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발발한지 올해로 딱 62년이 지났다. 약 5백여만 명의 사망자를 남겼고, 남북한 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기반의 전면적 파괴를 가져온 이 끔찍한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볼 때 이것이다: 그 어떤 정치갈등이라 하더라도 혁명적 방법을 통하여 일거에 총체적 해결책을 구하는 노선(예를 들면 김일성이나 박헌영이 취했던 민족해방 노선, 그리고 지금도 NL, PD 등의 운동권 잔당들이 취하고 있는 주체주의나 사회주의 혁명의 노선)은 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매우 참혹하며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거기에 더해 그러한 폭력혁명적 방법은 필연적으로 외세의 개입을 불러들여 국내의 역량만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대규모의 국제적 분쟁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니, 이를 반드시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이다(이러한 결과는 한국전쟁만이 아니라 갑오농민전쟁도 마찬가지로 불러온 것이었음). 물론 당시 국내 엘리트집단 내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분단도 불사하는 타협불능의 상태로까지 치달은 것부터가 매우 안타까운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전쟁이라는 전면적 파괴상황까지 가지만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가져보곤 한다. 한국전쟁이 낳은 결과는 막대한 규모의 인적, 물적 자원이 소실된 것에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남북한 국민들의 인식 모두에 증오와 적개심의 응어리가 너무나도 깊게 뿌리를 내려, 그 후 거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까지 굳어지고 말았다는 점에 있다 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전쟁의 피해자는 일반 민중들일 수밖에 없고,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정치지도자들일 수밖에 없다. 건국 이후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던 이승만은 한국전쟁 이후 반공국가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그 기반을 물려받은 자들과 이에 기생하는 자들은 아직도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기득권층으로서 확실한 지배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이다. 김일성은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 유일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고, 그 자손들은 3대 세습왕조의 구축을 통하여 아직도 그 전쟁의 상처를 자기네들의 기득권옹호에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전쟁을 처음에 추진하였던 사회주의적 이상가들은 전쟁을 통하여 민족해방을 달성할 수 있고, 노동해방과 민중해방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겠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확립하는 데 더 결정적으로 기여하였고, 남북한 모두에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독재체제를 확립시켜주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 인해 민중들이, 특히 여성과 아동들이 겪어야 했던 재난은 거의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다.
지금도 남북관계에 관하여 극단적인 주장들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보면, 한국전쟁과 같은 이 끔찍한 전쟁이 언제든 또 한번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몸서리가 쳐지곤 한다. 한국전쟁의 책임에 관하여 모든 것이 남한, 미국의 탓인 양, 또는 모든 것이 북한, 소련의 탓인 양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그런 사람들의 말은 아무리 민중을 위하는 언어로 치장된 것이라 하더라도, 결코 민중들을 위하는 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결국은 자기네 정치집단의 이익을 위한 거짓 선동에 지나지 않는 말들이 아직도 진실인 양 도처에 횡행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출처: http://inapcache.boston.com/universal/site_graphics/blogs/bigpicture/koreanwar_06_23/k19_00901090.jpg
당시 남한의 상황이 어땠는지나 아시나요? 일제시대때 그토록 많은 쌀이 공출되어 대부분의 민중들이 끼니를 못 잇고 굶어죽어가다가, 적어도 해방 이후에는 쌀 공출이 없을 것으로 철썩깥이 믿고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었는데, 남한의 경우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에도 예나 다름 없이 일본으로 쌀을 공출해갔죠. 자기네들의 돈벌이를 위해.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파렴치한 친일적 매판자본의 영속을 위해!
그래서 이에 항의하기 위해 민중들은 1946년 9월 총파업과 10월 대구봉기로 저항했는데, 이런 저항이 미군정의 하수인이 된 친일파 경찰들과 우익 테러조직들의 살인적 폭력에 의해 진압되었죠. 그 당시 수천명의 양심적 지식인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이 빨갱이란 이유로 재판도 없이 맞아 죽고, 파묻혀 죽고, 열차바퀴에 깔려죽었죠. 이런 학살을 보고서도 북한은 가만히 있었어야 했다는 얘기인가요?
