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請約)에 관한 정리


청약(請約)이란 상대방의 승낙과 결합하여 일정한 내용의 계약을 성립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의사표시를 말한다. 예를 들어 “방학동 145번지 23호에 있는 2층집을 3억 원에 파시겠습니까?” “귀 은행에 저의 여유자금 1억 원을 6개월 동안 정기예금해도 되겠습니까?” “귀하가 신축한 갑목빌딩의 106호 상가를 7억 원에 분양받아도 되겠습니까?”와 같은 의사표시이다. 청약은 라틴어로 ‘conditio(꼰디띠오)’, 독일어로는 ‘Antrag’, 프랑스어로는 이를 ‘offre(오프르)’라 하고, 영어로는 이를 ‘offer’라 일컫는다. (독일에서는 ‘Antrag’ 대신에 ‘Angebot’이란 말도 쓰곤 하는데, ‘Angebot’은 ‘청약’ 이외에 ‘급부제공’이란 말로도 같이 쓰이고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청약은 그 자체로 법률행위가 아니라 의사표시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청약만으로는 법률효과가 바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러한 청약이 법률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법률요건, 즉 계약이라는 법률행위를 구성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일방의 청약이 상대방의 승낙(承諾)과 완전히 결합하고 일치되어야 한다. 마치 염소원자(Cl)가 나트륨원자(Na)와 만나 소금(NaCl)이라는 분자를 형성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물질적 속성도 가질 수 없으므로, 짠 맛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트륨원자와 결합해야 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이러한 청약의 의사표시는 승낙의 의사표시와 결합하여 계약이라는 법률행위가 되기 전까지는 당사자 사이에 아무런 법적 청구권도 발생시킬 수 없는 것이다.

청약은 그 자체로 아무런 법률효과가 없다. 그러나 상대방의 승낙과 결합하기만 하면 바로 계약성립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묵시적으로라도 계약성립을 위한 모든 중요내용(예를 들어 구체적 가격의 액수와 목적물의 종류에 관한 내용 등)을 완전히 담고 있어야 하고, 그것이 또한 확정적이어야만 한다. 만약 그러한 중요내용을 완전히 담고 있지 못하거나, 그것이 불확정적이거나 하다면, 이것은 ‘청약’이 아니라 ‘청약의 유인’으로 취급된다.

‘청약의 유인(誘引)’은 계약의 체결을 위한 비법률행위적 교섭행위로서, 상대방에게 승낙 여부가 아닌 청약 여부를 타진하는 것이다. ‘청약의 유인’은 라틴어로 ‘invitatio ad offerendum(이뉘따띠오 아드 오훼렌둠)’, 독일어로는 ‘Aufforderung zu Anträgen’, 영어로는 ‘Invitation to treat’이라 번역되는데, 이러한 ‘청약의 유인’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설령 승낙을 했다 하더라도 계약은 성립하지 않은 것이며, 청약의 유인을 한 자가 다시 승낙을 하여야만 비로소 계약이 성립하게 된다. 물론 청약의 유인을 한 자가 그 승낙을 거부할 경우 계약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청약의 유인’은 ‘청약’과 달리 그 내용이 반드시 법률효과로 직결되지는 않더라도, 대개는 계약의 본질적 사항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일정한 의미를 갖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청약의 유인’을 한 자가 별다른 추가적 언급 없이 상대방의 청약에 대해 바로 승낙을 하였다면, 이러한 ‘청약의 유인’에 표시된 의사는 그 후에 이루어진 승낙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구성하게 되며, 그로 인해 청약의 유인을 한 자가 ‘청약의 유인’에서 약속한 성상(性狀)에 따라 물건의 하자담보책임을 부담하는 일도 발생하게 된다.

‘청약의 유인’과 ‘청약’을 구분하는 것은 실제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양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대개 표의자가 동일한 계약목적에 관하여 불특정 다수 모두와 계약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는지 여부가 된다. 다시 말해 불특정 다수인에 대한 청약(offerta ad incertas personas)도 청약이 될 수는 있으나, 이는 그 약속된 급부를 청약자가 불특정 다수의 승낙자 모두에 대해 임의로 제공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려 한 경우에 한한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판매기의 설치 같은 경우 각각의 급부에 대해서 승낙을 하는 불특정 다수의 모든 사람과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예정돼있던 것이므로 이것은 ‘청약’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에 반해 신문, 방송, 인터넷을 통한 구인광고, 주택의 임대광고, 음식메뉴의 표시, 상품카탈로그의 배부 등은 이를 보고 불특정 다수의 지원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 경우 그들 모두와 계약을 체결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이들은 청약이 아니라 ‘청약의 유인’으로 해석된다. 고객이 상품을 직접 선택해서 계산대로 가지고 가게 하거나 주문을 요청하게 하는 상점(예를 들어 파리바게트)이나 인터넷 홈쇼핑 사이트의 경우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이 경우 상품의 진열은 대개 ‘청약의 유인’으로 보고 있다. 고객이 대금을 지불하는지, 혹은 그 물건이 공급가능한지에 대해서 상점 측이 다시 한번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청약의 효력발생시기에 관하여는 민법상의 도달주의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청약은 특정인에게 의사표시가 도달된 때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다(제111조 1항). 만약 불특정 다수에 대하여 청약을 하였다면, 이는 불특정인 가운데 일부에게 그 의사표시가 알려진 때, 그 일부에 한하여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청약자가 청약의 의사표시를 발하고 나서 사망했을 경우에도 그 청약의 의사표시가 상대방에게 도달하면 그 청약은 효력을 발생한다(제111조 2항). 다시 말해 그 청약은 그 청약자의 상속인을 구속하며, 그 청약이 승낙되었을 경우, 그 청약자의 상속인에게 그 계약은 성립한 것이 된다. 물론 계약이 당사자의 인격 내지 개성을 중시하는 것(예를 들면 고용계약이나 임대차계약)이라면 청약은 상대방에게 이미 도달했다 하더라도 청약자의 사망으로 효력을 잃게 된다.

