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담론, 정체성, 그리고 법에 관하여
오늘날 "거대담론의 시대는 갔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장기간에 걸친 공산주의 독재가 끝난 후에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던 운동권들이 어떻게 하면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 고민하다가 가까스로 만들어낸 화두가 바로 "거대담론의 시대는 갔다"라는 명제가 아닐까 하는데, 그러한 사고에 따르면 공산주의 독재가 몰락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역시 곧 몰락할 것은 마찬가지가 된다. 공산주의가 망한 것은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의 이데올로기대결에서 패했기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거대담론'이었기 때문에 망한 것이고, 자본주의 역시 '거대담론'이긴 마찬가지라서,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곧 망할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미국, 영국, 아일랜드와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모델들이 참담히 파멸한 반면에, 북유럽이나 독일식의 사민주의적 복지모델이 여전히 건실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 특히 프랑스의 경우 인종적, 종교적, 국가적,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가 강조되고 있으며, 서유럽 좌파들 사이에서 '다문화주의'라는 이름으로 문화적, 역사적 상대주의가 하나의 정치적 무기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 등을 자기네들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자유주의와 미국식 세계화, 미국의 패권주의에 반대하기 위한 효순-미선 추모 촛불시위, 월드컵 4강 시절의 민족주의적 움직임, 광우병 쇠고기수입 반대 촛불시위, 그리고 오늘날의 한미FTA반대를 위한 대규모 시위가 그러한 시대적 흐름을 드러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들의 생각에 따르면 이 세상에 보편적 진리 같은 것은 없다. 진리란 각 민족, 인종, 종교, 종파, 국가, 성적 취향별로 각각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고, 특히 그러한 특수집단이 문화적, 역사적으로 '희생자'의 지위에 있었다고 하면, 설령 그들이 철저한 야만적 봉건주의에 매몰되어 있고, 대다수의 민중들을 가난과 억압의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으며, 심지어 수령찬양, 3대 세습의 꼴통스럽기 짝이 없는 사이비종교집단의 모습으로 타락해간다 하더라도, 그것은 공동체집단 내부에서 그 나름대로 존재의의를 갖는 것으로서, '내재적 접근법'에 따라 고찰해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쨌든 그런 집단의 특수한 존재의의를 확인하고, 그러한 공동체집단이 주장하는 특유의 가치를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것이 우리 민족의 주체성 함양과 자주적 통일에도 도움이 되고, 이 시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영미식 신자유주의적 환상에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것을 차단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우리 민족의 경우 일제의 식민지배로 고통 받았고, 미제의 계략에 의해 분단과 전쟁,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기에, '민족'이 그 어느 가치보다도 더 강조될 수밖에 없으며, '우리 민족끼리'라는 명제가 매우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외국, 특히 서구에서 통하는 진리는 우리나라에서 결코 통하지 않고, 또 통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문화적 상대주의의 원리에 따라 우리 민족에게는 우리 민족만의 집단적 진리, 공동체적 진리가 따로 존재하고, 법원리에 있어서도 외국의 법원리와 우리의 법원리를 한 데 묶는 보편적 원리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 된다. 한미FTA에 반대하고, 특히 ISD에 대해서 적대감에 가까운 거부감을 보이는 것이 그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방식으로 진리의 보편성, 법의 보편성을 포기한다고 해서, 신자유주의적 환상과 자본의 자동운동에 따른 우리 삶의 황폐화가 결코 완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만약 장하준 식의 보호무역주의가 문화적 상대주의, 지역적 상대주의의 이념에 따른 경제적 정답이라고 한다면, 독일이나 프랑스의 극우정당들이 주장하는 경제사회정책 역시 그들 입장에서는 옳다는 얘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만약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우리 민족끼리'의 명제가 우선되어야 하고 민족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관철되어야 한다면, 우리 민족의 것이 아닌 것들, 우리 민족이 아닌 자들, 외국의 상품, 외국의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차별을 하고 박해를 가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나의 국가, 민족 내에서도 모든 인간을 그룹으로 다시 나누어 각 그룹의 정체성에 걸맞는 법을 적용하겠다는 오래된 흐름은 또한 무엇인가? 