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답안작성 어떻게 해야 하나?


법학답안의 작성에 관하여 많은 학생들이 평소 질문을 해온 바 있고, 매학기마다 수업시간 중에 그 방법론을 간략하게 일러주기도 하였지만, 본격적이고도 체계적인 답안작성요령의 소개를 하지 않은 탓인지,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법학답안의 작성에 관하여 전혀 개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법학답안작성의 방법론이라는 게 뭐 뚜렷한 왕도(王道)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굳이 그 방법론이란 걸 예로 들어보자면, 목차의 세분화 내지 법조문의 인용과도 같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 몇 가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워낙에 많은 학생들이 이 부분에 관해 두려운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을 갖고 있고, 별도의 자세한 정보제공을 원하고 있는 듯하여, 여기에 그 내용을 한번 정리해보는 바이다. 아직도 법학시험답안을 작성하면서 나른한 수필 형식이나 신변잡기 형식의 글을 써내고 있는 많은 학생 여러분들께서는 부디 아래의 답안작성 방법론을 숙지하시어, 그에 관한 무지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일이 다시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 문제의 요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수많은 법학답안을 읽으면서 역시 가장 많이 느끼는 안타까움은, 학생들이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닌 다른 답을 내놓고서 마치 대단한 답안이라도 써낸 듯 우쭐해 한다는 점이라 할 것이다. 그 답안이 매우 완결된 체계와 풍부한 지식을 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문의 핀트를 완전히 잘못 잡은 것으로 인해, 출제자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전혀 딴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더러는 그 문제와 관련되는 모든 얘기들을 장황하게 열거하고 있기는 한데, 그 중에서 무엇이 질문자의 질문에 답하는 것인지를 콕 집어서 제시하지 않는 답안들을 보기도 한다(예를 들어 도품이 금전인 경우의 선의취득에 관한 문제를 냈더니, 선의취득에 관한 교과서 내용을 그냥 통째로 외워서 다 옮겨 적은 다음 그걸 제출하고 가버린 경우 등이 그와 같다). 아무리 많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답안지에 아무리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적었다 하더라도, 그 문제의 취지에 부합하는 답, 출제자가 원하는 답만을 정확하게 집어서 설명해주지 못한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는 것이기에, 답안을 작성하기에 앞서 먼저 문제의 요지를 잘 파악하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많은 학생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모범답안의 표제어(예를 들어 도품이 금전인 경우의 선의취득에 관한 문제이면, 선의취득, 금전, 민법 제250조 단서, 부당이득, 민법 제741조, 악의, 중대한 과실, 소유권취득 등의 표제어)가 일단 답안 어딘가에 조금씩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그만큼의 점수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청을 높이는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그만큼 많은 내용을 달달 외워서 답안지에 썼으면, 그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점수를 줘야 하고, 만약 질문의 답을 알고 싶으면, 채점자가 그 답안을 꼼꼼히 읽으면서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알아서 찾아내도록 해야지, 가뜩이나 원시자료(raw materials) 찾아 읽고 외우는 것만으로도 힘든 학생들이 그 답안에 그 '문제에 대한 답'만을 몸소 고르고 추려서 쓰도록 요구하기까지 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대략 한 페이지 정도만 쓰면 되는 답안을, 무려 두 페이지 이상이나 방대하게 써냈으니, 비록 그 중에서 그 문제가 요구하는 답이 차지하는 분량은 20%도 안 되고 그나마도 질서 없이 흩어서 써놓았다 하더라도, 그 엄청난 분량을 생각해서 높은 점수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거세게 교수를 몰아붙이는 학생들도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정보통신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정보의 생산과 공유가 정보의 수요를 앞서기 시작한 시대임을 알아야 한다. 이제 사람들은 정보를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가급적 많이 받아들이는 것보다 이 정보가 나에게 필요한 정보인지를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시대는 정보의 수용보다 정보의 선별이 더 중요해진 시대이고, 학생들의 답안을 채점하는 교수들 역시 해당 문제와 별 관련이 없는 기초적 설명까지 다 읽어줄 만큼 정보에 굶주려 있거나 한가한 사람들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문제의 요지를 잘 파악하고, 그 문제가 요구하는 답만을 깔끔하게 써서 제출하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2. 쟁점을 잘 잡고 결론을 명확하게 내려야 한다.

