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合意)에 관한 정리
계약은 원칙적으로 서로 대립되는 수개의 의사가 합치됨으로써 성립한다. 이렇게 서로 대립되는 수개의 의사가 합치되는 것을 합의(合意)라고 한다. 합의는 라틴어로 ‘consensio(꽁쎈씨오)’, 독일어로는 이를 ‘Konsens’, 프랑스어로는 이를 ‘consentement(꽁썽뜨멍)’, 영어로는 이를 ‘consensus’라 칭한다. 이러한 합의가 여러 개 모여서 더 큰 합의의 범주를 이룰 경우 이를 ‘계약적 합의’라고 하는데, 이것은 라틴어로 ‘conventio(꽁웬띠오)’, 독일어로는 ‘Einigung’, 영어와 프랑스어로는 ‘convention’이라고 한다. 물론 양자를 이렇게 구분할 실익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합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양 의사표시의 내용 및 의사표시의 상대방이 객관적으로 일치해야 한다. 여기서 일치한다는 것은 양 의사표시의 내용 가운데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 정도로는 부족하며, 일방에 의한 그 어떤 확대나 축소 그리고 변경도 없이 완전하고 정확한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물론 계약내용의 모든 사항에 관하여 완전하고 정확한 일치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법률행위의 ‘본질적 사항(essentialia negotii)’에 관해서만 그러한 일치가 이루어지면 된다.
법률행위의 본질적 사항이란 해당 법률행위의 주된 요소로서, 일정한 법률행위의 유형을 결정하는 요소를 말한다. 예를 들어 매매계약에 있어 매매목적물과 매매대금, 조합계약에 있어 조합의 목적과 출자방법, 처분행위에 있어서 처분행위의 종류(양도인가 담보제공인가 포기인가 등등)와 처분대상 등이 그와 같은 것들이다.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누구이며, 그의 역할은 무엇인가(예를 들어 매도인인가, 매수인인가) 역시 법률행위의 본질적 사항에 속한다. 물론 이는 법률행위 당시에 벌써 구체적으로 특정돼 있을 필요는 없고, 사후에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방법과 기준만 정해져 있으면 된다(大判 2009.3.16, 2008다1842). 예를 들어 종류채권에 있어서 그 종류, 선택채권에 있어서는 그렇게 선택을 할 수 있는 채권들이 그와 같다. 그러한 경우 법률행위의 본질적 사항은 특정권(Bestimmungsrecht) 또는 선택권(Wahlrecht)의 행사에 의해서 사후에 확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대상이나 기준 자체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설령 특정권이나 선택권을 갖는 자가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법률행위의 본질적 사항에 관한 의사표시의 일치는 없는 것으로 본다.
법률행위의 비본질적 사항은 그에 관해 당사자가 합의하지 않더라도 법률행위를 성립시키는 데 있어서 지장이 없는 사항으로서, 예를 들어 소비대차의 이자나 법률행위의 대리인에 관한 사항 등이 그에 속한다. 가령 은행예금의 액수만 정해졌다면, 이자는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로 정하더라도 무방하고(제379조), 법률행위를 대리인에 의해 한 경우라면, 대리인은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아닌 이상, 여기서 대리인이 누구인가, 대리행위임을 밝혔는가, 대리권한을 가졌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법률에 규정된 대로 처리해도 무방하다고 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대리인이 만약 대리행위임을 밝히지 않았다면, 그 계약은 불성립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대리인이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것으로 처리한다: 제115조). 그리고 법률행위의 조건이나 기한과 같은 부관(附款)은 법률행위의 주된 요소가 아니라 ‘부수적 사항(accidentalia negotii)’에 속하는 것이므로, 이것 역시 법률행위의 비본질적 사항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비본질적 사항은 많은 경우 당사자들이 이에 관해 전혀 합의를 보지 않고 법률행위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비본질적 사항을 그냥 애매모호한 상태에 놓아둔다면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법률은 이에 관해 임의규정을 마련하여 당사자의 의사를 보충하는 것이다. 이처럼 법률행위의 비본질적 사항 가운데서도 법률의 임의규정에 의해 보충되는 사항을 법률행위의 ‘임의적 사항(naturalia negotii)’이라고 한다. 이러한 임의적 사항은 법률규정이나 거래관행에 따라 당사자가 임의로 개폐할 수 있는 요소로서, 이에 관해 당사자 간에 반대의 합의가 있었다면 그 반대의 합의가 우선적으로 법률행위의 내용이 된다. 반면 법률행위의 내용 가운데서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련된 사항은, 설령 그것이 법률행위의 비본질적, 부수적 요소에 해당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법률이 강행규정에 의해 그 내용을 강제하는데, 이는 법률행위의 ‘강제적 사항’이 된다. 이러한 강제적 사항에 관해서는 당사자 간에 반대의 합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법률의 강행규정이 당사자의 합의에 우선하여 법률행위의 내용을 구성하게 된다(예를 들어 지상권설정계약에 있어서 지료증감청구권이나 지상권소멸청구권 등).
합의는 계약의 성립요건이므로, 의사표시의 일치가 객관적으로만 이루어지면 계약은 바로 성립하게 된다. 다시 말해 당사자들의 의사표시가 객관적인 의미에서 합치하기만 한다면, 당사자가 그에 관해 주관적인 착오를 일으켰다 하더라도 계약이 성립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령 계약이 성립되었다 하더라도, 양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주관적으로 합치되지 않았다면, 그 계약이 반드시 유효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그 계약을 구성하는 의사표시에 무효사유 또는 취소사유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사자들의 의사표시가 주관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면,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의 취소나(제109조 1항), 비진의표시를 이유로 한 의사표시의 무효(제107조 1항 단서) 여부에 관해 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