옛날에 Marx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을 분리했던 것은 자본가계급이 일하지 않고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존재들이라는 것, 자본가계급은 따라서 역사적으로 사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점에 나름의 보편적 근거를 두었기에 그나마 정당성을 담보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법이 사용자와 근로자를 분리하고, 사업자와 소비자를 분리하는 것은 Marx의 관점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법적 상대주의라는 모호하고 유동적인 관점 하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각 그룹에 따라서 진리가 각각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고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법을 각 주체의 본질, 정체성에 따라서 세분화하게 되면, 국가는 항상 각 주체의 민족적, 국가적, 상황적, 계보적, 종교적, 역사적 정체성을 규정해야 할 것이고, 그러한 정체성에 따라 법을 여러 영역으로 나누어서 적용해야 하는 수고로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노동법이 그렇게 하고, 소비자보호법이 그렇게 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느 한쪽이 보호를 받게 되면, 그 반작용으로 어느 한쪽은 박해를 받게 된다. 그리하여 법은 집단적 박해와 차별의 모델 말고는 어떠한 보편적 원칙도 없는 '실질적 정의'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마치 경찰의 신원추적을 방불케 하는 이러한 유형의 정체성확인작업이 법의 적용에 선행하게 된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말하는가? 그러니까 이것은 나찌 시절에 순혈독일인인가, 혼혈독일인인가, 라틴인인가, 슬라브인인가, 유태인인가, 집시인가에 따라서 법을 달리 적용했던 것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인가? 또는 중세유럽법과 조선시대의 형법, 예법, 상속법이 각 주체의 신분계급에 따라서, 그러니까 양반귀족인가, 지방토호인가, 몰락한 잔반인가, 중인인가, 농민인가, 수공업자인가, 상인인가, 천민인가에 따라서 법을 달리 적용했던 것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이란 말인가?
프랑스의 철학자 Alain Badiou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바울이 갈라디아서 제3장 제28절에서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을 끄집어낸다:
"Hier ist kein Jude noch Grieche, hier ist kein Knecht noch Freier, hier ist kein Mann noch Weib; denn ihr seid allzumal einer in Christo Jesu." (여기서는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여기서는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여기서는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제2장 제10~11절에서 했던 다음과 같은 말도 끄집어낸다:
"Preis aber und Ehre und Friede allen denen, die da Gutes tun, vornehmlich den Juden und auch den Griechen. Denn es ist kein Ansehen der Person vor Gott." (보상이지만 그리고 명예와 평화가 거기서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 있으리니, 이는 유대인을 비롯하여 그리스인에게까지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겉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말해두지만, Alain Badiou는 프랑스에서 우파가 아닌 좌파 철학자에 속한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를 독실하게 믿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그는 정체성 지향적이고 공동체주의적인 범주들이 진리과정이나 법의 형성 및 적용과정에 있어서 가급적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그러한 범주들이 개입한다면 어떤 진리도 자신의 영속성을 확립하고 스스로의 내재적인 무한성을 축적시킬 최소한의 기회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알랭 바디우의 저서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그렇게 한 목적은 대략 빤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가 느닷없이 인간평등에 관한 성서구절을 인용했다면,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봐야 한다는 거죠. 한나라당식의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민노당과 민주당이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
주인장님도 아시겠지만 알랭 바디우는 모로코 출신이죠. 그래서 프랑스 내에서 외국인들의 권리를 주장한 사람으로도 유명하죠.
그런데 주인장님께서 주장하시는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과연 외국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오히려 외국인들에게도 무상급식, 무상의료, 반값교육 등의 보편적 복지가 이루어져야 가난한 외국인들의 인권을 더 잘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알랭 바디우가 주장하는 것은 결론적으로 내국인, 외국인 가릴 것 없이 모든 인간에 대해서 보편적 무상복지를 실현하자는 얘기가 될 것이고, 그 실현수단은 필경 중국식 모택동주의 국가건설이 될 것입니다. 등소평식 개혁개방도 아니고, 모택동식의 강제적 협동농장시스템.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데 주인장님께서는 자유주의적 입장이니까 이런 거에 전혀 찬성 안 하시지 않나요?
주인장님은 그러니까 이번에도 인용을 완전히 잘못하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보편적 복지이든 선별적 복지이든 복지가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방조하고 경제적 자립을 방해할 정도가 된다면, 복지를 안 하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이야 그렇다고 쳐도, 무상의료, 반값교육, 완전고용 등의 무리한 복지목표는 자원분배를 왜곡하고 경제의 흐름 전반을 망가트리기 쉽다고 봐야 합니다.