그 다음으로 명심해야 할 것은 답안을 작성함에 있어 서론과 결론을 잘 써야 한다는 점이라 하겠다. 물론 서론과 결론을 쓰지 않더라도 본론을 아주 정확하고 일목요연게 써낼 수만 있다면 매우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게 사실이긴 하나,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대부분의 교수들은 시간이 별로 없고, 장시간동안 학생들의 지루한 답안을 읽느라 완전히 지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끔가다 서론에서 문제의 쟁점을 정확히 집어내고, 맨 마지막 결론에서 그 쟁점의 해결책을 명확히 요약하여 설명하는 답안을 발견할 때면, 설령 그 쟁점과 해결책이 정답과 아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환호성을 지르며 보너스 점수를 주게 마련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채점자가 내 답안에 채점자의 한정된 시간과 관심과 주의를 가급적 더 많이 기울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채점자가 가장 먼저 읽을 서론에서부터 채점자의 구미와 흥미를 당겨놓고, 그 다음에 채점자의 눈이 쏠리게 마련인 결론에서 채점자가 미리 무릎을 탁 칠 수 있게끔 답안을 영리하게 작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로스쿨에서는 학생들이 글을 쓸 때 아이락(IRAC)이라는 형식을 요구한다고 한다. 여기서 아이락(IRAC)이란 쟁점(Issue), 관련규정(Rule), 분석(Analyse), 결론(Conclusion)을 말하는데, 이러한 네 가지 형식에서 역시 가장 앞에 놓이는 것은 바로 쟁점(Issue)이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제일 첫번째 요건인 쟁점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그 관련규정도 제대로 찾을 수 없고, 그 쟁점과 관련규정이 엉터리이면 그 분석을 아무리 잘 해도 전혀 상관없는 분석이 될 것이며, 그 결론 역시 전혀 엉뚱한 결론일 수밖에 없으니, 처음부터 쟁점이 제대로 안 잡힌 글은 법학시험답안이 아니라 그냥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이러한 쟁점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잘 잡을 수 있을까? 이를 잘 잡기 위해서는, 일단 그 과목 또는 그 시험범위의 전체를 머릿속에 쫙 펼쳐놓고서 하나하나 대입하고 검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문제를 처음 읽자마자 "나는 척 보면 앱니다!"하고서 바로 쟁점을 찾는 능력을 갖추었을지 모르겠으나, 그런 사람은 본디 매우 드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의 문제를 척 보고서 바로 쟁점을 잡지는 못하는 게 보통이며, 꼼꼼하게 이것저것 다 따져보지 않고서는 중요한 쟁점을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가 그 과목 내에서 어떠한 전후맥락을 가질 것인지도 고려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무능력자의 상대방이 그 계약을 유효하게 만들 수 있는 법적 수단'이라고 하면, 그 계약이 유효하지 않은 경우가 어떤 게 있을지, 일반적으로 무능력자의 계약이 처음부터 유효한 경우는 또 어떤 게 있을지, 일반적으로 취소할 수 있는 법률행위를 확정적으로 유효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등을 곰곰히 생각해봐야지, 곧바로 "그걸 내가 교과서 어디에서 읽었더라?"하고 기억을 짜내려는 데에만 주력하면, 결국 그 문제를 제대로 풀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케이스문제라면, 그 사안에서 원고 또는 피고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비유하자면, 경로가 잘 찾아지지 않을 경우, 일단은 목적지부터 확인하고서 그 다음에 경로를 되짚어 가는 것이 더 유효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마찬가지로 그 글의 맨 뒤에 놓이는 결론(Conclusion) 역시 쟁점만큼이나 중요한데, 결론은 채점자의 입장에서 가장 읽고 싶어 하고 또 궁금해 하는 내용일 수밖에 없으니, 가급적 명료하게 요약하여 채점자가 빨리, 그리고 손쉽게 읽을 수 있게끔 작성해야 할 것이다. 채점자는 대부분의 경우, 하나의 답안을 읽을 때 서론 --> 본론 --> 결론의 순서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서론 --> 결론 --> 본론의 순서로 읽게 마련이다. 그러니, 채점자의 노고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그 결론 속에 그 '문제에 대한 답'이 완전하면서도 명확하게 들어가 있게끔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명확히 쓰지 않고, 본론 가운데에서 채점자가 알아서 결론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도록 답안을 써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경우 채점자는 그만큼 지칠 수밖에 없고, "도대체 이 답안의 결론이 뭐야?"하고 신경질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불친절한 답안이라면, 설령 그 결론이 본론 속에 아주 정확하고 풍부하게 담겨 있다 하더라도, 채점자는 그 답안에 점수를 박하게 줄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가끔 보면 결론이라고 해놓고서 '문제에 대한 답'은 하나도 쓰지 않고, 느닷없는 입법론이나 새로운 학설의 소개, 국내법제 등에 관한 비판론이나 상투적인 개탄 등을 도도하게 펼쳐놓고서 나름 운치 있게(?) 마무리를 짓는 답안이 눈에 띄곤 한다. 자기 딴에는 제법 답안에 겉멋을 부린다고 그렇게 쓴 점 등은 인정할 수 있겠으나, 채점자가 가장 읽고 싶어 했던 것, 그러니까 그 '문제에 대한 답'은 결론에서 찾아 읽을 수 없게 만들어 놓았고, 대개의 경우는 본론에도 그 '문제에 대한 답'이 없는 게 보통이니, 이런 답안은 "코멘트만 있고 솔루션은 없다"는 말에 딱 걸맞는 답안이 된다고 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결론에서는 본론의 핵심적 내용이 잘 요약되어 있어야 하고, 그 본론의 핵심적인 내용은 그 '문제에 대한 답'이어야 함을 잘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만약 케이스문제라면, 그 수많은 당사자 중 누구에게 무슨 권리가 있고, 그들 당사자 중 누구에게 무슨 의무가 있는지, 그리고 그 법률요건은 무엇인지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어야 한다. 만약 케이스문제 중에서도 계산문제라면, 그 금액과 그 산출근거가 본론은 물론이고 결론에도 다시 한번 명확하게 드러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서론과 결론이 완전하게 꽉 짜여진 답안으로서 채점자에게 인정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3. 문장은 논리적이어야 한다.

