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순위담보권자의 대위변제와 순위승진


변제자대위에 대해서 공부하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변제자대위제도는 - 물론 약간의 차이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 우리나라민법과 독일민법, 프랑스민법에서 모두 인정되고 있는 제도인데, 독일민법이나 프랑스민법의 경우 후순위권리자가 대위변제를 하고서 순위승진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후순위권리자가 순위승진을 위해 대위변제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변제자대위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다. 채무자 아닌 자가 채무자를 대신하여 대위변제를 할 경우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채권 및 그를 담보하기 위한 권리가 대위변제자에게 당연히(민법 제481조) 또는 채무자의 반대의사 입증이 없을 경우(제480조 1항) 그대로 이전하고, 그 결과 그 권리들을 대위변제자가 채무자에게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후순위저당권자나 후순위임차권자 등이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무를 변제하는 경우, 일부의 후순위담보권자는 채무자 본인에 대해 선순위채권자를 대위하는 것보다 채무자에 대한 자기 권리(대항력)순위를 상승시키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일부의 후순위담보권자는 채무자에 대한 선순위담보권자의 채권과 담보권을 선순위자로부터 이전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선순위담보권자의 채권 및 담보권을 소멸시키고 자기 후순위담보권의 순위를 선순위로 승진시키고 싶어한다. 선순위담보권자의 피담보채권이 경매절차에서 말소기준권리가 되거나 후순위담보권자의 피담보채권이 선순위담보권자의 피담보채권보다 더 고이율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컨대 선순위채권과 담보권을 물려받는 것보다 이를 소멸시킬 경우 후순위담보권자는 대위변제로써 더 유리한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매수인이나 채무자는 그 제3자의 변제에 의하여 더 불리한 위치에 놓일 것이다. 따라서 독일민법과 프랑스민법은 이러한 경우에 대위변제한 후순위담보권자의 담보권순위가 선순위로 승진하는 것을 금지한다.

일단 독일민법은 순위승진의 원칙이 아니라 순위확정의 원칙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한번 2번저당권자는 그 저당권이 소멸할 때까지 영원히 2번저당권자일 수밖에 없다. 저당권설정 후의 우연한 사정에 의하여 후순위저당권의 순위가 갑자기 상승하는 등의 결과는 채무자의 이익을 부당히 침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경우 대위변제한 후순위저당권자에게 놓인 선택지는 독일법상 단 두 개이다. 자기가 갖고 있던 후순위저당권의 행사에 앞서 선순위저당권을 이전받아 대위행사하거나, 아니면 선순위저당권을 포기하거나 두개 중 하나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자기가 갖고 있던 후순위저당권의 순위를 상승시킬 수는 없다. (비유하자면 한번 하이에나는 영원한 하이에나다. 다시 환생하여 사자로 태어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사자가 먹고 남긴 찌꺼기를 뜯어먹는 하이에나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민법은 순위승진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사자에게 다른 동물의 시체를 던져줄 경우, 하이에나가 사자로 둔갑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그래도 대위변제, 특히 법정대위변제에 의하여 소멸한 피담보채권과 그 담보권은 대위변제자에게 '당연히' 이전하기 때문에(제481조), 대위변제자는 선순위담보권의 소멸을 주장할 수 없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실무상으로는 대위변제를 한 후순위담보권자가 그 변제를 이유로 대위변제한 피담보채무를 소멸시키고서 그 소멸을 원인으로 하여 선순위담보권등기를 말소등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대위변제한 후순위담보권자의 담보권이 순위승진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 그러한 목적의 대위변제가 실제로도 빈번히 행해진다는 얘기이다.

