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Gatsby, by F. Scott Fitzgerald


해마다 그 순위가 요동치기는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꼽을 땐 항상 스콧 핏제럴드의 '위대한 갯츠비'를 상위권에 랭크시키곤 한다. 그 줄거리 자체를 떠나서 핏제럴드 특유의 압도적인 미문(美文)이 나를 매료시키기 때문인데, 이렇게 세련된 이미지와 감성을 적절히 배치하면서 서늘하고 담담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정갈하게 이어져가는 문장은 아마 이전에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앞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대한 갯츠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제3장의 말미에 나온다. 뭔가 쓸쓸하고도 적막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기 때문에, 이 대목을 언젠가부터 아주 좋아하게 되었는데, 영어로 된 원문과 그에 대한 나의 번역을 아래에 옮기면 다음과 같다:

Most of the time I worked. In the early morning the sun threw my shadow westward as I hurried down the white chasms of lower New York to the Probity Trust. I knew the other clerks and young bond-salesmen by their first names, and lunched with them in dark, crowded restaurants on little pig sausages and mashed potatoes and coffee. [...]

I took dinner usually at the Yale Club — for some reason it was the gloomiest event of my day — and then I went up-stairs to the library and studied investments and securities for a conscientious hour. There were generally a few rioters around, but they never came into the library, so it was a good place to work. After that, if the night was mellow, I strolled down Madison Avenue past the old Murray Hill Hotel, and over 33rd Street to the Pennsylvania Station.

I began to like New York, the racy, adventurous feel of it at night, and the satisfaction that the constant flicker of men and women and machines gives to the restless eye. I liked to walk up Fifth Avenue and pick out romantic women from the crowd and imagine that in a few minutes I was going to enter into their lives, and no one would ever know or disapprove. Sometimes, in my mind, I followed them to their apartments on the corners of hidden streets, and they turned and smiled back at me before they faded through a door into warm darkness. At the enchanted metropolitan twilight I felt a haunting loneliness sometimes, and felt it in others — poor young clerks who loitered in front of windows waiting until it was time for a solitary restaurant dinner — young clerks in the dusk, wasting the most poignant moments of night and life.

Again at eight o’clock, when the dark lanes of the Forties were five deep with throbbing taxi-cabs, bound for the theatre district, I felt a sinking in my heart. Forms leaned together in the taxis as they waited, and voices sang, and there was laughter from unheard jokes, and lighted cigarettes outlined unintelligible gestures inside. Imagining that I, too, was hurrying toward gayety and sharing their intimate excitement, I wished them well. [...]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일을 하였다. 이른 아침 내가 프롸버티 신탁회사를 향해 뉴욕 남쪽 하얀 건물들 틈바구니 사이로 급히 내려갈 때면 태양이 내 그림자를 서쪽으로 드리웠다. 나는 친하게 지내는 다른 사무원들이나 젊은 증권맨들과 함께 어둡고 북적대는 식당에서 작은 돼지고기 소시지와 으깬 감자 그리고 커피로 점심을 때웠다. [...]

나는 보통 예일 클럽에서 저녁을 먹었다. -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때가 하루 중 가장 우울한 시간이었다. - 식사를 마치고나면 윗층 독서실에 올라가 한 시간 동안 투자와 담보에 관해 공부했다. 클럽에는 대개 시끄러운 건달이 몇 명 있긴 하였지만 독서실까지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곳은 공부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그 뒤 밤 날씨가 따뜻하다 싶으면, 나는 매디슨가로 어슬렁어슬렁 내려가서 그 오래된 머래이힐 호텔을 지나 33번가를 넘어 펜실배이니아역으로 향했다.

나는 뉴욕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활기 있고 모험으로 가득한 밤의 느낌과 끊임없이 명멸하는 남녀와 자동차들이 휴식을 모르는 내 눈에 만족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5번가를 걸어올라가 군중 속에서 낭만적인 여자들을 골라내 몇 분 안에 그들의 생활 속에 들어가는 상상 속에 빠지기를 좋아했다.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눈치 채거나 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내 마음 속으로, 숨겨진 길모퉁이의 아파트까지 그 여자들을 따라가 그들이 문을 열고 따뜻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돌아서서 나를 향해 미소 짓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매혹적인 대도시의 황혼녘에 나는 가끔 주체할 수 없는 고독을 느꼈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그것을 느꼈다. - 식당에서 외롭게 맞이하는 저녁식사 시간을 기다리며 쇼윈도 앞에서 서성이는 가난하고 젊은 사무원들 - 밤과 삶의 가장 강렬한 순간들을 낭비하며 어스름 속을 헤매는 그 젊은 사무원들.

