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에 관한 단상


2012년 3월 유럽은 그리스에 대해 긴축을 조건으로 하여 1,730억 유로를 대출해주기로 했고, 유럽중앙은행의 단기대출을 3년 이상 중장기대출로 전환해 5,300억 유로 가량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그 당시 이태리와 스페인의 국채금리는 안정을 찾았고, 유럽 각국의 주가지수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난 그걸로 유럽의 경제위기는 대략 진정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요즘 국내외 언론기사들을 살펴보니 유럽 경제위기가 생각보다 오래 시간을 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위기이기 때문에 위기상황이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보도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일부러 위기상황을 오래 지속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 호들갑스러운 비명이 오래 지속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경제에 위기가 도래했다" "자본주의의 종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경고가 2009년 이후에만 해도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러한 소식을 도대체 우리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들어야 했는가?

어렸을 때는 그런 위기설이 들릴 때마다 정말로 대공황이 재림하고 자본주의가 멸망할 것 같아서 제법 진지하게 무서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경제위기설이 증폭될 때면 국민들의 혈세를 쥐어짜 구제금융을 한다느니 공적자금을 투입한다느니 하는 대책들이 발표되고, 정치권력과 관료들에게는 더욱 더 큰 권력이 주어지고, 그런 윗분들의 뜻에 따라 망할 재벌기업들은 망하지 않고 살아남고, 경제가 어려워진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할 윗분들 역시 책임지지 않고 건재하는 식으로 결말이 지어지곤 하였다.

차라리 위기에 대해 호들갑을 떨 필요 없이, 위기를 위기 그 자체로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위기극복을 위한 조치들을 전혀 하지 않았다면, 그 위기 이후 죽을 건 죽고 망할 건 망하고, 윗분들의 인적 구성이 대폭 달라져서 후련한 카타르시스라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의 경고가 호들갑스러웠던 것에 비례하여, 국민들의 민주적 동의절차조차 생략한 구제조치의 규모 역시 더욱 더 커져갔고, 가만히 보면 가진 것들이 많은 만큼 잃을 것들도 많아 위기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봐야 했을 윗분들께서는, 경제위기로 자연스럽게 와야 했을 파국을 국가가 인위적으로 막아준 덕분인지, 위기 이후로 더 강력해지고 더 부유해지는 반면, 어차피 잃을 것도 없어 위기가 그리 두렵지 않았을 아랫사람들의 삶은 위기 이후 더욱 팍팍해지기만 하는 경우를 많이 경험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말 뭔가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대체 뭐가 경제위기야?" "한번 속지 두번 속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는 것인데, 하여튼 이런 호들갑과 분위기 몰이도 정말 지겨울 정도로 너무 반복되니까, 이젠 솔직히 이런 말을 외치고 싶어질 정도가 되었다.

"자, 이제 내게 진짜 경제위기를 보여줘."


위기라는 건 뭐 어차피 수시로 찾아오는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도 세상을 살아오면서 위기상황을 얼마나 많이 겪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때마다 느낀 것이 있다면,

첫째, 위기란 건 이왕이면 확실하게 겪어서 그 김에 개인의 잘못된 버릇들을 고쳐야 할 건 고치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고, (예를 들면 건강의 위기가 왔을 때 술과 담배를 끊든가, 학업성적의 위기가 왔을 때 게임을 끊든가 하는 것)

둘째는 위기란 것을 가급적 개인적 각성의 계기로 삼는 것이 좋지, 그걸 갖고 남들을 협박하여 삥을 뜯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단지 일시적 미봉책을 유도함에 불과할 뿐, 그 문제의 진정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나는 솔직히 세계 경제위기라는 게 정말 제대로 한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모름지기 경제위기라면 코카콜라, 씨티뱅크, JP 모건, 모건 스탠리, 엑슨 모빌, 셰브론, 폭스바겐, 골드만 삭스, 네슬레, 지멘스, 맥도널드, 루이뷔통, 구찌 같은 회사들이 모조리 망해버릴 정도의 위기가 도래해야 그게 진짜 세계경제위기다. 그런 경제위기가 한번 온다면, 그 덕분에 아시아 기업들도 기를 펴고 살 수 있고 여러 모로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삼성, 현대, SK, LG 같은 회사들이 망해버릴 정도의 진짜 국내경제위기가 도래해야 우리 중소기업들도 그 덕에 기를 펴고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기업들이 망하면 우리 자본주의 경제는 어떻게 하냐고? 망해야 할 재벌기업, 대기업이 망한다면 그건 그냥 기업이 망하는 것이지 그것 가지고 자본주의가 망할 일은 솔직히 없다. 자본주의가 망하면 공산주의 세상이 오는 거 아니냐고? 자본주의가 망한다면 그냥 자본주의만 망하는 것이지 그것 가지고 시장경제가 망할 일은 없다.

하여튼 언론에서 앵무새처럼 경제위기를 말할 때마다 난 진정 "내게 진짜 경제위기를 보여줘."라는 말을 누구에게든 하고 싶어지게 된다. -_-;


댓글 1

루빈이
루빈이
지금이 경제위기가 아니라면 언제가 경제위기라시는 건지... 지금 유럽의 실업률이 30%에 육박하고, 자살률도 25% 가량 치솟았습니다. 내년에는 전세계가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할 것으로 예견되고, 우리나라도 가계부채의 폭발에 따른 은행들의 연쇄부도위기와 실업대란이 목전에 와있는 상황입니다. 뭔가 현실에 대해 대단히 특이한 인식을 갖고 계신 듯.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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