청약자가 청약을 하고 나서 상대방이 승낙을 하기까지 청약자가 자기 청약을 철회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프랑스민법과 영미판례에서는 이러한 철회를 인정하지만 독일민법(제145조)과 우리나라 민법(제527조)은 이러한 청약의 철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청약의 철회가 인정되지 않는 것을 청약의 구속력(拘束力)이라 하는데, 독일어로는 이를 ‘Bindung an den Antrag’이라 하고, 영어로는 이를 ‘binding effect of offer’라고 한다. 이러한 청약의 구속력이 인정되면, 청약을 한 자가 청약을 철회하려 할 경우 처음부터 철회권을 유보하고서 청약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청약자가 철회권을 유보하지 않고 청약을 했을 경우 한번 청약한 것에 대해 다시는 철회를 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청약자가 철회권을 유보하고서 청약을 하였다면, 청약의 철회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매수인이 매도인으로부터 상품을 구입하면서 청약철회의 유보기간을 허락받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청약철회 유보기간을 영미법에서는 ‘cooling-off period’라 하는데, 이러한 유보기간이 존재할 경우 청약자에게는 철회권이 유보된 것이므로, 청약자는 그 유보기간 내에 청약을 철회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구속력으로 인해 대개의 경우 청약자는 계약이 확정될 때까지 청약을 유인하는 자에 비해 훨씬 더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청약을 한 후 사정이 변경되어 더 유리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거나 청약을 다소 경솔하게 했다 하더라도, 청약자는 그 계약으로부터 빠져나올 여지를 가질 수 없는 반면, 승낙자는 다른 계약의 선택을 위한 여유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소비자계약상의 청약이나 고용계약 합의해지의 청약에 있어서는 청약에 대하여 구속력의 완화가 예외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을 비롯한 유럽과 우리나라에서 소비자는 방문판매나 할부거래, 전자상거래 등의 경우 일정기간 이내에 청약의 철회가 가능하도록 돼있다(방문판매법 제10조; 할부거래법 제5조 1항; 전자상거래법 제17조 1항). 그리고 피고용자가 고용주에게 사직원을 제출하는 것은 법적인 의미에서 합의해지의 청약으로 해석되는데, 그 청약에 관해 고용주 측이 승낙할 경우, 그 피고용자가 다시 근무할 것을 희망했다 하더라도, 청약의 구속력에 의해 그 피고용자는 반드시 사직을 해야만 하는 것이지만, 판례는 이 경우에 청약의 구속력을 어느 정도 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법원은 교사가 합의해지의 청약후 학교의 내부적인 승낙의 의사가 형성되기 전에 철회한 것이며, 그 철회를 허용하는 것이 학교에 대한 불측의 손해를 주게 되는 등 신의칙에 반하는 사정이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 한, 그 철회의 효력은 인정된다고 판시하였다(大判 1992.4.10, 91다43138). 사직원의 경우 청약의 의사표시가 상대방에게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승낙의 의사가 형성되기 전까지 청약의 구속력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판례이다.

청약자가 상대방에게 계약청약을 통지할 때에 그 승낙기간(承諾期間)을 정해두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승낙기간을 독일어로는 ‘Annahmefrist’ 또는 ‘Bindungsfrist’라 하고, 영어로는 이를 ‘time limit for acceptance’라고 한다. 이렇게 승낙기간을 정한 경우에는 그 기간(제528조 1항) 동안, 만약 승낙기간의 정함이 없는 경우라면 상당기간(제529조) 동안 청약은 구속력을 갖는다. 그러나 그 기간동안 승낙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청약은 구속력을 잃고, 청약자는 이전의 청약으로부터 해방되어 더 유리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다만 승낙기간 내에 승낙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상대방으로부터 유예기간의 요청이 있는 것으로 해석될 경우 청약은 상당한 기간 동안(제529조) 더 구속력을 갖는다. 대화자 간의 상행위에서는 상대방이 즉시 승낙하지 않으면 청약은 구속력을 잃는다(상법 제5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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