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순위저당권자의 대위기대권과 그 대위의 범위
공동저당권자가 일부의 저당부동산에 대해서만 경매를 하고서 아직 피담보채권 전부의 만족을 얻지 못한 경우, 다시 말해 선순위저당권자에게 잔존하는 피담보채권액이 있었을 경우라면, 후순위저당권자의 대위권이 인정될 수 있는가? 이에 관해서 우리나라의 통설은 선순위저당권자가 피담보채권의 일부만을 변제받은 경우, 저당권의 불가분성(不可分性) 원칙에 따라 그 잔액 채권에 관해서 다른 부동산 위에 여전히 저당권을 가지므로, 선순위저당권자가 채권 전부를 변제받을 때까지 후순위저당권자가 대위권을 행사하지는 못하지만, 선순위저당권자가 아직 채권 전부를 변제받지 않은 경우에도 후순위저당권자에게 최소한 대위의 기대권은 인정된다고 보고 있다. 만약 이를 부정한다면, 먼저 경매된 저당부동산의 후순위저당권자는 담보권의 이익을 가질 수 없게 되는 반면, 다른 저당부동산의 후순위저당권자는 유리한 배당을 받게 되어 후순위저당권자 간에 불공평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선순위저당권자가 피담보채권의 일부만을 변제받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저당권을 포기할 경우, 후순위저당권자는 대위권은 물론이고 대위의 기대권조차 상실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 판례는 선순위 공동저당권자가 피담보채권을 변제 받기 전에 공동저당 목적부동산 중 일부에 관한 저당권을 포기할 수 있지만, 이 경우 후순위저당권자로서는 선순위 공동저당권자가 피담보채권을 변제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다른 공동저당 목적 부동산에 관하여 선순위 공동저당권자를 대위하여 저당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대위의 기대를 가진다고 보아야 하고, 후순위저당권자의 이와 같은 대위에 관한 정당한 기대는 보호되어야 하므로, 후순위저당권자가 있는 부동산에 관한 경매절차에서 ‘저당권을 포기하지 아니하였더라면 후순위저당권자가 대위할 수 있었던 한도’에서도 후순위저당권자에 우선하여 배당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大判 2009.12.10, 2009다41250). 학설 역시 공동저당권자가 자유롭게 일부의 저당권을 포기할 경우 이를 막을 수는 없되, 후순위저당권자는 그와 상관없이 대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입장이다(李正一, 부산판례연구 제22집, 567면).
문제는 대위의 범위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선순위공동저당권자가 나머지 공동저당부동산의 경매대가로부터 또 다시 우선배당을 받거나 또는 나머지 공동저당부동산에 대하여 저당권을 포기할 경우, 먼저 경매된 부동산의 후순위저당권자는 대위저당부동산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 대위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당권설정자로부터 甲부동산과 乙부동산 모두에 대해서 동시에 저당권을 설정 받았으며 21억 원의 피담보채권을 갖고 있는 공동저당권자인 A가 경매대가 20억 원인 乙부동산을 먼저 경매하여 20억 원 전부의 배당을 받았다고 하자. 그리고 그 후에 나머지 저당부동산인 甲부동산의 경매대가 10억 원으로부터 A가 잔액 1억 원의 배당을 받거나 아니면 저당권을 포기하였을 경우, 乙부동산의 2번 저당권자 C는 甲부동산의 경매대가 10억 원으로부터 과연 얼마만큼의 배당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사견을 말하자면, 2009다41250 대법원판례의 취지를 고려하건대, 후순위저당권자 C는 공동저당권자인 A가 甲부동산의 경매대가 10억 원으로부터 잔액 1억 원의 배당을 받든 아니면 저당권을 포기하든 상관없이, 甲부동산의 책임분담액 7억 원으로부터 A의 잔여 피담보채권액 1억 원을 공제한 금액인 6억 원과 자신의 피담보채권액 범위 내에서 배당을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A가 저당권을 포기한 경우에도 甲부동산의 책임분담액 7억 원 전액의 범위에서 배당받는 것이 아니라 6억 원의 범위에서만 배당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A가 이미 乙부동산을 먼저 경매하였을 때부터 발생한 C의 대위기대권이 그 후 A가 저당권을 포기함에 의하여 더 큰 보상을 받게 되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민법은 선순위저당권이 소멸할 경우, 후순위저당권이 그 선순위로 승진한다는 순위승진(順位昇進)의 원칙을 취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공동저당권의 대위에 있어서까지 순위승진의 원칙이 관철되도록 할 경우, 후순위저당권 자체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그 후순위저당권의 대위기대권에 있어서도 우연한 사정에 의해서 그 배당액이 증대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경매된 부동산의 후순위저당권자에게 이러한 배당상의 특혜가 부여되는 그만큼, 그 대위저당부동산의 소유자는 경매대가의 잔액을 덜 돌려받는 불이익을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그 대위저당부동산에 후순위저당권자가 있을 경우이다. 대위저당부동산 자체에 후순위저당권자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위저당부동산의 후순위저당권자가 아니라 이미 경매된 부동산의 후순위저당권자에게 공동저당권자의 포기액이 귀속되도록 한다면, 그 부동산에 대해서 법정대위권을 갖는 자가 그 저당부동산에 대해서 본래의 저당권을 갖는 자보다 더 우선권을 갖는다는, 다시 말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비상식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우리 민법은 당해 저당부동산의 후순위저당권자에게 순위의 승진을 그 범위의 제한 없이 인정하는 반면, 제368조 제2항 제2문에서 법정대위권자에게는 그 대위범위의 한도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다시 말해 위의 예에서 A가 甲부동산에 관한 저당권을 포기할 경우, 甲부동산의 후순위저당권자인 B가 乙부동산의 후순위저당권자인 C보다 더 우선하여 순위승진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대위저당부동산의 후순위저당권자가 이미 갖고 있던 기득권을 더 우선적으로 보호하려는 이유만이 아니라 후순위저당권자의 대위범위가 후순위저당권자의 배당상 불이익액을 초과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후순위저당권자의 대위범위는 선순위 공동저당권자의 저당권포기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후순위저당권자의 배당상 불이익액과 피담보채권액의 범위 내로 엄격히 제한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공동저당권자에 의해 일부 포기된 금액만큼 후순위저당권자는 더 많이 대위하고 더 많이 배당 받아야 옳을 것이다. 선순위권리자가 포기한다고 해서 그 권리가 사라져버린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후순위권리자가 어차피 제368조 2항 2문에 의해 선순위권리자를 대위할 수 있었다면, 선순위권리자가 포기한 권리의 내용이 이를 대위하는 후순위권리자에게 당연히 계승된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개인주의보다 공동체주의가 더 강하다. 우리민법 역시 개인주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공동체주의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나\'보다 \'우리\'가 더 강조가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자리라 할지라도 같은 공동체 내의 다른 사람이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대신 들어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융통성 있는 법해석이 폭넓게 행해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법해석학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고, 우리나라의 법률가들, 특히 법률실무가들의 수준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하는 것인지 모른다.
비단 이번의 저당권 순위승진문제뿐만이 아니다. 경일이 너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과연 우리나라의 법을 가르치고 있는지, 독일의 법을 가르치고 있는지, 그에 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독일법학을 참고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학문을 함에 있어서 경일이 너처럼 주체성까지 상실하며 독일법학을 추종하는 것은 곤란함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