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이 또 다시 찾아왔다.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오는 맹수 같은 군인들에 의해 개처럼 찢겨져 죽게 될 걸 알면서도 자기 생명보다 중요한 어떤 가치를 위해 그날 도청을 지키던 사람들이 있었다.

시민군 대변인으로서 외신 기자들과 인터뷰를 마치고 최후까지 자리에 남아 도청을 사수하던 윤상원 같은 사람은 결국 계엄군의 총에 맞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죽었으며,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은 체포된 후 광주교도소에서 단식농성 중 숨졌다.

김영철 같은 사람은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가 그 후유증으로 숨졌다. 수많은 광주 시민들의 피가 그 해 1980년 5월 광주의 담벼락을 적시고 냇물로 하수구로 흘러 들었다. 그 당시 나는 초등학생의 나이였다.

31년의 세월이 흘렀다. 또 다시 5월의 눈부신 그날이 찾아왔다.

그때 피 흘리고 죽어간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사람들이 그 사람들의 핏값을 챙겨먹고

자기 맘대로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여 거들먹거리거나, 깃발 펄럭이는 흉내를 내며 까불려 하고 있다. 물론 세상이 다 그렇게 돌아가지만,

나는 적어도 그런 짓은 안 하고 살리라는 다짐을 해본다.

봄볕이 따사롭다.

요즘 날씨는, 누구 말마따나, 따뜻한 햇살과 신선한 바람이 어울려 한바탕 춤을 출 모양새다.





댓글 2

곽종규
곽종규
광주민주화항쟁의 영령들을 정말로 기리기 위한 글인지,

아니면 그 분들의 고귀한 희생과 비교하여

'니들은 그만큼 희생한 적도 없는 주제에 뭘 잘났다고 깝치냐'는 식으로

진보진영 전체를 폄하하기 위한 글인지 딱 보면 그 의도를 알 수 있는 글이네요.

이런 말은 교수님께도 그대로 돌려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조국의 민주화와 서민의 복지를 위해 그 흔한 목숨 하나 바치시긴커녕

이명박 정권과 다국적 재벌기업의 노동자 착취, 소비자 착취에 대항하여 남들 다 하는 1인 시위 한번 해보는 거나

그 간단한 서명운동, 아니 그냥 학자적 양심 하나 지키는 것조차도 무서워서 뒤로 내빼신 주제에 뭘 잘났다고 그렇게 깝치시는 겁니까?"

이건 뭐, 군대 한번 안 갔다온 민방위 주제에 육군 현역병장출신들한테

"니들은 정보사 특수요원으로 북한에도 한번 안 갔다 왔으면서 뭔 군대타령이냐" 하는 거랑 똑같다고 하겠습니다.

일단 자기 자신부터 먼저 돌이켜보시기 바라겠습니다.

광주영령의 핏값을 챙겨먹은 자라구요?

어디 그 핏값을 이 홈페이지에 글을 남긴 그 어느 누구보다도 기득권층에 속하며 대자본을 편들어 푸들 노릇하려 하는 교수님 만큼이나 챙겨먹은 자가 있기야 하겠습니까?

나는 적어도 그런 짓은 안 하고 살리라는 다짐을 해본다구요ㅗ?

저는 적어도 교수님 같은 파렴치한 삶 만큼은 살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해봅니다.
곽종규
곽종규
질문 하나 드려보죠.

거룩하신 광주민주화영령들에게 과연

소비자보호법을 민법전에 편입시켜 민법을 더 사회법화하는 것이 좋으냐,

아니면 민법을 계속 부르주아지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법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으냐, 여쭈어본다면 그 분들은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물론 저도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거 압니다.

하루가 다르게 노동자 빈민들의 삶을 더욱 더 옥죄어 오면서 자기들의 잉여이익을 더욱 더 극대화하고 노동을 더욱 소외시키고자 기를 쓰는 자본의 전략에 맞서

분신자살이라도 한번 확 했어야 했는데, 그런 희생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저도 반성 많이 하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어린 대학원생으로서 교수님께 너무 심한 말로 무례를 저지른 점이 있다면 사과 드리고 싶지만,

교수님께서 느닷없이 광주민주화항쟁을 들먹이시면서 하두 어이없는 소리를 하시길래

저도 그에 대항하여 즉각적으로 튀어나온 말을 적은 것이니 부디 양해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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