다시 8시가 되어 40번가의 어두운 골목에 극장가를 향하는 택시들이 다섯 줄로 서서 부릉부릉 소리를 내고 있을 때, 나는 가슴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택시 안에서 기다리며 사람들은 서로 몸을 기댔고, 노래를 불렀으며, 내겐 들리지 않는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불 붙인 담배만이 택시 안 그들의 알 수 없는 몸짓에 선을 그려주었다. 나 역시 즐거운 일을 향해 서둘러 가고 있다는 상상을 하고 그들과 은밀한 흥분을 나누었다. 나는 그들에게 좋은 재미가 있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


지난 주엔 연구실 이사를 하느라 바빴다. 정리를 다 마치고 연구실 안에 혼자 서서 창밖 아래에 지나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니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느낌 같은 것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했다. 아래에는 오늘 괜히 찍어본 연구실 내부의 사진을 공개한다:





맨 윗 사진출처 : http://esl-bits.net/Books/The_Great_Gatsby/the_great_gatsby.gif



댓글 5

H.호나우두
H.호나우두
지난 4월달에 찾아뵈었을 때랑 연구실이 바뀌신 것 같네요.

언제나 깔끔하게 정리정돈하고 계신 모습이 교수님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화분도 참 잘 키우시네요. ^^

사람 가르치고 키우실 때든 꽃을 가꾸실 때든 양육에 원래 소질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교수님이 되셨겠죠. ^^
Sondergänger
Sondergänger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면서 문장이 아름답다고 느낀 적은 없었는데 교수님의 글을 읽고서 다시 소설의 문장을 보니 정말 그 표현의 기교가 기가 막히네요. 보통 사람이 썼으면 "진짜 X빠지게 일만 하고 살았다. 아침 점심 저녁... 다 싸구려만 먹고 누구랑 대화도 안 하고 혼자 왔다갔다만 하며 살았다. 길거리에서 예쁜 여자 많이 봤는데 꼬시고 싶었지만 입맛만 다시다가 말았다. 누구는 연애도 하고 신나게 사는 것 같았는데 나만 그렇게 못 사는 것 같아 배알이 꼴렸다." 이렇게 천박하게 썼을텐데 역시 위대한 소설가라 그런지 찌질한 일상이라도 대단히 서정적이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해내는 것 같네요.

역시 글빨 있는 사람들은 찌질함도 멋으로 승화시켜낼 줄 압니다. ^^
松下道人
松下道人
KNura가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하는가 보군요. ㅎㅎ 하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도 "위대한 개츠비를 세번 읽은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란 대목이 나오지요. ㅎㅎ

그런데 KNura가 위에 소개한 문장은 사실 이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그리 중요한 대목은 아니고 그냥 작중 화자인 닉 캐러웨이가 자기 일상을 묘사한 글인데,

결국 자기는 돈도 없고 연애도 못하는 찌질한 넘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문장에 다름 아닌 거입네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 닉 캐러웨이가 어떤 넘인가 하면,

마지막에 모든 것을 알고도, 그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탐 뷰캐넌의 권력이 무서워 혼자 도망갔다가

나중에 책 하나 남기고서 자기 비겁함을 면피하려 한 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먹물들의 행동은 모두 이런 닉 캐러웨이 같은 넘들의 행동과 같은 것으로,

좋은 말은 엄청 해 대지만 실천은 하지 않고,

언제나 관찰자의 시점에 서있다가 뒷구멍으로 자기 실속만 챙기려드는 얍삽한 전략에서 단 한 치도 못 벗어난다는 게 상식이라 하겠습니다.