법학답안을 채점하면서 또 한 가지 놀라는 것은, 의외로 학생들이 논리적인 문장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문제의 요지도 잘 파악했고, 쟁점도 잘 잡았으며, 결론도 명확하게 잘 내렸지만, 문제는 텍스트 자체가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답안을 전체적으로 조감해볼 경우, 이 학생이 무엇을 얘기하려 했는지 대략 알 수 있고, 이 학생이 답안작성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거의 다 갖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긴 하나, 그것만으로 법학답안이 완전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해, 답안의 문장 하나하나가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지 않고 있으며, 그 문장 하나하나가 뭔가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인데, 예를 들자면, 그 답안에 소개된 여러 단편적인 지식과 정보, 그리고 주장들이 각각의 외마디 비명처럼 답안 속에서 띄엄띄엄 나열되고 있을 뿐, '그래서' '그러므로' '왜냐하면' 하는 식으로 한 줄에 꿰어진 채 서술되지는 않고 있는 경우들이 그와 같다. 물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이의 역시 제기될 수 있을 것이지만, 이렇게 자기 주장만 틱틱 던져 놓은 답안은 아무리 지식과 정보가 풍부하다 하더라도 논리성의 부족이라는 측면에서 점수가 대폭 깎일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논리적인 글쓰기는 대학교에 와서야 배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선진국이라면 이미 중고등학교 시절에 완전히 익히고 들어왔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답안을 주욱 읽어보면 이러한 논리적 문장작성의 훈련이 거의 기본조차 돼있지 않은 경우가 의외로 많음에 놀라게 된다. 그렇다면 그 논리적 문장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논리적 문장의 기본은 사실 아주 간단한 것이다. 남들이 그 문장을 검증할 수 있게 해줘야 하고, 그것을 신뢰할 만한 형식에 담아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의 문장들만 봐도 법률문장에 그 논리성이 없을 때의 이상함과 어색함을 잘 알 수가 있다.

"여기서 보증인은 주채무자가 추가적으로 부담하는 채무에 대해서도 보증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 ---> 왜? 어째서? 무슨 기준으로? 무슨 근거로?

"여기서 보증인의 책임은 합리적인 범위 내로 제한할 수 있다." ---> 왜? 어째서? 무슨 기준으로? 무슨 근거로?

"여기서 보증채무자는 채권자에게 채무불이행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 왜? 어째서? 무슨 기준으로? 무슨 근거로?

"다만 이 보증계약은 통정허위표시로서 무효일 수밖에 없다." ---> 왜? 어째서? 무슨 기준으로? 무슨 근거로?

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법적 판단과 주장에는 일정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게 결여돼 있으면 그 문장은 비논리적 문장으로서 "그게 대체 왜 그런 건데?"라는 의문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옛날 양반 나리들이나 사또 나리들, 그리고 임금님께서 "이게 바로 법이다"하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누가 거기에 대해서 "왜요?"하고 물어도 "너 나한테 따지냐?" 한 마디면 모든 게 끝났을 테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 법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논리적 근거를 친절하게 밝혀줌이 없이 법을 받아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일정한 논리적 근거를 갖추지 못한 법률문장은 오늘날 법률문장으로서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가 없게 된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라 할 것이다.

참고로 독일 판덱텐법학에서는 모든 법적 판단에 기준이 있어야 하고, 모든 법적 판단기준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며, 모든 법적 판단의 근거에는 auctoritas, 즉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누군가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그 근거로는 법률조문(민법 제390조나 제750조)이나 판례와 같은 권위 있는 무엇인가가 딱부러지게 제시되어야 할 것이고, 그 기준으로는 각 법률조문에 나오는 법률요건이 충족되기 위한 요건, 예를 들어 손해의 발생, 가해자의 귀책사유, 인과관계 등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며, 그 이유로는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생활사실들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이것이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형식들을 다 생략한 채 법적 판단이나 주장만 딱 들이밀면, 그 글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 주장을 검증할 만한 단서를 가질 수가 없게 되고, 결국 그 주장을 전혀 신뢰할 수가 없게 됨이 당연해진다 할 것이다.

