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주체성 개념에 대한 비판론과 그 반비판
인간의 주체성 개념은 인간의 이성적 의지가 인간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고 물질세계를 변화시킨다는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반면에 인간의 이성적 의지가 인간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고 물질세계를 변화시키긴커녕 인간의 혈통이나 유전자, 그리고 동물적 생존본능이나 종족보존본능, 물질적 이해관계 등이 인간의 모든 삶을 규정한다는 사고에 따르면 인간은 주체(主體)가 될 수 없고 그럴 만한 자격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위해 이용하는 생존기계, 즉 수동적 운반자에 불과하다. 모든 인간은 40억 년 전 원시대양에 처음으로 나타난, 스스로 복제본을 만드는 분자로서의 유전자, 거대한 군체 속에 떼지어서 공생하는 이중나선의 사슬모양 유전자들의 단위로 분해될 수 있고, 인간은 이러한 유전자에 미리 프로그램된대로 그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정확하게 복제하여 후대에 전달하도록 조종 당하는 꼭두각시, 맹목적 로봇의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스스로를 불변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유전자가 이용하는 일개 피난처 내지 껍데기에 불과하며, 이러한 인간을 유전자가 제어할지언정, 유전자를 인간이 제어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게 된다. 어차피 인간이 자기 의지와 노력에 의해 얻어낸 획득형질은 후대의 유전자에 기록되지 않고, 새로운 세대는 선대의 학습내용과 상관없이 오랜 조상이 옛부터 갖고 있던 유전자만을 똑같이 복제받으며, 그 유전자가 명령하는 것만을 다시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인간사회의 진보나 발전이란 개념도 허구나 환상에 불과하다. 결국 인간사회는 각 개인 간의 의식적 경쟁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체에 특정한 형질을 발현시키는 유전물질들 사이의 환경적합성 경쟁에서 승리한 유전자가 계속해서 다음 개체에 복제되는 식으로, 그때그때의 환경변화에 적응하며 재생산되기에 적합하도록 변화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순수이성과 자유의지 역시 인체 속의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더 잘 하기 위해 인간의 뇌 속에 만들어낸 기능의 하나로서, 유전자가 더 잘 복제되도록 기여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인간들이 독신주의, 입양, 동성애, 플라토닉 러브와 같은 유전자의 명령에 반하는 행동들을 하고, 그러한 점에서 인간은 동물과 큰 차이점을 갖는다는 반론이 곧바로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Desmond Morris의 '털 없는 원숭이(Naked Ape)'에 따르면 이러한 인간과 다른 영장류 동물들 간의 차이점들은 단순히 인간이라는 동물이 고기를 먹는 영장류로서 분화했다는 것, 돌연히 초식동물에서 육식동물로 바뀌었다는 데 있을 뿐이다. 육식을 위해 직립(直立)의 사냥하는 원숭이로 진화했고, 그 과정에서 복잡한 커뮤니케이션과 장기간의 육아시스템을 만들고 엄격한 일부일처제와 고도로 발달한 성행위 및 성적 유혹의 기술을 만들었지만, 난교(亂交)하는 영장류에서 진화해온 과정이 너무 급격했기 때문에, 옛날에 갖고 있던 원숭이적 특성을 완전히 내버리지는 못했고, 그 결과로 인류의 행동에는 서로를 공멸시키는 전쟁, 학살, 아귀다툼, 그리고 프리섹스 등의 야만적이고 문란한 행태들이 빈번히 일어났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도끼시대에서 우주시대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눈부시게 발전하고 현대문명이 아무리 휘황찬란하게 성장해왔다 하더라도, 인간의 성적 충동을 비롯한 생물학적 습성은 거의 변한 것이 없다. 사냥하는 원숭이가 일하는 원숭이로, 사냥터는 회사로, 소굴은 가정으로, 한 쌍의 암수관계는 혼인으로 바뀌었을 뿐, 그 어지럽고 무질서하며 이기적이고 약육강식적인 영장류의 생물학적 본질은 인간에게 있어서 전혀 변한 것이 없다. 따라서 심오한 이성적 사유와 문명의 사회적 구조가 인류의 생활양식을 만들고 발전시켰다기보다는 오히려 생물학적 본질과 종의 우연한 분화, 돌연변이가 문명의 사회적 구조와 인간의 생활양식을 불규칙적으로 만들어왔고, 인간은 여전히 생물학적 법칙에 순응하는 형이하학적 동물에 불과할 뿐이다. 이에 따르면 일부 돌연변이들과 뇌기능 장애자들과 같이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에 반하는 행동을 곧잘 저지르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인간의 자율적 주체성이란 한갓 허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고도로 추상적인 수학공식을 창안하고 핵무기와 우주선을 제조하는 인간의 고차원적 정신활동이 단순히 유전자의 자기복제기능이나 생물학적 생존본능과 같은 하나의 발생원인에서 어떻게 비약적으로 연역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연역이 과연 실증이 되는 것인지, 유전자와 같은 비인격적 존재를 과연 의지적이고 인격적인 결단과 행동의 주체인 양 인격화할 수가 있는 것인지, 하는 등의 의문과 비판이 가해질 수 있다. 유전자가 그렇게 대단한 만능의 존재라면, 유전자 안에 이미 인류문화유산의 방대한 정보들이 모두 저장되어 있고, 이성적이거나 사변적인 요소들이 유전자 안에 모두 프로그래밍되어 있거나, 아니면 유전자가 아예 신적인 자유의지와 초자연적인 기적의 창조능력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실제의 유전자는 전혀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문화나 문명이 전혀 진보를 해오지 않은 것처럼 보기에는, 도구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정교해진 과정이라든가, 자연과 우주의 신비를 차근차근 더 많이 알 수 있게 된 것이라든가, 전쟁과 상호파괴가 점점 더 줄어들고 여성과 아동,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가 점점 더 신장되어온 과정 등이 너무나 명백하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Karl Marx 같은 역사적 유물론자들은 이러한 인류문화의 발전이유를 물질적 토대에 기초한 역사의 필연적 발전과정이라는 단계론적 역사관으로 공식화하면서, 인간의 역사가 계급투쟁에 의해서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이 물질법칙에 의해 모든 인간의 자유의지는 궁극적으로 규정되고 제약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각 개인의 행위규칙이 도출되는 원천이자 일치되어야 하는 방향으로서의 경제적 사회법칙 역시 엄밀히 말하자면 실증적 물리법칙이라기보다는 사변적 확신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유물론적 사고방식 역시 그 자체 모순과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비판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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