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손해와 소극적 손해


급부손해가 아닌 파생손해 가운데서 물건의 멸실이나 훼손 등 기존에 갖고 있던 이익의 상실이나 감소로 드러나는 손해를 ‘소극적 손해(消極的 損害)’라 하고, 장래에 예정되고 있던 이익의 획득이 방해됨으로써 받는 손해를 ‘적극적 손해(積極的 損害)’라 일컫는다. 적극적 손해를 다른 말로 일실이익(逸失利益)이라고도 한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소극적 손해는 피해자의 정적(靜的)인 현재이익을 침해한 것이고, 적극적 손해는 피해자의 동적(動的)인 미래이익을 침해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극적 손해는 이를테면 피해자의 확정적 기득권(旣得權)이 소멸하는 것이므로, 피해자에게 당장 직접적인 불편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러한 점에서 소극적 손해는 의무위반행위와 상당인과관계만 인정되면 대부분의 경우 통상손해(通常損害)로 인정되고 있다는 데 양자를 구분할 실익이 있다고 하겠다. 반면 적극적 손해는 확정적 기득권의 상실이라기보다 장래의 희망사항이 좌절된 것으로 인한 잠정적 손해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장 생계에 지장을 주는 근로소득기대의 상실이 아닌 이상, 아무리 큰 보물을 놓쳤다 하더라도 이것이 피해자에게 당장 직접적 불편을 초래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서, 신체침해에 의해 발생하는 근로소득기대의 상실 등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통상손해로 인정을 해주고, 나머지 재산침해에 의해 발생한 일실이익인 경우에는 이를 대개 특별손해(特別損害)로 보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택시기사의 운전부주의로 인한 자동차추락사고로 승객이 부상을 당하여 결국 불구자가 되었을 때, 그 불구가 된 승객이 하필 현직 의사로서 그가 앞으로 벌어들일 수 있었던 막대한 근로소득이 상실되어버린 것은, 비록 적극적 손해라 하더라도 이를 통상손해로 보지만, 예를 들어 매도인이 매매목적물인 토지의 소유권을 매수인에게 인도하지 않고 제3자에게 인도하여 매수인의 전매이익(轉賣利益)을 상실케 했을 때, 그 매수인이 상실한 전매이익은 똑같은 적극적 손해라 하더라도 통상손해가 아닌 특별손해로 보아, 이의 배상청구를 위해서는 특별히 매도인의 손해예견가능성을 요구하게 되는 것(제393조 2항)이 그와 같다.

* 소극적 손해가 적극적 손해보다 더 확실한 통상손해인 이유 : 본래 기득권의 상실만큼 인간을 자극하고 분발하게 하는 것은 없다고 한다. 인간이 진정으로 살벌해지는 것은 단순하고 막연한 Frustration때문이 아니라 가시적이고 명백한 Damage에 의해 더 그렇게 되는 것이며, 나름대로 완벽한 원형을 갖춘 상태에서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깨어져버리거나 그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에 인간은 가장 큰 충격과 분노를 경험하게 돼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곧, 자기가 어차피 가져보지 못했던 것을 아깝게 못 갖게 되어 입는 상처보다, 자기가 이미 가졌던 것을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되어서 입는 상처, 다시 말해 ‘없었던 것을 못 취해서’ 겪는 아픔보다 ‘있었던 건데 없어져서’ 겪는 아픔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래부터 왕이 아니었던 사람은 왕이 될 수 있어도 별로 왕좌에 욕심을 안 내지만, 이미 갖고 있던 왕좌를 빼앗긴 자들은 어떻게든 그 자리를 되찾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것도 그때문이며,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억울한 신분하락을 경험하고 이를 회복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 결국은 옛날의 지위를 찾는 자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지회복(失地回復)의 독기를 가진 자들은 결코 편안한 삶을 살 수 없지만,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동정과 응원을 받아 결국 성공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래서 한번 기득권을 가졌던 자들은 어쩌다 거꾸러져도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일어서게 돼있다고 얘기들을 하곤 한다. 그래서 모든 법질서는 이러한 확정적 기득권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확정적 기득권의 상실인 소극적 손해를 잠정적 꿈의 좌절인 적극적 손해보다도 더 확실한 손해로 대접해주는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곳에서 노다지를 캐내려는 신흥자본가의 투기적 전망보다는 이끼로 뒤덮인 철옹성을 지키려는 전통적 귀족자본가의 확고한 유형적 자산이 법적으로 더 많이 보호되고, ‘개천에서 태어난 이무기’보다 ‘하늘에서 떨어진 용’이 법적으로 더 많이 보호되며, 이러한 법리가 적극적 손해와 소극적 손해의 이론을 통해서도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물론 적극적 손해 가운데서도 신체침해에 따른 근로소득의 상실에 대해서는 법이 꽤 많은 보호를 베풀어주긴 하지만, 이것 역시 그 대부분은 교육과 시험을 통해서 선발하며, 국가가 면허증의 수량과 독점권의 범위를 정해서 고소득을 보장해주는 소수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이미 취득한 기득권의 보호를 위해서 주로 원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반면에 대다수의 서민 자영업자들이나 저소득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이러한 거액의 일실이익배상을 받는 것은, 그들이 아무리 큰 야망을 품고 있고 아무리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저 언감생심(焉敢生心), 먼 세상의 일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 현실임을 볼 수 있다.

댓글 1

Ciracuser
Ciracuser
Damage란 영어로 손해를 말하는데, 적극적 손해나 소극적 손해나 Damage이긴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 민법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민법에서든지 소극적 손해 또한 예견가능성만 있으면 배상책임이 모두 인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예견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보면 적극적 손해나 소극적 손해나 대체 무슨 차이점이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소극적 손해는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회적 강자의 손해, 적극적 손해는 기득권이 없는 사회적 약자의 손해로 등식화할 수 있는 건지도 의심스럽고요. 어쨌든 손해배상법의 기본구조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신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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