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심오함(Pseudo-Tiefgründigkeit)


법학논문을 읽을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많은 법학자들이 '권위' 있는 법학자로 인정하는 법학자에 의해 씌어진 논문, 그리고 많은 법학자들이 '훌륭한 논문'으로 칭송하는 논문 가운데 상당수가 '거짓된 심오함'으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게 될 때가 매우 많다. 서로 반대되거나 상충되는 의미의 단어들을 합쳐서 한 문장을 구성한 다음 그 알쏭달쏭하고 수수께끼와 같은 말이 뭔가 심오한 뜻을 지니는 것처럼 은은한 여운을 남기는 식으로 글을 쓰는 것인데, 이런 식의 글쓰기는 독자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기 쉽도록 뭔가를 딱부러지게 설명하는 일이 결코 없기 때문에,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들의 몫으로 돌아가지만, 독자들은 그 말의 의미를 각자가 알아서 해석하는 지적인 수고를 감내하면서도 이를 일종의 고상하고 성스러운 노역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까다로운 작업을 유발하는 논문을 오히려 대단히 수준 높은 논문으로 평가하면서 자기도 역시 그 저자와 똑같은 심오한 부류에 속하는 것처럼 자부심을 느끼곤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 하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론적 노력은 실질적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형식적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존의 낡은 패러다임의 법학을 초월하여 새로운 차원의 법학을 전개하자는 것이다" 같은 막연한 주장을 펼치는 논문들이 그러하다. 그런 추상적인 주장을 해놓고, 거기에 대해 막연한 추측과 감각만으로 탐색을 해야 하는 선문답식의 논거를 제시하거나, 비법학적인 여러 전문용어들을 자기 나름대로 변용하여 현란하게 나열하는 식의 근거들을 주욱 댄 다음에, 결국 "이봐, 난 이걸 그냥 안다구"하는 식으로 뭉개버리는 경우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문들의 고약한 특징은 단순하고 명확한 주장을 전개하는 논문들에 비해 반박하기가 쉽지 않으면서, 뭔가 대단한 것이 담겨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는 점에 있다. 더러는 제도주의 경제학이론이나 포스트모던 철학, 또는 양자역학 등에서나 나올 법한 용어를 엉뚱한 맥락 하에 핵심적 논거로 인용하면서 가짜 권위나 진지함을 더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 논문을 읽는 사람들이 제도주의 경제학이론이나 포스트모던 철학, 또는 양자역학 등을 제대로 알 리는 없기 때문에, 자기 무식함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대부분은 이런 논문들을 읽으면서 그냥 심사통과를 시켜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이런 논문들은 결국 학계 내에서 의외로 꽤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통섭'이나 '학제적 접근'을 유달리 중요시하는 최근의 분위기에도 뭔가 대단히 부합하는 논문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논문들의 표면을 덮고 있는 번지르르한 말장난의 얄팍한 막을 걷어냈을 때 거기에 과연 무엇이 남아 있을지는 대단히 의심스럽기만 하다. 대부분은 통설이나 지배적 견해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거나, 기존의 학설 중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정면으로 비판하지는 않겠다는, 비겁한 태도를 취하는 것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논문들에 대해서 "그러니까 그 주장을 쉬운 말로 옮긴다면 결국 이거 아닙니까?"하고 질문할 경우, 대부분 그 저자들은 "그건 절대 아니다. 그건 진짜 무식하고도 유치하며 위험한 발상이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깊고도 난해한것이다. 하지만 그 주장이 갖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바로 이 자리에서 간단히 설명하기는 대단히 곤란하다"하고 교묘히 얼버무리는 예가 매우 많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매번 둘러대는 답변만 일삼고, 자기 주장의 핵심적 요점이나 근거를 명료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사기꾼들에 불과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법학이란 학문이 단순한 말장난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일정한 사건이나 법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반 국민이나 실무가들에게 뭔가 유용한 나침반의 기능을 한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본연의 기능에 도움이 되긴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며, 법적용의 객관성과 예측가능성을 제고하긴커녕 오히려 흐트러뜨리는 법학이론들은 기본적으로 법학이론으로서의 가치를 갖기가 거의 힘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댓글 1

Ciracuser
Ciracuser
학문적 개념이 다소간의 추상성과 모순성을 갖는 것은 불가피하므로, 그런 개념을 사용하는 이론이 단지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하여 법학이론으로서의 가치를 전혀 가질 수 없다고까지 폄하하신 건 너무 지나치셨다고 봅니다. 법학이론이 꼭 실용적인 관점에서, 손에 꽉 잡히는 문제해결도구들을 만들어내는 데만 주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편의주의적 자세는 자칫 모든 법적 문제의 해결을 기존 법조문의 문리적 해석으로만 해결하려드는 법실증주의적 퇴행으로 이어지거나, 모든 변혁적, 형이상학적, 사회과학적 담론을 포기하고 현실을 그저 기계적, 유아적 단순이론으로만 설명하도록 하는 무책임함으로 귀결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꼭 결론이 명쾌하지 않더라도, 학자들에게 다양한 이론적 가능성을 제시하고 학문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만으로도 그 논문의 훌륭함을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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