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관계의 상당성과 과실의 구분 (上)


태보(Taebo)는 미국의 흑인 가라데 선수인 Billy Blanks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진 다이어트운동이다. 내가 '태보'란 말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990년대 쯤이었는데, 그때 TV에서는 '태보'가 우리나라의 '태권도'와 '복싱'이 합쳐져 만들어진 에어로빅 운동이라며,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의 국기 '태권도'가 미국에서 복싱, 에어로빅과 접목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냐는 둥하는 방송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주장의 진위에 대해서는 아래의 尾註를 참고할 것)

그런데 지난 7월 5일의 일이다. 강변 테크노마트에서 건물 전체가 크게 진동하여 건물 내에 있던 모든 시민들이 황급히 대피하고, 그 후 몇 주 동안 강변 테크노마트에 손님들이 무서워 발길을 끊어버리는 등의 생난리가 일어났는데,

그 원인이 알고 보니 그 건물의 12층 피트니스 센터에 7월 5일날 새로 부임해온 태보 강사가 부임하자마자 의욕이 넘쳐서 그 첫날부터 평소보다 강도 높은 태보 동작을 수강생들에게 시킨 것때문이라는 조사결과가 각 일간지에 보도되었다.

http://news.donga.com/3/all/20110720/38928918/1

그러니까 2.7Hz(1초에 2.7번 진동)의 위아래 방향 진동수를 가진 태보 운동이 우연히도 건물 전체의 고유 수직진동수와 맞아 떨어져 이른바 '공진 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오늘 어느 학생이 내게 찾아와서 질문을 했다. 그 학생의 질문인 즉슨,

그 태보 강사는 건물 전체의 흔들림으로 인해 발생한 수억 원 상당의 손해에 대해서 민법 제750조에 기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태보 강사는 그렇게 거액의 손해배상책임까지는 부담하지 않는 것이 맞다. 그런데 문제는 그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태보강사에게는 단지 의욕의 과잉만을 문제삼을 수 있을 뿐, 건물 전체의 흔들림과 거액의 영업손실 발생에 관해서까지는 과실이 없기 때문에,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것인가?

그러니까 그 태보강사의 입장에서는 과격한 태보동작을 좀 시켰다고 해서 건물 전체의 흔들림과 거액의 영업손실 발생에 관해서까지 예견했으리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거액의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는 않는다는 것인가?

물론 형법상의 범죄라면, 과실이 그 결과를 포괄해야 하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행위자에게 과실이 없는 이상, 그 행위자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징역을 살지도 않고 벌금을 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법상의 손해배상책임이라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민법의 영역에서는 손해의 귀속 내지 결과의 귀속에 대해서 이른바 '과실에 의한 한계획정(Begrenzung durch das Verschulden)'이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민법의 일반이론에 따르면 그 결과의 발생에 대해 과실이 없었다 하더라도 원인행위 자체에 과실이 존재하였다면 피해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그 태보강사는 원인행위 자체에 과실이 없었기 때문에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가?

그것도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에서 아이들이 뛰는 소리, 문을 닫는 소리, 애완견이 짖는 소리, 아니면 늦은 시간 혹은 이른시간에 세탁기, 청소기, 운동기구 등을 사용하는 소리 등에 대해서도 과실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에,

당시 태보 강사가 위아래 층에서 거센 항의가 있었을 정도로 수강생들에게 강도 높은 서너 가지 동작을 반복적으로 무려 20분 정도나 시킨 행위에 대해서 과실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태보 강사가 테크노마트 건물 전체의 공진현상과 수억원의 영업손실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게 되는 근거는 무엇일까?

그 근거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더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_-;



尾註1) 유감스럽게도 '태보'는

Total commitment to whatever you do
Awareness of yourself and the world
Excellence, the truest goal in anything you do
Body as a force for total change
Obedience to your will and your true desire for change

의 약자라고 한다. 그러니까 태보(Taebo)가 '태권도'와 '복싱'의 합성어라고 주장했던 1990년대의 우리나라 방송멘트는 순전히 '구라'라는 얘기가 되겠다.





댓글 2

Hans
Hans
태보가 태권도와 복싱의 합성어라는 건 사실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대부분의 우리나라 신문에서도 태보라는 명칭은 태권도와 복싱의 앞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02/2004/05/p009100002200405061818057.html

경일이 네가 어느 출전을 참조해서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태보가 위와 같이 복잡한 문구의 약자라고 얘기하는 것은 좀 억지스럽다. 직관적으로 누가 보더라도 태보는 태권도와 복싱의 합성어라고 해야 더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위와 같이 복잡한 문구의 약자라고 하는 것은 일본이나 중국 등에도 태보를 전파하기 위해서 태보의 창시자가 나중에 갖다 붙인 말일 것이고...

이런 말은 미안한 말이지만 경일이 너는 매사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쉽고 간단한 설명에 대해서는 일단 의심부터 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반민족주의적 경향이 너무 강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주의에 반대될 듯한 논거가 발견되면, 이를 여과없이 믿어버리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이번의 '태보' 명칭에 관해서도 비슷한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닐까? 이런 걸 가지고서 '역편향'이라고 하는 거다.
Hans
Hans
강변 테크노마트의 진동피해에 대해서도 태보 강사의 책임을 먼저 논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법해석으로서 일반적인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안에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누가 보더라도 테크노마트의 건물주와 그 설계자 및 시공회사와 같은 부유한 회사이지, 가난한 태보강사가 그 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

동아일보와 같은 보수언론이 태보강사의 잘못으로 모든 문제의 원인을 돌리려 하는 것도 거대한 유통자본과 건설자본의 입맛에 맞게 기사를 쓰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여태껏 멀쩡하던 건물이 젊은 태보강사가 새롭게 부임해서 손님들에게 새로운 동작을 시켰다는 이유로 갑자기 흔들린다는 게 말이 되겠냐 이 말이다.

아무래도 경일이 네가 상아탑에 오래 갇힌 나머지 구체적 현실로부터 점점 동떨어진 법적 사고를 하고, 점점 더 자본과 부자들만을 편드는, 보수적인 법학을 하기 시작하는 것 같아 매우 곤혹스러운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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