외국인들에게도 보편적 복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저도 찬성합니다. 복지에 있어서 내국인과 외국인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내국인에 대해서든, 외국인에 대해서든, 그 복지가 지나치게 후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의 적정성이 지켜지기만 한다면, 외국인들에 대해서도 보편적 복지가 당연히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Alain Badiou의 정치적 입장, 특히 모택동주의적인 잔재에 물론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의 이론 가운데 보편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 가운데서 명쾌한 부분은 충분히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알고 있기로, Alain Badiou는 이제 더 이상 모택동주의자가 아닙니다.
프랑스 좌파 빨갱이가 쓴 책이나 어디서 구해서 읽고, 이 정도면 거의 골수네, 골수야.
뭐? 모택동주의자의 생각에도 일리는 있다고? 이 양반아, 그렇잖아도 요즘 수업 중에 정치적으로 편향된 이념교육을 하는 교사들이 많아서 교육부에서 파면지시 내리고 난리인 세상이야.
교육계에 주인장 니같은 빨갱이들이 그토록 많이 암약하고 있다는 거야, 물론 대학교에도.
요즘 대검 공안부에서 한미FTA 반대시위에 관련해 인터넷을 이용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람을 구속수사한다는데,
이번 기회에 이 홈페이지에 드나드는 네티즌들이랑 홈페이지 주인장이랑 싹 검찰 공안부에 빨갱이로 고발해서 구속수사받게 해벌라.
주인장 너, 너같은 빨갱이가 교단을 떠나게 해야 우리나라가 바로 서, 이 골수 빨갱이야.
민족주의 얘기하면 자꾸 독일 나찌에다 갖다붙이는 사람들, 예를 들면 박노자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서구인들이 민족주의하면 전쟁이나 벌이고 유대인이나 학살하고 했지만,
우리가 민족주의하면 세계에 빛날 민족문화를 창달하고 약소국도 침략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민족주의를 했다는 거는 우리나라의 오천년 역사가 증명하지 않습니까?
직관적으로 동두천이나 이태원 같은 데에 우리나라 여자애들이 서양 남자들이랑 팔짱 끼고 걸어다니는 거 보면 울컥 치밀어 오르는 그런 거 있잖습니까?
미군이 우리나라 여성 살해했다거나 성폭행했다고 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그런 거라든가,
외국인들 보면 거리감이 느껴지고, 혼혈아들 보면 거부감이 느껴지는 거, 국가대표 축구경기, 야구경기 같은 데서 한마음이 되어 응원하는 그런 거...
그런 걸 부정한다는 거는 탁상머리에만 앉아서 현실을 모르는 현학적인 이론가 바보들이나 저지르는 어리석음인 거고요.
그런 원초적이고 직접적이며 모두가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이 전혀 보편적 진리가 아니라는 소리는 한마디로 개소리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외국인노동자 인권 어쩌구 하시는데, 외국인과 내국인의 차별을 부정할 수는 없죠.
어차피 주체성과 주인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자에 대해서 주체성, 주인의식을 가진 자와 같은 대접을 해줄 수는 없는 거니까요.
외국인노동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단 우리 민족의 노동자입니다.
외국인노동자가 자꾸 유입이 되는 게 결국은 미국식 신자유주의 이념때문에 그러는 건데,
그 신자유주의때문에 그들도 여기 와서 박해받아서 힘들고 우리는 우리대로 힘들고 그러니까, 가급적 외국인노동자는 우리나라에 못 들어오게 하는 게 정답이라고 봅니다.
프랑스에서 다문화주의 어쩌구 한다는데, 최근에 리암 니슨 주연의 영화 '테이큰'을 보니까 프랑스에 외국인 많은 게 결코 좋지 않아 보이더군요.
인신매매 마약밀매 조직이나 만들고, 치안이나 나빠지게 하고...
요즘 보수 기독교 정당이 창당한다고 하죠? 거기나 한번 기웃거려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그런데 아무리 순복음교회, 금란교회, 명성교회 꼴통목사님들 앞이라 하더라도
주인장님이 우리나라에서 노동법, 소비자보호법은 물론이고, 관세법, 국적법까지 다 없애버리자고 주장하시면 그쪽 극우보수진영 사람들도 황당해서 입이 안 다물려질 것 같습니다.
극우진영의 영원한 노병, 조갑제 옹께서도 혀를 내두르실 과격발언... 하여튼 주인장님 화끈한 거 하난 인정해줘야 할 것 같긴 하네요.
