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이 없기에 오히려 보편적이라는 역설
Zizek을 좋아해서 그의 저서를 많이 읽었는데, 어떤 것은 한국어로 출판되지 않은 것도 있어 어쩔 수 없이 독일어본으로 구해 읽어야 했던 것들이 있었다. 그렇게 독일어본으로 어렵게 구해 읽은 지젝의 책 중에 하나가 바로 '불관용을 위한 하나의 항변(Ein Plädoyer für die Intoleranz)'이라는 책이다. 뭐 분량도 매우 짧고 Zizek이 평소 역설하던 다문화주의에 대한 비판적 주장이 아주 재치 있게 담겨 있는 것 외에는 별로 특징이 없어 그동안 좀 무시해왔던 책이지만, 오늘 문득 이 책을 들춰보다가 다음과 같은, 재미 있는 문장을 하나 발견하였다:
"Politik beinhaltet somit immer eine Art Kurzschluß zwischen dem Universalen und dem Partikularen: das Paradox eines singulier universel, eines Singulären, das als Platzhalter des Universalen erscheint und die 'natürliche' funktionale Ordnung der Beziehungen im Gesellschaftskörper destabilisiert. Diese Identifikation des Nicht-Teils mit dem Ganzen, desjenigen Teils der Gesellschaft ohne genau festgelegtem Platz (oder der ihm zugewiesenen subordinierten Stellung widerstreitend) mit dem Universalen, ist die elementare Geste der Politisierung [...]"
각각의 특수이익들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그 특수이익들을 서로 원만하게 조화시켜 그 갈등을 봉합시키고 뭉뚱그리려 하는 것은 정치의 본령이 아니며, 정치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그 사회 내에서 특수이익을 가지지 못한 자, 조직화된 기득권을 가지지 못한 자, 그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 그 사회 내에서 확고한 자기 지분이나 지위를 전혀 갖지 못한 자에게 '보편성'의 지위를 부여하고 그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갈등을 오히려 표면화한 다음 이를 총체적으로 극복하게끔 하는 데 있다는 얘기. 가장 가난하고 가장 억압받고 가장 소외된 사람을 정치운동의 중심으로 놓고 생각할 수 있어야 그것이 본래적 의미의 정치라는 얘기인데, 결국은 뻔한 노동계급 중심의 혁명론 정당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 '보편성'에 대한 해석은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추세는 안철수와 같은 중도적 지위에 있는 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자, 국가공동체 내에서 자기 기득권을 어느 정도 움켜쥐고 있지만 소외계층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따뜻한 시선을 보낼 줄 알고 중재의 능력을 갖고 있는 자에게 통합의 기회를 부여하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에서 타협하고 중재하고 유산계급이나 무산계급이 서로에 대해 이해와 관용을 베풀게끔 하려는 노력 자체가 전혀 무가치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혹시 정치 자체에 대한 부정('탈정치화') 내지는 현상의 보존과 유지로 흐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아닌지, 결국은 옛날 노무현 때와 마찬가지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고, 죽도 밥도 안 되는 그런 결말로 이어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한다는 게, 말이야 그럴싸 하지만, 결국은 현실의 문제점들을 그대로 안고 가며 고착화시킨다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인데,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되는 요즘 우리나라 정치의 새로운 움직임에 대해서도 이젠 좀 다른 해석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좀 더 낮은 시각에서 이 현상과 흐름을 바라봐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기에 오히려 보편적일 수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 존재가 최하층 빈민이든, 실업청년이든, 불법체류 외국인들이든, 적어도 진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기존 정치인들의 미덕을 통째로 부정하고 정당정치 자체를 통째로 부정해버릴 만큼, 정치의 본래적 의미로 회귀하려는 급진적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이런 가장 낮은 존재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현재 우리나라의 진보진영이 생각하고 있는 '사회적 일자리'나 '일자리 나누기'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목표들이 과연 정치의 본래적 의미나 보편성의 관점에서 온전히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지도 생각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조직화된 기득권들을 그대로 둔 채, 그 기득권들을 조금씩 깎아서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약간이나마 나눠주는 사탕발림의 작전이라도 좀 해보자는 게 과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저는 오히려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보편적 복지' 하나만 확실하게 움켜잡는 게 더 나은 전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편이에요. 일자리를 나누어준다? 그것보다는 일자리 있음과 일자리 없음 사이에 놓여진 강고한 경계벽을 무너뜨려버리는 게 더 근원적인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편이지요.
주인장님께서는 그냥 솔직하게 우리 박근혜 후보님이나 지지하시지 왜 어울리지도 않는 안철순지 뭔지를 고민하시는지 정말 알 수 없네효... 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막는 것이 정규직 노조라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죠. 근데 그 이유는 비정규들이 도맡아하는 힘든 일을 정규들이 나눠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반발이라는 사실.
그리고 저는 동네상권 보호도 인정 안 하는데요. 동네 영세 사업장 죽인다며, 롯데마트 통큰 치킨 막으라는 동네 치킨 집들이 사실은 프렌차이즈로 권리금과 인테리어로 몇 억을 주고, 최저임금 주기 아까워서 배달하는 애들 월급 떼먹을 수도 있는 악덕 자영업자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에 반해 통큰치킨 한번 먹겠다고 몇시간째 번호표 뽑고 줄선 사람들의 허름한 옷차림을 보면...
사회적 약자, 사회적 약자 그러는데 사회적 약자들 중에서도 조직화된 사회적 약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기득권에 속하죠. 자칭 진보진영들은 이런 사람들을 위한 정책들을 내놓지만, 그로 인해 손해를 보고 희생 당하는 것은 조직화조차 되어있지 못한 최하층 빈민들이란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