이것이 후순위담보권자의 채무자나 그 보증인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이 될 수 있는지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어느 채무자의 부동산에 1번 저당권이 설정되었고, 그 1번 저당권으로 담보되는 피담보채권의 이율은 연 7%라고 하자. 원금이 1억원이면 그 연이자가 7백만 원이다. 그리고 그 부동산에 2번 저당권이 설정되었고, 그 2번 저당권으로 담보되는 피담보채권의 이율은 연 30%라고 하자. 원금이 1억원이면 그 연이자가 3천만 원이다. 그런데 2번 저당권자인 어느 저축은행이 1번 저당권으로 담보되는 피담보채권을 대위변제한 후, 1번 저당권등기를 말소등기해버렸다고 하자. 그리고 2번 저당권자가 대위변제한 금액 1억 7백만 원 만큼 채무자의 마이너스통장으로부터 금원을 더 인출한 것으로 하고, 변제자대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어리버리한 채무자의 동의를 받았다고 하자.

이 경우 연리가 무려 30%나 되는 고리채는 원래 2번 저당권이라는 약한 담보권으로만 담보되던 권리였는데, 2번 저당권자의 교묘한 술수로 인하여 2번 저당권이 아닌 1번 저당권의 피담보채권으로 변신하게 된다. 그리고 연리가 겨우 7%밖에 안 되던 1번 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은 2번 저당권자에게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소멸해버린다. 물론 2번 저당권자가 나중에 그 저당부동산을 경매할 경우 채무자는 더 많은 금액이 배당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에서 정말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확신을 못하겠다. 실제로 부동산경매실무에서 선순위저당권이 실행될 때 후순위임차권자가 그로 인하여 자기 임차권이 소멸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경매 직전에 선순위채권을 대위변제하여 그 임차권이 1순위로 올라서고 낙찰자가 그 임차권을 떠안아야 하는 경우는 대단히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나 대위변제한 금액에 대해서 구상권을 취득하거나 원채권을 이전받는 대신 그 금액만큼 고리채의 원금으로 산입하는 일이 실제로 정말 일어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옛날엔 이런 일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요즘같이 강남 부동산들이 엄청나게 저평가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경매를 기피하는 담보부동산소유자들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져 이런 일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 같으면 대위변제가 있을 경우 채권과 담보권이 자동으로 이전되어버리므로, 대위변제자가 그와 관련해서 대위변제된 채권을 소멸시킨다거나 자기가 갖고 있는 후순위피담보채권에 산입시킨다거나 그러한 장난을 칠 여지는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참으로 괴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_-;;;



댓글 5

노광균
노광균
교수님 말씀하신 것 같은 황당한 일이 실제로 발생하기는 거의 어렵겠지만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겠네요. 후순위저당권을 갖고 있는 은행 입장에서 고금리의 채권에 배당을 조금밖에 못 받는 건 억울할테니까 몇년 후에는 그 부동산의 경매가격이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선순위저당권부채권을 변제하는 배팅을 해볼 수도 있겠네요.

채무자가 똑똑하다면 즉각 대위에 의한 저당권이전의 부기등기를 후순위저당권자에게 시키겠죠. 하지만, 채무자가 어리버리하다면 후순위저당권자의 대위변제에 그저 고맙다고 시키는대로 다하겠습니다 하겠네요. 실제로 자기소유부동산이 경매로 넘어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 채무자라면 대신 갚아주겠다는 은행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고요. 대위변제된 금액은 원래 법정이자 5%만 물어줘도 되는 걸텐데 정말 연리 30%의 이자를 물기로 하는 준소비대차계약서에 사인을 한다면 골 때리겠네요.

그런데 이런 경우라면 대위변제된 채권은 이미 변제로 소멸해버린 건데, 이미 소멸해버린 채무의 보증인에게 후순위저당권자가 변제자대위를 할 수는 없겠죠. 보증인이 대위변제자와 따로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한... 안 그러면 연리 7%의 채무에 보증을 선 사람이 갑자기 연리 30%의 채무에 보증을 서게 된다는 게 말이 안 되겠죠.