물론 법학시험이라고 하는 게 그 학생의 단편적인 법학지식의 습득 정도만 측정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논리력까지 측정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론도 존재할 수 있다. 설령 답안에 논리가 좀 부족하다 하더라도, 채점자가 알아서 논리를 연결시켜서 읽도록 하면 되는 것인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어설픈 논리를 구사했다가 자칫 축구선수 박지성처럼 말끝마다 "~하기 때문에"란 말을 붙이는 사람인 것처럼 취급될까봐 두렵다는 의견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법학에서 논리란 것을 무시하려는 식으로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른바 논리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독단과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인류의 전 역사에 걸쳐서 오래도록 만들어지고 다듬어져온 일정한 생각의 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가라면, 독단도 일종의 멋일 수 있고, 오류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창조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조금의 실수도 용납해서는 안 되는 우리 법률가들에게 이러한 생각틀은 결코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꼭 명심해야 한다. 다른 학문을 한다면 또 모르겠으되, 적어도 법학을 공부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논리의 틀을 지키지 않으려 해선 절대 안 된다고 하는 점을 우리는 모두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4. 목차가 세분화되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법학답안을 작성함에 있어 목차가 세분화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법학답안의 본론을 작성할 때에, 그 문제의 쟁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쟁점별로 확인해봐야 하는 사실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며, 그 결론 또한 각 당사자별로 또는 각 쟁점별로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는데, 이걸 단순히 열거하는 식으로 글을 써버리면, 채점자의 입장에서 가독성은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리저리 헛갈려서 글을 읽기가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반면에, 만약 그 많은 항목들을 질서정연하게 분류해서 열거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채점자의 입장에서는 그 모든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위해 필요한 항목들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는지도 쉽게 확인해볼 수가 있게 된다. 예를 들어 하나의 사안에서 상계, 저당권, 채권질권, 연대보증 등이 한꺼번에 문제될 경우, 이를 마구잡이로 한데 섞어서 두서없이 설명하기보다는 각 항목별로 분류해서 차례대로 설명한다면, 왜 그러한 것들을 검토해야 하는지도 쉽게 설득할 수 있고, 중복과 누락 없이 그 모든 것을 다 설명했다는 점도 보다 간단하게 인정 받을 수 있게 된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분류된 각 문단들에 적절한 표제까지 붙여주면, 채점자는 단순히 표제만 읽어보고서도 그 본론의 내용들을 단번에 조감할 수 있어, 금방 답안에 호감을 가지게 된다. 답안을 작성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분류해서 논리를 전개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지 않아 글 쓰기에 훨씬 편해지는 것이 사실일 테니, 이건 한마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시험장에 가서 답안지를 일단 받아들고 보면, 시간이 워낙 부족하다보니 마음이 급해져서, 목차고 뭐고 간에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대로 갈겨 쓰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머릿속에 생각나는대로 목차를 잡아서 쓰긴 하는데, 쓰다가 보면 다른 것이 자꾸 생각나고, 그래서 이것 썼다 저것 썼다 하다 보면, 답안이 완전 중구난방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게 될 때가 많다. 목차가 전혀 없이, 또는 목차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글을 쓰거나, 목차가 있다 하더라도 그 목차 아래의 문단이 목차와 전혀 들어맞지 않는 경우 또한 많은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때문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답안들이 아무리 기본적인 내용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내용에 전혀 질서가 없는 이상,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거의 어렵다는 점에 문제가 존재한다. 채점자가 답안을 읽다가 짜증이 난 나머지, 그렇게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져 씌어진 답안을 전혀 안 읽고서 그냥 낙제점을 준다 하더라도 그게 답안의 목차가 부실해서 그런 것이라면 사실상 할 말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마음이 급하더라도, 답안을 작성하기 전에 자기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그 알고 있는 내용들을 표제어로 바꾸어 답안 귀퉁이에 조그맣게 주욱 나열한 다음, 그것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배열하여 대목차-중목차-소목차 순으로 체계화하는 과정을 반드시 밟아야 한다. 하나의 답안을 작성하는 데 총 5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면, 그 중에서 대략 5~10분 정도는 목차 구성하는 시간으로 안배하는 것이 좋으며, 그렇게 목차부터 잡고 글을 쓰는 것이 당장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처럼 보여도, 아무런 목차 없이 마구 글을 쓰는 것보다 실제로는 시간도 더 절약하는 방법임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법학답안에서 목차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차는 일정한 기준(예를 들면 쟁점 또는 당사자 등)에 따라 나누어야 하며, 가급적 세분화되어 있을 수록 좋고, 각 목차마다 그에 딸린 내용들은 그 목차의 표제에 반드시 상응하는 것으로 달아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각 목차의 표제는 가급적 그 표제만 보더라도 답안 전체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선별해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고득점에 유리함을 알아야 한다.

물론 시간이 부족하겠지만, 아무리 시간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최소한 5분 정도의 시간은 반드시 목차구성에 할애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그 목차의 부실함으로 인한 뜻밖의 대량감점위험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고, 심지어는 그 목차의 깔끔함만으로도 일정한 보너스점수까지 노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만큼 법학답안에서 목차구성이란 것은 시간투자를 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5. 법조문이 제대로 인용되어야 한다.

