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물질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노동을 통해서이다(C'est par le travail que l'homme ordonne le monde des choses). 그런데 노동과 물질의 세계에서는 인간도 다른 모든 물질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Qu'il se réduit, dans ce monde, à une chose entre les autres). 노동은 노동자를 하나의 수단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C'est le travail qui fait du travailleur un moyen). 인간을 동물과 구분시키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노동이다(Le travail humain, essential à l'homme, s'oppose seul sans équivoque à l'animalité). 그런데 노동은 인간을 사물화하여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만들어버린다. 바로 여기에 노동의 역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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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소련 같은 체제에서도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 착취당하지 않았는지, 노동자들이 지시명령을 받지 않고 창조적인 노동을 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라 이것입니다. 북한의 천리마운동 홍보영상에 나오는 노동자들의 얼굴이 환하게 웃는 얼굴이라 해서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의 노동이 행복한 노동이었을 거라 생각하셨다면 그건 착각이에요. 차라리 자본주의 체제에서라면 자기가 들어가고 싶은 직장에 들어가, 자기가 하고 싶은 노동을 하고, 그러다가 싫으면 다른 직장으로 옮기고 하는 것이 자유로웠을텐데,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그런 자유조차 없었으니 노동이 더욱 더 착취당하고 억압당했다 봐야 합니다. 오히려 사회주의가 강한 체제일수록 노동하는 인간은 더욱 더 물건취급을 당했고, 당중앙의 지시에 따른 필요 이상의 노동과 필요 이상의 생산으로 환경은 더욱 더 파괴되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입니다.
요즘 서구 좌파들은 노동을 더 늘리기보다 노동을 더 줄이지 못해 안달이죠. 안철수 같은 사람이 주장하는 '일자리 나누기'나 '노동시간 단축', 손학규가 주장했던 '저녁이 있는 삶' 같은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살펴 보세요. 옛날 소련시절 스탈리니스트들이나 주사파들의 사고방식대로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입니다. 좌파들의 노동에 대한 인식이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환되기 시작한지는 이미 오래 되었어요. 지금은 노동으로 자연을 개조하는 시대라기보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 속에 깃들어 있는 원초적 자연성을 복원하고, 인간 주위의 모든 살아 있는 개체들과 공존하며, 그들에게로 회귀하며, 친환경적 삶을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자본가나 노동자나 인간으로서 똑같은 유적 본질을 갖고 있는 존재들일 뿐이고, 노동은 인간을 진보시키긴커녕 인간을 소모시킬 뿐이며, 노동하느냐 노동하지 않느냐 여부는 진보성과 하등 관련이 없다는 이론은 그러한 점에서 신자유주의를 능가할 정도로 반좌파적이죠.
주인장님께서는 예전부터 줄기차게 노조중심의 정치, 노동중심의 정치가 아닌 실업자나 장애인, 빈민, 외국인 등의 소수자중심 정치에 더 관심이 많으셨던 것 같긴 한데, 과연 노조의 정치적 역량을 그렇게 간단히 무시해버릴 수 있는 건지 의심스러운 것도 사실이죠.
물론 최근 우리나라의 좌파정당들을 보면(특히 통진당), 그 상층부를 노동자 아닌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고, 노동중심의 정책들을 찾아볼 수 없는 게 현실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노동중심성을 그렇게 쉽게 기각할 수 있는 것인지...
Standing 같은 사람은 노동주의에서 탈노동주의로 나아가자고 하기도 하던데, 탈노동이 과연 현존하는 자본의 착취와 사회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그냥 탈노동주의는 평생 노동이라곤 해본 적이 없어 육체적 노동 자체에 열등감을 갖고 있는 책상물림 살롱좌파들의 말장난에 불과한 거죠. 오히려 당면한 투쟁으로부터의 회피를 정당화하거나 자본의 회유분열공작에 이용당할 여지가 많은 사이비진보이론이라고 생각하는데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