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법률학회 2011 춘계학술대회 후기


어제 한독법률학회 2011 춘계학술대회를 다녀왔다. 내가 그 학회에서 총무간사를 맡았기 때문에, 이번 학술대회의 경우 내가 이른바 '참가자측'이라기보다는 '주최측'에 속해서, 학술대회를 '다녀왔다'기 보다는 '치렀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학술대회 전날과 당일에 이런 저런 잡일들을 많이 맡아서 해야 했고, 그 덕분에 좋은 경험을 많이 가져볼 수도 있었다. 학술대회 주제는 '독일의 법발전에 대한 최근동향'이었는데, 공법과 민법, 그리고 형법파트에서 한 사람씩의 발표자가 나와 발표를 하고 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대회가 진행되었다.

독일 공법발전의 최근 동향 --> 연세대학교 보건전문대학원의 정영철 교수님께서 발표를 맡아서 해주셨다. 정영철 교수님 특유의 자유분방한 개성과 철학적 취향이 강하게 드러난 발표로서, 비교법연구의 의의에 관하여 "사물들의 의미는 그 본질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물들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소쉬르의 명제, "모든 실재는 우주의 나머지 것들과 함께 짜여진다는 관점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화이트헤드의 주장 등을 발표문의 서두에 인용한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한국법은 한국법 나름의 본질을 갖고 있고 독일법은 독일법 나름의 본질을 갖고 있으므로, 한국법은 한국법만의 갈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고, 독일법은 독일법만의 갈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며, 독일법은 한국법에 대해 단지 참고의 가치만을 가질 뿐이라느니 하는 최근에 팽배한 견해들에 반박하여, 독일의 쾰른대성당에서이든 한국의 63빌딩에서이든 한국법전과 독일법전은 그 무게나 질량, 부피, 연식 등에 상관없이, 모두 똑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섭리, 한국법이 한국법의 길을 가고 독일법이 독일법의 길을 가는 것은 그 각자의 본질 내지 민족정신이나 민족혼이 그렇게 명령하기 때문이 아니라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하여 이 우주 내의 그 무엇인가가 밀고 끌고 잡아당기기 때문에, 또는 사회과학의 일정한 법칙에 의하여 그러한 변화 발전이 요구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며, 거기서 일정한 차이점이 발생하는 것은 각자의 유적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적, 공간적 관계와 전체구조 속의 포지션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화두, 그동안 우리의 법학적 사고를 지배하던, 일국적이고 폐쇄적인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졌다고나 할까. 어쨌든 재독한인 가운데 최고의 지성 중 한 분인 송두율 교수님의 말씀들도 발표 중에 원용되고 있었고, 최근의 가장 뜨거운 쟁점들인 직접민주주의와 소셜네트워크의 문제, 그리고 토론자이신 최윤철 교수님께서 특별히 관심을 보이신 다문화주의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깊이 있는 논의들이 오고 간 시간이기도 하였다.

독일 민법발전의 최근 동향 --> 독일 보쿰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신 고상현 박사님께서 발표를 맡아서 해주셨다. 최근 독일 민법전의 전면적이고 대대적인 쇄신에 관하여 그 상세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특히 상속법의 개정내용에 관해 많은 것을 세밀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소개해주어 참가자들이 요긴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독일의 경우 상속결격사유와 별도로, 유류분박탈사유를 더 폭넓게 규정함으로써 유언의 자유를 더 많이 보장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상속결격사유와 별도로 유류분박탈사유를 따로 규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가 있었고, 이에 대하여 토론자인 안병하 교수님께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상속결격사유가 충분히 광범하기 때문에 특별히 유언자의 자유를 추가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이의를 제기해주기도 하셨다. 김상용 회장님과 윤철홍 부회장님께서는 노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효도를 장려하기 위해서라도 유언자의 자유를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폭넓은 유류분박탈사유가 별도로 추가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주기도 하셨다.