위에서도 이미 설명했지만, 모든 법률문장에는 그 주장에 상응하는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 기준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며, 그 근거에는 auctoritas, 즉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그 주장이 결과적으로는 옳은 주장일 수밖에 없고, 그 문제가 요구하는 정답에 들어맞는 주장이라 하더라도, 그 주장에 기준이나 근거가 없으면 그 문장은 법률문장으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채점자가 일정한 답안을 평가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검토하는 것은 그 결론보다도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과 근거임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결론이 그럴싸 하더라도, 그리고 그 결론을 주장한 학생이 아무리 뛰어난 학생이라 하더라도,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확실하지 않으면, 채점자는 그 답안을 결코 신뢰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어떤 채점자도 답안을 쓴 학생이 뭔가 진정성 있게 주장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그 주장에 신뢰를 주지는 않게끔 돼있다. 그것은 그 학생이 아무리 천사같은 마음의 소유자이고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어떤 법률문장이 채점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일단 거기에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 근거란 것은 아주 강력한 것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의 법적 주장이 있다면,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강력한 근거가 제시되었는지 여부일 뿐이므로, 어떤 법적 주장이 실질적 정의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법학답안에서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현장르포기사나 문학예술작품이 아닌 법학답안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정답을 만드는 단 하나의 방법은 오로지 권위있는 근거를 찾아서 각 문장에 그것을 붙이는 것 외에는 결코 다른 게 있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권위 있는 근거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 성문법계의 국가에서 가장 권위 있는 근거는 결국 법률의 조문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성문의 법조항은 일정한 법률문장에 대하여 가장 1차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장 강력하고도 권위 있는 근거를 동원하지 않거나 동원할 줄 모르는 사람은 법률가가 되기 위한 훈련을 아직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법률문장이란 것이 그 문장을 쓴 주체의 착실함, 올곧음, 진정성 등의 덕목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으리라는 환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사람으로 법학계와 법조계에서 취급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든 법률문장은, 그것을 법조문으로 정당화하고 근거짓는 것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반드시 그 해당 법조문을 문장에 인용하고 그것을 명시적으로 기재해야만 한다. 이것은 마치 성당이나 교회에서 성직자들이 무슨 설교를 할 때마다 반드시 성서의 구절을 인용해야만 하는 것이나, 공산주의자들의 집회에서 공산당간부들이 무슨 연설을 할 때마다 반드시 맑스 레닌의 저서 중 한 구절을 인용해야만 하는 것이나 똑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법률가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의무이기 때문에, 이러한 법조문인용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답안은 아무리 다른 내용이 완벽하다 하더라도 점수가 아주 많이 깎일 수밖에 없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 밖에, 우리나라 법학시험제도의 현실상 많은 채점자들은 답안을 채점할 시간이 매우 부족할 경우 법조문번호의 숫자만 빨리 확인함으로써 답안 읽기를 대체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으므로, 법조문인용을 제대로 하지 않은 답안은 그러한 부분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잘 알아둬야 할 것이다.

물론 같은 법률문장이 계속 반복되는 경우에까지, 반복적으로 법조문을 계속 인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단순반복 정도는 생략한다 하더라도 법조문 존재의 확인에 크게 무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조문을 인용하는 것이 완전히 습관화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같은 법률문장이 계속 반복되거나 아주 유명한 규정(예를 들어 민법 제2조 등)으로서 굳이 그 법조문을 인용하는 것이 불필요하겠다 싶은 경우라 하더라도, 거의 미련스러울 정도로 그 해당 법조문들을 계속 인용하는 것이 좋다 할 것이다. 어차피 그렇게 해봤자 그 답안이 그로 인해 감점이 될 리는 없으며, 그렇게라도 해야 할 만큼 법조문을 그때그때 인용하는 것은 법학도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무임을 그 과정에서 뼈저리게 자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6. 답안이 깔끔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닥 중요하거나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이왕이면 글씨를 예쁘게 잘 쓰고, 답안을 깨끗하게 작성하는 것이 매우 유리함을 덧붙여 말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은 떡도 이왕이면 보기 좋은 떡이 더 맛있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예를 들어 글씨를 보면서 눈이 시원해지거나 기분이 확 좋아질 정도로 아주 예쁜 글씨를 쓰는 학생이면, 아무래도 글씨를 못 쓰는 학생보다 조금은 더 점수를 많이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밖에, 답안지의 줄간격에 맞춰서 딱 적당한 크기로 글씨를 쓰는 것도 중요하고, 글자 간의 간격이나 어절 간의 간격도 딱 보기 좋을 정도로 적당하게 벌려서 쓰려는 노력 역시 전혀 헛수고인 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답안을 작성할 경우, 채점자들에게 기본적으로 호감을 줄 것이고, 호감을 느낀 채점자가 조금이라도 더 정성들여 답안을 읽게끔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글씨가 거의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악필(惡筆)이거나, 글씨가 너무 크고 글자간격, 어절간격이 너무 좁은 답안들인 경우, 가독성이 현저하게 떨어져, 아무래도 점수를 얻는 데 불리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물론 포장지보다 내용물이 더 중요하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겠지만, 같은 내용물이면 아무래도 포장지가 더 예쁜 쪽으로 소비자의 손이 더 갈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내용이면 아무래도 글씨와 체계가 더 예쁘고 깨끗한 답안 쪽에 점수가 더 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특히 글씨가 심하게 흉한 답안의 경우 점수가 매우 나쁘게 나올 수도 있는 것임을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법학답안을 작성함에 있어 아직도 연필이나 샤프펜슬을 사용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렇게 연필이나 샤프펜슬로 작성한 답안은 운반 중에 다른 답안지들과 서로 비벼지면서 글씨가 심하게 번져버리거나 훼손되기가 쉽고, 채점자의 와이셔츠를 흑연가루로 더럽힐 가능성도 아주 높기 때문에, 절대 답안작성에 연필 및 샤프펜슬의 사용은 삼가야 할 것임을 당부하고 싶다. 물론 그것은 화이트사용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가급적 볼펜이나 사인펜, 만년필 등으로 답안을 작성해야 하며, 화이트사용도 필히 자제하여 답안을 되도록이면 산뜻하게 작성할 수 있도록 다들 노력하여야만 할 것이다.