아리스토텔레스도 정의에 대해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다루는 거라고 했는데, 주인장님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업자와 소비자, 외국인과 내국인이 모두 하나라...
그럼 예를 들어 모든 기업에 최고위 CEO부터 최말단 비정규 인턴사원까지 모두 월급 똑같이 주도록 해보시지요. 주인장님이 그토록 '보편성'을 중요시하는 분이라면...
아마도 주인장님은 프랑스 극좌파 이론가들이 외국인노동자보호를 위해 '보편성'의 화두를 던진 것에서 영향을 받으신 모양인데, 저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보수우파라기보다는 진보좌파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만,
주인장님의 이론을 보면 진짜 극좌에서 극우로 좌충우돌 널뛰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 극좌와 극우는 통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저는 그저 청년실업문제 해결되고 사회복지가 더 확대되기만을 바랄 뿐이지,
주인장님같이 막 '보편성' 어쩌구 하면서 미치광이처럼 극단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국경도 보호법규도 다 없애버리려고 하는 그런 흐름에는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어쨌든 주인장님같은 비현실적 몽상가들의 주장과는 상관없이, 한미FTA는 철폐되어야 하고, 무상복지는 좀 더 확대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 민족을 위주로 해서 말이죠!
그리고 님께서는 '직관'과 '감정'을 얘기하시는데, '직관'이나 '감정'에서 '진리'와 '법'이 도출될 수는 없습니다. '진리', '정의', '법'과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보편화할 수 있는 '이성'에서 도출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이성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인간들은 감정적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직관적으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각 인간들에게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맡겨져야 합니다.
하지만 법이 주관적이거나 감정적, 개별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가끔 감정적, 개별적일 수 있어도 법은 언제나 이성적,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법이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들에게 자유를 보장하고 각 개인의 능력과 양심을 신뢰하여 가급적 방임한다는 점에 있어서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유의 조건을 파괴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징벌을 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 대해서는 무한한 자유를 보편적으로 보장해야 합니다. 그가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남자이건 여자이건... 제가 말씀드린 '보편성'은 이런 의미에서의 '보편성'입니다.
님께서는 제게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보편성'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임금체계나 의식주생활기준도 보편적, 획일적으로 정해야 하지 않느냐고. 실제로 옛날 스탈린주의자들이나 모택동주의자들이 그러한 착각을 했었고, 그로써 인민들의 생활을 완전히 황폐하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입법자가 모든 인간들에게 꼭맞게 규제를 하고, 구속을 하고, 강제를 한다는 의미에서의 '보편성'이란 불가능한 꿈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유토피아적 환상에 의해 이런 것을 시도해봤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다른 인간의 실질적 속성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눈에 드러나는 형식적 조건들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형식적 조건들... 다른 사람의 생명과 인격을 지켜주기 위한 형식적 조건들...
그러므로 '보편성'은 이것을 지키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필요한 최소한도의 것에 국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최소한도의 것 이외의 영역에서는 인간에게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상관없이 말입니다.
만약 모든 인간들의 능력과 양심을 믿지 않고, 각 인간들의 본질(?)이나 속성에 기초하여 그들을 정치공학적, 경제공학적으로 조작,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하려 한다면, 이것은 보편적인 법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자유의 조건을 파괴하는 자에게 징벌을 내리는 이외에, 그 이상으로 쓸데없이 세밀한 규제를 가한다면, 그 세밀한 규제의 적용대상이 되는 사람과 적용대상이 안 되는 사람 사이에는 차별이 발생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두 그룹 모두에게 자유가 박탈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님께서는 모든 인간으로부터 자유를 박탈한다는 것 자체가 '보편적'일 수도 있지 않냐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강제적 규제의 속성상 강행법률이 모든 인간에게 똑같은 것을 강요하고 똑같은 이익을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법의 보편성은 철저히 일그러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각 인간들의 