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무슬림은 인간의 이성이란 게 인간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원인이라고 간주한다. 이성에 대해서 그토록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합리적 사고에 입각하여 이슬람 교리에 관해 비판을 하거나 질문을 하는 것에 대해 매우 타부시하고, 알라의 말씀에 대해 의심을 하거나 토를 다는 것에 대해 대단히 불온하게 생각한다.
반면에 기독교도들은 이성이 하느님을 제대로 믿게끔 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독교도들도 이성이 하느님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이성을 올바르게만 사용한다면, 신앙생활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이성 자체를 멀리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무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신학적 교리 역시 이성의 법칙에 입각해서 다듬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신앙이 이성을 완전히 초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독교의 이러한 이성중심주의에서 나온 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도들은, 인간이 존엄한 이유 역시 하느님이 인간에게 바로 이성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들은 이성이 없기 때문에 그저 본능에 입각한 행동만을 할 뿐이지만, 인간은 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연적이고 물질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인간은 하느님과 공통된 성질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14세기의 르네상스와 16세기의 종교개혁 이전까지만 해도 기독교 세계에서 이렇게 자유롭고 진보적인 사고의 흐름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반면에 이슬람 세계 내에서도 14세기까지는 위와 같이 보수주의적인 사고의 흐름만이 지배적인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8세기 초부터 등장한 Mu'tazila파는 그리스식 합리주의(특히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영향을 받아, '인간에게 있어서 의지의 자유 및 이성적 사고에 의한 발전이 가능하다'거나 '신은 코란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 바 있었고, 이들은 압바스朝 초기, 특히 알 마문과 알 무타심 시대인 9세기 전반부터 세력을 얻어, 10세기 중엽까지 크게 번성하였으며, 이후로도 계속 분화 발전하여 15세기까지 이슬람 세계의 지적 전통에 크게 기여한 바 있었다.
실제로 8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이슬람 세계를 보면, 궁핍하고 후진적인 서구 기독교 세계를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의 세련미와 활력, 그리고 다채로움과 풍요로움이 그 안에 있었음을 확인해볼 수가 있다. 아랍의 천문학은 당시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고, 아랍에서 완성된 대수학(al-jabr)은 오늘날 현대 수학의 바탕이 되었으며, 중국의 종이기술과 나침반기술은 그 당시 아랍에서 훨씬 더 발전되었고, 15세기까지 오스만제국의 부유함은 절정기의 로마제국을 능가할 정도였다.
압바스 제국의 치세가 절정에 달했던 786년~809년의 시기에는 페르시아에서부터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신속 정확한 우편제도가 제국의 구석구석을 연결하였으며, 인구 2백만의 도시 바그다드와 인구 백만의 도시 코르도바는 유럽 전체가 야만적인 무지와 항쟁 속에 빠져 있을 동안에 찬란한 학술과 문명의 횃불을 높이 쳐들고서 서방 세계를 비추고 있었다.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이슬람의 파샤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중해, 스페인은 물론이고 헝가리의 부다페스트까지 통치하였으며, 금발 머리 푸른 눈의 유럽 남녀들은 걸핏하면 아랍의 노예사냥꾼에게 포획되어 이스탄불이나 바그다드, 다마스커스, 카이로 거리의 한 가운데에서 발가벗겨진 채 헐값의 노리갯감으로 팔려나가기 일쑤였다.
14세기 유럽의 르네상스는 다름 아닌 이슬람의 정신적 영향력에 의해 촉발된 것이었고, 15세기 이후 로마법연구도 그때까지 이슬람 법학자들이 보관하며 연구하고 있던 유스티니아 대법전이 이태리에 전해짐으로써 촉발된 것이었으며, 커피 등의 고급 문화나 망원경 등의 발명품도 다름 아닌 이슬람에서 유럽으로 수입된 것이었다. 지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16세기까지만 해도 이슬람 세계는 기독교 세계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었고, 기독교도들 역시 그때까지는 자기네들이 이슬람인보다 더 후진적인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이러한 판도를 완전히 바꾼 것은 1325년~1524년에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부흥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코란의 해석이 동결되어버린 결과였다. 그 이후부터 무슬림의 지도자들은 알라를 믿되 질문은 하지 말 것을 모든 무슬림들에게 명하게 되었다. 알라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렇게 믿으면 될 뿐이지 거기에 의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알라에 대해서만 질문이 금지될 뿐이었지만, 나중에는 전 영역에 걸쳐서 질문과 의심이 금지되고, 극단적인 권위주의가 이슬람 세계를 휩쓸었다.