1948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서 들고 일어났던 제주도민들이 학살된 역사는 어떻고요? 당시 제주도의 거의 모든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제주도의 민간인과 아녀자를 가리지 않은 채 모조리 베어죽이고 찍어죽였던 자들은 바로 미군의 무기로 무장한 남한 군대, 그것도 친일파들의 지휘를 받던 남한군인들이었죠. 그 당시 제주도민들이 그로 인해 모두 몇 명이나 학살되었는지 알기나 하나요? 그 조그만 섬에서 확인된 사망자만 무려 만 사천 명, 확인되지 않은 사망자까지 합치면 사망자 숫자가 자그마치 삼만여 명입니다. 이게 도대체 있을 수나 있는 일인가요? 이런 학살을 보고서도 북한은 가만히 있었어야 했다는 얘기인가요?
미국은 일제로부터 조선을 해방시키러 왔다고 주장했지만, 해방 당시 이러한 끔찍한 학살을 모조리 뒤에서 진두 지휘했죠. 그리고 이를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김일성을 부추켜서 전쟁을 유도한 다음에 더 끔찍한 학살로 한반도를 유린했습니다. 한국전쟁때 대부분의 살상은 미군 폭격기에 의해 북한지역에서 거의 다 발생했다는 사실을 모르시진 않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인들은 남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도 모른 채, 유엔군의 깃발 아래 미국이 한반도에 진출하는 것을 눈뜨고 지켜봐야 했죠. 그리고 몇몇 나라들은 미국의 압력을 못 이겨서 아까운 젊음들을 한반도에 파병시켜 죽게끔 만들어야 했죠. 이게 우리 모두가 다 알면서도 차마 입밖에 못 내뱉는 한국전쟁의 진실 아닌가요?
제발 부탁이지만, 적어도 대학교수 정도 신분이시라면 인터넷에다 글을 쓰시더라도 뭔가 좀 알고서 글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도대체 한국전쟁에 북한과 소련의 책임이 어디에 있다고, 마치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인 것처럼 글을 쓴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수구꼴통 교수라고 욕을 먹는 것입니다!
당시 북한 수뇌부의 오판에 의해 전쟁이 벌어진 것까지는 맞는 말인데,
그로 인해 미국이 참전한 것과 이승만을 중심으로 해서 반공국가가 건설된 것이 뭐 대단히 나쁜 일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게 정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ㅠ
그때 만약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이승만을 중심으로 해서 반공국가체제가 확립돼있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 모두는 공산치하에서 꽃제비가 되고 아오지탄광에서 신음하다 죽지 않았을지? ㅠㅠ
저희 아버지께서도 6.25.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6.25가 살아있는 우리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6.25를 통해 북한의 만행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래서 우리 대한국민들이 반공정신으로 무장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죠. (6.25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북한 주민들처럼 비참하게 살고 있을 듯... ㅠㅠ)
그리고 저는 북한에 대해 전쟁을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전쟁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ㅠ
맨날 평화, 평화만 외치다가 북한 정권에게 뇌물을 줘서라도 평화를 사야 된다고
맨날 비굴하게 평화, 평화만 외치다가 저들에게 비겁하고 게으른 겁쟁이로 호구 잡히는 것보다는
조금의 희생을 각오하더라도 악의 세력을 말끔하게 소탕해버리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우리 민족의 장래에 더 도움이 된다고 봐야 하지 않을지? ㅠ
그렇지 않아도 지금 미국은 북한을 때리기 위해 주한미군을 후방으로 빼거나 철수하려 하고 있는데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주한미군이 충청도로 이전하고 행정수도가 세종시로 이전되는 즉시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일으켜서
북한 김정은이의 목을 따고 우리 대한민국의 K-1 땡크로 금수산 기념궁전을 갈아 엎어버리고
평양 만수대 위에 꽂혀 휘날리는 자유대한의 태극깃발 아래로 남한 주도의 100% 자유민주주의체제의 민족통일을 이루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효?
6.25가 우리를 살려주었듯이 지금 우리는 전쟁을 각오해야만 할 시점인데,
주인장님께서는 너무 나약하고 비현실적인 소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주인장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은근히 빨갱이스러우신 분이 아닌가, 진짜 심히 걱정스럽다는...... ㅠㅠ
북한 신포 경수로사업이 아무 성과 없이 종료되면서 그 직전까지 한국 정부가 투자한 1조 3600여 억 원이 그냥 공중에 날아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의 학습효과는 남한 정부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퍼주기식 공적자금의 투입을 주저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다음 대선에 박근혜가 당선된다면, 대북송금의 규모는 더욱 더 줄어들 것이고, 그 결과는 북한의 대재앙일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남한의 자본과 군부는 아마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죠.
