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법률용어
장명봉 박사님의 '조선법전 법률용어 풀이'라는 책을 우연히 읽었다. 북한의 법률용어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히 풀어서 설명한 책인데, 생각보다 북한의 법률용어가 우리의 법률용어보다 더 쉽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법률용어가 일본식 번역어투를 거의 벗어나지 못한 데다 일상언어와의 괴리가 심해서 대중에게 쉽게 풀어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데 반해, 북한의 법률용어는 순우리말을 많이 사용할 뿐 아니라 일상언어를 많이 사용하여 대단히 친숙한 느낌을 주고 대중에게 가르치기도 매우 쉽게 보였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북한에서는 소비대차계약(消費貸借契約)을 '꾸기계약'이라고 부르고, 사용대차계약(使用貸借契約)과 임대차계약(賃貸借契約)은 통칭하여 '빌리기계약'이라고 부른다. 매매계약(賣買契約)은 '팔고사기계약'이라 하고, 전매(轉賣)는 '되거리'라고 한다. 사기(詐欺)에 의한 법률행위는 '속히워서 한 법률행위'라 하고, 가장행위(假裝行爲)는 '허위적 법률행위'라고 한다. 무능력자(無能力者)는 '부분적 행위능력자'라 하고, 교환(交換)은 '맞바꿈'이라 한다. 병합(倂合)은 '합치기'라고 하고, 분할(分割)은 '가르기'라고 한다. 사기죄(詐欺罪)는 '속여가진죄'라 하고, 모의(謀議)는 '짜고든다'고 하며, 교사범(敎唆犯)은 '추긴자'라고 한다. 우리의 경우 학생들이 범죄(犯罪)와 불법행위(不法行爲)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두 개념이 어떻게 상관되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 반해, 북한은 범죄와 불법행위를 통칭하여 '위법행위(違法行爲)'라 하고, 이를 '행정법규위반행위' '민사법규위반행위' '형사법규위반행위'로 분류하여 그 개념차이를 명확히 하고 있다. 그 어느 것이든, 일반인의 입장에서 우리 법률용어보다 이해하기가 훨씬 더 쉬운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북한법이 우리법보다 더 우월하다거나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제대로 된 대중용 법전을 간행한 것이 십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북한법학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여러 모로 허술한 부분들이 아직 많이 눈에 띈다. 그러나 순우리말을 많이 사용한 북한의 법률용어들을 보면, 우리 법률용어들이 얼마나 어려운 말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앞으로 민법개정을 한다면, 다른 걸 어설프게 건드리기보다 이런 법률용어부터 쉬운 말로 교체해야 하고, 거기에 북한의 법률용어들이 꽤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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