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최선의 세계
근대의 계몽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이후, 신(神)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땅 위에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건설한다는 것은 일종의 지상과제와도 같은 것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이란 모든 것을 아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가능한 최선의 세계'가 무엇인지도 하느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실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이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만드는 것은 하느님의 능력범위 안에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이란 최고로 선(善)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그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만드는 데 협조를 아끼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신(神)은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직접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지상에서 하늘의 사업을 직접 수행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직접 실현하는 것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에게 주어진 몫이다. 인간은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언제나 노력한다. 그러나 그 세계는 단 한번도 이 땅 위에 제대로 만들어진 적이 없다. 인간은 '가능한 최선의 세계'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그것을 완전히 알 수는 없고, 그 세계에 도달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를 '영원히 찾아 헤매기만 하는 존재'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있어서 현재는 언제나 불완전하기에, 예술의 종말, 학문의 종말, 역사의 종말이 만약 존재한다면, 그것은 곧 인간의 종말을 의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뭔가를 탐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다시 말해, 자기 스스로 항상 무지(無知)하다고 생각하고, 미성숙하다고 생각하고, 부자유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지금 나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곧 교만이고, 인간존재의 배반이고, 죽음의 시작일 수밖에 없다. 안분지족(安分知足)도 물질적인 검약(儉約)과 무욕(無慾)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신적 의미에서 인간 자신이 완전하다고 하는 자족감이란 원래 인간에게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심각한 오류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생각하고 궁리하는 것을 멈추지 않게 돼있다. 지금의 현실을 더 낫게 만들긴커녕 더 나쁘게 만들 수 있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더 나은 뭔가를 찾아 헤매고 더 나은 뭔가를 실현하려 애쓰게 돼있다. 심지어는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된다 하더라도, 인간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게 뭔가 더 나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만 자기 자신이 신(神)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에 공통된 경향성, '저 높은 곳을 향하여'는 이른바 출세주의 내지 발전주의의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와 같은 '가능한 최선의 세계'라는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가능한 최선의 세계' 따위에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神)은 없는 존재이다. 존재한다 하더라도 내가 닮고 싶기엔 나 자신에게서 너무 먼 존재이기에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성(理性)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중심이 되는 것은 나 자신의 물질적 욕망일 뿐이다. 오감의 말초적 쾌락을 누리고 싶고, 부와 권력을 잡고 싶고, 남들 위에 서고 싶고, 자기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만이 이 세상에서 진정한 실체를 가질 뿐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추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은 사람들이거나 위선적인 사람들이거나 비현실적인 사람들일 뿐이다. 남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냉혹하게 말하자면, 이 세상이 모두 망하더라도 나 또는 내 편만 잘 되면 그만인데, '내 편에게 가능한 최선의 세계'는 있을 수 있어도, '모두에게 가능한 최선의 세계'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이 세상 모든 것은 결국 파워게임으로 결판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 간의 투쟁이든, 계급 간의 투쟁이든, 국가와 민족 간의 투쟁이든, 투쟁 속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할 뿐이다. 심지어는 신(神)을 믿는 사람들조차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어차피 우리 인간은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우리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내지르고 살다 보면, 하느님께서 알아서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만들어주실 것이고, 만약 지금 내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하느님께서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만드시는 데 부합한 삶을 내가 살았기 때문일 테니, 모든 현재는 정당성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능한 최선의 세계'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산다면, 도대체 어느 신(神)이 우리에게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느님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실 거야" "하느님은 쟤보다 더 많이 기도하는 내 소원을 더 많이 들어주실 거야" 같은 식으로 간편히 생각해도 '가능한 최선의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믿을 양이면, 차라리 신(神)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건전할 것이다. 신을 믿지 않더라도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몇백배는 더 성스럽고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근대 계몽사상의 계승자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가능한 최선의 세계'에 대한 믿음이지 신(神)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개인적 행복과 세속적 평안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종교를 갖고 있고 개인적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게 아니다. '가능한 최선의 세계'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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