본질이나 속성에 맞추어 입법자의 계산에 의해 각 인간에게 맞춤형으로 이성적인 삶을 강제하게 된다면, 그렇게 법으로 세세한 것까지 정해서 각 개인에게 강제하는 입법자가 전지전능한 자가 아닌 이상, 반드시 구체적 각론에서 실패를 하게 돼있고, 누군가를 부당히 바보로 만들고, 누군가를 부당히 차별하고, 누군가를 부당히 억압하게 돼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렇게 입법자에 의해 자유를 박탈 당하는 각 인간들의 존엄이 실종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입법이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부당하게 침해할 정도로 과도한 규제를 내용으로 삼고 있는 것이라면, 그러한 법률은 당연히 폐지되어 마땅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비행기가 발명되어 항공운송이 점차 활발해진 후, 국경의 의미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데, 아직도 국제교류와 무역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이 잔존하고 있다면 그러한 법률은 인간의 경제적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당연히 폐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상품 간에도 경쟁이 필요하듯이, 법률 간에도 경쟁이 필요합니다. 자유롭게 전 세계를 넘나드는 각 개인이 전 세계의 법률을 앞에 두고서, 자신에게 가장 알맞는 법률을 선택하게 할 수 있게 만든다면, 불합리한 법률은 당연히 도태되고 소멸하는 효과도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한미FTA에 대해 제가 찬성하는 이유도 그러한 불필요한 법적 규제의 장벽을 걷고, 인간에게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큰 공간 속에서, 더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의 한미FTA가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더 이상적으로는, 지금 현재 약 1500페이지에 달한다고 하는 한미FTA의 장황한 협정문이 더 적은 분량으로 줄어들고, 그래서 가급적 예외조항이 더 줄어들고 국민들 입장에서 더 이해하기 쉽고 더 간단한 협정문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만큼, 일단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불완전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일단은 자유시장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한미FTA는 조속히 비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글을 좀 논리적으로 써주셨으면 합니다. 논리의 비약이 없이는 도무지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는 그런 분이십니까?
도대체 법이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일반적 대전제로부터 인간에게 무한한 자유가 보편적으로 무한히 부여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어떻게 도출된 겁니까? 이건 뭐 기초적 삼단논법도 모르는 닭대가리도 아니고... 도대체 인간이 그렇게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존재라면서, 그렇게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인간에게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법이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옛날 스탈린주의, 모택동주의의 실패를 얘기하셨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오늘날 미국식 자유주의는 뭐 실패 안 한 모델입니까? 그 어느 나라의 법보다도 자국이기주의와 권위주의, 관치주의로 똘똘 뭉친 법률을 갖고 있는 중국은 지금 왜 그렇게 잘 나가는 겁니까? 법률도 상품처럼 경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니, 국가주권 같은 거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자는 얘기입니까?
주인장님은 한미FTA 비준을 옹호하기 위해서 온갖 비현실적인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외국기업이나 외국상품의 진입규제는 대체 무슨 근거로 규제하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외국기업의 자유로운 진출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유가 침해됩니까? 아니면 자유의 조건이 파괴됩니까? 대체 외국기업이나 외국상품들이 차별을 받지 않고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어떠한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국가주권 얘기를 자꾸 하시는데, 국가의 주권이란 것도 이러한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서구의 자유주의 모델이 실패했다고는 아직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현재 전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내에서 부와 권력의 집중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오히려 그 국가들 내부의 여러 분야에 경쟁이 너무 없고 담합이 너무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미국도 세계 전역에서 전쟁을 너무 많이 치르면서, 소수의 군수산업 카르텔이 지나치게 막강한 힘을 갖게 되었고, FRB가 지나치게 저이자율 정책을 오래 펼치면서 소수의 금융업자들에게 인위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몰아줬기 때문에 지금 이러한 시련을 겪는 겁니다. 만약 오래 전부터 완벽한 자유경쟁시스템을 유지했다면 이 꼴로 전락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봅니다.