변수는 중국인데, 북핵의 평화적 해결가능성 소멸이나 북한의 국지적 도발 등을 명분으로 해서 미국이 북한에 방법 들어가면 중국도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러시아가 미국의 아프간침공이나 이라크침공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물론 미국이 북한을 접수하는 즉시, 중국이 대만을 접수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합니다. (북한보다는 대만이 미국에게 더 중요하지 않냐고요? 북한 연백평야에 매장된 우라늄을 생각한다면, 북한이 대만보다 미국에게 더 중요한 가치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2의 한국전쟁이 터지는 순간, 한반도 평화를 외치던 수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은 아마도 멘붕상태에 빠지겠지만, 남한 청년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실업자들은 의외로 전쟁을 반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다퉈 군입대를 자원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고, 수많은 피가 한반도 전역에 뿌려지겠죠.
전쟁이 끝나면 이 전쟁이 누구때문에 발발했는가를 가지고 또 다시 갑론을박이 벌어질 건데,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갑론을박은 소수의 지식인들 이외에는 별로 중요한 문제로 취급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쯤이면 한반도 재건사업의 이권을 놓고서 모두가 이전투구를 펼치는 데 여념이 없을테니까요.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나면 미국과 일본경제는 아마도 다시 호황을 맞게 될테니, 우리 정치인들은 전쟁 이후 미국과 일본의 경제원조를 얻기 위한 비굴경쟁에 또 한번 나설 거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미래 대한민국의 정치권력은 해외유학파(제2의 이승만)와 군부(제2의 박정희)가 다시 장악하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봅니다.
한국전쟁의 의미는 오히려, 우리 민족이 고조선-고구려-발해를 거쳐 조선후기까지 계속 보유하고 있던 동만주를 결국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쏘련은 중공을 견제할 목적으로, 만주 동부지역을 분할시켜 북조선에 넘겨주려고 했었다 합니다.
실제로 소련은 북조선에게 연길, 목단강, 목릉 등에 주둔토록 하였다고 하는데,
만주를 잘 모르는 사람은 '아 그러려니' 하갔지마는,
이 지역은, 소련과 동만주 사이의 유일한 철도연계지점이 있던 곳입니다.
여기가 넘어가면 만주와 중공과의 통하는 길은 저 황량한 만주리를 통하는 길밖에 없으며, 중공은 소련과 교역하려면 북괴의 눈치를 봐야 하는 꼴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푸하하하하하
1945년 소련의 만주정벌 때도 이곳을 제일 중요한 지역으로 삼고, 몽골방면 군대는 주로 기병대로 하고 정예군은 목릉-목단강 지역으로 출격했었던 겁니다.
정확한 사실은 지금 상고하기 어려우나 (문화혁명 때에 이 지역의 친북계들을 거의 다 조져서 지금은 증언해줄 자가 거의 없음), 북괴는 실제로 구 간도성, 구 목단강성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이에게 박헌영이 계속 바람을 처불었습니다. (박헌영 이 인간은 한마디로 좆같은 새끼라고 보면 됩니다. 이 자는 6.25 때 서울에 오자마자 이병철의 미제 차를 뺏어 타고 다녔다 하더구만요. 비적들의 하는 꼴이 이러합니다. 이병철이 평생 두 가지를 아까와했는데, 하나는 전두환에게 TBC 뺏긴 것이고, 또 하나는 박헌영에게 자가용 뺏긴 것이었다더군요.)
그리고 김일성이는 멍청하게도, 박헌영 말을 듣고, 남침을 강행했습니다.
그러나, 박헌영이 호언장담하던 남한 전체의 '봉기' 는 일어나지 않았고, (이에는 이북출신들의 공이 컸습니다. 이북에 있던 친일군인 거두들 - 대표적인 예가 백선엽 - 이 대거 남으로 내려와 방어한 겁니다. 몽골군을 무찌른 이스라엘의 '아인잘룻' 전투의 '맘룩' 군인들이 몽골에 반대하여 도망간 여러 유목민족의 잔당이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ㅍㅎㅎ)
오합지졸로만 알았던 남한군은 생사의 위기에 몰리자 낙동강 앞의 다부동 (칠곡군이지만 사실상 대구라고 봐도 됨) 에서 필사의 저항을 시작했습니다.
흔히 '낙동강전투'라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이 다부동전투였습니다. (다부동전투의 의미는 대국적으로 봐야 합니다. 한국사상 3대 치열전투가, 살수대첩, 귀주결전, 그리고 다부동전투입니다. 소위 '친일장교'들이 '명예회복' '속죄=redemption' 를 얻은 것도 다부동전투에서였습니다.)