독일 형법발전의 최근 동향 -->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김정환 교수님께서 발표를 맡아서 해주셨다. 김정환 교수님은 마치 TV 탤런트를 방불케 할 정도로 깔끔하고 날렵하며 스마트한 용모를 갖고 있는 분이었는데, 그 이미지에 걸맞게 매우 단정하고 세련된 매너로 발표를 해주셨다. 최근 독일형법학에서 첨예하게 문제된 여러 가지 논점들이 망라적으로 소개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플로어를 뜨겁게 달군 것은 '적대형법(Freindstrafrecht)'에 관한 논점이었다. 형법학에서 그동안 금과옥조로 여겨져왔던 죄형법정주의, 법치국가주의, 구성요건-위법성-책임의 원칙 등이 조직범죄 및 테러범죄의 증가 이후 점차 비현실적인 것이 되면서, 특정한 인적 범주의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입법정책적으로 부정하고 이들을 사회 또는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여, 이러한 인적 범주의 사람들에 한해서는 아직 범죄의 결과가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예방단계에서 고전적 형법이론에 의해 허용되지 않는 수단들을 과감히 적용할 수 있게끔 한다는 최근의 법현상을 묘사한 개념인데, 이는 Bonn대학교의 Günther Jakobs에 의해 처음 개념화되었다가, 학계에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결국은 대다수 법학자들로부터 그 개념이 이론적으로 기각되었던 바가 있다. 하지만 이론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실무적으로는 이러한 개념이 상당한 범위에 걸쳐서 적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주의를 환기할 만한 개념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발표들이 있은 다음에는 학회 원로이신 황적인 교수님의 격려사가 있었다. 이미 연세가 82세에 달하신 황적인 교수님께서는 별다른 준비도 없이 단상에 오르셔서 마이크를 잡으신 후, 한국법학의 발전에 있어서 독일법학의 이론적 계수가 결정적 비중을 차지했던 역사적 사실을 말씀하시면서, 특히 제조물책임법, 의료법, 스포츠법 등의 영역은 한독법률학회가 아니었으면 우리나라에 그 도입이 그렇게 빨리 이루어질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 등을 강조하시고, 한독법률학회를 반드시 부활시켜서 한국법학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힘있게 해주셨다. 그러한 말씀에 따라 그동안 휴면해 있던 한독법률학회가 이제는 꼭 부활되어야 한다는 결의로써 총회는 마감되었다.

이러한 한독법률학회 학술대회를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최근에 로스쿨의 격랑 속에서 잠시 좌표와 뿌리를 잃고 헤매던 한국의 법학자들이 다시 학문적 나침반과 계보를 찾고, 우리의 모법(母法)인 독일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동안 각 전공별로 흩어져서 독일법 동향을 백업하던 한계에서 벗어나 이러한 동향탐색과 정보공유의 작업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는 것 등이었다.

이제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한독법률학회가 옛날의 위상을 되찾고, 우리나라 법학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아울러 행사진행을 위해 함께 고생해준 숙명여대 학생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 싶은 바이다.





댓글 14

Hans
Hans
교수들에게 있어 학회란 곳은 학문연구의 장이라기보다 사교장이나 정치회합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한독법률학회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법학계에서 종래 주류의 위치를 점하고 있던 독일유학파 법학교수들이 최근에 로스쿨 여파로 한동안 움츠러들었다가

이제 슬슬 세력을 재규합하는 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갑자기 부활시키려는 음험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물론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만.
Hans
Hans
독일법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우리 법학에서 독일법학과 도그마틱의 비중은 지나치게 컸다고 보는 것이 세간의 중평인 것 같다.

최근에 우리 실무계와 법학계에서 이젠 독일법에서 벗어나고자, 민족주의적인 시각을 회복하고 영미법과 프랑스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독일법적 시각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그 당연한 반작용인 것이고.

만약 한독법률학회가 그런 도도한 흐름에 역행하여 독일법이론의 계수를 다시 확대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격이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한독법률학회를 이끌어 가시는 분들께서는 무엇보다도 겸손한 마음을 가지셔야 할 것 같다.