7. 공부량 자체가 빈약해가지고서는 안 된다.

위의 법학답안작성 방법론에 덧붙여서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쨌거나 방법론은 방법론일 뿐이므로, 너무 거기에 얽매여서 알맹이를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위에 소개한 법학답안작성의 요령도 수험생이 시험을 보기 전에 어느 정도 이상 공부를 해놓은 상태여야만 비로소 그 의미를 가질 수가 있다는 얘기이다.

아무리 위에서 소개한 법학답안작성 요령에 맞게, 쟁점을 명확히 잡고, 결론을 요약해서 내리고, 목차를 세분화하고, 법조문을 풍부히 원용해가면서, 논리적이고 깔끔한 답안을 작성해봤자, 그 깔끔한 형식을 채운 답안의 내용들이 시종일관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양이 너무 적거나 한다면, 그것으로 좋은 점수를 받기는 거의 불가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히려 목차도 뭣도 없이 한 데 뭉뚱그려서 두서없이 답안을 쓰기는 했지만, 어쨌든 필요한 사항을 빠짐없이 포함시켜서 옳은 답안을 쓰기만 했다면, 그 답안이 내용적으로 틀리거나 양적으로 부족한 답안보다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방법론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이상, 원래 받아야 했을 점수를 제대로 받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이므로, 완전히 틀리거나 부족한 답안보다는 그래도 형식만 결여되고 내용은 풍부한 답안이 훨씬 더 나은 점수를 받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부족한 공부량은 탓하지 않고, 단지 자신이 법학답안작성의 방법론만을 잘 몰랐기 때문에, 낮은 점수를 받은 것처럼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법학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데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그 학생의 공부량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들 모두, 위에서 소개된 법학답안작성의 방법론에 유의하시는 이상으로, 여러분들의 절대적 법학 공부량을 늘리기 위해 일단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시기를 각별히 당부 드리는 바이다.



댓글 7

eccentricer
eccentricer
민법과목에나 겨우 통용될, 아주 편협한 법학답안작성 방법론인 것 같네요. 법률문장에 반드시 권위 있는 근거가 있어야 되는 것처럼 말하시고, 특히 실정법규정의 원용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시는 걸로 보건대, 극단적인 법실증주의적 법학관에 기울어 계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법의 당위적 내용에 대한 역사적, 정치적, 철학적, 사회적 접근 같은 것은 이른바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닌 것으로서 주인장님께는 모두 감점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 뻔하겠군요. 그런 실질적 정의에 관한 건 법학에서 다룰 필요가 없는, 비규범적인 것이라고 배척을 하시겠다는 태돈데요. 헌법학의 경우 통합이론이 대세를 이루게 된 이래, 그런 식의 유치한 법학관은 극복된지 오래임을 알아두셔야 할 것 같네요. ㅎ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건요. 법학답안에서 논리, 논리, 논리... 근거, 근거, 근거... 너무 강조하셔봤자, 그게 다 개소리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장님께서 법학답안작성방법론이라고 써 올리신 위의 글만 딱 봐도, 비논리적인 부분이 수백군데는 발견된다는 건 주인장님 본인도 솔직히 인정하고 계시죠?

법이라고 하는 게 무슨 근거나 논리가 있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고, 별 이유나 근거도 없이, 입법권자의 결단에 의해서 딱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각 구성원들의 법감정을 배려해서 그 통합을 위해 논리적으로 아귀가 안 맞더라도 절충적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는 거고요. 판결도 사실은 그렇게 내려질 수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도 학생들에게 논리적인 법학답안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고, 하나하나 철두철미하게 근거를 대라느니 기준을 대라느니 까다롭게 구는 것은, 일종의 폭력일 수도 있는 겁니다. 법학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말이 많을 필요가 없는 거고요. 그냥 그런 거면 그런 거지 거기에 꼭 뭐 이유를 갖다대거나 할 필요가 없는 거거든요.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정의에 부합하고 사회적 약자에 도움을 줄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말이죠.

