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主體)가 너무 강하면 이성(理性)이 죽는다.
주체(主體)가 너무 강하면 이성(理性)이 죽는다. 아니 어쩌면 주체라는 것 자체가 지극히 반이성적(反理性的)인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반이성적인 인간들은 대화나 담론의 과정에서 자기 주체적 입장을 언제나 결정적인 요소로서 부각시킨다. "나의 확신이 이렇고, 나의 말이 이러이러해서 옳으니 너는 따라야 한다"는데, 무조건적으로 그렇다는데, 거기다 대고 더 이상 무슨 말을 더 해줄 수 있다는 말인가?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하면, 그 '주체'께서는 눈을 빤히 뜨고 노려보다가 말이 끝나기 바쁘게 곧바로 자기 주체적 반론을 버럭버럭 내지르게 마련일 것임.)
차라리 '난 단지 나일 뿐'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더 낫다.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오로지 '내가 됨(je suis)' 그 자체일 뿐이며, 다른 사람은 거기에 간섭할 권리를 갖지 않는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대화를 거기서 끝내버리기라도 할 수 있으니 오히려 고맙기까지 하다. 진정으로 골치가 아픈 케이스는 자기 입장에서 끌어다모은 온갖 논거들과 자기가 개인적으로 겪고 소화해서 정리한 사건들을 지리하게 늘어놓으며 자기가 마치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인 것처럼 웅변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거기에 맞추도록 끈덕지게 강요하는 것이다. 결국 자기 주체적 입장을 대변하는 가치만이 중요하고, 다른 가치는 그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것인데, 그렇다면 대화는 뭣하러 하는가? 어차피 그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신봉하는 원리와 자기가 만들어가는 실존이 하나로 연결되는 변증법일 뿐이고, 상대방의 입장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물론 재미만 있다면 그 어떤 자기중심적 궤변도 다 용서해줄 수 있으나, 문제는 그런 사람들의 말이 십중팔구 재미가 없다는 것임.)
"난 이렇게 잘난 사람이다"라든가 "난 이렇게 잘 아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정말로 피곤하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의 너무도 강한 자아(自我)에 감정적으로 불쾌해지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런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리는 어떤 정체성(正體性)에도 기대지 않고, 어떤 정체성도 형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이 늦은 밤에 다시금 곱씹어본다.
주체란 것은 타자, 즉 객체와의 관계에서 주인이 되고, 주도적인 중심인물이 될 수 있는 자, 자기를 변화시킴으로써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는 변증법적 의식의 발현자를 가리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어차피 힘이 없고 열등하고 미국은 힘이 있고 돈이 많고 모든 게 선진적이니 우리는 미국을 따라야 하고 미국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당장은 미국에 물질적인 면에서 꿀릴지라도 자존감을 갖고 미국이 우리를 함부로 얕잡아보지 않도록 우리 목소리를 내고, 정신적인 면에서 우리만의 것을 찾고 우리가 더 낫다는 확신을 갖고 물질적인 면에서도 외부의 힘에 대한 나 자신의 종속을 타개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자는 것이 바로 주체적 의식인 것입니다.
왜 주인장님께서 주체적인 사람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시는지 대체 그 이유가 뭔지 알고 싶네요. 옛날부터 주체사상에 대해 사사건건 비아냥거리는 말씀을 하시는 분이란 거 그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최근들어 통진당사태 이후 그 악의적 비아냥의 정도가 더 심해지시는 것 같아서 구역질이 날 정도입니다. 주체의 철학이 나쁜 철학이면, 대충대충 시류에 좇아 남이 하는대로 따라하고 귀찮은 거 회피하고 힘센 놈이 시키는대로 복종하며 자기 이익만을 좇아서 편하게 편하게 살자는 것이 주인장님의 철학인 건지 이번 기회에 한번 속시원히 밝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체사상에 대한 대중들의 거부감을 이용하여 어떻게든 매카시즘 공세를 지속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상하긴 하오만, 그런 꼼수에 속아넘어갈 사람이 이제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구려..
자기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상대방은 무지몽매 상태에 빠져 있는 죄인들이고, 그러니 내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너희들을 구해주겠다, 이건데요...
그나마 겸손하게라도 다가와서 자기네들이 아쉬운 입장인 것처럼 하는 자세를 취한다면 봐줄만 하지만, 그것조차도 못 갖춘 인간들, 선민의식이나 자기확신에 빠져서 호통치는 인간들을 보면 솔직히 구역질이 나오더군요. 뭐 전지전능의 신세경이라도 경험했나? 어깨에다 똥별 견장이라도 찼나? 싶더군요. -_-;
좌파들만 그런 게 아니라 우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뭔가 '주인된 삶'을 살려고 하는 인간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 또는 자기 그룹 밖에 있는 사람들을 '노예'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거부감이 느껴지더군요.
꼭 이번 통진당사태때문만이 아니라... 주체사상은 하여간에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