옛날처럼 다시 똘똘 뭉쳐서 주류의 자리를 회복하겠다거나, 세력화를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셔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사대주의적 인습에서 벗어나셔야 할 것이라는 충고를 드리고 싶다.

내가 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경일이 네가 그 학회에서 총무간사를 맡았다길래 우려가 되어서 하는 말이다.
Hans
Hans
본질에 의해서 사물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의해서 사물이 규정된다는 것도... 나로서는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먼저 각 주체의 본질이 정해지고 나서야 주체 간의 관계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치 각 원자와 분자의 본질이 정해지고 나서야 그들 간의 상호작용이 정해지는 것이고,

음식도 각 재료의 맛이 정해지고 나서야 그 각각의 재료가 어우러져 어떤 맛을 만들어내는지가 정해지는 것처럼.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오신 분들께서는 매사에 '관계'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관계'를 지나치게 중시한 결과,

각 민족의 주체성과 독자성이 말살되고 신자유주의가 전세계를 휩쓸게 된 것이 아닐까?

아프간파병과 이라크파병에 대해서도 주체적 관점은 소멸되고, 오로지 한미동맹관계를 중심으로 해서만 생각한 나머지,

온 국민의 주체적 열망을 도외시한 채 미국에 질질 끌려가기만 했던 노무현 정권의 과오도 그러한 '관계' 중심의 관점때문이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어쨌든 한독법률학회를 부활시키려 한다는데, 실무계에서든 어디에서든 그에 대한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을 것임을 경일이 니가 알아뒀으면 좋을 것 같아서 나도 한마디 하는 것이니 부디 불쾌하게 생각지는 말길 바란다.
1stwhitewhale
1stwhitewhale
Hans에게/ 관심을 갖고 좋은 충고를 해줘서 고맙다. 그런데 본질과 관계에 대해서 내 나름의 생각을 말하자면,

본질이 우선하고 관계가 그 다음인 것이 아니라, 본질 자체가 관계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음식재료의 짠맛도 그 반대되는 싱거운 맛이 있기 때문에 그 관계에서 짠맛의 본질이 규정되는 것이고, 음식재료의 단맛도 그 반대되는 쓴맛이 있기 때문에 그 관계 속에서 단맛의 본질이 규정되는 것이다.

'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너'가 존재해야 한다. '너'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나'가 의미를 가질 수 있고 그 본질이 정해질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법이 존재하고 그 본질이 추출되기 위해서도 다른 나라 법들과의 관계정립이 일단은 우선이다. 나 자신만 들여다봐서는 나 자신을 알 수 없다. 그렇듯이 한국법만 들여다봐서는 한국법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법학에서 쓰이는 법개념과 법률용어의 대부분이 실상은 독일법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법개념과 법률용어들을 사실상 전부 폐기한다면 모를까,

만약 그 법개념과 법률용어들을 계속 쓰기로 한다면, 그 연원을 일단 알고 나서야 우리나라 법에서 어떻게 변용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은 사대주의도 아니고, 패배주의도 아니다.
1stwhitewhale
1stwhitewhale
그동안 한국법학이 독일법학을 맹목적으로 추수하는 방향으로만 발전해온 측면이 없지는 않았다고 본다.

독일유학을 다녀온 법학교수들에 대한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 역시 그런 일부 현상에 따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법학이 독일법학을 과연 제대로 계수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독일법에서 뽑아먹어야 할 것을 과연 우리가 충분히 뽑아먹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 법에서 문제되는 것은 독일법을 철두철미하게 계수하지 않고 그 표면적인 것만 잽싸게 베낀 것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닐까? 영미법과 프랑스법도 좋지만,