시장이 개방되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극한의 완전경쟁으로 단련되어왔던 분야의 종사자들이 조금씩 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교육업, 연예 및 엔터테인먼트업, 요식업, 숙박업, 맞춤의류업, 건축설계업 종사자들과 단기인턴계약직 알바생들, 시간강사들은 어차피 지금도 충분히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있으므로, 앞으로 외국자본의 구원을 받아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대접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그동안 중상주의적 보호무역정책을 통해 국내에서 어마어마한 독과점을 누리며 땅 짚고 헤엄치듯 돈을 벌어온 국내 대기업들과 공기업들은 아마 혼쭐이 나게 될 것입니다. 고율의 관세장벽에 힘입어 막대한 독점이익의 특혜를 누리고, 그 힘으로 하청기업을 착취하고 소비자들을 우롱해온 자동차, 석유, 통신서비스, 식료품 관련 대기업들과 소수의 명문대학 구성원들, 전문자격증 소지자들이 앞으로는 피 말리는 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 것이고, 자연스럽게 그 분야의 가격인하 및 서비스 질 향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물론 대학교수들도 좋은 시절은 다 끝났다고 봅니다. 서구명문대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분교를 설치하고 외국인교수들이 몰려와서 서구대학 특유의 엄격하고 합리적인 학사관리시스템 하에서 월등하게 질 높은 강의를 선 보이면, 국내 명문대는 앞으로 학생들의 외면을 받고 신입생 부족에 허덕이는 비참한 상황으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로 기존 대학의 철밥통 무능 교수들은 자연스럽게 도태, 퇴출되고, 그 대신 완전경쟁의 사교육시장에서 단련될 대로 단련된 시간강사들과 학원강사들이 대학으로 대거 스카웃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대학교에서 예전의 낭만 같은 것은 완전히 사라지겠죠. 하지만 저는 이러한 모든 현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중입니다. :-)
한미FTA를 통해서 각광을 받고,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거라고 하시는 완전경쟁시장의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히려 한미FTA를 결사반대하는 상황이니...
우리나라 연예 및 엔터테인먼트업이 극한의 완전경쟁으로 단련되어왔기 때문에 한미FTA로 호시절을 맞을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농어민들 다음으로 한미FTA를 가장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름아닌 영화인들인데요... -_-
예를 들어 연예 및 엔터테인먼트업의 경우 극소수의 공영방송 채널과 거기에 출연할 수 있는 소수의 스타들이 배타적, 폐쇄적으로 담합하여 monopoly rent를 챙기고 있고, 교육업의 경우 극소수의 명문대 교수들과 그곳 출신의 몇몇 잘 나가는 동문들이 문을 닫아걸고 배타적, 폐쇄적으로 담합하며 monopoly rent를 챙기고 있는 것이 그와 같습니다. 영화계도 사정은 그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부모 잘 만나거나 운이 아주 좋았거나 변별력도 별로 없는 수수께끼 풀이 쪽지시험 몇 문제 잘 풀어 특권을 일단 부여받으면, 그 뒤로는 평생 경쟁의 걱정 없이 부와 안락을 누리는 반면에, 나머지 사람들은 그 바깥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무한경쟁에 휘둘려야 하는 그 구조가 문제인 것이지, 경쟁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왜 우리가 언제까지나 삼성, 현대, SK, LG의 오너가문 및 그에 충성하는 상위 5% 정규직 엘리트사원들만을 부러워 하며 살아야 하는지, 왜 KBS, MBC, SBS, 조중동에 출연하는 연예스타나 지식인들만을 신봉하며 살아야 하는지, 왜 죽을 때까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 교수, 정치인, 언론인, 영화감독들의 박수부대 노릇만을 하며, 그들의 봉노릇을 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지켜주기 위해 살아야 하는지 반문해보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기득권카르텔에 속하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대외개방이 두려운 일이어야 마땅하겠지만, 그러한 기득권카르텔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외국자본이 들어오건 말건 사실 별 상관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외국자본 덕분에 기존의 기득권카르텔이 똥줄 타게 된다면 더 신나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시장개방에 반대하는 가난한 영화스태프들도 솔직히 충무로자본보다 헐리웃자본의 합리적 시스템 하에서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경쟁은 피곤하고 스트레쓰 받는 일입니다. 북유럽식으로 모든 노동자를 대기업 정규직화, 공무원화해서 사회적 안정을 꾀할 수도 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고,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 국민들의 모든 일자리를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유럽은 1970년대 이후 철두철미하게 대외개방을 지향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나라들이며, 국내적으로는 대기업과 공기업 위주일지 몰라도, 국제적으로는 외국기업들에게 문호를 활짝 열고 매우 치열하게 외국기업들과 경쟁을 하는 나라들임을 아셔야 합니다. 북유럽의 경제모델 중에서 사회복지의 부분만 부러워하지 말고, 그 사회복지의 원천이 되는 대외개방, 자유무역, 세계 속에서의 치열한 경쟁도 주목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나라 좌파들은 지금 북유럽의 시스템 가운데서 사회복지정책만 간편하게 도려내어 우리나라에 받아들이려 할 뿐, 북유럽경제가 얼마나 개방적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대외무역정책에 있어서는 북유럽 대신에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의 모델을 따르자고 주장하는 셈입니다.