혹시 후순위저당권자는 대위변제 후에 선순위저당권의 말소등기를 할지 아니면 대위에 의한 이전등기를 할지 상황의 추이를 봐가며 결정하기로 양다리를 걸칠 수 있는 걸까요? 아... 그렇다면 후순위저당권자는 대위변제 한번 해놓고 꽃놀이패를 손에 쥐는 거네요. ㅋ
김영연
김영연
일고의 가치도 없는 글을 쓰셨군요. 후순위저당권자 입장에서 보증인에게 변제자대위할 생각이 있었으면 대위변제하면서 선순위저당권자의 피담보채권을 존속시켰을 거고 선순위저당권등기를 말소등기시키지도 않았을 겁니다. 상식적으로 좀 생각을 해보세요. 후순위저당권자가 만약 자기 저당권순위 상승시키고 싶었으면 대위변제 자체를 하지를 않았겠죠. 채무자한테 돈 빌려주고 채무자더러 직접 갚으라고 했겠죠. 여기에 대위변제 얘기가 왜 나오는 건지? 대위변제하고서 선순위저당권등기 말소시키는 거는 후순위임차권자나 그렇게 하는 거지 후순위저당권자가 그런 짓 한다는 거는 머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위변제한 후순위저당권자는 선순위저당권을 무조건 살려서 대위권으로 손에 쥐는 게 더 유리한 거에요. 든든한 저당권을 넘겨받았는데 한번 써먹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다 버린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에요? 후순위임차권자가 대위변제하고서 선순위저당권등기 말소시키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후순위임차권자가 사회적 약자로서 주거의 보호를 받아야 되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그렇게 허용하는 거죠. 실무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것부터 좀 알아보고 글을 쓰세요.
김규수
김규수
은행업의 보수적 특성상 고객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대위변제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후순위저당권이 배당을 거의 못 받게 됐다 하더라도 그런 건 그냥 리스크로 치부하고 경매를 방관하지 대위변제로 모험을 거는 건 손해를 더 키우는 일이라 기피합니다. 전 뭐 실무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일단 후순위저당권자가 대위변제를 하고 변제자대위를 한다는 거 자체에 대해서 전혀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그런 건 진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H.호나우두
H.호나우두
후순위저당권자의 대위변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저는 실무에 대해서는 쥐뿔로 모르는 학생이지만 대체 후순위저당권자의 대위변제가 있을 수 없다라는 말씀들을 어떻게 그렇게 자신있게들 하시는지 놀랍기만 할 뿐이네요. 은행업이 보수적이어서 그렇다고 하시는데, 요즘 은행영업이 얼마나 공격적인지 몰라서 그러시나... 후순위저당권자가 대위변제하면서 저당권순위승진시키려고 선순위저당권등기 말소시키면 보증인한테 변제자대위도 못할테고 괜히 구상권의 담보만 잃어버리니까 저당권순위승진시키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하시는데, 채무자한테 보증인이 없을 때도 있겠죠. 구상권을 후순위피담보채권에 집어넣는 것도 포괄근저당과 준소비대차라는 방법이 있을테고... X_X
교수님 말씀대로 자기 소유 담보부동산의 경매를 기피하는 채무자의 이해관계가 절실하기만 하면 우리나라 법상 그 어떤 교묘한 탈법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요...
김영연
김영연
저는 주인장한테 말을 걸었는데 거기에 책임지고 답변해야 할 주인장은 어디로 도망갔는지 보이지 않고 자꾸 어린 학생들이 대신 끼어들어서 답변을 하는군요. 어린 학생들 말로는 교묘한 탈법(?)을 하면 가능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데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굳이 우리나라법에서만 문제될 것도 없죠. 독일법에서는 뭐 교묘한 탈법이 없을 거 같습니까? 채무자와 후순위저당권자의 이해관계가 절실하기만 하면 독일에서도 포괄근저당에다가 준소비대차에다가 벼라별짓을 다해서 결과적으로 후순위저당권자가 폭리를 챙기도록 교묘히 다 짜맞춰놓겠죠. 하지만 그건 우리나라에서든 독일에서든 다 처벌대상인 데다가 그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문제점이지 민법규정이 잘못돼서 발생한 문제점은 아니지 않나?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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