그런 점에서 주인장님의 법학답안작성방법론은 독일유학파 교수님들 특유의 쓸데없이 현학적이고 쓸데없이 엄격하고 쓸데없이 말많은 병폐를 집약적으로 보여준 결과물 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우리나라 법과대학 어디서도 주인장님 같은 기준에 따라서 법학답안을 채점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조금은 논리가 연결이 안 되고, 조금은 법규정도 빠져 있고, 하나하나의 문장에 그렇게 구구절절 근거를 갖다붙이지 않더라도, 목차만 적절하게 잘 짜서 간단간단하고 명확하게 육하원칙 잘 맞춰서 개조식으로 정답을 써내기만 하면 거의 만점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게 현재의 추세입니다. 그 정도만 확실하게 요구해도 현대의 법학교육에서는 충분하다고 본다는 거죠.

오늘날의 법학도들에게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은 과거의 지나치게 쪼잔하고 장황하고 말 많았던 법학답안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민중과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과, 실천적 행동능력, 그리고 실무감각이 로스쿨시대의 법학도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거지요.

주인장님의 법학답안작성 방법론은 그러니까 오늘날 새로운 법학의 시대에서 "이렇게 법학답안을 작성하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로서의 본보기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장님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법과대학에 나이 드신 독일유학파 교수님들 모두 제 말씀을 잘 들어두실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ㅎ
입꽉다물어
입꽉다물어
약간 좀 권위주의적인 답안작성방법론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느꼈네요. 근거를 댈려면 권위 있는 근거를 대라고 하시는 것도 그렇고요.

나는 교수다. 그러니까 니들 학생들이 나한테 맞춰라, 그럼 내가 니들한테 맞추리? 하시는 것도 거부감이 느껴지네요. 이제는 쌍방향 소통의 시대가 아닌가? 교수가 채점자라는 이유만으로 학생들한테만 교수에게 맞추도록 하라니...

