이러한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해 단순히 그 엄청난 숫자들이나 선정적인 요소들만 가지고 흥분하기보다
그 진정한 의미들에 대해 이해를 해보고 그 문제의식들을 계속 견지해보려는 노력들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재의 서구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 주변부에서부터 이미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근대 산업혁명 이래의 착취적이고 소모적인 자연관(自然觀)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시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며,
중동의 이슬람세계가 드디어 오랜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대한민국에 여태까지 만연해온, 쥐어짜기 식의 경쟁적 교육시스템 역시
한계에 도달하였음을 보여주는 징조라는 점이 내 생각이다.

요 며칠 싱가포르에 좀 다녀왔는데,
머릿속이 지끈거리고 매우 혼란스러우며
뭔가 위기감 같은 게 느껴져서
상당히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고 왔었다.




댓글 7

Hans
Hans
냄비가 식어버리듯 치열한 문제의식이 다들 사라진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원자력과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이제 다들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정도가 되었다고 본다.

서남표같은 또라이가 다시 나올 일도 없을 것이고, 신자유주의적 대학개혁도 이젠 기세가 한풀 꺾인 게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중동이 잠 깨어 일어나는 것도 이젠 시간문제다.

냄비가 식은 것처럼 보이지만, 워낙 뜨겁게 달궈졌기 때문에 이젠 냄비가 예전의 냄비가 아닌 것이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무엇일까? 녹색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닐까?

근대와 중세의 장점만을 혼합한 새로운 유토피아의 출현?

나는 솔직히 자본주의의 대안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공산주의가 대안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너는 어떤 대안을 꿈꾸고 있는지 속시원히 한번 말해줬으면 좋겠다.
1stwhitewhale
1stwhitewhale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을 전유한 자본가 및 기업가계급이 사회적 재부의 대부분을 창출하므로, 가급적 그들이 더 많은 양의 자본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는 물론이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지원하고 협조하며, 그렇게 축적된 자본의 소유량에 따라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번영 정도가 계량화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전제가 이미 무너지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선진국들이 높은 생산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생산시설(생산수단)을 후진국으로 이전하기 시작한지는 오래되었고, 2009년의 금융위기 이후 통화가치가 급격히 추락하면서 금전자본은 점차 거품 취급을 당하고 있다.
1stwhitewh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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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존층이 파괴되고 이산화탄소에 의한 온실효과 등으로 이상기온현상이 벌어지는 데다, 석유의 고갈이 가시화되면서 더 이상 화석연료에 의한 에너지공급에만 의존할 수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선진국들의 경제성장은 한계에 부딪쳤고, 중국과 인도 역시 선진국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소비도 줄이고, 쓰레기도 줄이고, 생산도 줄이면서, 친환경적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될 판이다. 경제성장의 신화는 끝났다. 저임노동과 대량생산을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도 약발이 다한지 오래다. 원자력의 안전성 신화도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거의 끝장이 난 것으로 생각된다. 당연히 어마어마한 경제위기가 몰려오게 될 것이다.
1stwhitewh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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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경제는 거대자본이 아니라 가내수공업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귀농(歸農)이 늘어날 것이고, 풍력이나 조력발전소를 이용할 수 있는 해안가 도시들이 무수히 생겨나 그쪽으로 인구가 분산되는 반면, 서울과 같은 메트로폴리스들은 공동화(空洞化)될 가능성이 높다.

자본, 그 중에서도 대량생산설비나 내구성 없는 소비재는, 그것을 많이 가지고 있을 수록 짐이 되고 거추장스럽기만 하거나, 일순간에 휴지 또는 고물 덩어리로 변해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기술이다. 음식을 잘 만든다거나, 농사를 잘 짓는다거나, 기계장치를 잘 만진다거나, 외과수술을 잘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1stwhitewhale
1stwhitewhale
이번에 미국 유타주에서 달러화와 함께 금화를 유통시키기로 했다는데, 이를 계기로 하여 세계경제가 금본위제로 점차 전환되면,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달러화의 가치가 폭락하고, 전세계 임노동자들의 임금도 폭락하며, 화폐거래가 줄어들고, 물물교환의 비중이 늘어나게 될 수도 있다.

화폐보다 물자가 더 귀해지면, 화폐가 집중된 대도시보다 천연물자를 많이 생산하는 지방의 힘이 더 강해지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전기 에너지와 공업생산능력이 풍부하지 않다는 게 드러나면, 다들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투자하고 절약하는 데 정신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물량공세를 잘 하는 사람보다는, 고급화를 잘 하는 사람이 더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대기업은 쇠퇴하고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들이 더 늘어나게 된다. 지금은 물론 수도권 대도시와 대기업의 힘이 하늘을 찌를 듯하지만, 수도권중심의 대도시 소비생활과 수출중심의 대기업 고액연봉이 각광 받는 시대는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본다.
1stwhitewh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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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도 발상을 전환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여태까지의 교육은 대량의 지식을 단기간에 암기한 다음, 그것을 무기로 경쟁자들을 밟고 올라서게 하고, 한정된 자격증을 취득시켜서, 국가 중심부의 권력, 즉 공공자본이나 사적 대자본의 한 자리를 틀어쥐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먼저 보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먼저 가는 자가, 거의 자기 개인의 노력과 인품만으로 소규모 공동체에서 인정을 받는 시스템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팔꿈치를 휘두르며 경쟁하는 능력보다는 블루오션을 발견하는 능력, 즉 창의력과 혁신적 사고력을 함양하는 방식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하고, 공동체에서 자유롭게 맨투맨으로 이루어지는 수평적 인간관계를 잘 맺는 능력, 즉 의사소통능력을 함양하는 방식으로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대량의 지식을 암기하고 피라미드 같은 관료적 시스템에 편입되어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 술수 부리는 능력보다는 개인적인 통찰력과 상상력,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추상화능력, 그리고 감성적 언어능력과 소통능력을 가진 자가 더 각광을 받게 되는 게 앞으로의 세상이다. 그러니 우리 교육도 그런 방향으로 철저히 전환되고 개혁되지 않으면 안 된다.

KAIST는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교육을 개혁했기 때문에 그렇게 큰 부작용을 일으키고 난리가 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어떤 방향이 진정으로 옳은 방향인지,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stwhitewhale
1stwhitewhale
댓글이 너무 길어졌으므로, 독립한 글로 다시 올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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