우리 법이론의 주축이 되는 독일법이론조차 제대로 알지도 않은 상태에서 영미법과 프랑스법을 섣불리 끌어들이려 하는 것도 사실은 위험한 시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자동차회사가 독일에서 자동차기술을 전수받았으면, 일단은 그 기술의 뿌리를 뽑을 때까지 확실하게 배워보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그 뿌리까지 내려가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시 프랑스기술과 미국기술 등을 도입하기 위해 기웃거리게 되면, 영원히 그 자동차회사는 자기만의 원천기술을 개발하지 못한 채로 여기저기 해외기술이나 사다가 섞어 쓰며 우왕좌왕하는 신세로 머물게 될 것이다.
1stwhitewhale
1stwhitewhale
그리고 독일법학을 민사법, 형사법, 공법의 구분 없이 종합적으로 연구해본다는 과제는 꼭 독일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만의 과제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위를 어디에서 했든 간에 독일법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과제에 천착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를 그저 세력규합의 문제로만 파악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정치적인 관점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학문적 활동은 일단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독일은 미국, 중국, 일본 등과는 달라서 우리나라에 대해 정치적, 지정학적인 이해관계가 없다.

우리가 유독 독일법이론을 계수해온 데에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한독법률학회에서 뭐 높은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자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Hans 너의 오해에 대해서 내가 어느 정도 유효한 답변을 한 것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Hans
Hans
성의를 갖고 답변해줘서 고맙다 경일아. 나도 우려하는 마음에서 몇마디 한 것이지, 정말로 너같은 독일유학 다녀온 교수님들에게 자기들만의 세력화를 하려 한다거나 편협한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무가들의 시선으로 봤을 때 느닷없이 한독법률학회가 부활된다고 하면, 그걸 과연 긍정적인 쪽으로 바라보는 실무가들이 얼마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경일이 너도 생각해봤으면 하는 것이 나의 마음이다.

변호사들의 경우 대한변협을 정점으로 하여 체계적으로 변호사단체들이 구성되어 있고, 이런저런 쓸데없는 단체들이 난립하여 있지는 않다.

반면에 법학교수들의 경우는 뭐 그렇게 학회들이 많고 연구회들이 많고 단체들이 많은지,

만약에 독일법학을 연구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고, 모든 법률가들이 힘을 합쳐서 그렇게 조직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면, 한국법학교수회라든가 공법학회라든가 뭐 그런 큰 단체에서 조직적, 체계적으로 팀을 꾸려서 하면 될 일이지,

왜 이미 죽은 학회를 굳이 살려가면서까지 한독법학 운운하고 새로운 학회를 또 하나 만들어내서 연구자원을 낭비하려 하는지 그런 것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교수들은 유난히 남 가르치기를 좋아하고 남 머리꼭대기 위에 서기를 좋아하고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한다고 하던데,

그런 교수들 감투 자리 벼슬 자리 더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건지 하여튼 그런 오해(!)가 여기저기에 있을 수 있으니까 경일이 너도 대비하라는 차원에서 나도 고언을 했던 거다.
Hans
Hans
우리가 독일법을 계수한지도 벌써 반백년, 아니 일제시대부터 시작하면 거의 백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그동안 독일법을 철두철미하게 계수하지 못했다면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계수해야 철두철미하게 계수한 것이 되는 건지, 난 그것도 솔직히 궁금하다.

사골국물 우려내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독일법 독일법 그만큼 우려먹었으면 이제 고마해라 됐다는 말이 나올 때도 된 것이고,

마치 조선시대에 중국 성리학이 우리 지성계에서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해서 결국엔 우리 나라를 망쳤던 것처럼,

독일법이론도 지금 우리 법학계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이론적 다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유학파 교수들이 그런 흐름에 아랑곳 않고

기존의 자기네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해 도도한 진보적 흐름을 막아선다면 이것은 편협하고 근시안적이며 반동적 행태가 되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묻고 싶다는 거다.