한미FTA로 우리 법제가 미국식 법제로 바뀌게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미 비준 발효된 한-EU FTA로 우리 법제가 유럽법제로 벌써 바뀌었을까요? 미국처럼 우리나라 역시 의료가 민영화될까봐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한미FTA에서 의료부분은 개방대상도 아닙니다. 한미FTA가 비준되더라도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체계는 그대로 유지되므로, 의료서비스의 가격이 폭등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미FTA를 비준하자는 게 미국제도와 문화가 절대적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것과 같은 주장이라고 보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렇다면 한-칠레 FTA 비준은 칠레제도와 문화가 절대적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것인지, 한-EU FTA는 유럽제도와 문화가 절대적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것인지, 그런 것도 좀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특정국가의 제도와 문화를 절대적 글로벌 스탠다드로 삼고자 FTA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화의 고유성과 다양성도 그렇습니다. 한미FTA를 한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김치깍두기의 취식과 한글사용이 금지되는 것도 아닌데, 문화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 한미FTA를 반대한다는 논리도 저에게 괴상하게 들리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미국에 있는 우리 동포들과 그 친지들, 그리고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만든 김치와 각종 농산물, 문화상품들을 더욱 싼 값에 맛보고 향유할 수 있으리란 것도 좀 고려를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님이 쓰신 글의 한부분을 인용하자면..
\"외국의 법원리와 우리의 법원리를 한 데 묶는 보편적 원리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 된다. 한미FTA에 반대하고, 특히 ISD에 대해서 적대감에 가까운 거부감을 보이는 것이 그때문이다. \"라고 쓰셨습니다.
위의 문장들은 우리의 법원리나 외국의 법원리나 모두 보편적 원리의 하위원리와 같은 것이고, 그 위에 있는 상위의 법원리로 한미fta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는게 맞는지요?
하긴 한미fta가 신법이고 조약이기에 특별법과 같은 위상을 갖고 있으니..우리 법률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요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긴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미fta가 보편주의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다니요..이건 우리 헌법이라도 한미fta에 위배되면 수정해야한다는 태도가 아니신지요? 건대 헌법전공 교수..이름은 잘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사람 이름 찾아 검색할 정도의 정신적 여유는 안생기네요.^^ 어제쯤 봤던 기사이니 찾아보면 바로 나올 터입니다. 어쨌든 한미fta의 간접수용을 놓고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얘기를 한걸 인터넷뉴스기사에서 읽었습니다. 저는 법률전문가는 아니기에 이에대해 뭐라 말은 못하겠네요. 그러나 법률전문가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얘기한 거죠. 위에서 님이 쓰신 글의 내용대로 하자면, 만약 한미fta가 위헌이라면 마치 헌법이라도 뜯어고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한미fta가 우리의 실정법의 위에서 군림하는 상위의 원리가 되어도 좋은 게 맞습니까??
그리고 님께서는 다원주의,상대주의, 지역주의 폐해를 지적하셨는데..어떻게 한미fta는 또 다른 다원주의,상대주의가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하시는 지요? 오히려 님은 한미fta라는 상대주의,지역주의적 관점을 지지하신다고 소박하게 말씀하시는게 더 정직한 태도는 아니신지요? 물론, 비교우위의 원리에 입각해서 자유무역을 최대한 보장할 경우 무역의 당사자 모두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간다는 것은 경제학교과서의 기본이죠. 고등학교 사회수업만 배운 사람이라면 그런 정도는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자유무역이 모든 경제주체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환상요. 그런데 한미fta가 그 경제학교과서의 원리와 동의어인가요? 오히려 지금 한미fta를 반대하는 것은 경제적인 것보다 그게 정치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님은 ida를 백프로 신뢰하시나요? 우리의 공공정책이 ida에 제소당하여 패소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우리사회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들어 대형마트가 무분별하게 확산되어 지역재래시장 및 영세상인들이 죽는 일을 막기위해 정부에서 규제하고 있죠. 그런데 이걸 미국거대자본이 들어와서 우리 정책을 제소할 수도 있는 일이죠. 캐나다에서는 택배회사가 정부의 우편서비스를 ida에 제소했다더군요.
지적재산권 관련도 그렇습니다. 미국은 특허기간이 우리보다 길고..그래서 특허를 갖고 있는 제약회사가 엄창난 이익을 얻고 있는 나라죠. 한미fta발효되면 당연히 우리나라 약값이 오릅니다. 그게 국제적인 룰이니 당연히 따르는 게 맞을까요? 미국은 특허 때문에 우리보다 약제가격이 몇배로 더 비싼 나라인데..그 룰을 보편적 원리라 우겨서 우리에게 도입하는게 과연 무슨 실익이 있을까요?
