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원칙, 그 제한은 예외


방금 독일어로 성서를 읽다가 밑줄을 친 구절 하나. 베드로전서(1. Petrus) 제2장(Kapitel 2) '세상에서의 처신(Das Verhalten in der Welt)' 부분인데, 제16절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음:

"als die Freien, und nicht, als hättet ihr die Freiheit zum Deckel der Bosheit, [...] (자유인으로 살되, 악행의 구실로 자유를 가진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되며, [...])"

기독교윤리가 옛날부터 인간에게 원칙적으로 복종과 규율을 더 강조해온 것이 아니라, 이미 베드로시대부터 인간에게는 일단 자유가 원칙임이 강조되었고, 그것이 단지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추가적으로 부언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음. 참고로 갈라디아서(Galaster) 제5장(Kapitel 5) 제13절에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있었음:

"Ihr aber, liebe Brüder, seid zur Freiheit berufen! Allein sehet zu, daß ihr durch die Freiheit dem Fleisch nicht Raum gebet; sondern durch die Liebe diene einer dem andern. (그러나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자유로 부름 받았다! 다만 주의하라, 너희는 그 자유를 통해서 육체에 자리를 내어주지 말고, 사랑을 통하여 서로에게 봉사해야 함을.)"

여기에서도 인간의 존재의의가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은 자유에 있음이 강조되었음을 볼 수 있음. 다만 그 자유의 제한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성서는 이에 관해 법적으로 명쾌한 얘기를 하지 않고, 단지 육체적 욕구를 위한 것으로 그 자유를 써먹지 말고 사랑과 봉사를 위해 그 자유를 써먹으라는 정도의 추상적이고 윤리적인 얘기를 하고 넘어간다는 것을 볼 수 있었음. (그러니까 인간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으로 태어났다거나, 국가와 민족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사회적 도덕적 의무에 충실한 연후에야 비로소 일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식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음. 기독교인이라면 모름지기 자유보다 복종을 더 미덕으로 알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음.)

다시 말해 기독교적 전통에 입각한다면, 자유가 일단 원칙이고, 그 제한은 예외적인 것을 알 수 있음. 그런데 이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국가질서, 사회안전, 공공복리나 사회정의 같은 것을 기본적인 원칙으로 삼고, 자유는 오히려 예외적인 것처럼 설명하는 전체주의적 법학이론들은 - 그것이 대부분 서구 기독교문명권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론들임에도 불구하고 - 기독교적 윤리의 전통에 상당히 반하는 것임을 여기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음.


댓글 3

장종필
장종필
저는 여기에 대해서 생각이 좀 다릅니다. 실제로 베드로전서 제2장을 보면 제1절에서부터 제15절에 이르기까지 크리스챤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의무들을 먼저 길게 나열하고 제16절에 와서야 비로소 '너희들에게 자유가 있다'는 말을 하죠. (아니 그 앞의 제1장 제13절에서부터 크리스챤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의무사항들이 주욱 나열됩니다.) 자유가 먼저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으면 제2장 제1절이나 아니면 그 앞의 제1장 제1절에서부터 '너희들에게는 자유가 있다'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자유' 얘기가 나오는 것은 한참 뒤이니까, 베드로시대부터 자유가 기본원칙이었다는 시각은 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 그리고 베드로전서 제2장 제16절의 전문을 옮겨보면 "너희는 자유가 있<b>으나</b>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b>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b>"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장 전체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너희에게 자유가 있다"는 앞부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는 뒷부분에 있는 거니까, 사실상 자유보다 복종을 강조하는 문장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우리 민법의 지도원리로 '사적 자치의 원칙'을 강조하시는 분이란 거는 물론 잘 알겠는데, 그래도 고대 기독교윤리로부터 이러한 '사적 자치의 원칙'을 도출하려 하시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1stwhitewhale
1stwhitewhale
장종필님께/ 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의 문체를 보면, 대부분 훈계적인 음조로 이루어져 있고, 당시의 적대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어 처신할 것인지를 무겁게 명령하는 내용들이 지배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베드로전서 내에서 명령형 구문만 5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간인 제2장 제16절에서 "너희는 자유인으로서 살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기독교 신자들의 처한 상황이 그토록 긴장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의 그 모든 명령들을 일순간에 '권고'로 만들어버리는 파격성을 내포하는 문구를 중간에 집어넣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을 갈라디아서 제5장 제13절과 연관지어서 생각한다면, 기독교윤리가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복종은 법률에 의한 강제적 복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복종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해석일 뿐이니, 너무 이에 구애받지는 마시기 바라겠습니다.
장종필
장종필
교수님의 개인적 해석일 뿐이라고 하시지만, 거기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도 있을테니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일찌기 마르틴 루터가 요한복음, 그리고 로마서와 함께 모든 신약성서 가운데 가장 핵심 중의 핵심이요 진수라고 극찬했던 베드로전서가 그 문체부터 훈계적이고 명령적이라는 것만 보더라도 기독교윤리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고요. 그 중간인 제2장 제16절에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라는 구절 하나가 들어갔다고 해서, 주인장님께서 거기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시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제1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했습니다. 내가 돈을 얼마를 갖고 있든 그건 내 자유라고 주장하는 부자들에 대해서 단도직입적으로 X까라고 하면서 부의 공평한 분배를 명령한 것인데요.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는데도 기독교윤리를 자유주의적인 것으로 해석하시는 것은 주인장님께서 기독교의 정신을 완전히 왜곡하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오히려 기독교윤리는 자유주의보다 사회주의에 더 통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고요. 중세의 기독교사회가 지금의 자본주의사회보다는 오히려 공산주의사회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독교윤리를 자유주의에 직결시키는 주인장님의 생각은 틀렸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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