오히려 우리 법에서 문제되는 것은 독일법을 철두철미하게 계수하지 않고 그 표면적인 것만 잽싸게 베낀 것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냐고 경일이 너는 말했는데,

경일이 너의 그러한 주장에 과연 우리나라 실무가들이 얼마나 많이 동의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우리 법의 대부분 문제는 우리 구체적인 현실과 상관없이

관념적이고 난해하며 경직돼있는 독일법이론을 우리 민중들의 법감정이나 민주적 정당성 같은 건 아랑곳않고 독일유학 갔다온 법학교수들이 막무가내로 도입하고 적용해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냐?
Hans
Hans
본질과 관계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다.

짠맛이 짠맛이기 위해서는 그 전에 먼저 싱거운 맛이 존재해야 하고, 그 관계에서 짠맛의 본질이 규정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소금의 본질은 소금보다 더 짠 것과의 관계에서는 싱거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냐? 이게 우리의 상식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느냐?

이런 식의 상대주의라면, 신(神)의 본질도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규정되는 것이고, 민족의 본질도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규정되는 것이고, 국가의 본질도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란 말이냐?

이러한 식의 극단적인 상대주의가 우리 사회에 몰고 올 폐해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봤는지?

예를 들어 전두환이나 이완용, 이토 히로부미, 히틀러와도 같은 절대악의 존재들에 대해서 "그런 자들도 관계 속에서 나름의 전혀 다른 본질을 가질 수 있지"라는 말을 하는 자가 물론 쿨한 존재일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런 식으로 쿨한 말이나 해대며 냉소하는 자가 우리 안중근 의사, 윤봉길 열사, 전태일 열사나 80년대 운동권 열사들이 한 것과 같은 애국적 실천을 몸 바쳐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관계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한 것과 같은 위대한 사랑의 실천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stwhitewhale
1stwhitewhale
진심 어린 조언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데 독일법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쪽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자유로워야 할 교수사회가 실무가들의 사회처럼 일사불란하게 결속되고 조직, 관리, 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너의 우려에 대해 나 역시 걱정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법의 대부분 문제가 다른 것도 아니고 독일법이론을 도입하고 적용했기 때문이라는 너의 생각 역시 나로서는 수용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사법부의 전관예우문제, 국회에서의 날치기입법문제, 등기부의 공신력 결여로 인한 우리나라 부동산거래의 불안정성문제, 국가보안법이나 사형제도의 존치로 인한 인권침해문제 등이 과연 독일법이론의 도입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독일법을 받아들였다고는 하지만 아직 한번도 제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독일법을 현학적이고 관념적인 이론의 틀에 묶어둔 결과 우리 사회의 기득권체제가 더 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다른 나라의 법을 계수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본질적인 절대악과 본질적인 절대선이 존재할 수 있다는 너의 발상 역시 나로서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듯하다.

본질의 문제를 그렇게 전면에 내세우게 되면 모든 게 권선징악의 문제로 환원된다. 관계 속에서 문제를 새롭게 이해하고 역지사지하는 가운데서 함께 변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은 나약한 타협책으로 폄하되거나 단기적 전술의 하나, 또는 이상론으로 치부되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애국적 실천과 사랑의 실천은 언제나 옳기만 한 것일까? 나는 천사의 본질, 너는 악마의 본질, 이러면서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개조하려 하거나 파괴 또는 배제하려 하는 실천이 갖는 위험성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애국이라 할 수도 없고, 사랑이라 할 수도 없는 것이다.
Hans
Hans
그래, 네 뜻은 잘 알겠다. 나도 너를 비난하고자 말을 꺼낸 것은 아니었으니까,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지는 말기 바란다, 경일아.

한독법률학회에서 경일이 니가 총무간사를 한다고 하면서 나한테 뭐 도와달라고 말한 것도 없고 내가 너한테 도움을 준 것도 없는데 이것저것 간섭하고 너무 부정적인 말만 한 것 같아서 너한테 진짜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을 관계중심으로만 바라보면 나는 무엇이고 공동체는 무엇인지가 점점 애매모호해지지 않을까?