다부동전투는 1차대전과 비슷하게 소모전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처음 데리고 왔던 군대가 다 닳아 없어지니, 하는 수 없이 동만주지역에 있던 북괴 병사들이 남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으며,
중공은 이들이 내려가자 곧바로 그 지역들을 다시 합병했습니다. 이로써 우리 민족의 손아귀에서 만주와 백두산은 영원히 떨어져 나간 셈이 되었다 이 말입네다!
이후 북괴는 곧 미군이 북진하니, 그들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는 커녕 당장 연명이 더 급해졌으므로, 모택동이에게 청하여 중공군을 들이면서 그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즉, 김일성이가 박헌영의 말을 무시하고 남침을 안했으면, 연길에서 목단강, 흥개호에 이르는 지역은 북괴의 땅으로 남았을 거라 이 말입니다. 소련이 원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스탈린은 중국사를 잘 알고 있었던 듯하며, 언제나 북방민족의 압박이 있던 중국을 압박하려면, 소련이 북에서, 북괴가 동에서 압박하여 중국이 날아오르는 걸 막는 게 상책이다 이리 보았다고 합니다.
근데 새파랗게 어린 김일성이의 촐랑거림으로 스탈린의 계획이 무너지고 만 것이지요. 이에 실망한 스탈인은, 나중에 김일성이가 딸려주세여 딸려주세여 하고 SOS드립을 쳤는데도, "씨바야. 니가 싼 똥은 니가 치워" 이래버렸던 거입네다.
물론 다부동전투에서 남한이 이겼다는 것은 그나마 큰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거입니다. 다부동이 뚫렸으면 북괴가 한반도를 차지했을것이고 제주도는 대만에 넘겨졌을 것이며, (이미 장개석은 이승만에게 제주도를 달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상황이 얼마나 다급했던지, 장개석은 역대 중국 국가원수 중 처음으로 - 청태종 서울방문당시는 천하통일황제가 아니었으며 원세개도 서울방문 때는 그저 장군이었을 뿐 - 1949년 한반도를 찾아 애걸했지만, 이승만은 즐쳐드셈 했었던 과거가 있습니다)
'제주인'들은, 국민당이 '고산족'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대우를 받았을겁니다 우하하.
어차피 남한에서 퀄리티 있던 자들은 이미 미국이 사모아로 이주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으니 다 빠져 나갔을 것이고, 일본으로도 수천척의 밀항선이 들어갔을겁니다. 이들은 일본에 가서 '조총련' 놈들을 다 죽여버렸을 거구요. 그리고 내가 봤을 때는, 아마도 그들은 인구가 적은 '시코쿠'에 정착토록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중공이 대웅비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들이 한국전쟁의 진정한 의미입네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중공은 만주의 중요부분을 결코 북한에게서 빼앗아 올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푸하하하하하하
르완다 얘기를 좀 해보갔습네다. 르완다는 아프리카의 빈궁한 나라이지만, 아프리카 수준으로 보면 괜찮은 나라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그런 대로 자동차가 다니고, 거리가 '어느 정도'는 깨끗하고, 밤에 길거리를 다녀도 '어느 정도는' 안전한 거의 유일한 나라가 르완다입니다.
그 이유는, 르완다의 국가원수 뽈 카가메의 '철권통치'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이 가시화되는 걸 두고 독재의 망령이니 뭐니 하는데, 두고 보세요. 독재가 과연 우리나라에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푸하하하하하하)
카가메의 철권통치 하에, 르완다는 더욱 낙후되긴커녕 치안이 바로잡히고 나라가 아주 질서정연해졌습니다. 그 덕분에 르완다는 그 지역에서 장사하기 좋은 곳이라는 이미지가 생겨, 주변국가들이 다 거기로 와서 장사를 하기 때문에, 경제가 발전되었으며,
그 이익은, 전국민의 10%가 안 되는 지배종족 투치족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실, 세계인들이 르완다를 알 때는, 1994년 인구의 90%를 넘는 후투족이 (당시는 85% - 피그미족 약간 포함), 현재의 지배종족인 소수의 투치족을 마구 학살한 사건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키가 큰 소수의 투치족이 키 작은 다수의 후투족을 지배하고 있었으나, 1960년대에 다수의 후투족들은 소수의 투치족들을 내쫓고 정권을 잡게 되었는데,
1994년 4월 초 후투족 출신의 르완다 대통령이 비행기가 공격을 받아 암살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르완다 전역에서, 다수의 후투족들은 소수의 투치족과, 투치족을 보호하는 후투족, 후투-투치 혼혈들 등을 무차별 학살하는 일이 벌어졌지요.