학생들한테만 모든 짐을 떠넘기진 마셨으면...... 저도 법공부하면서 시험 치를 때마다 답안 땜에 고생을 여간 많이 하는 게 아닌데, 교수님들께서 조금만 더 친절해줬으면 합니다. 학생들만 교수 입맛에 맞는 답안을 쓰기 위해 노력할 게 아니라, 교수도 학생들 답안의 진의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좀 더 기울여야 할 것 같은데요? 민주화가 다른 게 민주화가 아니라 이런 게 진정한 대학민주화 아닐지.
카와카미나나미
카와카미나나미
주인장님 왈: "하나의 법적 주장이 있다면,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강력한 근거가 제시되었는지 여부일 뿐이므로, 어떤 법적 주장이 실질적 정의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법학답안에서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 이건 좀 아니다 싶네요. 실질적 정의와 모순되는지 여부와는 아무 상관없이 권위 있는 상관이 내린 명령이라고만 하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오늘날의 검찰, 검새들 같은 법률가들을 양산하는 교육이 아닐지요... -_-
H.호나우두
H.호나우두
여태껏 '법학답안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것만 배웠지, '법학답안을 이렇게 써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다'란 건 배워 본 적이 없었는데, 글을 읽고 머릿속 어딘가가 확 뚫리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이 좋은 가르침을 오늘에야 받게 되었다는 게 진짜 한스럽네요. ㅠ
Ciracuser
Ciracuser
주인장님의 답안채점방식에 기본적으로 찬성합니다만, 학생들에게 약간은 자유를 부여하시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교과서나 모범답안에 나와있지 않은 조금 엉뚱한 소리를 하더라도, 참신하고 창조적인 의견을 제시한 학생들에게는 플러스점수를 줘야 학생들의 창의력을 함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문제의 요지를 잘 파악했는지 여부도 물론 고려해야겠지만, 교수는 시험문제를 출제할 때 학생들에게 그냥 화두 하나만 던진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 학생들이 무엇을 답하는지는 열린 상태로 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2학년 학생들에게는 문제를 너무 좁게 내지 않고, 약간은 큰 문제로 내는 것이 필요한 것도 그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케이스형 문제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케이스형 문제보다는, 논술형 문제가 대학생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함양하는 데 더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임충선
임충선
IRAC은 아이락이 아니라 아이랙이라고 읽습니다. 미국 로스쿨에서는 요즘 솔직히 IRAC 대신에 FIRAC (Facts, Issues, Relevant Legal Provisions and Rules, Application of Rules, Conclusion)이나, TREACC (Topic, Rule, Explanation, Analysis, Counterarguments, Conclusion) 등을 더 많이 쓰고 있기 때문에, IRAC은 이제 완전히 한물 갔거나 시대에 뒤쳐진 답안기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따위로 정형화되거나 도식화된 답안만을 강요할 경우 학생들의 진실과 정의에 대한 본능적 직관과 자유로운 창의력, 그리고 수사학적 감수성 등을 죽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미국의 그 어떤 로스쿨 교수님께서도 주인장님처럼 학생들에게 IRAC 같은 규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거나, 그걸 안 지킨 법률문장은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다고 극단적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독일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매번 영미에게 패배한 게, 고지식하게 교본에만 집착하고, 모든 상황을 논리적으로 납득하려고만 했기 때문에 진 것이란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주인장님의 글을 쭈욱 읽어보면 거의 극단적이라 할 정도로, 독일법학의 경직된 원칙만을 추종하는 사람이 쓴 글처럼 보이는데요. 법학답안에서 모든 글이 톱니바퀴처럼 논리로 철두철미하게 맞물려 있어야 한다는 대목을 읽고 나니, 독일축구가 왜 월드컵에서 준결승까지는 잘 올라가도 우승은 절대 하지 못하는지가 떠올랐습니다. 축구에서 조직력과 세트플레이와 작전수행능력만 강조할 경우, 창의력과 임기응변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그러니까 톱니바퀴같은 조직력을 자랑하는 독일의 이른바 전차군단이 이태리나 스페인의 창조적이고 예측불가능한 축구, 영국과 미국의 뻥축구에 매번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독일은 매번 자기 패를 다 보여주고 축구를 하지만, 영국과 미국은 작전이고 뭐고 없이 임기응변으로 밀어붙여서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조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주인장님의 논리만능주의는 한마디로 모든 축구선수들을 무식하고 딱딱한 독일병정으로 만들려는 발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법학답안에 논리가 없으면 법학답안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어디 세상만사가 그렇게 언제나 논리적으로 착착 맞춰지기만 합니까? 세상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무궁무진하고, 법학답안에서 모든 걸 논리로 엮을 경우 답안이 불필요하게 지저분해지고 장황해지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바로 주인장님의 윗글만 보아도 대단히 지저분하고 장황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법학을 무려 육십년 가까이나 망령처럼 괴롭혔던 독일법학의 논리만능주의적 한계에서 아직 못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독일식 법학교육을 받은 검사나 판사들이 논리만능주의에 빠져서 논리 그 자체에만 함몰된 나머지 국민들의 법감정과 거리가 먼 망발을 늘어놓았던 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번 내곡동 사저사건때 이른바 대한민국의 검찰이 청와대 경호실의 무혐의란 결론을 내리면서 내세운 논리가 뭔지 압니까? "청와대 직원을 배임으로 처벌하면 그 이득이 이명박 대통령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뜻이 되므로 배임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물론 말이 되지요. 하지만 그게 논리적이라고 해서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중요한 건 정의이냐, 합법이냐 아니냐지, 논리적이냐 논리적이지 않으냐는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가끔 가다 논쟁을 하면서 팩트와 결론의 대결을 하는 건지 논리대결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사람들도 보이던데, 그런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리라는 게 대부분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참 유치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독일법학의 한계에 대해서 꼭 깊이 반성해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법학답안작성의 '방법론'이란 게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하며, 그것 자체도 지극히 독일식의 발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로스쿨의 조국 교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더군요. 진정한 법학은 대단히 자유로운 것이라고 말입니다.
Jini0101
Jini0101
법학의 \"자유\"는 기본적인 공부가 되고, 기본적인 논리가 뒷받침된 뒤에야 비로소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고 봅니다. 미국 JD 1년차에 혹독하게 공부를 시키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영미법 판결문을 읽어보더라도 기본적인 논리의 정치함은 담보되어 있습니다. 물론 사안에 따라, 판사들의 입장에 따라 어느 정도 flexible하게 법을 해석하는 부분은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그것도 법의 해석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본적인 논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내곡동 사저 사건의 경우 결론을 일단 써놓고 무리하게 논리를 짜맞추려다가 파열된 케이스 아니었나요? Bush v. Gore 사건도 그렇고, 결론을 먼저 세워놓고 무리하게 논리를 짜맞추는 경우 대개 우리는 좋은 문장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임충선님께서 말씀하신 IRAC 이후의 답안쓰기 방법론도 결국 IRAC 체계를 조금 더 실무와 비슷하게 발전시킨 방법론입니다. 최근 법학은 미국/영국은 좀더 대륙법적 방법론을 받아들이고, 대륙법계는 영미법계의 방법론을 받아들이면서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닮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대륙법계의 방법론이 조금 시대에 떨어져 보인다고 해서 그것을 무시해서도 안되고, 영미법계의 방법론이 좀더 선진적이어 보인다고 해서 이를 무조건 따를 필요도 없는 거죠. 특히 기본 법률인 헌/민/형법의 경우 우리는 대륙법계 국가입니다. 따라서 대륙법계 국가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공부 방법에 따라 training을 받지 않으면 우리 법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이런 견지에서 교수님의 입장에 동의합니다.

집을 지을 때도 집의 완성된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되, 매일 벽돌을 하나하나 쌓는 작업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법학 문장을 쓸 때도 자신이 어떤 글을 써야 할지를 항상 머릿속에 넣고 있더라도 문장 하나, 글자 하나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고 이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법학 답안지는 이러한 과정을 연습하는 과정으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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