경계도 범위도 없이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망만 무한히 펼쳐져 있고,

나라는 존재는 거기를 떠다니는 하나의 점일 뿐이며, 민족도 국가도 큰 의미가 없다고 보는 너의 생각은 너무나 허무하고 비현실적인 걸 꺼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의 중심축은 어디이고 나의 영토는 어디까지이고 내가 속한 민족, 내가 속한 공동체의 중심축과 영토는 여기까지라는 게 그래도 정해져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각자의 구역이 정해진다면 그 영역 내부가 그 영역 외부와 다른 어떤 성질을 갖는다는 게 확실히 정해져야 할 것이고,

그런 성질이 확실히 정해지고 그 성질이 점차 숙성이 되고 발효가 돼서 하나의 본질로 굳어지게 된다면

각각의 확고한 영역에서 숙성된 각각의 확고한 본질이 뿜어내는 향기와 그 향기가 서로 엮어내는 하모니가 더욱 풍성한 관계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본질과 본질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모든 것은 똑같음을 외치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본질 자체의 고유성과 그 경계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박쥐나 뜨내기, 앞잡이, 튀기, 스파이들이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어느 선진국이건 외국파들은 비주류이며 그들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외국유학파들이 득세하는 나라는 곧 후진국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임.)

여태까지 독일유학파 법학교수들이 욕을 먹었던 것은 우리 민족 본질 자체의 고유성과 경계선을 별로 고려함이 없이

그저 독일과의 관계에서 뒤쳐지지 않는 것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그렇게 욕을 먹었던 것이고.
Hans
Hans
논쟁이 길어졌구나. 어쨌든 내 생각은 그렇다. 마치 인간에게 있어서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듯이,

개념에 있어서도 본질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관계는 본질에서 연역되는 것이고.

세계사는 수많은 민족사들의 총합이며, 지도적 민족의 본질이 세계사를 이끌어 가는 것이고,

민족사는 민족정신이 연역된 것이며, 법 역시 민족정신, 그러니까 각 민족의 본질이 연역적으로 전개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독일법보다 우리법, 우리 민족의 선량한 풍속, 우리 민족의 위대한 본질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외국유학 출신 대학교수들이 왜 우리 민족의 아이큐가 세계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단연 최고로 높은지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는지... 그런 것은 생각해봤느냐?

다문화주의도 물론 좋다. 하지만 중심부와 주변부를 구별하고, 원점과 경계선을 구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상,

다문화주의보다는 민족중심주의가 더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태원이나 동두천에 국제연애하는 무리들이 솔직히 눈꼴 사나워 보이는 게 사실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리고 법의 본질은 역시 권선징악에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전두환이나 이완용 같은 넘도 어떤 면에서는 잘 한 것도 있을 수 있다' 같은 나약한 사고로는 그 어떤 정의도 실현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가정파괴범이나 연쇄살인범이라고 해서 착한 면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래도 그런 비본질적인 것은 무시하고 법을 집행하는 것이다.

마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프랑스에서 나찌부역자 수만명을 모조리 사형시켜버렸듯이.

민족의 이름과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할 것은 처단해야 하는 거다. 사소한 미덕 같은 것은 짓밟고 넘어갈 수 있어야 법이 바로 서고 역사가 힘 있게 전진한다.

경일이 니가 총무간사를 맡았다고 하는 한독법률학회도

이제 외국법의 도입기를 지나서 자국법의 성숙기로 넘어가고 있는 우리 민족법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마치 당랑거철과도 같이 시대착오적 역할을 하려다가 무자비하게 깔아뭉개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松下道人
松下道人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웃기는 논쟁을 벌이고 앉아 있군요. KNura가 하는 말이 사실은 더 웃깁니다. 본질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 우하하하.

제가 항상 말했지요. '관계'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약한 넘들에게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말입니다.