원론적으로 자유무역이 최대한 확대되고..상품과 서비스의 국가간 교환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명제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지요. 그게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요.. 만약 이 명제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자본주의의 바깥에서 비판해야지..적어도 자본주의의 틀안에서는 비판할 수 없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그러나 백번양보해도 한미fta가 보편법은 아니지요.
그리고 북유럽국가들 말씀을 하셨는데..물론 우리보다 훨씬 더 자유무역경제를 보장하고 있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님도 지적하신 것처럼 북유럽국가들은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복지정책이 잘 발달한 나라들이죠. 님은 왜 북유럽국가들의 자유로운 경제제도는 못보고 복지정책만 맨날 얘기하냐 하시는데..저는 님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왜 북유럽국가의 경제제도 이야기하면서..복지제도 얘기는 못하시나요. 저는 적어도 우리경제가의 자유무역 수준이 중국,북한과 비교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님은 설마 정말로 우리의 무역보호 수준이 중국이나 북한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시죠?
또한 님은 북한 김정일 독재집단에 대해 보는 사람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의 과민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계신데, 왜 그러신거죠? 혹시 과거에 뭐 주사파나..그런 쪽하고 심하게 부딛힌 일이 있으신 가요? 과거에 80년대나 90년대 초반에 대학분위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요새는 북한 김정일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좋아하면 그게 사이코죠. 그런데 님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사람은 김정일 독재체제 추종자라는 식으로 몰고 가는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일부로 그러시는 것은 아니시죠? 만약 일부러 그러셨다면 좀 촌스러운 태도라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설마하니 지금 한미fta반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주사파나 북한독재정권 추종집단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믿겠습니다. ^^
아..그리고..스크린쿼터 이야기했는데..미국자본이 들어와 합리적인 헐리우드시스템에서 영화제작하면 우리나라 영화산업 발전에 도움될 거라 얘기하시는데..이건 좀 포인트가 다르네요. 헐리우드시스템이나 충무로시스템이나 자본의 본질은 비슷한데..영화인들에겐 이게 필요악이죠. 다 거기서 거깁니다. 왜냐면 자본은 영화를 문화로 생각하지 않고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니까요. 스크린쿼터 주장은 이렇습니다. 영화는 미국의 헐리우드영화만 잇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소재와 문화적 배경이 있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문화로서 영화를 제작하고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문화적 보호장치로 스크린쿼터를 해야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이게 없어지면, 자국영화는 전멸하고 전부 헐리우드 영화가 판을 치게된다는 거죠. 실제로 프랑스가 그렇습니다. 거기가 예술영화의 본산이지만 정부지원을 받아서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만 근근이 영화만들 뿐이고..이제는 프랑스 자국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헐리우드 영화만 상영되죠. 왜냐면 극장에서는 그게 돈이되니까 자국영화 안트는 겁니다. 우리나라 스크린쿼터는 그래서 있어야 하는거고...영화관에 우리나라 영화 하나도 안보이고 미국헐리우드 영화만 개봉하게 된다는 소린데..님은 그런 상황이 와서도 그게 보편원리니까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자본이 얼마나 냉혹하고 무자비한 건지 모르는데..님는 자본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해 너무나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신지 여쭈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유로운 경쟁..좋은 얘기죠. 그런데 님이 비판하시는 대기업의 독점과 카르텔이 왜 생기나요? 외국거대자본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가조작 같은 사건은 도대체 왜 생긴건가요? 한미fta한다고 해서 대기업의 횡포가 과연 사라질까요? 자본의 본질 한 축은 경쟁이지만 또 다른 한축은 무한축적입니다. 돈이 되기 위한 짓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독점과 카르텔은 그래서 생겨나는 것이구요. 님은 신자유주의의 좋은 면만 보시고 찬양하시는데.. 그 잔인한 게임의 룰을 받아들이는게 한미fta이구요. 외국자본이 우리경제를 유린해도 아무런 손을 못쓰게 된다는 건데..그래도 우리가 손놓고 있어야 되나요? 재화와 서비스를 국가간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경제시스템을 마련해 나가자는 대전제를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적어도 isd같은 조항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왜나면 적어도 한미fta는 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나라 법률보다 상위에 있는 보편원리는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