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좀 널럴한 것이 좋다.
부유하고 고귀하게는 살지 않아도 좋다. 타인들로부터 정확성과 신뢰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도 좋다. 적어도 이기적이고 각박하게는 살지 말아야 한다. 교만하게는 살지 말아야 한다.
가끔가다 생활 속에 그 어떤 비효율성과 이질성과 파격성도 허용하지 못하고, 무슨 수학문제를 풀듯이 세상을 정말 칼같이, 정확하게 살아내면서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살아가도록 거세게 압박해대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나름대로 존경스러운 점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인간이 아니라 무슨 자폐적 성과기계 같은, 결벽적이고 신경질적인 모습에 오만정이 떨어지게 된다.
물론 최소한의 원칙은 지키고 살아야겠지만, 그 모든 부분에서 단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독선과 완벽주의로 일관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숨이 막히고 기괴한 느낌을 받게 된다. 결국 나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모든 것에 승리만 하며 살아가겠다는 태도인데, 그래 이길테면 이겨라, 넌 평생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며 심장이 터지도록 뛰고 남들을 깔보며 열심히 독주(獨走)나 계속 하고 살아라, 근데 나는 그렇게 못 산다, 하고 치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사실 그렇게 사는 것도 하나의 인생방식이긴 하겠지만, 사실 인생은 좀 널럴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좋은 것이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고, 그냥 자기 깜냥대로 자족하며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자기 생긴 대로 사는 것이 지혜롭게 이 세상을 사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남들에게 지기 싫어서 아등바등하고, 자기 고집대로 남들을 휘두르고 싶어서 눈을 부라리며 사는 사람들이 제일 많은 직업 중의 하나가 바로 대학교수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직업사회에서 벼라별 자뻑형 인간들과 부대끼고 그들의 자화자찬과 자기생색과 의욕과잉과 공격본능에 넌더리를 내다보면,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직업도 평범한 직업이 가장 좋고, 지식도 평범한 지식이 가장 좋고, 사회적 지위도 평범한 수준의 지위만큼만 갖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는 진리를 절감하게 된다. 공부도 사실은 자기 머리만큼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자기 머리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공부를 너무 많이 하면 반드시 어딘가에 탈이 나게 돼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보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되는 공부, 자기에게 감당이 안 되는 공부를 하지 않음으로써 남들에게 민폐를 덜 끼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생각을 많이 하는 것보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여태까지 한 생각을 곰곰히 되짚어보고 틀린 것이 없나 고쳐서 다시 생각하는 것, 독일어로 말하자면 Fortdenken을 하는 것이 아니라 Nachdenken을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디를 가든 "열심히 공부하자" "부지런히 살아야 된다" "발전만 하고 성장만 하며 살아야 된다"는 구호만이 난무하고 안분지족(安分知足)을 하며 사는 사람은 개무시되는 이 나라에서 과연 제대로 Nachdenken을 하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도 새벽 늦게까지 이곳저곳의 일 독촉에 시달리다가 써본 글이다.
평범한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쩌면 경쟁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 때문에 자기합리화를 표현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모난돌이 정맞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드시 모난 짓은 하지 않는게 옳은 일이고, 자기만이 가장 잘 안다고 지식을 뽑내거나 남을 무시하는 행위는 평범한 짓은 못되는 것. 그런 평범이라면 평범은 좋은 것이지만 행여 자기의 역량을 짓눌러가며 일부러 평범하기를 시도한다면 자신에게도 손해고, 그의 역량을 기대하는 사회에 대해서는 미안한 일이 되고 자기를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을 주는 결과가 아닐가?
아래는 주인장님께서 직접 쓰신 글입니다.
<b>"내가 연구자의 지위에 머물러 있는 시간도 대략 몇십년으로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짧은 시간동안 나에게 지적 자극이나 감성적 위안을 줄 수 있는 사람만 골라서 만나도 바쁠 판에, 케케묵은 훈계 아니면 천편일률적인 장광설(長廣舌)만 늘어놓는 무례한 사람들과 억지로 만나가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