제 말이 잘 이해가 안 가시면, 아프리카 밀림에, 그것도 사자 집단에서, 우두머리 사자를 한번 보세요. 우두머리 사자가 어디 '관계' 같은 거 신경 쓰는 거 보셨습니까? 지 본성대로, 본질대로 걍 밀어붙이면서 사는 거지요. 우하하.

이번에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 잡는답시고 저질러논 무식한 짓들을 한번 보시기 바라겠습니다.

파키스탄과의 원만한 외교관계니, 서로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국제관계니 이딴 거 완조니 생까고 헬기랑 특전병력 투입해서 대놓고 깡패짓해버리는 거 그걸 한번 보시라 이 말이에요.

미국이 그따우로 무례하게 나온다고 해서 미국이란 나라의 의미나 본질이 어디 다운그레이드 되는 거 한번이라도 보셨습네까?

파키스탄도 미국의 주권침해에 대해 미온적으로만 항의할 뿐이고, 다른 나라들은 오히려 더 쪼그라들고 있지 않습네까? 그게 어디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그런 겁니까? 미국의 어마어마한 힘때문에 그러한 거시지.

이 세상에 진정한 관계란 것은 어디까지나 '세력관계' 그거 하나 밖에 없는 거입네다. 그리고 모든 세력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힘(power)'라는 본질 뿐인 거입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물들의 의미가 그 본질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물들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규정된다? 우하하.
松下道人
松下道人
제 말을 똑똑히 명심해두세요. '관계'라는 거 별 게 없습네다. 본질과 본질은 언제나 서로에 대해서 누가 누가 더 쎈가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고,

'관계'란 것은 그러한 본질과 본질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파생하는 부산물 정도일 뿐인 거입니다. 더 쎈 본질을 가진 넘이 더 약한 본질을 가진 넘을 지배하는 연결고리 정도에 불과한 것이지요.

주변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 권력과 돈, 그리고 좋은 유전자와 같은 좋은 본질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돈, 그리고 좋은 유전자와 같은 좋은 본질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주변인들이 무릎을 꿇는 식으로 이른바 '좋은 관계'가 형성되는 거입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네까? 우하하.


그런 의미에서 한독법률학회라는 것도 톡 까놓고 보면,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법으로 유학공부하고 돌아온 인간들이 자기네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어차피 대한민국은 약한 나라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빌미로 후장이나 따이고 뺨이나 쳐맞으면서 살 수밖에 없는 나라다, 그런데,

이왕이면 미국이나 일본, 중국이나 프랑스 등에 후장기브 알랑방구를 뀔 것이 아니라

자기네들이 유학 갔다 온 독일에게 더 많이 후장기브 알랑방구를 뀌자, 하며 한 데 모여 엉덩이를 흔드는 모임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입네다. 우하하하하.

만약 한독법률학회에서 앞으로 한독관계를 한국이 리드하는 관계로 바꿔보겠다, 이렇게 선언하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과 독일의 본질이 그걸로 변하기나 할까요? 우하하하.

한국의 본질과 독일의 본질이 각각 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한가지 방법뿐이 없습니다.

한국이나 독일에 박정희나 비스마르크 같은 위대한 독재자가 나타나서 부국강병책으로 국력을 쫙 끌어올리면 민족의 에너지가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되어 본질이 쫙 업그레이드 되는 거시고,

좌빨들이 권력을 잡아서 퍼주기를 일삼으면 민족의 에너지가 비본질적인 부분으로 분산되어 본질이 다운그레이드 되는 거고 그런 거시지요. 그것 밖에는 한국의 본질과 독일의 본질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본질과 독일의 본질이 오로지 법학자들 간에 좋은 관계를 맺고 친선을 맺고 그런 유림질 말장난 하는 거 가지고 변할 리도 없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굴욕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는 한독관계를 한국이 주도하는 관계로 만들 만한 깜냥도 전혀 없는 것이 독일유학파들의 본질인 것이고,

그런 본질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무슨 학술대회를 한다는 것도 웃기는 삽질에 불과하다는 게 제 주장인 거입네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다들 잘 아시겠습네까? 우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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