이로 인해 이슬람 세계에서 자유로운 지적 연구는 금지되었고, 무엇이든 새로운 길을 탐구하려 하거나 열정을 가지고 과학적, 철학적 진리를 모색하려 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과 추방이라는 형벌의 위협이 가해지게 되었다. 이로써 이슬람 세계는 급속히 경직화되어갔고, 불구화되어갔다. '인간은 신(神)이 미리 정한 운명의 궤도 밖으로 결코 나아가지 못한다'는 숙명론(宿命論)적 사고방식이 그때부터 이슬람 세계를 압도하였고, 16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은 급속히 쇠퇴하여 광활한 제국의 영토를 차례차례 잃어갔다. 1571년에 오스만 제국은 레판토 해전으로 지중해의 제해권을 상실하였고, 1699년에는 헝가리를 상실하였다. 1830년에는 그리스를 상실하였으며, 1878년에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완패하여 이스탄불 서쪽의 영토를 상실하였고, 1911년에는 이태리와의 전쟁에서 참패한 데다 1912-1913년의 발칸전쟁에서도 참패하여 유럽 내의 모든 영토를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 편을 들었다가 졸지에 패전국이 되어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요르단 등을 영국에 빼앗겼고, 그때 이후로 아랍과 페르시아 지역은 영국과 미국이 집중 관리하는 지역으로 전락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한편 이집트는 1799년에 나폴레옹에게 정복당했다가 독립하였지만, 1876년에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란, 이라크, 이집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이 독립하긴 하였지만, 오늘날 그 나라들 가운데 대부분은 산유국이며 1인당 국민소득이 꽤 높음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의 생활수준은 매우 낮으며, 대다수의 국민들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기아,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절대빈곤상태에 처해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는 약 10년 전부터 반성의 움직임이 이슬람 내부에서도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2003년에 요르단의 압둘라 국왕은 계몽과 이성, 그리고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14세기 이후부터 이슬람 세계가 이성과 자유의지를 떠나 숙명론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이슬람은 9세기~14세기의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황금기의 이슬람이 아니라 침체기의 이슬람으로 변모하여 기독교도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니, 이제는 무슬림들도 긴 잠에서 깨어나 예전의 합리주의적 전통을 재발견하여 정신적, 물질적으로 번성하였던 옛날의 황금기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바 있었는데, 실제로 적지 않은 무슬림들은 이미 그 이전부터 권위주의와 반이성주의(反理性主義)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는 모습들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었다.
최근에 튀니지, 이집트 등을 휩쓸어버린 쟈스민 혁명도 이러한 진보적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는데, 물론 이슬람의 민주화나 서구화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갖고 호들갑을 떨 것은 아니며, 그보다는 앞으로 이슬람 근본주의가 이론적으로 더 정교해지고 더 업그레이드된 형태로 확산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봐야 하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이슬람의 정치적, 문화적 역량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를 갖거나 과거의 색안경만을 끼고 바라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 역시 갖게 된다. 아, 물론 이러한 이슬람과는 반대로 1960년대 이후 서구 기독교세계는 오히려 탈이성주의(脫理性主義)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앞으로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위치가 서로 어떻게 또 바뀌게 될지 참으로 주목해볼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저는 오히려 이성(理性)의 독재와 독선이 불러올 위험성에 대해 더 경계하는 입장입니다만... -_-;
주인장님께서는 혹시 전통적 산업사회의 기계적 인간관에 근거한 모더니즘적 자유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가장 이상적인 세계관으로 보고 계시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