입으로는 우주선도 쏘고, 입으로는 만리장성을 백번 지었다 부셨다도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그래봤자 뭐합니까? 이 세상의 실제 현실을 바꾸는 데는 눈꼽만큼의 기여도 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우하하하하하하.
松下道人
松下道人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이 가르쳐주는 원리는 뭐 별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결국 가문과 출신성분대로 살아갈 뿐이며,

날 때부터 귀하게 자라지 못한 자가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결국 약한 자들을 등쳐먹고 사기쳐서 기어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마치 가난한 개츠비가 조폭과 손잡고서 부자가 된 것처럼),

그렇게 개천에서 기어오르는 용들은 그늘이 있고 음습하며 사람을 왠지 밀어내기 때문에 결코 여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고, (개츠비가 옛 애인 데이지로부터 버림 받고, 절치부심으로 돈을 모은 뒤 데이지를 다시 찾아가지만 데이지는 결국 이기적인 바람둥이 남편 탐 뷰캐넌을 다시 선택한 것이 그러한 이유임)

어차피 기득권에 철저히 복종하지 않는 한 종당에는 파멸하게 돼있으니, (실제로 명문가의 상속남 탐 뷰캐넌은 미천한 개츠비가 감히 자기 마누라 데이지를 넘보려 하자, 윌슨이라는 듣보잡을 시켜 개츠비를 죽이고, 그 다음에는 윌슨을 죽여서 모든 문제를 자기 뜻대로 완벽하게 종결지었음.)

그러니 천한 것들은 골치 아프게 열심히 공부하거나 노력하거나 하지 말고 걍 니 분수에 맞게 살아라, 이런 얘기가 되겠습니다. 어차피 현실적 승자는 언제나 기득권들일 뿐이고,

천한 것들은 이 소설 속의 주인공 개츠비처럼 억울한 누명이나 뒤집어쓰고 총맞은 시체로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하는 거니까요. 우하하하하.
松下道人
松下道人
실제로 탐 뷰캐넌처럼 그 어떤 힘으로 덤벼도 결코 이길 수 없는 자들은 세계 곳곳에 아주 많이 있습니다. 동남아나 남미의 귀족집안 뿐 아니라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WASP 명문가출신 같은 자들이 모두 그런 자들로서,

이들은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수많은 권력자, 명문가, 재벌가들과 서로 통혼하여 거미줄처럼 엮어져 있으며, 법조인들도 다 자기 일족이거나 손아귀에 있는 자들이니,

무슨 짓을 해도 절대 벌 같은 거 안 받습니다. 업보니 나발이니 이들에겐 안 통합니다. 이들을 멸족시키려면 상류층 전체를 다 멸족시켜야 합니다. 완전히 얽혀 있기에 하나만 자른다고 끝나는 건 아니죠.

이 강고한 혼맥, 혈맥의 틀에 얽혀들지 못한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서든 상류층 사회에서 '짐승만도 못한' 넘으로 취급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으며, 윗동네에 사는 남녀들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으니,

원망해도 할 수 없고 뭐라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이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는 그들의 핏줄이 아니면 명함조차 내밀 수 없게 돼있으니까요.

최근 오육십년간 한국은 거기서 조금 예외였지만, 요즘은 한국도 그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도 볼 수가 있겟습니다. 지금의 신분이 적어도 오백년은 이어질 것이다 이 말쌈입니다.

조선이 건국될 때에 형성된 신분은, 6.25 때까지 거의 550년을 이어졌습니다. 6.25 때 서울에 있던 호적들이 불타고, 이후 군사혁명 때에 경상도 출신의 족보 없는 군인들이 집권하면서 상류계급에 좀 변화가 생겼지만,

이제는 재산이 없으면 웬만한 교육은 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으며, 마지막 탈출구인 스포츠맨이나 연예인조차도 돈 없으면 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KNura가 높이 평가하고 있는 '위대한 개츠비' 같은 문학작품들 속에서도 이런 암담한 미래가 암시되고 있는 셈이지요. ㅎㅎ

그리고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이미 19세기부터 이러한 신분사회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음이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아주 서정적이고도 우아하게 묘사되고 있는 거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공부를 못해서 예일대학도 뒷문으로 들어갔고 30 넘을 때까지 백수건달에 알콜중독자였던 부시가 미국에서 대통령이 된 게 WASP 명문 석유재벌 가문 출신이 아니었다면 어디 가능키나 한 일이었겠습니까?)

"기득권체제에 순응한 자는 승하고, 기득권체제에 도전했던 영웅은 처참하게 박살나며, 그들의 씨마저도 세상에 남겨 두지 않는다"

라는 교훈이 이런 '위대한 개츠비' 같은 문학작품 속에서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이 말입니다.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우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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