한편, 2살 때 르완다를 떠나 주변국가를 떠돌며 항쟁하던 투치족의 영수 뽈 카가메는, (그런다고 무식한 망명객은 아니었습니다. 객장으로 우간다에서도 꽤 비중있는 자리에서 영향력이 있었고, 미국도 그의 재능을 높이 보아 리븐스워스 군기지에서 미국 장교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도록 했었습니다)
르완다내의 혼란을 틈타, 복국을 꾀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수의 후투족들이 소수의 투치족을 죽이느라 힘들이 분산된 틈을 타서, 북쪽에서 국경을 넘어,
인구가 많은 지역들, 즉 학살이 제일 많이 이루어지는 지역들은 일부러 피했습니다.
그리고 인구가 적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들부터 먼저 점령하였고,
그런 과정에서 르완다 전체를 C자형으로 점령하여, 수도와 인구밀집지역 몇개 (르완다는 땅 크기는 남한의 1/4 크기이지만, 인구는 그 당시 8백만으로, 인구밀도가 남한 못지 않게 높았습니다. 아프리카 최고의 인구밀도를 자랑함) 를 빼고는,
거의 다 점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후투족의 투치족에 대한 학살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뽈 카가메는, 동족인 투치족 양민들이 마구 학살된다는 데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나 감정도 없었습니다.
단지 후투족과의 싸움을 '이겨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을 뿐입니다!
군사적으로는 가치 없는, 투치족 죽이기에 모든 힘을 뺀 후투족들은 카가메가 수도 교외에 이르자 혼비백산하여, 콩고 국경으로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을 갔는데,
그때 르완다의 후투족 인구 7백만 가운데 거의 1/3인 2백만이 도망을 갔다고 합니다.
마침내 카가메와 그가 이끄는 투치족들은 르완다 수도와 다른 지역들을 점령하였습니다. 카가메가 국가원수가 된 건 말할 필요도 없지요. ㅎㅎ
물론 그 이전에 투치족들은 거의 씨가 마르다시피 하여, 그 숫자가 백만 명에서 20만 명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카가메가 이끌던 무리들과 주변국에 난민으로 살던 투치족들을 더해도 50만이 달랑달랑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즉 까가메의 지지기반인 투치족은 그 반수 이상이 이미 죽은 겁니다.
그런데 카가메는,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국민의 반 이상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카가메가 자국민의 '목숨'을 구하겟다고 깝죽거렷다면,
광기에 찬 후투족들의 반격으로 그와 그가 이끄는 무리들도 후투족의 도끼에 이마가 까였을 겁니다. 어찌어찌 르완다를 차지했을지라도 프랑스의 개입으로 국토의 일부는 '남르완다' 로 떨어져 나가게 될 뻔하였습니다.
카가메는 '대국' 을 보고, 학살로 후투족들을 지치게 하자는 '이일대로'의 계책을 썼고, 동족의 죽음은 '부수적 손실' 로만 치부했습니다.
그 결과 어쨌든, 르완다를 '아프리카에서는 잘 사는 나라' 로 만들었고, 그 자신도 '아프리카 유일의 개념지도자' 가 되어 부시 대통령 시대에 백악관까지 다녀갔고 (백악관은 후진국 지도자들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
작년에는 부산에도 들러서 이대통령도 만나고 갔습니다.
아프리카 국가지도자들은 쿠데타 때문에 아무 데나 못다니는데, 미국이니 한국이니 다닐 수 있는 것 자체가 그의 체제가 공고하니 그럴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할 수 있는 게 영웅의 조건이고, 소를 위해 대를 희생하는 건 찌질이의 조건, 개병신의 조건이외다.
KNura 백경일이는 지가 평소에 민중들을 위했으면 얼마나 위했다고, 한국전쟁으로 양민들의 희생이 너무 컸고, 앞으로도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된다는 둥 그런 개소리를 씨부려대는데,
저는 한국전쟁이라는 잘못된 전쟁의 결과를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전쟁을 다시 한번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 옛날 1994년에 영삼이가, 남한국민 반과 만경대인민 3/4를 날려버릴 각오를 하고 북폭에 동의했다면 그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 최고영웅으로도 남을 수 있었을 것인데,
영삼이나 그의 모사인 현철이는 그럴 '담' 이 없어서, 민족사에 다시 없을 찌질이라는 이름만을 얻게 되었던 것이 새삼 생각나고 있습니다. 제 말이 무슨 말씀인지 잘 아시겠습니까? 푸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